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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767화 (76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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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제가 누군지는 잘 아시죠?”

-물론입니다. 삼명그룹 후계자 되시죠.

시니컬한 내 물음에 이번엔 아담이 살짝 비아냥거리듯 대답해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가볍게 농담조로 말했다.

“그럼 그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제 위에 두 형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아시겠군요?”

-네. 뭐....

아담은 내가 왜 자기 얘기, 특히 삼명그룹 후계자를 두고 자신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일견 이해가 안 되는 듯 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마저 하던 얘기를 이어나겠다.

“작은 형의 자식들은 작은 형수가 호적상 거둬가면서 삼명가의 상속을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큰 형의 자식들은 아니거든요.”

-아아....

그제야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눈치를 차린 듯한 아담. 나는 아담이 혹시 내 형수, 신미나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물었다.

“큰 형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압니다.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익사더군요.

다행인지 형수가 비틀거리며 수영장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죽은 과정이, 그 옆집 CCTV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해서 형수가 타살이 아님은 LA경찰도 은연 중 인정한 바였다. 그러니까 아담도 내가 큰 형수를 제거한 게 아니냐는 말은 감히 내뱉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최고 명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 부자 가문쯤은 되는 록펠러가의 가주 비서실장답게 내가 왜 전화했는지, 그걸 간파해 낸 듯 차갑게 말했다.

-빙빙 말 돌리지 말고, 원하는 게 그 조카들의 처립니까?

“....”

나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잠깐 침묵하다가 아담에게 동문서답하며 말했다.

“Scratch my back and I will scratch yours.(내 등을 긁어주면 네 등을 긁어주지.)”

내 그 말을 듣고 난 아담이 피식거리며 중얼거렸다.

“Red sky in the morning, sailor takes warning.(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비를 조심하라.)”

내가 미국 속담으로 동문서답한 걸 두고 아담도 딴에는 내게 경고라도 하고 싶었던지, 미국 속담으로 한 말인데 나는 그걸 듣는 순간 확신했다.

적어도 록펠러 가문에서 나를 좋게 보고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록펠러 가문은 자신을 배신하거나 배척하는 자에게는 철저하게 응징을 가했다. 그게 목숨을 거두는 거라도 거침없이 말이다.

‘이거 남은 미국 일정 동안 몸 좀 사려야겠군.’

그리고 나를 제거하기에는 내가 미국에 있는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서 최적기였다. 그러려면....

-좋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죠.

나를 방심시켜야 하기에 록펠러 가문에서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 주는 게 맞았다. 한데 아담이 그러겠다고 하네?

‘이것들이....’

순간 내 기분이 확 더러워졌다.

* * *

뭐 그렇다고 내가 이곳 미국에서 록펠러 가문과 싸우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진짜 미친놈도 아니고 말이다. 싸우면 질 게 뻔한 그 싸움을 내가 왜 하겠는가? 단지 미국을 뜨기 전에 똥바가지로 똥을 한껏 뿌려 주긴 할 생각이었다. 그 잘나신 록펠러 가문에 말이다.

록펠러 가문의 가주를 대신해서 나를 상대하고 있는 아담의 반응이 이렇다면, 그쪽과 나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라고 보면 됐다.

그렇다면 이용할 건 다 이용한 후, 딱 그들의 체통을 아주 조금 더럽혀 놓을 수 있을 만큼의 비리를 미국 사회에 투척해 주기로 했다. 대신 구린 내를 팍팍 풍기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에 회자 될 만 한 놈으로다가 말이다. 그게 뭔지는 이미 내 머릿속에 떠오른 가운데 아담과 나는 각자 더 할 말이 없자 통화를 끝냈다.

그 뒤 화장실 밖으로 나온 나는 장례식장으로 돌아갔고, 고인을 묻기 위해 LA국립묘지로 향했다. 신미나의 유해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받기를 거절했다. 그녀의 외가와 본가 모두 그녀를 시신을 건네 받기를 거부한 거다.

해서 그녀의 시신은 그냥 이곳 미국의 묘지에 묻기로 했다. 더 이상 시신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내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대신 묏자리를 사는 데 돈이 꽤들어갔다. 뭐 그래봐야 내게는 푼돈이었지만. 그렇게 오후에 LA국립묘지에 큰 형수를 안장하고 나자 삼명전자 LA지부장이 내게 말했다.

“두 분 도련님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백승렬 회장이 장례가 끝나자마자 자기 손자들을 챙겼다. 나는 순순히 그러라고 했다.

