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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최고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인텔, 퀼컴, 마이크론, AMD, 엔비디아, 텍사스 인스트로먼츠가 다 미국기업이니까. 단지 그걸 생산하는 거 자체가 지금 상황에서는 좀 회의적일 뿐....
뭐 그것도 10년 뒤에는 바뀐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기 시작하고, 자체 생산에 열을 올리게 되니까 말이다.
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경제도 점점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뭐 현재 상황에서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예단하는 건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 나는 다르다. 지금부터 딱 10년 후의 미래까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런 내가 하는 투자는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 맞게 투자하는 나를 보는 주위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하긴 이렇다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묻지 마’ 식으로 투자를 해야 하니 말이다.
즉 그로 인해서 국내 자금을 국외로 빼내는 게 쉽지 않아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 복권 당첨금으로 내 마음대로 지금 투자를 하고 있는 거고.
그 전도사 역할을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이 톡톡히 해 내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XXX반도체는 내년 초에 최종부도가 난다. 이후 헐값에 대만 반도체 기업에 넘어가고....
그래서 지금 그쪽 자금상황은 말이 아니게 나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턱도 없는 인수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갑자기....
그 말은 그쪽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차렸다는 얘기.
“쯧쯧....김종훈이 잘 해야 할 텐데.”
왜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XXX반도체는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내가 왜 물에 빠진 XXX반도체를 건져 주겠나?
“그냥 놈들은 계속 물에 넣어 놓고 봇짐만 내가 챙기면 될 일을 말이야.”
맞다. 지금 김종훈은 XXX반도체를 진짜 인수하러 가지 않았다. 그들의 봇짐, 즉 반도체 핵심기술들만 빼 돌릴려고 거기 간 거다.
XXX반도체가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들의 생명 줄이나 마찬가지인 반도체 핵심 기술들을 내게 넘기겠나?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여럿이다 보니 그 중에는 자기만 잘 돼도 충분히 행복한 자가 있기 마련.
김종훈은 바로 그 이기적인 놈을 만나서 헐값에 반도체 핵심 기술들을 챙겨 올 예정이었다. 물론 그 헐값이 개인적으로는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한....500만 달러 정도?”
뭐 앞으로 수십조의 이익을 내 줄 반도체 핵심 기술이니, 그 정도 쓰는 게 나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일종에 인센티브 개념이랄까?
내가 그 자에게 줄 기술 이전료의 맥시멈이 500만 달러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김종훈이 하기 따라서 그 자가 챙길 핵심 기술들을 넘기는데 500만 달러 밑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즉 김종훈이 그 자를 잘 설득한다면 500만 달러에서 깎는 만큼 그 돈을 김종훈이 인센티브로 챙긴다.
고로 김종훈은 어떡하든 그 자에게서 핵심 기술들을 넘겨받고 줄 돈의 금액을 낮춰야 했다. 그 만큼 김종훈 자신 주머니가 두둑해질 테니까.
반대로 그 자는 어떡하든 500만 달러를 챙겨서 미국을 떠야 할 테고 말이다.
미국에서 횡령과 기술을 빼내서 팔아먹는 건 중형에 처해진다. 따라서 그 짓 후 해외 도피는 필수적인 선택이었고. 당연히 우리 쪽에서 그 편의를 봐주기로 했기에, 그 자도 기술을 빼내서 우리에게 팔아먹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었고.
그 자의 이름은 마이클 창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그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으로, 삼명그룹의 힘을 조금만 빌리면 그를 중국으로 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벌인 일인데....뭐 김종훈이라면 알아서 잘 해주겠지.
* * *
김종훈은 그럴 필요 없다는 데 굳이 공항으로 마중 나온 XXX반도체 직원들과 만났다.
“저희가 호텔까지 모시겠습니다.”
작정을 한 듯 XXX반도체에서는 김종훈이 묵을 호텔까지 준비해 놓은 상태. 해서 김종훈은 자신의 짐을 그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대신 김종훈이 오늘 진짜 만나야 할 사람과 접선을 위해서 그 자에게 몰래 연락은 취해두어야 했다. 해서....
“잠깐 화장실 좀....”
XXX반도체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들어간 김종훈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 연락을 취했다.
