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785화 (78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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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걸 쥬리가 들으면....크크크크.’

그 배신감에 치를 떨 그녀를 생각하니 리암은 속으로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런 쥬리를 이용한다면 준열을 뒤통수 쯤 거하게 후려 칠 수 있을 터.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리암은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준열과 지금 통화 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준열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지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을 내 비치고 있었다.

아주 대 놓고 여자 하나 때문에 수천억 달러의 손실을 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걸 죄다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하면서 리암이 느릿하게 말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니....뭐 어쩔 수 없군. 알았다. 혹시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도록.”

리암은 정말이지 아쉬울 거 하나 없다는 듯 태연하게 준열과 통화를 끝내려 했다. 그러자 오히려 준열이 당황해 하며 말했다.

-그, 그래. 뭐 딱히 마음 바뀔 일 따윈 없을 테지만....

그렇게 둘의 통화가 끝났고, 리암은 통화 종료를 누르자마자 큰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하. 멍청한 놈. 어디 너도 한번 당해 봐라.”

리암은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된 녹취록의 음성파일을 자신의 노트북으로 옮긴 뒤 살짝 편집을 했다. 아무래도 그러는 게 더 상대에게 자극적으로 들릴 테니 말이다. 그렇게 편집이 끝난 음성파일을 재차 들어 본 뒤 리암이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이대로 보내면 되겠군.”

리암은 곧장 그 음성파일을 쥬리에게 보냈다. 그리고 기다리길 10여분.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역시나 쥬리였다.

“흐흐흐흐....”

리암이 음흉하게 웃으며 그 전화를 받았다.

“어때 기분이? 놈의 본심을 들어 보니 말이야.”

리암은 당연히 쥬리가 풀 죽어서 자신에게 의지해 올 줄 알았다.

연인에 대한 배신감은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몰랐다. 최근 그 배신감을 진짜로 맛 본 리암이었고, 지금도 그 여파에 제대로 잠을 못자고 술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리암은 쥬리도 그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무슨 개 소리야?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전화한 건, 이딴 거 보내지 말고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살라고 경고하려 전화 한 거야. 한 번만 더 이런 짓하면....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어.

싸늘한 쥬리는 그 말 후 리암의 말은 듣기도 싫다는 듯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쥬, 쥬리....”

기가 찬 리암은 그 즉시 쥬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가 그의 번호를 의도적으로 차단시킨 거 같았다. 당연히 메시지를 보내도 차단되었고. 이러면 직접 그녀를 찾아가서 말해야 하는데 준열 옆에 있는 그녀에게 간다는 건 결코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그건 가주가 그에게 직접 전화까지 해서 내린 지시를 어긴 게 될 테니 말이다.

“젠장....이젠 어쩌지?”

준열로 하여금 억지로라도 뉴욕의 두 구단을 인수해 가도록 만들려 낸 계책이었는데 그게 수포로 돌아가 버리자 리암은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쥬리가 자신이 보낸 그 음성파일을 듣고도 준열의 편을 들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근데 그 생각이 들자 리암은 더 비참해졌다.

자신은 헌신짝처럼 버려 놓고 준열은 그녀보다 돈이 더 좋다는데도 불구하고 싫은 티는커녕 그걸 알려준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자신과의 연만 싹둑 끊어내 버렸으니 말이다.

* * *

리암이 어떻게 알겠나? 쥬리는 이미 백준열의 여자가 되었고, 그의 암캐인 그녀는 그가 무슨 짓을 해도 배신감 따윈 느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본 즉시 쥬리는 그 음성파일을 준열에게 보내서 그가 바로 알게 만들었다.

“아주 안달이 났군. 안달이 났어. 그 두 구단을 내게 떠넘기지 못해서 말이야.”

이때까지만 해도 준열은 뉴욕시의 두 구단, 뉴욕 닉스와 뉴욕 시티FC를 인수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LA묘지에 묻힌 신미나의 무덤 옆에 그녀가 낳은 두 아들을 묻고 나서, 그 다음 날 필라델피아로 곧바로 날아가 티거사와 인수합병을 성사 시킨 날이었다.

“반갑소. 안소니 브룩스요.”

내년 뉴욕시의 시장에 당선 되는 공화당 출신 안소니 의원을 우연인지,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인수합병을 끝내고 나서 벌어진 파티에서 만난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뉴욕시장을 거쳐 차기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서 46대 미국 대통령이 된다.

