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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창고 안은 사실 잠이 올 정도로 아늑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닥이 차가운 콘크리트가 아닌 그 위에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어선지 몰라도, 후안이 거기 쪼그려 앉아 있으려니 스르르 잠이 몰려 왔다.
평소라면 당연히 이런 데에서 잠을 자지 않았을 거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태평하게 잠을 자겠나? 하지만 거의 잡힐 뻔한 위기 상황에서의 거친 싸움과 그 후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쫓기기까지 한 터라 후안의 몸 상태는 지금 말이 아니었다.
특히 격투를 벌일 때 땅바닥을 수차례 나 뒹군 탓인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거기에 더해 긴장해 있었던 온몸의 근육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걸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수마의 유혹을 버티던 후안. 하지만....
“으음?”
언제 잠이 들었는지 꼬박 잠이 들고 만 후안이, 잠에서 깬 것은 방에 누가 들어 온 걸 느끼면서였다.
분명히 그가 숨어 있는 이곳 방안에서 인기척이 났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깬 후안은 숨소리를 죽이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그가 있는 여기 창고 안에서 방 안의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젠장....’
그리고 후안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왜냐하면 방 안에서 나는 기척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 거기다 그들이 내는 인기척에서 조심성이 느껴졌다. 그 말은 지금 이 방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 이 방 주인은 아니라는 얘기. 주인이 자기 집에서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굴 까닭은 없었으니까. 즉 지금 이 방에 들어와 있는 자들은 후안을 쫓아서 여기까지 온 그 동양인들일 공산이 컸다.
‘제발....’
후안은 그들이 자신이 있는 이 창고 문을 여는 일 만큼은, 제발 없었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벅저벅....
누군가 그가 있는 창고로 걸어오고 있었다. 후안은 이때 탄창을 하나 더 챙겨 다니지 않은 걸 속으로 후회했다.
평소의 그는 만약을 대비해서 예비 탄창을 늘 소지하고 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청부받은 타깃을 멀리서 확인하고 경호원들의 배치 상태를 살피는 수준에서 끝낼 예정이었던 터라, 굳이 예비 탄창을 챙기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꼬여 버릴 줄이야.
다행인지 이곳 창고에는 캠핑 용품들이 있었고, 그 중 꼬치꽂이가 몇 개 있었다. 끝이 뾰족한 그 꼬치꽂이라면 충분히 무기로 쓸 만했다. 후안은 그 꼬치꽂이 두 개를 양손에 챙겨 쥐고서 최대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누군가 이 창고 문을 여는 순간, 그의 목에 꼬치꽂이가 꽂히게 될 터였다. 한데....
‘뭐, 뭐야?’
갑자기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강렬한 갈증이 일었다.
‘미, 미친....’
문제는 그 갈증을 도저히 참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이 창고 밖으로 나가면 냉장고 안에 있는 시원한 물로 얼마든지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음을 알기에, 후안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야....’
그래서 그의 손이 창고 문손잡이로 향했다.
‘안, 안 돼!’
후안은 다른 손으로 그 손을 억지로 잡아 내렸다. 이대로 창고 밖으로 튀어 나갈 수는 없었다. 그건 놈들에게 나 잡아가라고 투항하는 거나 진배없었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못 참겠다.’
후안의 갈증은 당장 해소하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았기에 후안은 어쩔 수 없이 창고 문을 열었다.
철컥!
그리고 곧장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그는 창고 근처에 있는 자를 제거하고 곧바로 냉장고로 달려가서 시원한 물부터 마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고 문을 나간 그의 눈앞에 서 있는 동양인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퍽! 퍽!
후안이 그 동양인을 향해 달려들며 손에 쥐어져 있던 꼬치꽂이로 그 자의 목을 찌르려 할 때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뾰족한 꼬치꽂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후안이 자기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이렇게 맥없이 떨어트리다니 말이다.
하지만 후안은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마치 마비라도 된 듯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후안의 양팔에 끔찍한 통증이 일었고, 그는 곧바로 자신의 아픈 팔의 상태를 살폈다.
그랬더니 잔뜩 녹슨 철근 조각 두 개가 그의 양팔에 꽂혀 있었다. 이러니 그의 양손이 마비 된 듯 꼼짝도 안하는 거였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후안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건 그의 갈증이었다. 양 손을 못 쓰게 된 이 마당에도 그의 갈증은 계속 들끓어 올랐다. 아니 오히려 더해서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서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꺼내 마시고 싶은 욕망 밖에 없었다.
