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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768화 (76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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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때였다.

“아악!”

갑자기 골대 밑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저, 저런....핸드릭스가 다친 거 같아요.”

쥬리가 내 옆에서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 두 손으로 자신의 코와 입을 가린 채 경악어린 얼굴로 외쳤다. 거기다 뭐가 그리 안타까운지 두 발을 동동거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내가 묻자 쥬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뇨. 몰라요. 하지만 핸드릭스가 농구하는 걸 하도 많이 봐와서....그의 팬이거든요.”

쥬리가 저 흑인 남자의 팬이라는 건 지금 그녀가 짓고 있는 안타까움에 곧 울 거 같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때 같은 편인 거 같은 선수들이 황급히 핸드릭스라는 흑인을 등에 업고 농구코트를 벗어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이렇게 시합도 팽개치고 갈 정도면 당장 병원으로 가는 듯 했다.

내가 본 건 아니지만 주위에 들리는 속삭임에 따르면 핸드릭스가 리바운드 싸움을 할 때 착지하는 순간 발목이 접질린 모양이었다.

업혀 코트를 빠져 나가는 내내 고통스런 얼굴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서, 확실히 심각한 부상을 입은 거 같았다.

“어떡해요. 핸드릭스가 크게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

핸드릭스와 그 일행들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쥬리가 그제야 진정이 된 듯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의 말을 건넸다.

“그러게요.”

그때 핸드릭스가 속한 길거리 농구팀의 상대 팀 선수들이 아쉬워하며 짐을 싸는 게 보였다.

그들로서는 한창 농구 경기 중이었는데 상대 팀 선수 한 명이 다침으로 인해 경기 자체가 이런 식으로 중단 되어 버린 게 아쉬운 얼굴들이었다.

반칙도 아니고 리바운드 싸움에서 상대가 다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히 재수가 없었다. 발목이 꺾였으니 적어도 몇 달은 깁스 상태로 지내야 할 터.

그걸 알기에 다친 상대 쪽 선수를 생각해서 그들은 겉으로 최대한 티내려 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발걸음이 코트 안으로 향했다.

“저기요.”

그리고 코트를 빠르게 가로지르며 나는 먼저 짐 정리가 끝난 듯 가방을 메고 있는 길거리 농구팀 선수 한 명을 보고 외쳤다. 그러자 그 선수가 나를 돌아봤고 나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혹시 경기마저 하시는 건 어때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길거리 농구 선수. 그리고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다른 그 팀 길거리 농구 선수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빠르게 입을 털었다.

“농구 잘 봤습니다. 잘하시더군요.”

일단 그들을 칭찬부터 한 뒤 나는 그들을 도발하는 말을 내 뱉었다.

“확실히 드리블과 패스는 좋은 데 수비가 좀 약하더군요.”

그 말에 발끈해서 짐 싸던 길거리 농구 선수 하나가 외쳤다.

“무슨 개소리야? 옐로우!”

아시아인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내 뱉는 그 길거리 농구 선수를 확 째려보면서 나는 속으로 외쳤다.

‘걸려들었다.’

* * *

뉴욕에 이어서 LA에서도 농구를 할 줄은 몰랐다. 뭐 어째든 뉴욕에서 이미 길거리 농구를 해 봤던 내 경호팀원들. 그들 중에서 나는 파워에서 흑인들에게 밀리지 않는 문대식과 경호팀원들 중 유일하게 키가 190센티가 넘는 경호팀원으로 길거리 농구 팀을 꾸렸다.

근데 농구 팀은 왜 꾸렸냐고? 그야 길거리 농구를 하려고....

아직 20대 초반인 미국인 애송이들을 구워삶는 건 내게 일도 아니었다. 내 도발에 넘어간 상대 팀 길거리 농구 선수. 그런 그를 나는 인종 차별로 교묘히 몰아갔고, 그로 인해 주위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상대 팀은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내가 변호사 운운하니 그들도 꼬리를 말았다. 바로 그때 나는 그들과 길거리 농구 시합을 제안 했고, 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이 주위 사람들에게 낱낱이 밝혀 진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상대 팀 선수들을 잘 설득해서, 새로운 길거리 농구 시합을 하게 된 걸로 비쳐졌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아쉽게 끝나버린 길거리 농구를 더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도 처음부터 다시 말이다.

이미 편안한 차림이라 나와 우리 팀원들은 가볍게 몸을 푼 다음 코트로 들어가서 농구공을 잡았다.

휙! 척!

그리고 가볍게 농구공을 주고 받으며 패스 연습을 했다. 그때 쌌던 짐을 풀고 다시 농구 할 준비를 끝낸 상대 길거리 농구팀이 코트 안으로 들어왔고, 그 중 키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녀석이 내게로 걸어와서 말했다.

“내 친구가 아시아인 비하 발언을 한 건 명백한 잘못이었다. 내가 대신 사과하지.”

