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며칠 차이였다. 안톤이 선친의 장례식을 치르고 가주의 자리에 오른 뒤 급사했다면, 다음 가주는 안톤의 장남이 차지했을 터. 하지만 안톤은 정식으로 가주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따라서 돌아가신 선친이 남긴 아들들 중 가장 장남인 윌리 록펠러....그가 차기 가주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이거....꿈만 같군.”
여전히 자신이 록펠러 가문의 현 가주란 사실이 믿기지 않은 윌리. 그는 출근하는 길에 차 안에서 자신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그러자 여실히 느껴지는 고통.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봐.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된다고?”
가주로서 자신의 일을 해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같은 차에 타고 있는 조수석의 수행비서에게 오늘 스케줄을 묻는 윌리.
“네. 가주님. 오늘 첫 일정은....”
그러자 수행비서가 태블릿 화면을 몇 차례 터치 후, 오늘 윌리 록펠러가 해야 할 일들을 줄줄이 늘어놨다. 그 말을 들으며 윌리는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도 저녁 8시까지 빡빡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귀찮거나 힘들 긴커녕 오히려 즐거운 윌리였다.
왜냐하면 그 일정 중 그가 주인공이 아닌 게 없었으니까. 뭘 하든 그 일에 주인공은 빛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윌리는 자신이 늘 최고여야만 했다. 하지만 안톤이 늘 그 앞을 가로 막았다.
단지 그 보다 2년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로 말이다. 한데 윌리는 그걸 티 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안톤이 그를 살려주지 않을 걸 오래전부터 눈치 챘던 것이다.
그만큼 안톤은 속이 시커멓고 무서운 놈이었고, 자신은 그런 안톤을 상대로 도저히 싸워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저 숨만 쉬고 조용히 살아야만 했다. 이 나이 먹도록 말이다.
부친인 마이어 록펠러가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건 안톤이 가주가 되면서, 윌리는 눈치껏 뉴욕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여생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고, 그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최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그걸 즐겨야하지 않겠나? 그때 그의 눈에 록펠러 본가가 보였다.
현재 윌리는 록펠러 가문의 가주지만 록펠러 본가에 살고 있지는 않았다.
가주가 됐다고 윌리가 바로 본가에서 사는 건 아니었다. 그가 본가에서 독립해서 나와 산지 어언 40년....
그의 모든 게 본가 밖에 있었다. 그리고 본가에서도 새로운 가주가 들어가 살 공간을, 가주의 취향에 맞게 새롭게 단장을 해야만 했고 말이다. 그래서 윌리는 일주일 뒤에 본가에 들어가기로 하고 지금은 가주가 되기 전에 그가 살았던 곳에서 본가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그 말 후 차에서 먼저 내린 수행비서가 차문을 열었고 윌리는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 앞으로 쭉 도열해 있는 사용인들. 가주인 그를 맞기 위해 나와 있는 그들 사이를 통과해서 본가 건물 출입문 앞에 도착한 그를, 가주의 비서실장이자 가문의 집사인 아담이 정중히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가주님.”
“좋은 아침이야. 아담.”
아담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그렇게 새롭게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된 윌리의 하루가 시작 되고 있었다.
* * *
오전 일정을 다 소화하고 점심을 뉴욕 시장과 같이 한 후, 윌리는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뉴욕증권거래소로 움직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가 이곳을 찾았을 때 그를 맞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곳 거래소장인 프레드릭 한슨입니다.”
무려 뉴욕증권거래소장이 직접 나와 그를 맞아 주었다. 그 소장 주위로 십 수 명의 거래소 임원들이 형형하게 눈빛을 빛내며 윌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말이다. 하긴 여기서 윌리의 눈에 들면 그들도 얼마든지 뉴욕증권거래소의 소장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윌리는 프레드릭 소장과 한담 후 록펠러 가문의 현 투자 현황을 보고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아파 오기 시작한 윌리. 아무래도 점심 때 뉴욕 시장과 먹은 해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았다. 그걸 바로 눈치 챈 아담 실장.
“거기....잠깐만 쉬었다가 하지.”
