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됐다.’
세이코의 대답을 듣고 나는 쾌재를 외쳤다. 하지만 이어진 내 목소리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고마워요. 세이코.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세이코는 남편과 통화하고 나서 바로 내게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말을 하고서 나와 통화를 끝냈다.
나는 그렇게 세이코와 통화를 끝낸 즉시 시스템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그러자 견신 시스템이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내 머릿속에 정보로 전해왔다.
“으음....”
나는 현재 일본에 있는 나나미와 철수, 세르게이가 처한 상황을 알고서 침음 성부터 흘렸다. 시스템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 그들을 과연 세이코가 살릴 수 있을지 나는 그게 걱정 되었다.
해서 나는 나나미와 철수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봤다. 하지만 둘 다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아....왜 안 받는 거야?”
그로 인해 내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있을 때....세이코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세이코.”
나는 최대한 내 지금 심정을 감추고, 차분히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세이코가 바로 말했다.
-준열상이 시키는 대로 남편에게 말하기는 했어요. 근데 왜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한 거죠?
세이코는 황당함 반, 궁금한 반의 심정으로 내게 묻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조금 각색 된, 그러니까 내 여자인 나나미는 친구 동생으로, 해결사 철수와 세르게이는 나나미의 경호원으로 바꿔서 그들이 처한 지금 상황을 에둘러 얘기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남편 혼다가 개 쓰레기 악당이 되고 말았다.
-....하아....혼다 그 인간....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네요....그보다 뗀지 탐정 사무소에다가 일본에서 정보기관까지 움직였다면....그건 혼다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요.
세이코의 우려 섞인 그 말에 내가 바로 물었다.
“그 말은 당신 남편 뒤에 누가 더 있다는 얘기입니까?”
-네. 내 생각에는....아무래도 제 부친이 개입 된 거 같아요.
“당신 부친?”
-네. 사실....제 아버지가 바로 미츠비시 회장인 이와사키 구로다에요.
“네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츠비시 그룹의 계열사 대표라고 했을 때 한 번 쯤은 의심해 봤어야 했다. 30대 초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세이코. 그 나이에 젊은 여자가 일본 대기업의 계열사 대표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진즉 오너가의 핏줄임을 의심해 봤어야 했다. 아무튼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지금에 그걸 후회해 봐야 뭐하겠나? 나는 바로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구로다 회장이 당신 남편의 배후로 그를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 그럴 공산이 커요.
그녀의 그 대답에 나는 살기가 확 치밀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 구로다 회장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 현재 구로다 회장은 일본 경제사절로 뉴욕의 맨해턴 호텔에 묵고 있었다.
지금 비행기를 타면 내일 오전쯤에 구로다 회장을 볼 수 있었다. 내 능력이라면 그 늙은이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미친....’
나는 내 자신에게 놀랐다. 아무리 화가 나기로서는 사람을 죽이겠다며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을 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걸 이렇게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내 자신에 나는 그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확실한 건 내가 많이 변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이 몸의 주인인 백준열의 영향이 큰 거 같았다.
-....준열상?
내가 한 동안 말이 없자 그게 걱정이 된 듯 세이코가 나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당신 지인들에게 생긴....그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그들이 안전하게 한국으로 갈 수 있게 제가 최선을 다할 거고요.
세이코는 자신이 책임지고 나나미와 철수, 세르게이를 신병을 확보해서 한국으로 무사히 보내 주겠다며 거듭 내게 말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그녀가 그들의 신병을 확보하면 그때 내게 알려달라고 말하면서 그녀와 통화를 끝냈다. 그러니까 말만 하지 말고 빨리 그들 신병부터 확보하란 얘기였다. 영리한 그녀가 그런 내 말 뜻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으니 나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 * *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 뗀지 탐정사무소의 수련관에서 나나미를 구해 낸 뒤, 철수와 세르게이는 그녀를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가려 했다. 원래 그들이 백준열에게서 받은 지시는 나나미에게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그걸 막아 주고 지켜주는 거였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들어보니 이건 안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무조건 일본을 떠야 해.”
“그게 맞는 거 같군.”
평소 의견이 잘 맞지 않는 철수와 세르게이가 같은 생각을 할 정도니, 나나미가 현재 처한 상황은 그 정도로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으로 떠나기로 한 바로 그날....
그들은 아쿠자로부터 시작해서 뗀지 탐정사무소의 직원들, 그리고 일본 방위청 소속의 비밀 요원들까지 상대해야 만했다. 그 결과....
“크윽....”
“세르게이.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좆 된 거 같은데....”
