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08화 (806/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빠네와 고르곤졸라 피자, 거기에 시원한 블루 레몬에이드 한 잔 마시면 딱 이겠는데....”

“빠네가 이탈리아 말로 빵이지? 그럼 이태리 음식 전문점에 가야 하는데....여기는....없네?”

피자 전문점은 있었고 이태리 피자도 만들어 파는 듯 했지만 그뿐이었다. 하긴 이곳에서 쥬리가 먹고 싶다는 이태리 음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긴 했다.

“쩝....이태리 음식점의 양 갈비도 끝내 주는데....”

오늘 따라 이태리 음식에 유독 집착을 보이는 쥬리. 그때 타미라가 내게 있어서 청천벽력 같은 소릴 내 뱉었다.

“여기 말고 브룩필드 플레이스에는 이태리 음식 전문점이 있는데....”

“그래?”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는 쥬리. 그녀가 힐끗 나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하아....그래. 브룩필드 플레이스로 가자.”

그렇게 점심시간에 우리는 거대한 유리 지붕 아래에 자리한 고급 몰인 브룩필드 플레이스로 이동했다. 로어 맨해튼에 있는 브룩필드 플레이스는 세계적인 수준의 쇼핑, 다이닝,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명품 리테일 매장과 식당이 있는 10층은 아치형 유리 천장 파빌리온 인 윈터가든에 자리하고 있었다.

“잘 됐다. 식사하고 명품관부터 훑자고.”

“좋지.”

나만 빼고 둘이 손발이 척척 맞은 쥬리와 타미라. 이동하느라 시간을 제법 잡아먹은 터라 우리는 곧바로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으로 가서 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당연히 쥬리는 자신이 먹고 싶어 하던 이태리 음식들을 시켜 먹었고, 타미라도 연신 맛있다며 혼자 2인분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괜찮네.”

나도 오랜만에 먹는 이태리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바로 그 층에 있는 명품관, 그 중에서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같은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와 폴스미스와 룰루레몬 같은 브랜드에서 쇼핑을 즐겼다.

브룩필드 플레이스는 특히 채광이 좋았는데 16그루의 야자수에게는 온실이 되어주기도 하고, 미술 전시회, 라이브 음악 공연, 트리베카 필름 페스티발 등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쇼핑을 더 즐긴 뒤 몰 뒤편으로 이동, 그곳에 넓은 야외 광장이 있었는데 강과 뉴저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때 쥬리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겨울철에 이곳 브룩필드 플레이스의 아이스링크는 그나마 맨해튼 사람들이 덜 붐비는 링크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겨울에 뉴욕에 오면....여기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는데....”

아련히 옛 추억을 되뇌는 쥬리. 근데 스케이트를 누구와 탔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리암이로군.’

쥬리에게 아직 전 연인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는 거 같았다. 물론 그런 그녀의 추억까지 내가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 더욱이 리암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 않는가?

여기서 그런 그를 질투하는 건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죽였으니 말이다.

* * *

리암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는 두 여자들이 원하는 걸 다 사주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쇼핑 시간이 더 길어졌고....

“허얼....”

어느 새 바깥이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내친 김에 우리는 브룩필드 플레이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유명한 음식점 브랜드들이 많았는데 그 중 우리는 마이티 퀸즈 바비큐를 찾았다.

거기서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나서 이미 양손으로도 다 들 수 없이 많은 쇼핑백을 경호팀원들에게 넘긴 우리가, 느긋하게 매장 입구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우리를 태울 차가 와서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두 여자들과 그 차에 탔고 차는 곧바로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가는 동안 차 안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조용했다. 두 여자 모두 지쳐서 차 안에서 곤히 잠이 든 것이다.

“하긴....그렇게 돌아다녔으니....”

남자인 나도 다리가 뻐근했다. 얼마나 쇼핑몰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으면 말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내 바지 속에 핸드폰이 진동했고 나는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어. 김 과장.”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 그는 지금 나와 같이 뉴욕에 있었는데 내가 맡긴 일 때문에 요즘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 올 일은 아마도 내가 맡긴 그 일 때문일 터.

-대표님. 두 곳과 조율이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내일 그 두 곳으로 가셔서 계약만 잘 하시면 됩니다.

“좋아. 수고했어.”

