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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스미스는 안톤의 사람이 되는 대신 그에게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로 했다. 그랬는데 그런 결심을 한지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사달이 났다.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가 또 다시 응급실로 실려 오고 있단 것. 그 소식을 먼저 안톤에게 직접 전해들은 스미스.
안톤의 의도는 확고부동했다. 바로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의 죽음. 하지만 의사인 스미스는 지금 구급차에 실려 오고 있는 마이어 록펠러가 죽지 않게 만드는 게 그의 사명이었고.
“하아....어쩐다?”
잠깐의 갈등. 하지만 이미 스미스의 마음은 안톤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있는 상황.
“그렇다면....”
♬♪♩♫♬~ ♬♪♩♫♬~
그때 스미스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평소의 그라면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를 바로 받았을 터. 왜냐하면 핸드폰 화면에 뜬 번호가 바로 응급실이었으니까.
펠로우로도 안 되니 스미스를 찾고 있는 거다. 그 말은 그 정도로 응급실로 실려온 응급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고. 한데 스미스는 빤히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만약 지금 응급실에 와 있는 응급환자가 마이어 록펠러만 아니었어도, 스미스는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급하게 달려갔을 터였다. 그리고 그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응급환자가 마이어 록펠러이기에 스미스는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마이어 가주님.”
스미스는 그로부터 10여분 넘게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고.....
쾅! 쾅! 쾅!
“닥터 스미스!”
당직 수면실의 문을 누가 가앟게 두드리고 그를 찾자 그제야 스미스는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응급실로 가죠.”
스미스는 후다닥 당직 수면실 문을 열었고, 거기에는 진땀을 흘리며 그를 직접 찾으러 온 응급실 인턴이 서 있었다.
“닥터 스미스. 지금 응급실에....”
“들었어. 빨리 가자.”
스미스는 인턴의 말을 끊고 당직 수면실을 나서자마자 뛰었다. 그런 그의 뒤를 인턴이 열심히 뒤쫓아 왔지만 지친 듯 이내 스미스와 거리가 벌어졌다. 그때였다.
“어엇!”
달리던 스미스의 두 다리가 갑자기 꼬였다. 그리고....
철퍼덕!
스미스가 병원 바닥에 자빠졌다. 그때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스미스가 손을 먼저 바닥에 짚었다.
“아아악!”
잠시 후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에 겨운 얼굴의 스미스. 그 사이 뒤따라 온 인턴이 그런 스미스를 보고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닥터 스미스. 손목이 붓기 시작하는 게....아무래도 골절이나 인대가 늘어난 거 같은데....”
“크으으으....난 괜찮아. 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응급실에 와 있는 응급환자는 목숨에 경각에 달린 상황. 스미스는 그런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퉁퉁 부은 손목을 부여잡고 응급실로 달려갔고....
“아아....”
스미스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마이어 록펠러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던 응급의학과 펠로우가 절망어린 얼굴로 바이탈 사인을 확인했다.
삐이이이이....
이내 바이탈 사인의 신호가 응급환자가 사망했음을 나타내는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 소리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응급의학과 펠로우가 선언했다.
“마이어 록펠러 환자....6시 21분....사망하셨습니다.”
그때 스미스가 버력 소리쳤다.
“비켜!”
스미스는 마이어 록펠러가 누워 있는 응급베드 위에서 막 내려오던 응급의학과 펠로우를 밀쳐 내고, 그 위로 대신 올라가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외쳤다.
“에피네프로린(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물)5mg 더 투입하고 아렉스시스(혈액순환제)3mg....”
스미스의 쭉 이어지는 지시에 응급실의 의료 인력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 멈췄던 심장이 기적처럼 다시 뛰었다.
“와아....”
하지만....
“동공반응이....”
잠시 후 응급실의 호출을 받고 달려 온 신경외과 교수가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뇌사 상탭니다. 그리고....뇌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게....곧 돌아가실 거 같습니다.”
사실상 사망선고였다. 스미스는 굳은 얼굴로 마이어 록펠러의 비서실장인 아담에게 말했다.
“가족들....부르시지요?”
