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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80살의 나이를 훌쩍 넘긴 록펠러 가문의 가주 마이어 록펠러. 그는 현재 다양한 지병으로 고생 중이었다.
그 지병 하나하나가 50-60년 전이었으면 그의 충분히 목숨을 앗아갔을 정도로, 마이어 록펠러는 현대의학의 혜택을 지금 톡톡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장수를 가문의 일원들이 전부 반기는 건 아니었다.
특히 후계자인 안톤 록펠러와 그를 따르는 기문의 일원들은, 마이어 록펠러가 죽을 듯 죽지 않고 버티면서 가주자리를 계속 꿰차고 있는 게 영 마땅치 않았다.
하긴 안톤 록펠러의 나이가 벌써 60살이었다. 공직에 있거나 회사원이었다면 정년퇴직할 나이다. 그런데도 아직 그는 록펠러가의 가주가 아닌 후계자 신세였다.
대체 안톤은 언제 후계자 딱지를 떼고 가주가 되어서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쳐 보겠나? 그런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또 어떻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일원인 리암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가주가 쓰러졌다는 얘기에, 안톤과 그의 추종자들은 잔뜩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록펠러 가문에서 후원하는 뉴욕대 병원에서 또 가주를 살려 냈다. 뭐 다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긴 했지만, 병원을 찾은 안톤과 그의 추종자들은 크게 낙담했다.
“형님. 아버지는 대체 얼마나 더 살 생각일까요?”
안톤의 추종자 중 한 명이자, 마이어 록펠러의 막내아들인 란돌프 록펠러가 푸념을 늘어놨다. 한데 그 장소가 마이어 록펠러가 입원 중인 병실 앞이었다.
“쉿! 누가 들을라.”
그 점 때문에 안톤이 란돌프에게 한 소리 하자....
“들으면 어떻습니까? 이런 식으로 픽픽 쓰러져서 가주의 일도 제대로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질 거 같으면, 진작 좀 그 가주 자리를 내 놓으시던지....”
되레 발끈하며 란돌프가 목청을 좀 더 높이자....
“어허!”
안톤이 화난 얼굴로 란돌프를 째려봤다. 그러자 란돌프가 움찔하며 뚫린 입을 다물었다.
평소 진중하고 점잖은 편인 안톤이지만, 화가 나면 진짜 무서운 인간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란돌프였다. 그랬기에 안톤이 화가 난 듯 보이자, 더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내 뱉지 않았다.
그때 병실에서 마이어 록펠러의 주치의가 나왔다. 그 주치의는 알아서 안톤 앞으로 다가가서 먼저 말했다.
“가주님께서는 이제 괜찮으십니다.”
“뵐 수 있겠나?”
안톤의 말에 주치의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방금 잠드셨습니다.”
“으음. 그래?”
안톤이 아쉬워하며 힐끗 마이어 록펠러가 누워 있는 병실 쪽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서 괜찮아지셨다니, 이제 안심들 하고 다들 돌아가도록 하지.”
안톤의 그 말에 병원으로 몰려 온 록펠러가의 일원들이 우르르 몸을 돌려서 병원을 나섰다. 후계자인 안톤도 보지 못하는 가주를 그들이 어떻게 만나 보겠나? 다들 그걸 아니 군소리 없이 물러나는 거겠지만....
그렇게 병실 앞의 록펠러가의 일원들이 물러가는 사이, 병실에서 나왔던 주치의는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톤은 주치의의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살폈고, 또 자신의 말을 듣고서 병원을 빠져 나가기 급급한 가문의 일족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늙은 사자가 쓰러지자 모여드는 하이에나들이라....”
하지만 하이에나들은 굶주려서 그렇다 쳐도 저들은....록펠러가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 오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뜯어 먹을 게 있을까 살피러 여기에 온 것이다.
부자가 될수록 욕심이 더 늘어난다고, 저들이 저러는 게 안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장차 록펠러 가문의 가주가 될 사람. 저들은 위에 군림해야 할 예정이었기에 저들의 저런 행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형님. 이제 저희도 그만 가시죠?”
그때 란돌프가 안톤에게 말했고, 안톤도 알았다며 막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란돌프가 앞장을 섰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막 움직이려는 데....
“오셨군요. 안톤님.”
가문의 총 집사이자 가주의 비서실장, 가문의 막후 실세 중 한 명인 아담이 병실 앞에 막 나타나서 안톤에게 살짝 머리를 숙였다. 그걸 보고 안톤도 가볍게 고개를 까닥인 뒤 말했다.