내 예상대로였다. 김종훈은 내가 맡긴 일 때문에 전화를 했고 그 일을 잘 성사 시켰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그의 노고를 치하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며칠 전 김종훈과 나 사이에 내기가 있었고, 그 내기에 진 김종훈은 미국에서 챙겼던 보상을 다 잃고 개털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기에 향후 그가 쌓게 될 공에 대한 치하도, 그 져버린 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됐고 말이다. 즉 그 일환으로 나는 김종훈에게 치하 따윈 하지 않아도 됐다. 때문에 지금처럼 말로만 생색내기 칭찬으로 입 닦으면 그만이었고.

-....

당연히 침묵 속에 김종훈은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일 보자고.”

나한테는 턱도 없는 짓거리다. 내기에 졌으면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이지 말이다. 꼭 진 사람들은 구차해진다. 그건 김종훈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었다.

-저....대표님. 두 구단을 완전 파격적인 금액으로 인수 하는데....제게도 좀....

사람이 참 간사하다. 만약 내기에서 김종훈이 이겼다면....그는 서울에서도 금싸라기에 위치한 고층건물의 건물주가 됐을 거다. 내게서 확실하게 그 고층건물을 챙겨 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내기에서 졌고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응당 그 대가를 치르는 게 맞지, 내가 그의 사정 따윌 봐 줄 이유는 없었다.

“우리 내기 할 때, 이후 미국 일정에서 김 과장에게 줄 보너스는 배제하기로 한 걸로 아는데?”

-....

내가 당시 내기를 상기시키자 김종훈도 양심은 있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 미국 일정이 정확히 언제까지인지 알고 싶네요.

그러니까 김종훈은 내기를 핑계로 자신을 언제까지 보상도 없이 부려 먹을 지를 내게 따져 묻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김종훈을 아무런 보상 없이 노예처럼 부려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확실히 말했다.

“다음 번 일까지로 하지.”

내가 앞으로 김종훈에게 시킬 일 중 딱 한 번에 한해서 김종훈에게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선에서 그와 한 내기의 조건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내일 오전 10시에 뉴욕 닉스 구단 사무실에서 뵙도록 하죠.

그렇게 김종훈과 통화를 끝낸 나는,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 속에 넣으면서 차창 밖을 내다봤다. 그랬더니 뉴욕의 번화가에서도 유독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건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

호텔에 도착하고 잠들어 있던 두 여자들을 겨우 깨워 우리가 묵고 있는 로얄 스위트 룸으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룸 안으로 들어간 두 여자들이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로 가서 뻗어버렸다.

“쯧....”

나는 혀를 차며 내 방으로 들어갔고 곧장 욕실로 들어가서 깨끗하게 씻고 나왔다. 그렇게 가운 하나 걸친 채 거실용 공간으로 나온 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 맥주 하나를 꺼내 마시며 창가로 다가섰다.

“....좋군.”

뉴욕 번화가의 밤거리는 역시나 볼만했다. 그렇게 캔 맥주 하나를 다 비울 때까지 창가에 서서 뉴욕 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문득 한국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한국에 있는 내 여자들....

그 중에서도 제일보고 싶은 건 역시 김 비서였다. 해서 나는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싶었다.

지금이 밤 9시니 서울은 오전 11시. 김 비서가 근무 중일 시간이니 전화를 해도 됐다. 그래서 내 방으로 들어가서 내 개인 핸드폰을 꺼내 와서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으음....”

그런데 김 비서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JYB엔터의 임원들 중에 차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미국으로 출장가기 전에 인사 서류에 사인을 했다. 바로 차은석 특수 1부문장을 상무로 승진에 필요한 결제였다. 그러니까 차은석 상무는 확실하게 현재 JYB엔터의 임원 중 한 명이 맞았다.

-네. 대표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차 상무가 내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차 상무 핸드폰에 내 개인 핸드폰 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그녀와 다이렉트로 여러 차례 통화를 했었고....

“차 상무. 잘 있었어요?”

-네. 대표님도 건강하시죠?

“네. 내가 차 상무에 이렇게 전화한 건....”

차 상무도 내가 왜 회사 내선 전화로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는 알 거다. 그 정도 눈치가 있으니 내가 아직 30대 초반인 그녀를 상무로 만든 거고.