“아아....”
스미스의 말에 충격을 크게 받은 듯 아담이 비틀거렸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한 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아담. 그가 힘없이 말했다.
“가주님....가족들....불러.”
어째든 마이어 록펠러의 임종은 그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치러져야했다. 끝이 있어야 또 새로운 시작이 있는 법이니까.
단지 그 새로운 시작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 거란 사실에 아담은 가슴이 좀 답답했지만 어쩌겠는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새롭게 가주가 될 안톤 록펠러에게 아담은 구시대의 산물이요 청산해야 할 적폐인 것을....
* * *
마이어 록펠러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스미스. 그는 자신이 10분만 더 빨리 응급실에 왔어도 마이어 록펠러를 살려 낼 수 있었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일부러 뭉그적거렸고 그로인해 마이어 록펠러가 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버린 것.
“으으으윽....”
그리고 지금 마이어 록펠러는 정형외과에서 퉁퉁 부어 오른 자신의 손목을 치료 받고 있었다.
“맙소사. 닥터 스미스. 이런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셨단 말입니까? 자칫 인대라도 끊어지면 어쩌시려고....”
“사람 목숨이 먼저니까요.”
“하아....스미스 교수님은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병원 그 누구도 결과적으로 마이어 록펠러를 살려내지 못한 스미스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의 헌신적인 응급처치를 다들 알기 때문에.
그건 유족인 마이어 록펠러 쪽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이어 록펠어의 최측근 심복이자 비서실장인 아담은 손목 치료를 받은 뒤 정형외과를 나오는 스미스 앞에 나타나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닥터 스미스. 당신은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점 록펠러 가문을 대신해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주님을 살려냈어야 했는데....”
구급차에 실려 록펠러 본가를 나설 때 이미 심 정지 상태에 빠졌던 마이어 록펠러였다.
그걸 알기에 아담은 마이어 록펠러의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스미스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분께서 천국 가시는 길을 가족들이 배웅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어록펠러는 10여분 전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영면을 한 것이다.
아담의 그 말에 스미스가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기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때 아담이 뭐라 더 주절거렸는데 그 말들 중 스미스를 움찔하게 만든 소리가 있었다. 놀란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스미스가 조심스럽게 계속 얘기 중인 아담의 말을 끊으며 확인 차 물었다.
“잠, 잠깐만....좀 전에 안톤님께서 병원에 안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네. 연락드렸고 오시겠다고 하셨는데....아직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후계자로 당연히 가주님의 임종을 지켜야 하거늘....”
아담은 안톤이 마이어 록펠러의 임종을 지켜보지 않은 걸 두고 불쾌한 심경을 스미스 앞에서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뭐?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누가 어떻게 돼?”
잠시 뒤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난 아담은 기겁을 했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 아담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던 스미스. 그는 병원장으로부터 수고 많았다며 오늘 하루 푹 쉬어라는 얘기를 듣고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두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을 소식을 전해들었다.
“맙소사. 안톤 록펠러가 죽어?”
그것도 자신의 최측근 비서실장의 총에 말이다. 안톤 록펠러를 총으로 쏴 죽인 그 비서실장도 그 자리에서 자살을 해버렸기에, 사건의 전말은 그것으로 오리무중 상태에 빠져 버렸다.
물론 경찰에서 전 방위적으로 수사를 하겠지만 이런 사건의 경우 대개 덮이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새롭게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될 사람의 입장에서, 조사한답시고 경찰이 자꾸 그의 눈앞에 알짱거리는 게 보기 좋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스미스의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후계자 안톤 록펠러가 죽음으로 해서 새롭게 가주 자리에 오른 월리 록펠러. 그가 경찰에 압력을 행사해서 안톤 록펠러에 대한 수사를 종결짓게 만들어 버린 것.
“하아....”
당연히 안톤 록펠러가 스미스에게 제안한 뉴욕 대학 병원장 자리도 물 건너갔고 말이다.
하지만 스미스에게는 안톤 록펠러에게서 받은 돈이 있었고, 그 돈으로 더 이상 일하지 않고 평생 먹고 살 수 있었기에, 과감히 뉴욕 대학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 그리고 미련 없이 가족과 같이 프랑스에 유학 가 있는 딸이 있는 파리로 날아갔다.
