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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뉴욕 중심가인 42번가에 위치한 한 특급호텔. 르네상스란 이름의 그 호텔의 VIP룸에 묵고 있던 한 동양인이, 편한 트레이닝 차림으로 호텔 입구를 나서는 모습을, 더 이상하게 여기는 호텔 직원이나 관계자는 없었다.
그럴 것이 그 동양인이 수시로 호텔 건물 밖에 있는 공원 산책을 즐겼기 때문에.
처음은 경호원들과 같이 움직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움직였다. 그래서 그의 외출이 오늘도 밤 산책을 나가는구나 하고 프런트의 직원들은 생각했다.
근데 호텔 밖 공원으로 가야 할 그 동양인이 쭉 번화가 도로를 따라 움직였고, 그런 그의 눈에 곧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광고들이 들어왔다.
뉴욕 하면 가장 먼저 대표되는 곳. 준열은 이대로 브로드웨이가 있는 곳까지 쭉 걸어 갈 생각이었다.
저벅저벅....
준열은 타임스퀘어의 상징 빨간 계단에 올라 주변을 바라봤다. 화려한 LED 광고판과 전 세계 모든 언어를 들을 수 있었는데, 넘쳐나는 인파의 그 압도적인 모습 속에서 준열은 '엠엔엠즈 스토어(M&M's store)'와 '디즈니 스토어(Disney Store)'를 간단히 찾아냈다.
준열이 그곳에 가려는 이유는 기념품을 좀 사기 위해서였다. 곧 미국 일정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가 미국 간 걸아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 데 말이다.
타임스퀘어 주위로 많은 기념품 가게와 플래그쉽 스토어들이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준열은 그 중 그 두 곳을 방문해서 필요한 기념품들을 가급적 많이 구입했다.
그 양이 상당해서 두 곳 매니저가 특별히 준열이 묵고 있는 호텔로 그 기념품들을 배달해 주기로 했다. 물론 기념품 하나하나 정성껏 포장을 해서 말이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기념품을 무려 30만 달러가 넘게 구입한 고객이었다. 그런 VVIP고객을 위해서 포장 및 배달 서비스는 당연한 일이었다. 디즈니 스토어의 총 매니저 훔멜스는 준열이 가게 밖으로 나갈 때 직접 나와 배웅까지 했다.
그렇게 준열이 막 디즈니 스토어를 나와서 털레털레 지하철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콰아앙!
“어?”
폭발 소리가 들렸다. 지금 준열이 서 있는 곳에서 그의 시선이 바로 타임스퀘어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준열은 쫑긋 두 귀를 세웠다.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그의 청력을 통해 왜 폭발 소리가 일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으응?”
그 결과 폭발 소리 뒤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준열의 귀에 들려왔다. 이에 준열은 좀 더 집중했고 그랬더니 총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이건....”
소음기 달린 권총 소리가 계속 울렸고, 잠시 후 웬 키 큰 여자가 조직원들로 보이는 자들에게 쫓기는 게 준열의 눈에 띠었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거리였지만 준열의 눈에는 훤히 다 보였다.
“클럽 버드랜드?”
특히 그 여자와 조직원들이 나온, 폭발이 일어난 곳의 건물 간판을 읽은 준열의 시선이 이내 조직원들에게 쫓기고 있는 키 큰 여자에게 꽂혔다.
“저 여자....뭐지?”
그때 키 큰 여자가 자신을 쫓아오는 조직원들을 향해 권총을 쐈고, 그에 놀란 조직원들이 바로 응사를 하면서....뉴욕 중심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미친....”
출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뉴욕 중심가의 밤 풍경 속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근데 거기서 총질이라니....
* * *
“재미있군.”
키 큰 여자는 사람들을 방패삼아서 조직원들을 유유히 따돌렸다. 물론 조직원들도 악착같이 그녀를 쫓았다. 하지만 경찰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고 빠르게 달려 온 경찰특공대에 의해 놈들은 맥없이 제압당했다. 그런 마당에 키 큰 여자를 어떻게 더 쫓겠나?
해서 준열이 그들 대신 키 큰 여자를 쫓아주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준열은 순수하게 키 큰 여자가 대체 뭐하는 여자인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쫓는 과정에서 그녀가 보인 행동들에서 그는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준열의 3D한 일을 대신 처리해 주고 있는 해결사 철수와 같이 일하고 있는 킬러 출신 세르게이처럼 말이다. 그때였다.