“네. 데리고 가세요.”

그래서 우리 쪽 경호팀원들에게 보호 받고 있던 두 조카 녀석들이 삼명전자 LA지부장 쪽 사람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때 나를 힐끗 쳐다보는 큰 조카 녀석의 불안한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내 큰 형이 이전 삶에서 이 몸, 백준열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잘 가라.’

록펠러 가문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지만 내가 저 아이들을 다시 볼 일은 없었다. 그래서 삼명전자 LA지부장 쪽 사람들과 같이 사라지는 두 조카들에게 나는 속으로 먼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가 LA에서 묵을 호텔을 잡았다.

어제 묵은 큰 형수 집에서 지내도 되지만 이제 아이들도 없는 그곳에 내가 미쳤다고 가겠나? 그냥 호텔에서 지내는 게 더 속편했다. 그래서 LA에 오면 내가 주로 애용했던 특급 호텔 중 한 곳인 힐튼에 방을 예약했다. 물론 로얄 스위트 룸으로다가.

곧장 호텔로 향한 나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려는 김종훈과 문대식을 문 앞에서 미리 내쫓은 뒤에 말이다.

호텔로 오는 동안 나는 차 안에서 김종훈과 문대식에게 내 경호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뭐 그렇다고 그 둘에게 직접적으로 록펠러 가문에서 나를 노리니까 그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진 않았다.

뭐 그 때문인지 그 둘은 나와 경호 문제로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걱정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그러라고 그들에게 그 비싼 월급을 매달 꼬박꼬박 지급하고 있는 거고 말이다.

* * *

홀로 호텔 방으로 들어간 나는 바로 씻고 룸서비스로 시킨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그 후 와인을 홀짝거리며 마시던 나에게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록펠러 가문의 일원인 리암의 여비서 쥬리로부터 말이다. 나는 그녀를 내 여자로 점찍었고 그녀가 내 품에 오기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이제야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네. 쥬리.”

나는 반갑게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쥬리 역시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지금 뉴욕에 있나요?

“아뇨. 전 지금 LA에 있습니다.”

-어머. 나도 지금 LA인데....LA어디에요?“

“힐튼 호텔이요.”

-비버리힐즈 힐튼 호텔 말이죠?

“네.”

-저도 비버리힐즈에요. 언니가 비버리힐즈 주택가에 살아서요. 힐튼 호텔에서 가까운데. 지금 내 눈에도 보이거든요. 걸어서 한 20분이면 갈 거 같긴 한데....

“그럼 오세요. 저 지금 와인 한 잔 하는 중인데 같이 마시게.”

나는 당연히 이렇게 말하면 쥬리가 쪼르르 내게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미안해요. 준열. 지금은 못 나가요. 조카들 좀 봐야 해서. 실은 오늘이 언니랑 형부 결혼기념일이거든요. 해서 제가 대신 아이들을 맡은 터라....

쥬리가 못 온다? 그럼 내가 그리로 가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쥬리의 언니와 형부가 오늘 밤 자기들 아이들이 있는 집에 안 돌아 올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들이 오면 그때 쥬리를 데리고 호텔로 오면 됐다. 그 사이 나는 쥬리와 함께 있을 것이고, 그녀를 내 여자로 확실히 만들면 될 일이었다.

“내가 그리로 갈게요.”

-네?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많이 놀란 거 같은 쥬리. 그런 그녀에게 나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주소 불러요. 바로 갈 테니까.”

쥬리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언니 집 주소를 내게 불렀고 그걸 머릿속에 잘 기억한 나는 곧장 옷을 챙겨 입었다. 당연히 편안한 옷으로. 또 걸어서 거기까지 갈 생각이었기에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그렇게 힐튼 호텔을 나선 내 옆에 문대식과 경호팀원 4명이 같이 했다. 쥬리를 만나러 가는 데 당연히 경호팀원들을 대동해야 했기에 옷 갈아 입을 때 문대식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때 걸어서 움직일 테니 편한 차림으로 나오라고 했더니 알아서들 트레이닝 복장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왔다.

그런 그들과 한무리를 이룬 나는 가볍게 뛰어서 쥬리가 알려준 주소지로 향했다. 그렇게 뛰기 시작한지 10여분 쯤 지났을까? 이미 몸은 다 풀렸고 온 몸에 땀에 흥건해졌을 때였다.

“헉헉헉....”