“비켜!”
양 손은 못 쓰지만 아직 양 다리는 괜찮았다. 후안은 눈앞의 동양인을 밀쳐 내고 어서 냉장고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퍼억!
후안 눈앞의 동양인은 쉽사리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달려드는 그의 앞가슴에 발차기를 가했다. 맞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벌러덩 뒤로 자빠진 후안.
“....커억!”
뒤늦게 숨통이 트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기 급급한 그에게 다가 온 동양인. 그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물 좀 가져 와. 냉장고에 시원한 생수로다가.”
* * *
지금 녀석의 두 팔에는 내가 던진 녹슨 철근 조각 두 개가 박혀 있었다.
놈이 창고 안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나는 내 양손에 쥐고 있던 녹슨 철근 조각을 내던졌다. 바로 던지면 무조건 맞추는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그 결과, 녀석의 두 손을 못 쓰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두 팔에 박힌 그 녹슨 철근 조각으로 인해 두 손을 쓰지 못하게 된 것보다 갈증으로 인해 느끼는 고통이 더 큰 거 같았다.
그는 좀비 마냥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딱 봐도 그대로 날 밀쳐내고 냉장고를 향해 달려 갈 기세였는데, 왜냐하면 놈의 시선이 나보다 내 뒤쪽에 냉장고에 꽂혀 있었으니까.
그런 녀석에게 나는 냅다 발차기를 먹였고, 놈의 앞가슴에 틀어박힌 내 그 발차기에 녀석이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
나는 결국 내 능력들을 적절히 잘 활용해서 내 뒤를 쫓고 있는 자를 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어떻게 이 자의 입을 열게 만들지를 말이다. 누가 내 뒤를 쫓게 했는지 그 배후는 밝혀내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고 이 수고 중인데 말이다.
한데 막상 잡고 나서 놈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나는 녀석의 입을 바로 열게 만들 방법이 생각났다. 해서 근처 경호팀원에게 냉장고에 시원한 물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녀석의 눈앞에 그 물을 보여주자....
“....크으으....제, 제발....한 모금만....”
내 예상대로 녀석의 머릿속에는 온통 갈증에 대한 욕망뿐이었다. 두 손을 못 쓰게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녹슨 철근 조각이 녀석의 양팔에 깊게 박혀 있는 게 누가 봐도 고통스러울 거 같은 데, 그 고통보다 갈증으로 인한 고통이 더 커 보였다. 그런 그에게 물은 그의 입을 열어주는 패스워드였다.
“이름이 뭐지?”
“후안 가르시아.”
“뭐하는 놈인데?”
“LA에 있는 갱단 멕시칸 보이즈의 조장이고 부업으로 청부살인을 하고 있다.”
눈앞에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그 갈망이 그의 입을 술술 열게 만들었다.
“청부살인이라....누가 날 죽이라고 너에게 의뢰라도 한 모양이로군?”
“....”
다음으로 내가 녀석에게 물을 말은 뻔했고 그건 녀석도 알았다. 그랬기에 나는 차가운 물을 몇 방울 그의 입술 위에 떨어트려 주었다. 그러자 입술에 묻은 물을 혀로 핥기 급급한 후안. 하지만 그 몇 방울 물로 그의 갈증이 해소 될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몇 방울 맛 본 그 물 때문에 후안의 갈증에 대한 욕망치가 더 높아졌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 했다.
“지금 묻는 내 물음에 대답하면 이 물....다 줄게.”
“진, 진짜?”
내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후안. 그런 그에게 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누가 날 죽이라고 했지?‘;
“그, 그건....”
나는 후안의 눈앞 가까이 냉장고에서 꺼낸 탓에 차가운 생수 통 주위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그 물통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고 도저히 안 되겠는지 후안이 대답했다.
“리, 리암....”
“뭐?”
나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인물이 후안의 입에서 나오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당연히 록펠러 가문에서 나를 제거하려고, 거기 가주 비서실장인 아담이 후안을 내게 붙여 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그게 아님이 밝혀지면서 내 머릿속을 뒤죽박죽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 * *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리암이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단 점이었다.
“그러니까....그쪽에서 날 죽이라고 연락이 오면 나를 죽이려 했단 거네?”
“그, 그렇다. 그러니....이제 제발 물 좀....”
