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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아담은 자신이 강하게 나가면 백준열이 적어도 놀라 움츠러들기는 할 거라고 봤다.
연륜이란 게 그렇다. 그냥 쌓이는 게 아니다. 시간과 경험. 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뒤섞여서 축적 되는 과정을 통해서 연륜이 쌓인다. 그런데....
-사돈 남 말 하시네.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백준열이 되레 아담의 말을 되받아쳤다. 제가 뭘 잘했다고 말이다.
“뭐, 뭐라고?”
그런 백준열의 반응에 아담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거기다가....
-먼저 뒤통수 친 게 누군데....감히 내 앞에서 개 소리 운운 해? 당장 마이어 록펠러, 그 인간 바꿔!
버럭 호통을 치며 록펠러 가문의 당대 가주를 대 놓고 비하하면서 바꾸라는 백준열. 그 기세에 오히려 아담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왜 네 뒤통수를 쳐?”
-리암을 시켜서 내게 사람을 붙인 건 그럼 뭔데?
“뭐, 뭐라고? 리암? 사람을 붙여?”
-우와! 지금 이게 연기면....당신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 받아도 되겠어.
“딴소리 말고....리암이 뭘 어떻게 했는 지나 빨리 말해.”
-그게....
백준열로부터 리암이 청부살인을 의뢰한 사실을 전해들은 아담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말이 사실이면 지금 터진 문제에 대해서 록펠러 가에서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되레 백준열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어째든 서로 간의 신의를 깬 건 그들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미안하다. 자세한 건 이쪽에서 알아보고 나서....이쪽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
-뭐 알아서 해. 단지....내가 이번에 퍼트린 건 진짜 빙산에 일각일 뿐이야. 뭐 그 사실은 당신 가주가 제일 잘 알 테지만.
그때였다. 아담이 본가에 도착했음에도 아직 마이어 록펠러가 있는 집무실로 들어오지 않자, 성질 급한 마이어 록펠러가 사용인을 보내 왔다.
“집사님.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그 말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아담은 백준열과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도록 하지.”
-그러시던지.
퉁명스런 백준열의 대답에서 그가 단단히 화가 나 있음을 지레짐작하며 백준열과 통화를 끝낸 아담. 그가 곧장 자신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마이어 록펠러가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똑!
“들어 와!”
집무실 문 앞에서 아담이 노트를 하자, 그 안에 있던 마이어 록펠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방문 밖으로 울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 아담은 짧게 한숨을 내 쉰 뒤, 방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누가 퍼트렸는지 모르지만, 록펠러 가문의 치부 중에서 비교적 소소한 것들 위주로 잘 고른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게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음을 마이어 록펠러는 직감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막 잠자리에 들려던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 그는 가문에 주요 정보 제공 처라 할 수 있는, ABC방송국의 존 그리샴 대표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존의 전화는 마이어로서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존의 전화라면 그만큼 중요한 전화일 것임을 마이어가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존. 무슨 일인가?”
-회장님. 지금 인터넷상에 록펠러 가문에 대한....
존의 얘기를 쭉 듣던 마이어. 그가 발끈해서 외쳤다.
“누가 감히 그딴 짓을....”
-누구 짓인지 저희 쪽에서 알아보고 있긴 한데....아시겠지만 유튜브와 트위트, SNS에서 퍼트린 자를 알아내려면....법원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허락이야 우리 쪽에서 나게 만들어 주지. 그러니....누구 짓인지 빨리 알아 내.”
록펠러 가문의 영향력은 미국의 정재계에 걸쳐 골고루 미쳤다. 그 중 법원도 예외는 아니었고. 비록 늦은 밤이지만 이 시각에 긴급으로 전화국의 전화통화 기록을 살펴 볼 수 있는 영장을 발부해 줄 판사는 얼마든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 자들이 누군지 알아내는 즉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미국 내 언론계의 대부라고도 불리는 ABC방송국의 대표 존 그리샴과 통화 후, 마이어 록펠러는 그 즉시 자신의 비서실장인 아담을 불렀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그 아담이 10분 전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태 집무실에 오지 않고 있자 마이어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집무실에 들어 온 아담. 그가 마이어를 보고 제일 먼저 한 말은....