-디링! 유능한 여자 킬러 타미라를 당신의 충견으로 만들어 보세요. 당신의 앞길에 충분히 도움이 될 능력을 지닌 여자입니다. 단 그녀를 당신의 여자로까지 만든다면 보너스 보상을 따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미션을 완수 시 지급 될 개지수는 +30포인트입니다. 보너스 보상으로 추가 개지수 +20포인트와 원하는 능력 중 3가지를 한 단계 상향 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스템이 소소하게 미션을 제시했고 나는 그걸 흔쾌히 받아드렸다.
그 만큼 지하철을 타고 있는 저 키 큰 여자에게 호감이 갔던 것. 나는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에 황급히 키 큰 여자, 이름이 타미라라는 그 여자가 탄 지하철 안에 탑승했다. 그렇게 지하철은 출발을 했고 타미라는 가까운 45번가의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멀찍이 떨어져서 그런 그녀의 꽁무니를 쫓았다.
이미 그녀의 독특한 체향을 기억하고 있는 내 후각을 활용하면, 그녀와 족히 1Km 떨어져서 걸어도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고 뒤를 따라 갈 수 있었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그녀 뒤를 쫓았다. 그런데 타미라에게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지 수시로 뒤돌아서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사람의 시력으로 그것도 밤에 1Km나 떨어진 거리에 사람 얼굴을 정확히 식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나는 그녀를 오늘 처음 봤다.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 일 테고. 고로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기보다는 그녀의 발달한 육감이 그녀에게 경고를 보내는 중인 거 같았다. 아주 위험천만한 자가 그녀 뒤를 쫓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그걸 확신한 건 그녀 스스로가 아직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단 점이었다.
그렇게 내가 그녀를 쫓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 그녀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여긴....”
전에 내가 와 본 곳이었다. 내 시선이 나와 1Km이상 떨어진 록펠러 본가 저택 주위를 돌고 있는 타미라라는 키 큰 여자에게로 향할 때, 나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여자의 뒤를 들키지 않고 쫓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고 말이다. 특히 누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낌새를 그녀가 알아채기라도 한다면....어떡하든 준열을 찾아내려 할 터였다. 그럼....
“내가 보이지 않으면 될 일....”
나는 말 나온 김에 바로 「개눈깔」아이템의 투명체 능력을 사용했다. 주로 CCTV카메라에 내가 노출 되는 걸 방지하는 데 써 온 능력이었는데, 그 능력을 쓰자마자 내 모습이 그 즉시 투명하게 변했다.
“됐다.”
그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한 후 나는 내친 김에 타미라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물론 최대한 인기척이 나지 않게....한데....
‘와아....’
나는 속으로 놀랐다. 내가 그녀와 50여 미터 정도까지 거리를 좁히자 놀랍게 그녀가 나를 눈치 차린 것이다. 내가 있는 쪽을 정확히 쳐다보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기까지 했다. 그리곤 주위를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뒤 그녀는 록펠러 본가를 빠져 나와서 어딘가로 향했다. 나는 그런 그녀 뒤를 쫓았고. 그랬더니....
‘투명체 능력 아니었으면 어쩔 뻔....’
내 예상대로 그녀는 기기묘묘한 방법을 통해 누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지 알아내려 들었다. 당연히 나는 그 방법에 다 걸려들었고. 하지만 내가 투명체인 터라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 타미라는 결국 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더는 누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지 않다고 확신한 뒤, 타미라는 자신의 은신처로 들어갔고 거기서 필요한 것들을 잔뜩 챙기더니 다시 록펠러 본가로 향했다.
“허얼....”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너무도 쉽게 마이어 록펠러의 침실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 과정이 무슨 마술이나 묘기를 보는 거 같았다.
근데 거기서 타미라는 향 하나를 피우고는 도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녀에게 있어 늙은이 하나 숨통 끊어 놓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내가 그 이유를 궁금해 할 때 록펠러 본가에서 구급차가 나와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그때 그걸 지켜보고 비릿하게 웃음을 짓던 타미라. 그녀가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가 태워져 있는 게 확실한 구급차가 그녀 시야에서 사라지자, 곧장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밝은 눈으로 타미라가 보낸 메시지 내용을 다 살펴봤다.
‘뭐? 안톤? 록펠러 가문의 차기 가주 안톤 록펠러?’