“집사 오셨는가?”
“네. 가주님 뵙고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그 말에 안톤이 살짝 정색을 하며 말했다.
“가주님께 드릴 그 말씀이 뭔지 내게 살짝 말해줄 수는....역시 없겠지?”
안톤의 그 말에 아담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안톤님께서는 본가의 가주가 아니니까요.”
“아담!”
그런 아담의 반응에 란돌프가 발끈했다. 하지만 안톤이 손을 들어 만류하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진 란돌프는 더는 아담에게 뭐라 말하지 못했다. 대신 안톤이 뼈 있는 말을 아담에게 전했다.
“아버님 잘 케어 하시게.”
그 말 후 안톤이 란돌프를 추월해서는 휑하니 병원 복도를 걸어갔고, 그런 그의 뒤를 안톤을 추종하는 가문의 일원들이 우르르 뒤따랐다. 물론 그 중에는 란돌프도 끼어 있었고.
란돌프는 그렇게 안톤을 쫓아 걸어가면서 연신 뒤돌아서 살벌한 얼굴로 아담을 째려봤다. 마치 어디 두고 보자는 듯 말이다. 하지만 그런 란돌프를 보면서 아담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란돌프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안톤과 그의 추종자들이 아담의 시야에서 전부 사라지고 나자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바로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안톤....빠득!”
이까지 갈며 한 동안 안톤이 사라진 쪽을 노려보던 아담. 그가 마이어 록펠러가 누워 있는 병실을 보고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잠시 후 병실 안에서 주치의가 나왔다.
“가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말과 함께 주치의가 병실 문을 열었고 아담은 곧장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주치의가 들어가면서 병실 문이 닫혔다. 한데 그 모습을 한 쌍의 눈이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그 장면을 보고서 어딘가로 황급히 뛰어갔다.
* * *
뉴욕대학 병원 지하 1층 주차장.
“어떻게 됐나?”
그곳에 늘어선 차들 앞에 서 있던 사람들 중에 안톤이 헐레벌떡 그 앞에 달려 온 경호팀장에게 물었다. 안톤의 지시로 마이어 가주의 병실 근처에 남아 있었던 경호팀장이었다.
“말씀하신대로....아담 집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걸 제 이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이럴 수가....아버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러실 수 있단 말입니까?”
흥분한 란돌프가 당장이라도 마이어 록펠러가 누워 있는 병실로 달려갈 기세로 안톤에게 말했다.
“형님. 제가 당장 병실로 가서....”
“그만!”
하지만 안톤이 란돌프의 돌발적인 행동을 제지했다.
“형님!”
“어허! 아버님이 누워 계신 병실로 쳐들어가서....그 다음은?”
“네?”
“왜 아담만 부르고 우리는 병실 안에 들이지도 않았는지 그걸 따질 테냐?”
“그, 그래야죠.”
“쯧....이러니 아버님이 너에게 중책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너무 성급해. 생각도 없고.”
안톤의 말 중에 특히 생각이 없다는 말에 빡 친 란돌프. 그가 막 안톤에게 그걸 따지려 할 때였다. 안톤의 자기 옆 비서에게 물었다.
“주치의 포섭하는 건 어떻게 되어가?”
“밑밥은 다 깔았습니다. 며칠 안에 포섭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좋아. 그럼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은 없겠군. 어차피 아버지 장례는 본가에서 치러질 테니 말이야.”
록펠러 가문의 전통 중 하나. 바로 가주의 장례를 본가에서 가족장으로 치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안톤의 말은....
“형, 형님. 지, 지금 그 말은....”
“쉿!”
안톤은 자기 말을 알아들은 거 같은 란돌프를 돌아보며 검지로 입을 막았다. 즉 란돌프에게 알아도 그걸 지금 입 밖에 내지 말란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란돌프는 안톤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안톤에게 하려던 불만의 말도 자신의 입 안으로 도로 꿀꺽 삼켰다.
그 뒤 안톤을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이 병원을 빠져 나갔고 란돌프도 자신의 차에 올랐다.
“후아아....”
차에 타자마자 란돌프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벌리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형님이 작심하셨군. 주치의까지 포섭해서....”
