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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776화 (77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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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지금의 나를 비정하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째든 내 조카들은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원래 백준열이 아니다.

당장 부친인 백승렬 회장, 난 단 한 번도 그를 내 아버지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내 형의 자식들? 그것도 내가 백준열로 빙의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백준열을 제거했던 그 비정한 부부의 자식들에 대해 내가 무슨 애정이 있겠나?

오히려 내 미래에 거추장스런 존재들일 뿐인 그들을, 내 손이 아닌 제 삼자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면 그걸 하지 않는 게 더 멍청한 짓이겠지.

뭐 어째든 내가 생각하기로 조카들의 죽음에 록펠러 가문이 개입 된 거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이 그랬다는 증거가 없는 한, 나도 섣불리 그게 그들이 한 짓이라 규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저 내 심증이 그렇다는 얘기일 뿐....

-네 말이 사실이어야 할 것이다.

누가 대기업 오너 아니랄까? 백 회장의 말하는 투에는 묘한 힘이 느껴진다. 물론 그게 내게 그리 먹혀들지는 않지만.

내가 백 회장에 꿇릴 게 하나도 없는데 그에게 압도당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 얘기 하려고 전화하신 거면 빨리 끊으시죠? 저 지금 식사 중입니다.”

‘뭐?’

내 말에 백 회장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하긴 천하의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에게 밥 먹어야 하니 빨리 전화 끊으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글쎄....미국 대통령쯤이면 되려나?

아무튼 내 그 오만한 그 말이 백 회장에게는 내가 자신의 손자들을 해친 배후가 아니란 확신이 들게 만들어 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으음....원래는....아이들 시신을 한국으로 데려와서 가문의 선산에 묻으려 했다.

“....”

뜬금없는 백 회장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그러자 백 회장이 알아서 하던 말을 마저 이어서 했다.

-근데....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구나. 그 아이들도....제 어미 곁에 묻히는 걸 더 좋아할 거 같고....해서....내가 거기서 그 아이들 장례를 치러주고 오너라.

“네?”

-네가 내 대신 그렇게 하도록 해라.

형수인 신미나의 장례를 치러 주는 거 하고 조카들의 장례를 치러 주는 건 그 격이 달랐다. 어쨌거나 나는 그 아이들의 삼촌이었으니까. 한데 백 회장이 내게 그 아이들 장례를 치러 주라고 지금 말하고, 아니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5일 뒤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티거사와 인수합병을 위한 사전 미팅이 있다. 거기도...나 대신 참석 하고.

여기서 티거사라 함은 미국 반도체 회사였다.

반도체는 Tv,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등 우리가 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중요한 부품이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 메모리 반도체로 나뉘는데, 메모리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용도로 활용되며 D램, 낸드플래시(데이터 저장장치)가 있다.

이에 비해 비 메모리 반도체는 연산, 제어 등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하며,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통신 칩, 복합형반도체, 이미지 센서,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이 있다.

여기서 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공정을 진행하지만, 비 메모리 반도체는 비즈니스 방식에 따라 분류 되었다.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앞부분에 사설이 좀 길었는데, 티거사는 바로 미국에서도 유명한 비 메모리 반도체 회사였다. 삼명전자는 IDM기업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선두 주자였다. 하지만 최근 비 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함을 인식하고서는, 그쪽에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것.

삼명 전자가 이러는 이유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그 만큼 비메모리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요?”

-왜? 못하겠느냐?

무슨 소릴. 당연히 할 수 있지. 아니 해야지.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 실장이 전화할 거다.

그 말 후 백 회장은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 * *

산업의 패러다임은 이 시각에도 바뀌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아마존, 테슬라 등의 혁신 기업들에 대해 투자를 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들 기업은 인공지능, 전기차, 클라우드, 5G등의 신사업을 활발하게 펼쳐 나가게 될 거다. 즉 그들의 4차 산업 생산 품에 꼭 필요한 부품이 바로 반도체다.

이는 4차 산업혁명 테마와 글로벌 혁신기업, 반도체기업이 밀접한 벨류체인을 형성하게 될 거라는 얘기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비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티거사를 우리 삼명전자가 인수합병 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 이 인수합병은 실패로 돌아간다.