그 결과 타미라라는 이 특출 난 여자 킬러를 록펠러 본가로 보낸 배후가 누군지 알아냈다. 그런데....
‘가만....’
안톤 록펠러. 내가 아는, 아니 백준열의 기억 속에 그는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특히 동양인에 대한 그의 혐오는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사실을 백준열이 어떻게 알고 있냐고? 백준열이 미국 유학 시절에 그와 자주 같이 어울렸던 중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녀석의 아버지가 바로 중국 정부의 고위 인사였던 것. 그 아버지를 통해 그 친구가 록펠러 가문에서 특히 안톤 록펠러는 조심하라는 언질을 받았고, 그 이유를 부친께 물었더니 안톤이 동양인을 그렇게 싫어한다고 했다나?
안톤 본인이 그걸 절대 티내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을 하고 있어 그 사실이 사람이 없을 거라며. 하지만 사람의 천성이 어디 그리 쉽게 바뀌던가?
‘안톤이 록펠러 가문의 다음 대 가주가 되어서는 안 돼.’
그럼 현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보다 나를 더 적대시 할 게 확실했다. 안 그래도 록펠러 가문과 나 사이의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데 더 강경한 성향의 안톤이 가주가 된다면....
‘아마 내가 살아서 한국 땅을 밟긴 어렵겠지.’
그렇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쓰는 편이 나았다. 굳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칠 필요 없으니까. 해서 나는 안톤 록펠러를 날이 밝기 전까지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그가 사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뒤를 쫓으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쭉 지켜봐 왔던 타미라라는 저 키 큰 킬러와 잠깐 작별을 고해야 했다.
‘좀 있다가 또 보자고.’
타미라에게는 「개목걸이」아이템의 위치추적 능력을 걸어 놓은 상태. 그녀가 뉴욕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나는 언제든 그녀가 있는 곳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빨리 가서 안톤을 제거하고 타미라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곧바로 그녀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러다 꼴딱 밤새겠네.’
뭐 어쩌겠는가?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걸 말이다. 나는 큰 도로가 보이자 투명체 능력을 풀었다. 마침 그 큰 도로 근처에 택시 승강장이 있었고, 거기 빈 택시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그 택시를 탄 나는 안톤 록펠러의 집 근처에 가까운 편의점에 가자고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 * *
택시를 타기 전 나는 「개눈깔」아이템의 능력 중 하나를 사용했다. 바로 착시 능력으로 이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나를 볼 때 사람마다 내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그러니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나를 빤히 쳐다봐도 나는 당당히 그에게 내 얼굴을 내밀수가 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택시기사도 더는 나에 대해 의구심 같은 걸 가지지 않고 한 명의 택시 승객으로 대했다. 아무래도 이 새벽에 혼자 택시 타는 손님이, 택시기사가 봐도 정상적인 손님보다는 수상쩍은 손님으로 여기는 게 맞을 테니 말이다.
마침 택시는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해서 나도 편하게 택시기사와 얘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금방 갔고 목적지에도 금세 도착했다.
“수고하세요. 잔돈은 됐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나는 기분 좋게 택시에서 내렸고 신호가 걸린 터라 잠시 정차 해 있던 택시는, 내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신호가 바뀌며 출발했다. 그 사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나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곤 안톤 록펠러의 집이 있는 쪽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진동으로 해 둔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내가 안톤 록펠러의 집 주소를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그걸 알려주고 나서 내가 걱정이 됐는지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이 내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어. 왜?”
-대표님. 지금 어디십니까?
“잠깐 밖에 나와 있어. 곧 들어갈 테니까 걱정 할 거 없어.”
-아니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나는 김종훈이 뭐라 더 말하기 전에 그와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바로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보나마나 김종훈이 또 전화를 걸어 올테니 말이다. 핸드폰 전원은 내가 여기 온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 다시 켜면 됐다.
김종훈과 통화하며 걸었는데 그 새 그가 알려준 주소지인 안톤 록펠러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저택을 좌우로 훑었다.
록펠러 본가에 비하면 작은 저택이었지만 그래도 록펠러가의 후계자가 사는 집답게 주변의 다른 저택들에 비해서 확실히 고급스러운 외양의 건물이었다.
“어디....”
나는 내 능력 중 탐지와 도청 능력을 사용해서 이 저택 어디에 안톤 록펠러가 있는지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