그러니까 준열의 눈앞에 미국의 진정한 황금 송아지를 낳는 황소가 나타난 거다.

“나는 반도체야 말로 미국의 미래라고 보는 사람이요. 그러니 삼명전자가 앞으로 잘 좀 티거사를....”

안소니 의원이 준열과 악수 후 뭐라고 계속 말을 했지만, 그 말은 준열의 귀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가 떠드는 동안 준열은 딴 생각 중이었으니 말이다.

‘저 인간을 어떻게 이용해 먹지?’

차차기 대통령이지만 그가 미국 내에 가진 영향력 만큼은 이때도 록펠러 가문 못지않았다. 하긴 안소니 의원의 정치 기반이 되는 그의 가문도 대단했으니 말이다.

그의 친형이 이때 메릴랜드 주지사였고 사촌들은 대부분 미국 주요부처 고위직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정치 권력적인 면에서는 록펠러 가문은 안소니 의원에 비빌 바가 못 됐다. 그런 자를 이렇게 운좋게 만났는데 이 인연을 그냥 스쳐 지나 칠 정도로 준열은 멍청하지 않았다.

「개목걸이」, 「개방울」아이템에 「충견」, 「개호구」스킬 등 서로 인연을 이어 줄 능력은 죄다 안소니 의원에서 사용했다. 그래서일까? 일정이 바쁘다던 안소니 의원이 급격히 준열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한 시간 넘게 그와 대화를 나눴다. 어느 새 친해진 두 사람은 격식 없이 서로 얘기했는데 그 열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뜨거워졌다.

“....라 의원으로서는 성과를 거두기가....해서 적어도 내년에는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릴만한 성과를 보려면....그러니 뉴욕시장 선거에 나서보심이 어떠실지....”

“하하하하. 자네 나이에 비해 식견이 대단하군. 뉴욕시라....하지만 거기서 민주당을 상대로 이기기는 쉽지 않지. 뉴욕 닉스가 NBA 파이널에 나가던지, 아니면 뉴욕 시티FC가 MLS 서포터스 실드(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 MLS의 정규시즌 우승 팀에게 주어지는 상)라도 차지하면 또 모를까.”

안소니 의원의 그 말에 준열의 눈빛이 강하게 빛났다. 이때 안소니 의원은 자신이 내년에 있을 뉴욕시장 선거에 나가 승리할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았다.

그래서 그걸 뉴욕에서 가장 인기 없는 스포츠 종목인 농구와 축구에 빗대어 준열에게 말했는데, 하필 그가 언급한 그 두 구단이 뉴욕 닉스와 뉴욕 시티FC였던 것.

“그렇다면 그 뉴욕의 두 구단이....좀 전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정도성과를 거둔다면 의원님께서 뉴욕시장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되겠군요?”

“뭐 그 두 구단이 그런 결과를 내고 구단 차원에서 나를 지지한다고 나서 준다면야....선거에 분명 도움은 되겠군.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기적이 한 번도 아니도 두 번씩이나 일어나야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안소니 의원을 그런 건 전혀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의원님. 콜린 국방장관과의 오찬에 참석하시려면 지금 움직이셔야 합니다. 공항에 비행기가 대기 중입니다.”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안소니 의원의 보좌관이 준열과 안소니 의원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고, 국방장관이란 말에 안소니 의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준열에게 작별을 고했다.

“자네 얘기 잘 들었네.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나고 싶군.”

그 말 후 안소니 의원은 자신의 명함을 내게 건넸다. 그 명함에는 안소니 의원의 사적으로 쓰는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 * *

나는 파티 장 밖까지 안소니 의원을 직접 배웅했다. 그 뒤 파티 장으로 돌아 온 내게 티거사의 전 대표가 다가와서 말했다.

“안소니 의원님이 백 대표님을 어지간히도 좋게 본 모양입니다. 하하하하.”

“그러게요. 저도 안소니 의원님의 반도체의 미래에 대한 식견에 많이 놀랐습니다.”

티거사 전 대표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걸 안소니 의원의 반도체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희석시켰다.

모난 돌이 괜히 정 맞는 게 아니다. 미국 정계에 주목을 받고 있는 안소니 의원과 새파랗게 젊은 동양인 사업가의 만남. 듣기는 그럴싸하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미국사회에서, 그건 적어도 득표에 도움이 될 뉴스는 아니었다.