“네? 아네. 그럼 10분 뒤마저 보고를 이어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고가 잠시 중단 된 사이 윌리는 후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으으으으....”
시원하게 설사를 하고 나자 그제야 복통이 사라지며 이제 살았다 싶은 윌리. 그런데....
“그 얘기 사실이야?”
“뭔 얘기?”
“이번에 운 좋게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된 윌리 록펠러 말이야.”
“아아. 그 얘기....”
자신의 얘기가 지금 화장실 칸막이 밖에서 들려오자 윌리는 두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젠장....그 얘기가 뭔지 얘기하고 갈 것이지.”
그들이 소변만 보고 휑하니 나가버린 탓에 정작 윌리가 궁금해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화장실은 그들만 찾는 곳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고, 그들도 윌리 얘기를 했다.
“....데 아담 실장의 꼭두각시라지 뭐야.”
“뭐 하긴....윌리 록펠러가 뭘 알겠어? 그저 운 좋게 그 자리 앉은 양반인데....”
“그렇기는 하네. 이러면 진짜 운 좋은 건 아담 실장인 건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누가 뭐래도 록펠러 가문의 실권자는 아담 실장이니까.”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사람들의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윌리. 근데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해 있었다. 그 사이 볼 일을 다 본 사람들이 화장실을 빠져 나갔고, 그 뒤로 더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달칵!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윌리가 나왔다. 그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세면대 쪽으로 이동해서 손을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원래 그가 보고 받는 회의실 안에 화장실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 배관이 너무 노후 되어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윌리는 어쩔 수 없이 복도 쪽 공용으로 쓰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런 그에게 경호원들이 붙었지만 윌리가 따라오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아냐. 됐어. 따라 오지 마. 거기 꼼짝 말고....”
왜냐하면 볼일 볼 때 특히나 예민했던 그는, 누가 근처에 있으면 불안해서 제대로 볼일을 보지 못했다. 물론 경호원들이야 화장실 밖에 있을 테니 문제 될 건 없었지만, 문제는 그가 그걸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그걸 아는 상태로 볼일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게 신경 쓰여 제대로 볼일을 볼 수 없었던 것. 해서 윌리는 경호원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자기 혼자 복도 쪽 공용 화장실로 움직였고 다행히 볼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 밖으로 나선 윌리의 얼굴은 누가 봐도 급한 볼일을 해결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변비에 걸린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결국 볼일 보는 데 실패하고 나온 사람의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때 윌리 록펠러의 비서실장인 아담이 경호원들을 데리고 윌리가 있는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 오는 게 보였다.
평소의 그라면 그럴 거 없다며 손부터 들었을 터. 하지만 윌리는 그들이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걸 그냥 지켜만 봤다. 냉담한 눈으로....
* * *
아담은 윌리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투자 현황을 보고 받는 도중 몇 차례 얼굴을 찌푸리는 걸 보고 아무래도 그에게 문제가 있음을 캐치했다. 그래서 보고를 잠깐 중단 시키고는 윌리에게 물었다.
“가주님.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으윽. 나 배 아파.”
“네?”
“화장실 좀....”
윌리는 거의 아담을 뿌리치다시피 하고는 회의장 안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걸 보고 아담은 주치의를 부름과 동시에 배탈, 설사약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윌리가 화장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아는 얼굴의 증권거래소 임원과 최근 증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생각보다 윌리가 돌아오는 게 늦어지자 아담이 화장실 쪽으로 갔다. 혹시 화장실 안의 윌리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서 말이다.
“뭐?”
그랬는데 화장실 근처에 경호원들에게서 황당한 소리를 전해들은 아담. 회의실 안 화장실이 보수 공사 중이라 다른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윌리가 그 때문에 복도 끝에 공용 화장실로 갔다는 것을 말이다. 경호원도 없이 혼자서....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너희들도 따라 갔어야지.”
“그게....가주님께서 여기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셔서....”
“이런 미친....”
아담은 버럭 화를 내면서 경호원들을 이끌고 윌리가 갔다는 복도 끝 공용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마침 거기 공용화장실 안에서 윌리가 나오는 게 보였다.