그 다음 말은 차마 란돌프의 입에서 나오지 못했다. 확실한 건 록펠러가의 가주이며 자신의 아버지인 마이어 록펠러. 그가 다시 한 번 더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면, 그날이 바로 록펠러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탄생하는 날이 될 거란 사실이었다.
“잘 됐어.”
일찌감치 안톤의 편에 서 있는 란돌프. 부친의 죽음은 곧 란돌프에게도 기회가 될 터였기에 그는 놀란 마음이 진정 되자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란돌프도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이제 그가 하고 싶은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성과를 내고 싶은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하지만 가문에서 마이어 가주가 시시콜콜 그의 앞길을 계속 막아왔다. 한데 새로운 가주, 안톤이라면 그를 믿고 전권을 맡겨 줄 테니 이제 란돌프는 훨훨 날아오르는 일만 남았다.
“크음....”
누가 들으면 장남인 안톤이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줄 알겠네. 하지만 쓰러지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부친이었다. 란돌프는 느끼고 있었다. 부친인 마이어 록펠러가 가까운 시일 내에 또 쓰러질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은 란돌프가 생각한 거 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 * *
마이어 록펠러의 병실 안. 주치의가 잠들었다는 말과 달리 마이어는 침상에 앉은 상태로 좀 전 들어 온 자신의 비서실장 아담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담의 말이 전부 끝나자....
“그렇군. 경찰의 부검이 끝나면....그 아이 장례....잘 치러주도록 해. 그리고....누구 짓인지 알아내면 내게 바로 알리고.”
아담이 알기로 리암에 대해 마이어 가주의 신뢰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리암의 죽음을 마이어 가주는 정말 슬퍼했고, 또 그 만큼 그의 복수에 집착하고 있었다.
단지 그의 몸 상태가 이지경이다 보니 직접 나서지 못하고 지시를 내리기만 하고 있었지만, 그가 몇 년 만 젊어서도 아마 마이어 가주가 진두지휘해서 리암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설쳤을 것을 아담은 확신했다.
“네. 제가 책임지고 리암 도련님을 주님 곁으로 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아담의 말에 마이어는 대답할 힘이 없어선지, 아니면 대답할 기분이 아니어선지 모르지만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아담에게 그만 나가 보라며 손짓을 했다.
그걸 보고 아담은 마이어 가주에게 더 할 말이 있었지만 ,그걸 결국 말하지 못하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한데 그가 나오면 당연히 따라 나와야 할 주치의가 그대로 병실 안에 남아 있었다. 그걸 아담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마이어 가주와 주치의에게 할 말이 있어 잠깐 그를 병실에 붙잡고 있는 걸로 말이다. 그리고 하필 그때 아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담은 누구 전화인지 바로 확인했고....
“어. 나야.”
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전화 건 상대의 말을 듣더니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아니 여기서 왜 FBI가 나오는데? 그래서 경찰 쪽은 뭐래? 뭐? 알았어. 내가 하워드 상원의원에게 전화해 보지.”
FBI는 연방수사국으로 미국의 법무부 산하의 수사기관이자 정보기관을 말했다.
미국의 형사법은 과거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사법권을 행사할 기관'이 필요했다. 특히 조직범죄나 여러 주에 걸쳐서 발생한 범죄 사건을 조사하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FBI 되시겠다.
하지만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기에 일반적인 범죄의 경우 주 이하 자치단체의 경찰이 관할한다. 단지 범죄자가 연방법을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주를 벗어났을 경우, 연방 기관인 FBI의 관할이 되는데 그게 아닐 경우, 범죄가 일어난 주에서 FBI에 수사협력을 요청해야만 개입할 수 있었다.
지금 리암의 집에 가 있는 정보팀장은 분명 경찰 쪽에서 FBI쪽에 수사협력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데 FBI가 리암의 집에 나타나서 사건을 넘겨 받겠다고 했다는 건....
“FBI에서 작정을 하고 나섰다는 건데....”
그건 록펠러 가문 입장에서는 결코 반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FBI에서 최근 다수의 미국 대기업에 한해 불법적인 교역행위, 독점, 기업담합 등을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아담도 상류층 사교 모임에서 이미 듣고 있었으니까. 만약 그런 의도로 FBI에서 리암의 사건에 개입한 거라면....
물론 이건 아담의 생각일 뿐이었다. 굳이 확대해석할 거까지는 없겠지만, 만약을 위해 아담은 전 정권에서 법무부장관을 했었던, 친 록펠러 가문 쪽 인사인 하워드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