나는 그런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티거사 전 대표를 비롯한 파티에 참가한 미국인들이 나와 안소니 의원을 연결 짓는 말을 하면, 그 즉시 그걸 부인하고 차갑게 그 말을 끊었다. 그러자 더는 안소니 의원에 대한 말이 파티 장에서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순수하게 삼명전자에서 티거사를 성공리에 인수합병 한 것에 대한 축하 파티를 즐길 수가 있었다.

그렇게 파티가 끝나고 숙소인 호텔로 향할 때 내가 김종훈에게 말했다.

이때 김종훈은 가까운 보스턴에 있다가 급하게 필라델피아로 날아와서 나를 보좌하고 있었다.

“김 과장. 뉴욕닉스와 뉴욕 시티FC 말인데....인수하기 전에 확인 좀 해 봐.”

“네에?”

내 말에 김종훈이 기겁했다, 하긴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망하기 일보 직전인 두 구단을 내가 인수할 거처럼 얘기하니 김종훈도 놀랄 밖에.

“그 두 구단은....”

“알아. 그러니까 인수해서 잘 키워야지. 그 다음....비싸게 팔아치우고 말이야.”

그게 쉬우면 개나 소나 스포츠 사업에 뛰어들지. 김종훈의 지금 속내가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대신 아주 헐값에 사들여야겠지? 그러려면....”

내가 그 두 구단을 인수하려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했다. 특히 리암이 알면....그는 절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격에 두 구단을 넘기지 않을 거다.

“지금 미국에 만들어 놓은 페이퍼 컴퍼니가 몇 개지?”

페이퍼 컴퍼니는 물리적인 실체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회사를 통해 영업 활동을 하며, 법적으로는 엄연히 자격을 갖추고 있으므로 유령회사와는 달랐다. 내 그 질문에 김종훈이 즉시 대답했다.

“저희 쪽에서 만든 페이퍼 컴퍼니는 연예기획사를 비롯해서 모두 8곳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 중에 스포츠 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곳 한 곳을 통해서 두 구단에 관심이 있다는 제스처만 살짝 취해 봐. 그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해 보고, 언제 인수전에 뛰어들지 그 시기를 정하자고.”

내 말에 김종훈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기어코 그 두 구단을 인수하시겠단 말씀이시군요?”

“어. 근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을 거야.”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종훈. 그런 그에게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그 두 구단....올해 NBA 파이널에 나가고, MLS 서포터스 실드를 거머쥐어야 하거든.”

“.....”

내 그 말에 김종훈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뉴욕 닉스와 뉴욕 시티FC 같은 쓰레기 구단으로, 당장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기는 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비록 올해 그런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내년에는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왜냐하면 미래를 아는 내가 최고의 선수들만 쏙쏙 이적 시장에서 사들일 예정이거든. 그리고 꼴지 하던 두 구단이 파란을 일으키며 일약 우승후보로까지 거론 된다면....그들 인기야 두 말하면 잔소리 일터. 그 과정에서 뉴욕 시에는 마침 시장을 뽑는 선거가 있다.

한데 뉴욕에서 연일 이슈 몰이 중인 두 스포츠 구단에서 안소니 의원 지지를 선언한다면....충분히 내가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뉴욕 닉스와 뉴욕 시티FC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 내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에서 인수하는 게 맞았다.

문제는 그들 구단을 인수할 때 들어갈 자금인데....

‘돈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자.’

나는 그걸 김종훈에게 좀 전에 전적으로 떠맡겼고. 앞서 내가 맡긴 일을 처리하고 쉴 생각이었던 김종훈으로서는, 그게 별로 반가운 소리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것까지 다 하고 나면 논현동에 5층짜리 건물을....김 과장 앞으로 넘겨주지.”

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표님.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이 몸에 뼈를 갈아 넣어서라도 반드시 그 두 구단을, 대표님께서 만족하시는 수준의 싼 가격으로 인수해 보이겠습니다.”

두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이며, 갑자기 없었던 열정까지 끌어 올려 비장한 어조로 말하는 김종훈. 그런 그를 보고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김 과장 뼈까지 갈아 넣을 필요는 없을 거야.”

이미 벼랑까지 내 몰린 두 구단이었다. 사겠다는 곳도 하나 없고....

아니. 이제 한 군데 생기겠네.

그러니 어차피 가격은 저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저점의 인수가를 얼마나 더 후려 칠 수 있는가는 순전히 김종훈의 능력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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