나를 비롯한 경호팀원들의 가쁜 숨소리만 주위에 울리는 가운데, 뛰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던 내 눈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쥬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뛰는 방향이 바뀌었다.

“쥬리!”

나는 유모차를 세운 채 한쪽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쥬리에게 다가가며 그녀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듯 그녀가 내 쪽을 돌아봤고....

“아아. 준열.”

그녀가 방긋 웃으며 나를 반겼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그녀에게서 그녀 앞에 세워져 있는 유모차로 향했다. 그러자 쥬리가 알아서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조카인데 산책 나가자고 졸라서 이렇게 데리고 나왔건만....보시다시피 쿨쿨 잘 자네요.”

그 말과 함께 유모차 안에 잠들어 있는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아가 보였고 쥬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준열 전화를 받고 큰 조카 친구가 찾아와서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하는 바람에....언니에게 전화해 보니 보내도 된다 길래 큰 조카는 그 집에 보내고, 작은 조카는 지금 보시는 대로고요.”

그녀 말을 쭉 들어 주던 내가 시선을 그녀가 구경하고 있었던 쪽으로 돌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농구 좋아하나 봐요?”

“당연하죠. 제가 졸업한 버지니아는 농구 명문 대학이거든요. 이래봬도 정식 응원 단원이었거든요.”

“오오! 치어리더?”

그때 쥬리가 팍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내 말투, 혹은 뉘앙스에서 불쾌감을 느낀 거 같았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왜요? 내 말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그러자 쥬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준열은 그 사실을 아예 모르는 모양이네요.”

“그 사실이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이번엔 내가 쥬리를 빤히 쳐다봤더니 그녀가 그에 관한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러니까 미국 유명 대학의 치어리더 팀이 성매매 사건에 휘말렸고, 실제 경찰의 조사까지 받았단 말이네요?”

“네. 정확히는 사우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코스탈캐롤라이나 대학교 치어리더 팀이 매춘을 했을 뿐 아니라, 미성년자에게 술을 사주고 과제물 대리 제출 시키는 등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았다는 내용의 제보가 있었고, 대학 측은 해당 사건을 접수하고 경찰과 함께 치어리더 팀에 대한 밤샘 조사를 펼쳤는데, 경찰이 일주일간의 조사를 벌였음에도 현재까지 그 사건과 관련된 어떠한 증거도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거든요.”

“으음. 그로 인해 대학 치어리더 팀의 이미지 실추가 컸겠군요.”

“당연하죠. 대학 치어리더 팀 해체 얘기까지 나왔으니까요.”

“쥬리는 그런 대학 치어리더 팀에 대해 제법 세세히 아는 거 같네요?”

“잘 알죠. 제 동생이 바로 그 코스탈캐롤라이나 대학교 치어리더 팀장이거든요.”

“아아....”

그녀의 뜻밖의 대답에 내가 정색을 좀 한 모양이었다. 그런 날 보고 쥬리가 여전히 웃은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연락해 봤는데, 다음 달에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대학 치어리딩 챔피언십'에 참여하기 위해 맹연습 중이라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요.”

“으음....언니에 이어 동생까지....쥬리는 자매가 많은 가 봐?”

나는 당연히 좀 전 쥬리가 말한 그 코스탈캐롤라이나 대학교 치어리더 팀장이라는 그녀의 동생이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매들이라고 말 한 거고. 하지만 아니었다.

“많기는 요. 위로 언니 하나 밑으로 동생 하나가 단데. 그리고 내 동생은 여동생이 아니라 남동생이거든요.”

* * *

졸지에 쥬리의 호구조사를 하게 된 나는 쥬리의 대답에 머쓱해 하면서 좀전까지 그녀가 집중해서 보고 있었던 농구장 쪽을 쳐다봤다. 거기서는 길거리 농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쥬리가 왜 시선을 그쪽에 쭉 두고 있었는지는 바로 알거 같았다. 그만큼 내가 보는 길거리 농구 수준이 높았던 것.

“잘하네요.”

“그렇죠? 저도 구경하다가 들은 얘긴데....이 근처 길거리 농구팀 중에서 제일 잘하는 팀 둘이 붙었데요. 그러니까 지금 LA의 비버리힐즈에서 최고의 길거리 농구팀이 누군지 가려지는 중이란 거죠.”

그렇게 말하는 쥬리는 아주 신난 얼굴이었다. 하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는 퍼포먼스에 충분히 신이 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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