“회장님. 혹시 리암 도련님께 무슨 언질이라도 주셨습니까?”
여기서 왜 리암 얘기가 나온단 말인가? 황당한 얼굴의 마이어. 그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저번에 왔을 때 보고 리암과는 아무 얘기 나눈 적 없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게 다 리암 도련님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란 얘긴데....”
“답답하군. 아담. 어떻게 된 일인지 속 시원하게 얘기해 봐라.”
“네. 실은....”
리암은 백준열에게 들은 말 그대로 마이어에게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난 마이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리암. 그 놈이....”
하지만 마이어는 이내 그 분노를 삭이고 아담에게 물었다.
“그래서 항후 대책은?”
“지금으로서는 백준열의 말이 맞는지 확인이 우선입니다만....”
마이어도 알았다. 백준열이 한 말이 다 사실일 거란 걸 말이다. 마이어가 직접 백준열을 보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백준열이라는 그 동양 놈은 이런 일로 거짓말이나 할 정도로 가벼운 놈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거물이라서 마이어도 거북할 정도였다.
“녀석의 말이 맞다면....사과를 하고 적절한 보상으로 그 녀석을 달래는 수밖에요.”
그 말 후 마이어를 빤히 쳐다보는 아담. 그런 아담을 보고 마이어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자네....지금 그 일을 나보고 하란 말이로군.”
“아무래도 그래야....이쪽의 진정성이 그만큼 더 부각이 될 테니까요. 아니면 부회장님을 시키셔야 하는데....”
아담의 부회장님이라는 말에 마이어의 이마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알았네. 내가 하지.”
차기 가주인 자신의 장남에게 이번 일로 오물이 튀는 건 마이어가 원치 않았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아담의 핸드폰이 울렸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아담이 집무실을 나가려 하자 그걸 마이어가 말리며 말했다.
“그냥 여기서 받아.”
“네.”
그렇게 아담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어. 어. 그래? 알았어.”
생각보다 통화를 빨리 끝낸 아담. 그런 그에게 성질 급한 마이어가 물었다.
“뭐라는 가?”
마이어는 아담이 좀 전 통화한 자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리암 도련님이 LA갱단의 살인청부업자 후안을 시켜 백준열을 없애려 한 건 맞는 거 같습니다.”
“끄응....”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임이 확인되자 마이어는 일족인 리암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걸 아담 앞에서 티 낼 수가 없었다. 다른 일이라면 또 모를까? 가문의 모범이 되어야 할 가주의 일족이 가문의 얼굴에 똥칠을 한 셈이니 말이다.
“내 입이 둘이라도 할 말이 없군. 하지만....향후 대책은 있어야겠지?”
“물론입니다. 일단 회장님께서 백준열에게....”
마이어는 아담이 제시하는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쭉 들어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말대로 하지. 단, 그 새끼가 나보다 더 오래 사는 꼴은 못 볼 거 같군 그래.”
마이어 록펠러에게 단단히 찍힌 백준열이었다. 그건 아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제가 생각한대로 진행된다면....녀석은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야지. 그게 록펠러 가문의 정신이니까. 받은 것의 2배 만큼 꼭 돌려준다.”
이때까지 마이어와 아담은 생각지 못했다. 그들이 건드린 게 똥이 아니라 뇌관이란 걸 말이다. 그것도 그들 가문을 통째 날려 버릴 수 있는 폭탄과 연결 된 뇌관이란 걸....
* * *
아담이 마이어의 집무실을 나서기 전 물었다.
“리암 도련님은....?”
“녀석은....내가 얘기 하지.”
아무래도 가주의 일족에 대해 가신에 불과한 아담이 뭐라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확인 차 리암에게 전화를 거는 거와 그를 대놓고 나무라는 건 그 결이 달랐으니까. 마이어의 대답에 아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끄응....”
아담이 나가고 나자 혼자 집무실에 남은 마이어. 그가 앓는 소리를 내고는 책상 위에 시가케이스에서 시가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 시가에 불을 붙이고....