“여기 공항입니다. 네. 예상대로 그쪽에서 직원들을 보내서....네. 그럼 묵게 될 호텔에서 연락드리죠. 네. 네. 그게 좋겠군요. 알았습니다. 그럼 오늘 자정에 봅시다.”
오늘 만나서 반도체 핵심 기술들은 넘기기로 한 XXX반도체 연구소 부소장인 마이클 창.
그와 통화한 김종훈은 오늘 그가 묵게 될 호텔 방에서, 자정 무렵 마이클 창과 만나서 그걸 넘겨받기로 얘기를 끝냈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을 나선 김종훈은 XXX반도체 직원들과 같이 공항을 나갔고, 대기 중인 차에 타서 호텔로 출발했다.
김종훈이 필라델피아에서 묵게 된 호텔은 특급 호텔까지는 아니고 5성급의 시티호텔이었는데 그래도 거기 스위트 룸을 잡아주는 성의를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XXX반도체 직원들은 그럴 필요 없는 데 김종훈이 묵는 스위트 룸까지 따라와서 그를 챙겼다. 당연히 김종훈은 그게 불편했지만 그걸 겉으로 전혀 티내지 않았고. 그렇게 해가 질 무렵 퇴근 시간이 된 듯 XXX반도체 직원들이 먼저 작별을 고해왔다.
“그럼 저희는 이만....”
“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내일 협상 장에서 보도록 하죠.”
뭐 당연히 협상 테이블에서 김종훈이 저들을 볼 일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저들이 아닌 XXX반도체 대표와 임원들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그 자들의 서포터, 즉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자들이 저들일 테니, 아마 저들도 협상 장에 따라 오긴 할 터였다.
“....편히 쉬십시오.”
그렇게 XXX반도체 직원들이 떠나고 나자 김종훈이 부랴부랴 노트북을 꺼내며 말했다.
“할일도 많은데 귀찮게 따라와서는....”
김종훈은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서 유튜브에 접속했다. 그리고 거기 숨겨 놓은 비밀 파일을 풀어서 가장 인기 있고 파급력이 강한 유튜버들에게 그 파일을 전부 보냈다. 그 뒤 트위터와 SNS에서도 같은 짓을 벌였고, 거기에 더해 온라인 게임에도 슬쩍 교묘히 편집한 그 파일 내용을 퍼트렸다.
“....끝났군.”
이건 미국 정부에서 나서도 막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내일쯤이면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록펠러 가문의 비리 내용을 알게 될 터였다.
“쯧쯧....그러게 왜 그 인간을 건드려서는....”
혀를 차며 록펠러 가문의 어리석음에 꼬집던 김종훈은 늦은 저녁을 룸서비스로 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TV로 오늘 있었던 스포츠 중계를 보다 광고 타임 때,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이어 자신이 보낸 그 비밀 파일을 확인하고 나서 유튜버들의 반응을 살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 되고 있군.”
그때 광고가 끝나면서 스포츠 중계가 시작 되자 김종훈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에서 TV화면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 * *
록펠러 가문의 집사이자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의 비서실장이기도 한 아담 테일러. 그는 요즘 하루 중 저기압 상태일 때가 더 많아졌다. 그럴 것이 그의 하루 중 저녁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 인고 하니 일과를 마치면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 식사 후에 각가지 여가 활동을 즐겨 왔던 아담.
한데 며칠 전에 록펠러 가를 찾아 온 한 마디 미꾸라지 때문에 그의 저녁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그 시간에 그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 그 대책을 세우느라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변변한 대책의 초안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다. 대신 그 미꾸라지 놈이 처리해 달라고 한 것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뉴욕 경찰 쪽은 잘 해결 됐고, LA경찰 쪽 역시 경찰국장의 퇴임 후 하원 입성을 돕기로 약속하고 그 일을 무마시켜 주기로 확답을 받았단 말이군. 좋아. 근데....”
자기 오린 조카 둘을 처리해 달라는 백준열의 부탁은 다룰 범주 자체가 달랐다. 아담은 평소에는 쓰지 않는 자기 집무실 책상 서랍 맨 밑에 자물쇠로 잠겨 있는 그 서랍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시커먼 형체의 구형 모토롤라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핸드폰 전원을 켜고 잠깐 기다리자 그 핸드폰이 알아서 울렸다.