“김 비서가 내 전화를 안 받아서요. 혹시 최근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내가 다른 임원들은 제쳐두고 차 상무에게 전화를 건 진짜 이유는....바로 차 상무가 김 비서와 개인적으로 친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대표님. 그게 실은....

그리고 차 상무는 김 비서가 왜 내 전화를 안 받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차 상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냉장고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캔 맥주를 하나 더 꺼냈다. 고구마 100개라도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져서 말이다.

* * *

하지만 차 상무와 통화 중에 맥주를 마시지는 않았다. 대신 차 상무와 통화를 끝낸 직후 캔 맥주를 딴 나는 단숨에 맥주 캔 하나를 비웠다.

“벌컥! 벌컥!....크으윽!”

시원한 목 넘김 후 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감탄사, 그 후 자연스레 트림을 하고 난 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 상무를 통해서 나는 김 비서가 지금 휴가를 내고 회사에 출근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왜 휴가를 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됐고.

“드디어 복수에 나선 거로군.”

김 비서의 복수는 이미 예정 된 바였다. 실제 내가 미국 출장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은근슬쩍 복수에 대한 얘기도 꺼냈었고. 그때 나는 분명 그녀에게 말해 줬다. 너의 복수를 내가 돕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국에서 내 굳은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양태석에게 얼마든지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고 말해 줬었고. 하지만 그녀는 내 그 말에 살짝 부정적인 시선을 내비쳤다. 딱 봐도 자기 고집대로 자기 혼자 힘으로만 복수를 진행할 거처럼 보였고.

나는 핸드폰의 전화번호부에 양태석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누가 양태석 아니랄까? 그는 국제 전화임에도 벨이 두 번 울리자 재깍 내 전화를 받았다.

“김 비서 말인데. 혹시 양 상무에게 도움 같은 걸 요청하지 않던가?

나는 오랜만임에도 양태석에게 안부 따윈 묻지 않고 바로 내 용건부터 말했다. 그와 나 사이에 겉치레 인사 따윈 필요 없었으니까.

-아니요. 아무런 연락 없었습니다.

“역시 그랬군.”

-대신 지시하신대로 김 비서님 주위에 사람은 붙여뒀는데....뭔가 위험한 일에 개입한 거 같더군요.

“위험한 일?”

-네. 유재섭이라고 서울에 임대업자인데, 알아보니 예전 조폭 두목 출신으로 제법 악랄하고 추잡스럽게 살아 온 놈이더군요. 한데 그놈 주위를 김 비서가 조사하고 다녔고, 그게 놈의 주변 레이더망에 포착 된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놈이 곧 손을 쓸 거 같은 데....

유재섭은 나도 익히 아는 자였다. 왜냐하면 김 비서의 복수 당사자였으니까. 전에 내가 그놈을 처리해 줄지를 물었을 때 김 비서가 그랬다. 그놈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처단할 거라고 말이다.

“김 비서 좀 잘 챙겨. 그녀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내가 못 참을 거 같으니까. 내 말....무슨 말인지 알지. 양 상무?”

-네. 압니다. 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제주도 말인데....

양태석은 잠시 말하길 주저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서 했다.

-윤재구 회장이....어제 별세 하셨습니다.

“뭐?”

JG투자증권사의 창립자이자 전 대표로 한국 경제사에서 금융 쪽으로는 확실한 한 획을 그으신 분이 윤재구 회장이었다. 뭐 그에게서 털어 먹을 건 다 털어 먹은 상태라 그의 죽음이 이제 와서 내게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단지....

‘내 애견 엘베와 시스템이 내게 준 중국인 킬러 미션이 문제긴 한데....’

나는 바로 양태석에게 물었다.

“엘베는?”

현재 엘베는 윤재구 회장이 데리고 있었다. 엘베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나로서는 윤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듣자마자 엘베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윤 회장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제주 별장에 있는 엘베를 챙기긴 했는데....

또 말꼬리를 흘리는 양태석. 그가 그럴 이유는 어차피 하나뿐이었다.

“엘베 상태가 별론가 보군?”

-네. 수의사 말이....이번 달을 넘기기 어려울 거 같다고....

원래는 출장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윤 회장과 엘베를 챙길 생각이었다. 둘 다 이번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걸 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출장이 꼬이면서 벌써 2주를 더 미국에서 머물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나조차 모른다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