“후우우....”
폐부 깊게 시가 연기를 마신 뒤 입 밖으로 내 뱉으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시가의 맛을 즐기던 마이어. 원래 그는 30년 넘게 쿠바 산 시가 브랜드 중 하나만 피워왔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도미니카공화국의 시가가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그쪽으로 갈아탔는데, 그 향이 깊고 은은하니 황혼기의 마이어의 입맛에 딱 이었다.
“....쿨럭쿨럭....”
하지만 지금 그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시가를 피우는 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그의 건강을 더 악화 시킬 뿐이었다. 결국 피던 시가를 끄고 만 마이어.
“하아....”
세월의 무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그의 몸에 한탄을 하면서 마이어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거기에는 그가 가끔 피곤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 마시곤 하던 브랜디가 있었다. 하지만 누가 치워 버렸는지 그게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그의 지병이 더 악화 되었다는 전담 병원 측 얘기에, 잔뜩 화가 난 그의 아내가 집사를 시켜 치워버린 게 생각났다. 그때 분노한 아내를 보고 차마 딴 말을 할 수 없어서 참았는데, 그 결과 지금 그에게 꼭 필요한 브랜디 한잔이 날아가 버렸다.
“쩝....”
입맛을 다시며 마이어는 책상 위에 올려 둔 자신의 핸드폰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그 핸드폰의 전화번호부에 저장 되어 있던 리암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가주님.
리암이 재깍 그의 전화를 받았다. 록펠러 가문에서는 가족들만 있는 가족 모임을 제외하고 가문의 일원들은 마이어 록펠러를 가주님으로 불렀다. 그리고 가주의 전화는 반드시 받는다는 게 록펠러 가문 일원들의 룰이었고. 그 룰 대로 리암은 마이어의 전화를 받았을 뿐이었다.
“네가 얼마 전 데려 왔던 그 젊은 동양인 말이다.”
-아아. 준열 백 말이군요? 녀석이 왜요?
“재미있는 녀석이더구나? 되바라진 게 말이다.”
-그, 그래서요?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넌 더 이상 그 녀석과 가까이 지내지 말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네. 뭐....
“그럼 그런 줄 아 마. 내일 보자.”
-네. 내일 뵙겠습니다.
어차피 내일 가족 모임 때 리암을 불러서 말해도 됐다. 하지만 마이어가 이렇게 직접 전화로 리암에게 경고를 보내는 건, 그 새 리암이 또 사고를 칠까 싶어서였다. 설마 하루도 안 돼서 리암이 또 사고 칠까 싶겠지만, 그 설마가 사람 여럿 잡는 걸 종종 봐 온 마이어로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늘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으윽....”
리암과 통화 후 마이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온몸이 삐꺽거렸지만 지팡이까지 짚은 마당이라 어찌저찌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 마이어. 그는 집무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힐끗 옆을 돌아봤는데 그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바로 사라진 브랜디가 있었던 곳이었다.
그는 내일 아침에 집사에게 말해서 브랜디를 도로 저 자리에 가져다 놓으라고 말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집무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마이어. 그는 밖에 대기 중이던 사용인의 도움을 받아 침실로 향했고, 잠시 후 록펠러 본가 저택의 모든 방의 불이 전부 꺼졌다.
* * *
“Fuck! 진짜 되는 일이 하나 없네.”
안 그래도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해 있었던 리암. 하지만 그의 귀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거짓말처럼 술이 확 깼다.
♩♬♪♪♩♬♪~
왜냐하면 지금 그의 핸드폰에서 울리고 있는 이 벨소리는 그가 죽었지 않는 한 반드시 받아야 할 전화였기 때문에.
이는 리암 뿐만 아니라 록펠러 가문의 남자들이라면 가주를 빼고 똑 같았다. 가주가 예외인 이유는 그가 자기 핸드폰에게 직접 전화를 걸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걸려 온 전화는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의 전화란 소리다.
파파파팟!
리암은 빠르게 움직여서 그 전화를 받았다. 전화 연결음의 대기시간이 길어질수록 성격 더러운 가주의 성질만 돋울 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