녀석은 그 말후 정중히 내게 머리를 숙였다. 순간 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역시나 적중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신성한 농구를 모욕하는 건 내가 참을 수 없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내가 녀석을 올려다보자 녀석이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하던 말을 마저 이어서 했다.

“우리는 아무나와 농구를 하지 않는다. 앞서 우리와 시합 했던 상대도 길거리 농구에서 25연승을 한 팀이었고.”

그러니까 실력이 검증 되지 않은 우리랑은 시합을 해 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해서 나는 그에게 우리 팀이 약하지 않다는 얘기를 간략히 했다. 엊그제 뉴욕대 농구 동아리 팀과의 길거리 농구에서도 이겼고....하지만 그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시시하게 끝날 시합이라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맞다. 그게 우리로서 시간 낭비하지 않는 거고, 너희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고 모멸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테니까.”

한마디로 우리보고 개 박살나서 징징거리며 집으로 가기 싫으면 시합은 하지 않는 게 옳다는 얘기를 내게 잘도 말하는 2미터 녀석. 나는 그 2미터 녀석의 이름을 물었다.

“데릭이다.”

“그래. 데릭.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그 데릭의 코부터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또 제안을 했다.

“나와 1대 1로 붙자. 그 결과 내가 이기면 우리와 시합하는 거고, 지면 시합은 없었는 걸로 하고.”

“좋군.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데릭은 자신이 나 같은 녀석에게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1대 1을 진행하기 위해 농구골대로 갈 때 녀석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간 걸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이러려고 일부러 내게 왔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나도 웃었다. 왜냐하면 이게 다 그걸 알면서 내가 그가 원한대로 해 준 거니까.

내 시선이 코트 한 쪽에 유모차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쥬리에게로 향했다.

‘잘 봐둬.’

쥬리를 내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나는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지금 이 자리에서 선보일 생각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농구로 말이다. 내 농구 실력이 쥬리의 눈에 콩깍지를 씌워 줄 테니까.

* * *

키가 2미터나 되는 흑인과 190센티도 안 되어 보이는 동양인. 농구에서 이 정도 키 차이라면 극단적인 미스매치라 봐도 좋았다.

파파파팟! 퉁! 퉁! 퉁!

흑인 선수가 낮게 드리블을 치고 등으로 밀면서 페인트 존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 미는 힘을 버티지 못한 동양인이 튕겨났다.

쾅!

그 순간 흑인선수가 호쾌한 두 손 덩크를 꽂아 넣으면서 상대 선수에게 목욕 값을 건넸다.

“우와아아!”

짝짝짝짝!

그리고 그 흑인 선수의 퍼포먼스에 야외 코트 주변 사람들이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보냈다.

누가 봐도 그런 흑인 선수의 화려하고 강렬한 플레이가 관중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첫 상대 공격에서 바로 압도를 당하고 있었지만, 동양인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풋워크를 하면서 들고 있던 공을 흑인 선수에게 넘겼다.

1대 1 시합에서는 점수를 넣거나 공이 라인을 나가면 상대에게 공을 넘겼다, 다시 받는 의식으로 시합을 재개한다. 그래서 동양인은 공을 흑인 선수에게 패스한 것이고, 그 공을 받은 흑인 선수가 동양인에게 공을 넘기자 시합이 재개 되었다.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작은 키와 드리블을 이용해서 빅맨을 제치는 전략으로 나섰고, 그걸 흑인이 간파한 듯 수비 자세를 잡았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굿 수비 자세. 그때 공을 잡은 동양인이 기습적으로 무릎을 구부렸다. 그러자 흠칫 놀라며 재빨리 접근과 동시에 손을 올리는 흑인 선수. 하지만 동양인의 페이크가 제대로 먹힌 상황. 동양인은 흑인 선수가 다가오게 하고 관성을 이용해서 왼쪽으로 돌파했다. 그리고 가볍게 뛰어 올라 레이업 슛.

철썩!

깔끔히 림을 통과하는 농구공. 간단히 득점하면서 스코어는 1대 1.

아아. 참고로 1대 1 시합에서 3점 슛은 2점으로 치고, 2점 슛은 1점으로 계산한다.

“흐음....”

동양인의 그 움직임에 흑인 선수의 눈빛이 싹 변했다. 아무래도 무시하던 동양인의 농구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이 한 번의 공격에서 흑인 선수도 눈치 챈 거 같았다. 그래서 동양인에게서 공을 넘겨받은 흑인 선수.

끼익!

그가 단 한 번의 잽 스탭으로 동양인을 제쳤다. 그리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골대로 드리블해 들어갔고 골대로부터 1.5미터 거리에 도달하자 크게 발을 디딘 흑인 선수. 그가 몸을 솟구치며 공중을 날았다. 그대로 덩크로 쐐기를 박을 심산 같았다.

슈욱!

그때였다. 흑인선수 허리춤에서 검은 머리가 나타났고....

팡!