“여보세요?”
아담이 그 전화를 받자 그 핸드폰 스피터로 기계음이 들려왔다.
-의뢰하셨던 그 일은....약 5시간 전에 처리 완료 되었습니다.
그 말에 전화를 받고 있던 아담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끊은 아담은 핸드폰 전원을 끈 다음, 그 구형 핸드폰을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복귀 시켰다.
“이걸로 놈의 부탁은 다 들어 주었군.”
그 말 후 시간을 확인한 아담.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도 저녁 시간을 훌쩍 넘어서 퇴근하게 생긴 것이다.
“내일은 하루 쯤 쉬어야겠어.”
그렇게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기 일을 하고 난 아담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록펠러 본가를 나섰다. 오늘 한 달 한 번 모이는 가족 모임이 있었던 아담은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의 허락을 받고 일찍 퇴근한 것.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하하하하. 맞아. 그때 닉이 그런 말을 했었지.”
“무슨 소리에요. 저 그런 말 한 적 없거든요.”
“당시 너 많이 취해 있었어.”
“그, 그 말은....”
“맞아. 너 그때 바지에 실례를....”
“큭큭큭큭....”
식사가 끝나고 와인을 즐기며 가족들끼리의 얘기가 사적으로 한참 재미있게 흘러갈 때였다. 록펠러 가문에서 온 집사의 수행비서가 허겁지겁 아담에게 다가와서, 그의 귀 가까이 자기 입을 가져다 대고는 살짝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저희 쪽 비리가 온라인상에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 일로 가주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셔서, 당장 실장님 본가로 들어오시라고.”
“뭐라고!”
수행 비서의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아담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가족 모임 주위 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 되었다.
“아아. 미안. 나 잠깐 화장실 다녀 올 테니....하던 얘기마저 해.”
그렇게 말하고 가족 모임장을 빠져 나간 아담. 하지만 가족 모임의 주체나 마찬가지인 그가 딱 봐도 많이 놀란 얼굴로 나간 마당에 더 이상 그곳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수는 없었다.
* * *
아담은 가족들에게 화장실 간다고 했지만 그는 가족 모임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밖으로 나갔고, 대기 중인 차를 타고 록펠로 본가로 향했다. 그러며 그는 차를 타기 전부터 시작해서 록펠러 본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철컥!
록펠러 본가에 도착한 그를 태운 차의 문을 수행비서가 열자 차에서 내리며 계속 통화 중인 아담. 그는 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계속 핸드폰을 잡고 심각하게 통화를 이어 나갔다.
“....데 그게 어렵다고? 아도니스. 당신과 내가 알고 지낸 게 벌써 30년이야. 내 이정도 부탁도 못 들어 주겠단 말은 나와, 아니 우리 록펠러 가문과 손절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드려도 되겠나? 그래. 이번 딱 한 번이야. 알아. 잘 알지. 어. 어. 고마워. 내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아담은 막 NBC국장과 통화 후 많이 지친 듯 걸음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휘유우....”
어떻게 자신의 인맥과 록펠러 가문의 위세로 미국 대형 언론들의 입을 막고 있기는 했지만 그 사실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빠득....백준열....”
누가 이랬는지 뻔했다. 단지 범인을 확정하기까지 몇 시간이 필요할 뿐. 그래서 아담은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가주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백준열에게 직접 물어 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마이어 록펠러에게 깨지긴 하겠지만 그 전에 아담은 백준열, 그 자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왜 이런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네.
“나요. 아담.”
-네. 압니다. 꽤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셨군요?“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사실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은 그 따위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럴 만하니 전화를 한 거 아니겠소?”
-그래요? 좋습니다. 그럼 그 그럴만한 이유를 들어볼까요?“
“왜 그랬지?”
아담은 긴말할 거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백준열에게 물었다. 그리고 백준열이 딴소리 하지 못하게 바로 사족을 붙여 말했다. 대신 아주 살벌한 어조로.
“네가 터트린 거 다 아니까. 개 소리 지껄일 거면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나 지금 제대로 빡 쳐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