미래를 읽은 백승렬 회장이 어떡하든 인수합병을 하려 들었지만, 그의 장남인 백준경과 대주주들의 반대에 부딪쳐서 말이다.

그렇지만 백승렬 회장은 티거사 인수합병의 끈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아니 쫓겨나면서 그 인수합병은 완전히 물 건너 가버렸고, 10년 뒤 삼명전자는 그때 티거사를 인수합병하지 않은 걸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된다.

“이번에는 아니지.”

나는 아예 이번에 사전미팅이 아닌 티거사와의 인수합병을 성사 시켜 버릴 생각을 굳혔다.

어차피 내가 삼명그룹을 물려받아 회장이 되어야 한다면, 미국 내 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있어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티거사 만큼은 반드시 인수하는 게 맞았다.

그래야 10년 뒤에 반도체 시장에서 밀려 나게 될 삼명전자의 퇴보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알기로 삼명전자는 10년 뒤에 부랴부랴 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150조원을 투자한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 메모리 분야가 70%를 차지하면서,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함을 뒤늦게 깨닫고서 말이다. 물론 그때는 너무 늦었지만....

“하지만 지금 티거사를 인수해 버리면 그 150조를 미래 반도체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단 거지.”

그러면 적어도 10년 뒤에 삼명전자가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에 내어 주는 일 따위는 없을 테고 말이다.

“준열!”

그때 쥬리가 나를 불렀다. 화장실 앞에서 핸드폰 들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그녀가 화가 난 듯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나를 쏘아보고 서 있었다.

“아아....미안.”

나는 그런 그녀에게 사과부터 했다. 전화 받으러 화장실 쪽으로 왔다가 그만 쥬리를 깜빡한 것이다.

“무슨....전화 받으러 간 사람이 30분이나 지나도 안 오면 어떡해요?”

쥬리의 말에 나는 내 핸드폰에 시간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그새 30분이나 지났다.

전화 받으러 화장실 쪽으로 간 사람이 30분이나 지나도 안 돌아오고 있으니, 쥬리가 직접 나를 찾으러 여기까지 온 거다.

나는 거듭 그녀에게 사과하고 그녀와 같이 레스토랑을 나왔다. 먹을 거 다 먹었는데 굳이 자리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 * *

나는 피곤해 보이는 쥬리를 먼저 호텔로 보냈다. 물론 그녀에게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미리 양해를 구했다.

쥬리는 리암의 비서였고 사업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은 흔한 걸 알기에 나를 이해해 주고 호텔로 가며 말했다.

“빨리 와요.”

“알았어.”

그렇게 쥬리와 헤어진 뒤 나는 근처 펍으로 갔다. 흔한 미국식 펍으로 시끌시끌한 가게 안에 TV가 사방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TV에 각기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뉴스가 각각 방송 되고 있었다.

자기 취향에 맞게 그 TV가 설치 되어 있는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시시콜콜 떠들며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대화 속에서 퇴근 후 직장인들이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 모습에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샐러리맨, 또는 우먼들의 삶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TV와는 동떨어진, 그래서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내 맞은편에 문대식이 앉으며 말했다.

“여기서 술 마시려고요?”

“어. 간단히 맥주 좀 마시고 가자고.”

그렇게 말한 뒤 주문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에게 나는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켰다. 그리고 내 경호담당인 문대식에게 말했다.

“한 일주일 더 미국에서 체류해야 할 거 같아.”

내 그 말에 문대식이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럴 게 오늘 재차 그에게 말했다. 내일 한국으로 갈 거라고 말이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미국에 더 있겠다니....

빨리 그 이유를 말하라는 듯 날 계속 쳐다보는 문대식. 그런 그에게 나는 레스토랑에서 백승렬 회장과 통화 한 내용을 대충 얘기했다. 그랬더니....

“회장님이 지시로군요. 그럼 따라야죠.”