* * *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와서 며칠 뒤, 내가 한 일의 여파로 인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더 머물러야만 했다. 그것도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당연히 그 사실은 한국의 삼명그룹 측에도 알렸다. 그러자 삼명그룹에서 그룹 차원에서 미국 정부에 항의를 했는데....
“꿈쩍도 않더란 말이죠?”
-네. 대체 미국에서 뭘 하셨기에 미국 정부에서 도련님께 출국허락을 내주지 않는 건지....
그거야 뻔했다. 록펠러 가문이 손을 쓴 거겠지.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제는 전대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의 비서실장이, 현 가주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고 있단다. 그 말인즉....
“쯧....귀찮게....”
마이어 록펠러가 죽고 기껏 인종차별주의 후계자인 안톤 록펠러를 제거해놨더니, 예전의 잔재가 남아서 나에 대한 묵은 원한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됐어?”
나는 어디 나갔다가 들어온 내 수행비서 김종훈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봉투에서 서류를 꺼내서 내게 건네며 말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로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된 윌리 록펠러는....”
윌리 록펠러. 안톤 록펠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운 좋게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된 자다. 안톤 록펠러의 친 동생이기는 했지만 록펠러 가문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은 아니었다.
하긴 강력한 후계자 안톤 록펠러가 있는데 어설프게 능력을 발휘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가 되었을지 모르지. 한마디로 그 동안 자기 주제를 알고 잘도 몸 사려 온 자였다.
그러고 보니 윌리 록펠러도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김종훈의 설명과 함께 그가 준 서류를 통해서 새롭게 록펠러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오른 윌리 록펠러라는 인간에 대해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인간....이거....소시오패스 같은데?”
“네?”
“아냐. 그냥 좀 성격이 이상한 거 같아서.”
“네. 뭐....주변 평판이 썩 좋은 건 아닌데 그래도 소시오패스까지는 좀....정신 분석 결과 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정적인 걸 두려워도 하고 주위 사람도 신경 쓰는 편인데다, 특히 죄의식을 느끼면 교회를 찾아 회개하고 반성하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아니지 않나....”
“....”
김종훈의 말에 나는 피식 웃기만 할 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윌리 록펠러가 어떤 인간인지는 내가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암만 봐도 내 느낌은 윌리 록펠러가 소시오패스 같았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건 금방 이뤄졌다.
“윌리 록펠러가 이따 오후 2시쯤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할 거라는 정보가 막 들어왔습니다.”
“잘 됐네.”
나는 쥬리와 같이 점심을 먹고 산책을 즐긴 뒤 대기 중인 차를 타고 뉴욕증권거래소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저 자가 윌리 록펠러입니다.”
“맞네.”
“네?”
나는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새롭게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된 윌리 록펠러가 소시오패스란 사실을 말이다.
“흐음....잘 됐어.”
그리고 그런 윌리 옆에서 열심히 그를 수행하고 있는 비서실장 아담 테일러가 보였다.
바로 나를 미국 땅에 묶어두고, 한국으로 못 가게 막고 있는 원흉인 자. 아담이 윌리 옆에 계속 붙어 있는 건 내게 있어서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내가 크게 신경 쓸 건 없겠군.”
왜냐하면 아담은 전혀 모르고 있는 거 같았으니까. 그가 모시고 있는 저 윌리 록펠러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말이다.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리며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에게 말했다.
“김 과장. 소문 좀 내.”
“네?”
뜬금없는 내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종훈. 그런 그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나는 뉴욕증권거래소 출구로 움직였다. 그런 나를 쫓아오는 김종훈에게 내가 말했다.
“윌리는 아담 실장의 꼭두각시라고 말이야.”
“....”
내 말에 김종훈이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유치찬란한 격장지계가 진정 통할 거 같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김종훈에게 나는 확실히 말했다.
“윌리나 아담은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 당장 서로가 필요하니 손을 잡았겠지만....그러니 그런 헛소문에도 흔들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