정확히 흑인 선수의 손에 농구공을 쳐 냈다. 흑인 선수의 손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클린 스틸이었다. 당연히 파울이 아니었다. 100% 공이 림에 들어갔다 확신하고 있었던 흑인 선수. 그런데 자기보다 한창 키가 작은 동양인에게 블로킹을 당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시합 중이었다. 그는 동양인에게 공을 넘기고 수비 자세를 잡았다. 자신의 실수야 수비로 얼마든지 커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 흑인 선수 앞으로 동양인이 공을 몰아왔고, 그 앞에서 슈팅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흑인 선수는 피식 웃었다.

이런 허접한 슈팅 페이크에 속을 그가 아니었다. 흑인 선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동양인의 돌파를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흑인 선수의 그 모습에 되레 피식 웃으며 동양인이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흑인 선수가 한 걸음 물러나며 생겨난 여유 공간에서 유유히....

철썩!

깨끗한 클린 3점 슛이 터졌다. 이로서 스코어는 1대 3. 동양인이 뒤집었다.

흑인이라 얼굴이 빨게 진 거 까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싸늘하게 굳은 흑인 선수의 얼굴에서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제대로 빡 쳤다는 걸 말이다.

* * *

데릭은 비록 재능이 없어 NBA에서 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이 NBA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얘기지, 그 실력은 어디 내 놔도 확실하게 제 몫을 충분히 해 냈다. 특히 길거리 농구에서 그는 샤키 오닐(NBA전설 급 선수)이었다. 물론 그 보다 키가 10센티는 작지만. 뭐 어째든 길거리 농구에서 그는 최고의 센터.

그런 그가 탱크처럼 밀고 들어가는 걸 여태 막은 길거리 농구 선수는 없었다. 한데....

퍽! 퍼억!

그의 돌파를 연거푸 상대가 막았다.

‘뭐, 뭐야?’

무슨 담벼락에 몸을 부딪치는 거 같았다. 자기보다 작은 동양인 남자가 순간 커다랗게 보였다. 앞서 공격에서는 맥 없이 밀리던 동양인 남자. 그런데 막상 몸 끼리 부딪치자 녀석의 근육은 무슨 돌덩이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힘으로 밀리면 끝장이었다. 그걸 알기에 데릭은 이를 악물고 상대를 뚫으려 했다. 하지만 동양인은 동물 같은 운동신경으로 그를 따라 잡으며 교묘히 돌파 루트를 막았다.

‘젠장....’

하지만 데릭은 단순무식하게 돌파만 시도하는 그런 선수는 아니었다.

끽!

바로 가속하던 왼쪽 돌파를 한 순간 멈추고 동시에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렇게 점프 후 간결한 포즈로 슈팅을 시도하는 데릭. 공은 아름답게 궤적을 그리며 림으로 향했다. 하지만....

철썩!

아쉽게도 농구공은 림을 통과한 게 아니었다. 바깥 네트만 깨끗하게 건드린 것. 그러니까 에어 볼, 즉 림도 건드리지 못한 최악의 슛 미스가 난 것이다.

연이은 득점 실패로 데릭의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지만 시합은 계속 진행 되었고 데릭으로부터 공격권을 넘겨받은 동양인. 그는 3점 라인 밖에서 공을 잡고선 데릭에게 말했다.

“한 골 더 들어가면 끝이네.”

“뭐?”

동양인의 그 말에 격동한 데릭. 하지만 이내 데릭의 머릿속에 지금 스코어를 떠올랐고, 다급해진 그가 동양인을 향해 움직였을 때....

“안 돼!”

동양인의 몸은 표홀히 슛 쏘기 충분히 널찍한 공간 위로 솟구쳐 올라 3점 슛을 쏘았다.

철썩!

앞서 데릭이 보여 준 에어 볼과는 달리 동양인의 농구공은 정확히 림을 통과했다.

앞서 1대 1 시합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두 사람은 5점을 누가 먼저 따는 지로 결판내기로 합의를 본 상황. 즉 좀 전에 들어간 동양인의 3점 슛으로 인해 2점을 더 획득한 그가 1대 5로, 시합에서 데릭을 이긴 것이다.

“이제 증명이 됐나?”

동양인이 득의만만한 얼굴로 데릭을 향해 묻자 데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서 자신의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10분 휴식 후 데릭이 속한 길거리 농구 팀과 동양인의 농구 팀의 길거리 농구 시합이 시작 되었다.

* * *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핸드릭스로부터 길거리 농구 심판을 좀 봐 달라는 요청에 루스는 흔쾌히 승낙했다.

대학농구심판인 루스는 곧 열릴 미 대학농구 토너먼트에 참가하기 전 가벼운 마음으로 길거리 농구 심판을 봐 줄 생각이었다. 한데....

“쳇....”

길거리 농구가 시작되고 이제 막 양 팀에 제대로 열이 붙었는데....정작 그를 초대한 핸드릭스가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가 중단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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