내가 말할 때와는 받아드리는 결이 달랐다. 마치 백승렬 회장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신의 게시라도 되는 듯 말이다. 문대식과 그의 경호팀원들 월급은 내가 주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그 말을 하면서 서운한 티를 팍팍 내자, 문대식이 그제야 슬쩍 내 눈치를 봤다. 하긴 문대식도 찔리긴 하겠지.

나는 문대식과 얘기 후 핸드폰을 꺼내서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시차 상 김 비서가 출근해 있을 시간이었다. 그래선지 그녀가 바로 내 전화를 받았다.

“김 비서. 잘 있었어?”

-네.

며칠 떨어져 있었다고 그녀와 통화가 어색했다. 나는 그녀에게 자세한 사정까지는 밝히지 않고 미국 출장이 일주일 더 연장되었음을 알렸다. 그러며 대충 밝힌 그 이유를 듣고 김 비서가 말했다.

-회장님 지시라니 어쩔 수 없겠네요.

김 비서도 문대식과 같은 반응이었다. 어떻게 된 게 백승렬 회장을 거론하면 사람들이 이해를 해 주었다. 이게 바로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진정한 인지도가 아닌가 싶었다.

하긴 한국에서 삼명그룹의 영향력이야 대단하지. 그리고 그 후계자가 바로 나고 말이다. 새삼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달 까?

김 비서와 통화를 막 끝냈을 때 주문한 맥주와 안주가 나왔다. 나는 가볍게 미국 펍에서 맥주 두 병을 마신 뒤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나를 따라 내 옆에서 나를 근접 경호하고 있던 문대식에게 말했다.

“호텔에서부터 우릴 따라오고 있는 자가 있어.”

“네?”

내 말에 놀라 문대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려 했는데, 그걸 내가 그의 팔을 잡아 제지하며 말했다.

“우리 7시 방향에 멕시칸 보이지?”

그래도 경호팀장이라고 내 말에 문대식은 티 나지 않게 곁눈질로 길거리에서 얘기 중인 멕시코인을 확인했다.

“네.”

누가 봐도 아는 사람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 난 뒤 그 멕시칸은 문대식에게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때 이어지는 내 말....

“그 새끼야. 총을 소지하고 있으니까....꺼내기 전에 제압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우리는 잠깐 근처 미국 편의점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일레븐 세븐.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내부의 모습은 한국과 천양지차였다.

그때 문대식과 경호팀원 하나가 편의점 뒷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나는 편의점 안을 둘러 봤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미국에 놀러 갔다 온 친구의 말이었는데, 그건 바로 미국에 가면 '월마트가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면 절대 편의점엔 가지 마라'는 말이었다.

뭐 그 이유야 뻔했다. 바로 높은 가격 때문. 한국 편의점도 마트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미국은 더 심하다. 과자 하나를 집어도 4, 5천 원이 넘었다. 게다가 행사 자체가 적어 한국의 편의점의 2+1, 1+1 같은 제품은 기대하지 말라더니....

“진짜네.”

그런 행사 상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에 한국 편의점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하고 독특한 제품들이 보였다. 그것도 하나 두 개가 아닌 무려 5개나.

“오올! 편의점에서 마취약을 살 수 있다고?”

약들이 있는 코너에서 나는 치통을 위한 마취제 연고와 충치에 구멍이 나서 시릴 때 쓰는 치수 진정제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놀란 부분은 바로 충치치료를 한 것이 빠졌을 때 임시로 그 구멍을 메꿔 넣는 필링도 판매하고 있었단 점이었다. 하긴 미국에서 치과 치료 받는데 엄청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더니....

그 다음 내 눈에 띈 건 바로 미국답게 거대한 음료 스케일. 나는 일레븐 세븐의 음료 코너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럴 게 커피뿐만 아니라 미국 드라마 글리(Glee)에서 매회 등장하는 슬러시도 판매하고 있었던 것. 그것도 10가지 종류나. 커피를 내리는 기계도 3개나 됐다. 프렌치 바닐라, 라즈베리 캐러멜, 바닐라 카푸치노 등 벤티 사이즈의 커피가 1~2달러 밖에 안했다. 게다가 종류도 취향 껏 고를 수 있을 만큼 선택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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