“가주님!”
아담은 윌리를 부르며 그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만 버럭 화를 내버렸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누누이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말라고 말입니다. 경거망동하다가 자칫 신변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이는 가문에 크나큰....”
“그만!”
“네?”
그때 아담은 봤다. 그 동안 윌리가 감춰 온 색다른 얼굴을 말이다. 그리고....
“아담 실장. 나는 너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 그게 무슨....”
휙!
자신이 할 말이 무슨 말인지 그에 대해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이 윌리는 아담을 스쳐 지나가 버렸다. 그러자 아담 주위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그런 윌리를 따라 갔고. 뻥 쩌 혼자 남아 있던 아담은 이내 신색을 고치고 아담과 경호원들이 이미 들어간 회의실로 빠르게 걸어갔다. 하지만....
“뭐, 뭐라고?”
“실장님은 안으로 못 들어가십니다. 가주님의 지시입니다.”
아담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볼 일을 다 보고 나온 윌리와 록펠러 가문의 일원들이 그곳을 떠날 때, 아담은 더 이상 윌리 곁에서 그를 수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담 실장은 철저히 배제 된 상태로 나머지 일정을 소화한 윌리는, 이후 저녁 만찬 때문에 본가로 이동했고, 본가에서 아담이 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가주님. 저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바깥은 몰라도 아직 본가에서 집사인 아담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래서 아담이 윌리에게 대 놓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윌리가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
“누가 이 자를 내 앞에 오게 만들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서 그와 관계된 자들....당장 다 잘라.”
순간 아담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아차’ 싶었다. 그럴 게 윌리는 아담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아니 아담과 상대하는 거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록펠러 본가에 있는 아담의 사람들....지금 그를 윌리 앞에 오게 만들어 준 사용인들을 윌리는 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건 곧 본가 집사인 아담의 팔다리가 잘라 버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큰일이다.’
아담은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그가 쌓아온 모든 게 끝장 날 거란 걸 말이다.
“가, 가주님....”
아담이 다급히 윌리를 불렀지만 윌리는 휑하니 아담을 스쳐 지나서 본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담 테일러씨.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집사나 실장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대 놓고 부르며 축객 령을 내리는 사용인. 그자를 보고 아담이 바득 이를 갈며 말했따.
“버틀러! 네. 네가 감히....”
록펠러 본가의 사용인들의 최고 우두머리는 누가 뭐래도 아담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2인자는 있는 법. 록펠러 가의 부집사인 버틀러 데인은 아담의 그늘에 가려져, 그 동안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버틀러에게도 볕들 날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버틀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신임 가주가 아담에게 제대로 화가 났고, 그를 내치기로 한 그 결과만이 지금은 중요할 뿐.
“뭣들 하는가? 어서 끌어내지 않고.”
“네.”
이제 록펠러 본가 사용인들의 최고 우두머리는 버틀러였다. 그의 지시를 본가 사용인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거 놔. 너, 너희들 나한테 이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비록 이빨 빠진 호랑이지만 아담의 발톱은 아직 살아 있었다. 아담이 위엄을 드러내며 강하게 버티자, 본가 사용인들이 난처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걸 보고 버틀러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은 가주님의 지시다. 어서 저 자를 내치지 않고 뭣들 하는 게야!”
버틀러가 가주 지시를 운운하자 다시 본가 사용인들이 아담을 강제로 저택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담이 악에 받쳐 버럭 소리치며 버텼다.
“내가 여기 집사다.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것이야!”
그때였다. 언제 왔는지 윌리가 그곳에 나타나서 버럭 외쳤다.
“누가 여기 집사야? 아담. 넌 해고야. 그러니 내 집에서 썩 나가!”
“....”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록펠러가의 가주가 아담을 잘랐고 저택에서 나가라고 했다. 더는 저항이 무의미해진 아담. 이제는 이빨에 이제는 발톱까지 빠져 버린 호랑이가 되어 버린 그가 넋 나간 얼굴로 본가 사용인들에 이끌려서, 록펠러 본가 저택 밖으로 내쳐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