나는 후안이라는 LA갱단원에 살인청부업자라고 자신을 밝힌 놈에게서 알아 볼 걸 대충 알아보고 나서 그에게 생수 통을 던져 주었다.
“으헤헤헤. 물, 물이다.”
후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생수통을 받아서는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그 물을 마셨다. 하지만 작은 생수통 하나로 해소 될 그의 갈증이 아니었다. 녀석은 눈이 뒤집어져서 이 방 냉장고로 달려갔고....
“내버려 둬.”
나는 내 경호팀원들에게 그를 제지할지 말 걸 지시했다. 그 덕분에 냉장고로 달려 간 후안은 그 냉장고 안에 남은 생수와 맥주까지 죄다 꺼내 마셨다.
“....꺼억!”
그렇게 냉장고 안의 마지막 남은 맥주까지 꺼내서 다 마시고 후안이 트림을 할 때였다.
퍽!
둔탁한 소리가 일고 둔기에 강하게 머리를 얻어맞은 후안이 픽 쓰러졌다.
그 사이 내 지시로 경호팀원들이 전부 방에서 나간 상태라, 지금 이 방에는 후안과 나 둘 뿐이었다. 후안이 스스로 제 머리를 둔기로 후려치지는 않았을 테니, 그의 뒤통수를 둔기로 후려 친 건 ‘나’라는 얘기다.
“쯧....”
나는 그렇게 후안을 기절 시킨 뒤 상태창의 인벤토리에서 개톤백(In)을 꺼낸 다음, 그 입구 문을 열고 후안을 들어서 그 안에 넣어버렸다.
앞서 뉴욕에서 킬러들 처리하고 경찰서에서 개 고생한 걸 생각하니, 후안이라는 이놈의 처리도 그냥 내 손으로 해치우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물론 내 경호팀원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처리한 걸 말해주지 않을 테지만.
나는 곧장 방 밖으로 나갔고 그 방 복도에 대기 중이던 내 경호팀원들에게 말했다.
“잘 얘기했으니 알아듣겠지. 갑시다.”
마치 후안과는 서로 얘기를 잘 끝낸 거처럼 말이다. 아마 경호팀원들은 내가 후안을 돈으로 입막음 한 줄 알 거다.
그렇게 그 연립 주택을 빠져 나온 나와 경호팀원들은, 그 건물 앞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내가 혼자 후안의 뒤처리를 하는 동안 경호팀원들이 알아서 타고 갈 차량을 이쪽으로 부른 모양이었다. 그 차들을 타고 나와 경호팀원들은 우리들의 숙소인 맨해턴 호텔로 향했다. 그렇게 내가 맨해턴 호텔의 로비에 들어섰을 때였다.
“준열!”
누가 내 이름을 불러서 그쪽을 돌아보니 리암이 너무도 반가운 얼굴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허얼....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온다더니....’
그런 그를 보고 나는 기가 찼지만, 그걸 겉으로 티내지 않았다. 대신....
“리암. 무슨 일입니까?”
너무도 딱딱하게 사무적인 말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무리 내가 티내지 않으려 노력 중이라지만, 그래도 날 죽이라고 살인 청부를 한 놈을 보고,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무슨 일은....우리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만나는 사이였던가?”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뻔뻔한 얼굴로 잘도 말하는 리암을 보며 나는 대답 대신 코웃음을 흘렸다.
“후훗....”
그걸 리암은 내 의도와 달리 좋게 받아드린 거 같았다. 내게 바짝 다가와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하고 축구장 가기로 했잖아?”
그 말에 나는 팍 얼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그 얘기는 이미 본가에서 다 한 상태였으니까.
즉 지금 리암이 내게 이러는 건, 딱 봐도 본가에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아니. 이 인간들이....’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와 그의 비서실장인 아담이 딱 봐도 리암은 건너 뛴 거 같았다.
뭐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야 리암에게 나와의 악연을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었겠지.
하긴 그러니 이 미친 새끼가 나를 죽이려 한 거겠지만. 나는 일단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리암에게 말했다.
“본가에서 아직 얘기 못 들으신 모양이군요?”
“뭐?”
“가주님과 저 사이에 암묵적으로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었거든요. 뭐 자세한 건 리암씨가 본가 가셔서 가주님께 직접 들으시면 될 거 같고....그럼 저는 이만....”
나는 그 말 후 리암 옆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리암은 내 그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던지 한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그대로 서 있었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