세르게이는 왼쪽 어깨와 오른 쪽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가 나는 곳에는 구멍이 선명히 나 있었는데 누가 봐도 총에 맞은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 걱정스런 얼굴의 철수가 있었고.
세르게이는 자기가 알아서 그 상처 부위에 적절하게 지혈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시선은 몸을 숨긴 컨테이너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하네다 공항으로 가다가 지금은 졸지에 도쿄도 도쿄항 하루미 부두까지 쫓겨 오게 된 철수와 세르게이. 그리고 그들 뒤에 피폐한 얼굴로 숨어 있는 한 여자.
그녀는 나나미로 아침부터 시작해서 12시간이 훌쩍 넘는 동안 내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도망쳐 온 그녀는 지금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나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철수도 알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티앙!
왜냐하면 날아온 총알이 좀 전 세르게이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서 컨테이너에 박혔으니까.
지금 그들은 포위당한 상태였고 저격수의 총격이 수시로 날아와서 그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딱 봐도 일본 자위대의 특공대로 보이는 자들이, 방탄 방패를 앞장세우고 이쪽으로 접근을 해 왔다. 하지만 세르게이가 누군가?
탕! 탕! 탕!
“크아아악!”
방탄 방패 밑에 살짝 드러난 특공대원의 다리를 권총으로 쏴서 맞췄다. 그러자 기겁한 특공대가 다친 동료들을 데리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특공대라면 그에 대한 대비를 갖추고 다시 밀려 올 터. 자신들이 저들에게 잡히는 건 이제 시간 문제였다.
나나미는 또 모를까? 오늘 만해도 철수와 세르게이가 죽인 사람이 수십 명을 넘었다.
그들 중에는 야쿠자도 있었지만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과 일본 정부 측 비밀 요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쪽에서도 처음 생포하려던 기조를 바꿔서 이쪽을 죽이려 들고 있었다.
그 예로 바로 저격수들이 주변에 배치 된 거고. 그 저격수에 세르게이가 어깨와 옆구리에 총상을 입은 것이다.
세르게이가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저쪽에서 섬광탄과 최루탄, 거기다 수류탄까지 써가며 이쪽을 공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세르게이는 귀신같은 총격으로 저들의 공격을 막아냈는데, 그때 어쩔 수 없이 은폐물에서 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고, 그때 저격수에게 총을 맞고 만 것이다.
철수의 손에도 권총이 쥐어져 있었지만 그의 사격 실력으로는 저들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저 세르게이를 지원 사격해 주는 수준일 뿐. 그러다보니 철수는 다친 세르게이를 보고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더불어 자괴감이 강하게 든 철수가 세르게이를 보고 말했다.
“내가....너의 반만이라도 싸울 줄 알았다면....”
그 말에 권총의 탄창을 갈며 세르게이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어려워. 적이 너무 많아. 그리고....”
세르게이의 시선이 한쪽에 집중 됐다. 그걸 보고 철수가 그쪽을 살피자....
“젠장....”
놈들 사이로 바주카(Bazooka)포, 대전차 공격에 사용되는 로켓 무기인 무반동포가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세르게이와 철수는 직감했다. 곧 죽을 것을 말이다.
* * *
투척해 오는 건 어떻게 세르게이가 귀신 같은 권총 사격 실력으로 막았다. 하지만 바주카포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세르게이가 총으로 쏴서 맞춰 터트릴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전에 세르게이가 돌격해서 저들 진영을 쓸어버린다면 또 모를까. 그러기에 지금 당장 세르게이가 갖춘 화력은 달랑 권총이 다였다. 거기다 세르게이는 부상을 당한 상태....
“....일본에서 죽을 줄 몰랐군.”
처연하게 말하는 세르게이. 그런 그를 보고 철수가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너와 같이 죽을 수 있어 영광이다. 내 친구 세르게이.”
그때 저쪽에서 바주카포를 이쪽을 향해 겨눴다. 이제 저 바주카포의 포탄이 날아올 것이고 세르게이와 철수, 그리고 나나미는 그 포화에 휩쓸려 죽게 될 터.
“응?”
그런데 곧 쏘아질 거로 봤던 바주카포가 갑자기 치워졌다. 그리고 저쪽에서 다툼이 일었다. 이쪽에서 봐도 그게 티가 날 정도로 말이다.
“뭐지?”
의아해진 철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저쪽을 살폈다. 하지만 그가 눈으로 본다고 해서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아....하아....하아....”
단지 그들 뒤에 웅크리고 있던 나나미. 그녀가 죽다가 살아나선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소리에 그제야 철수도 그녀의 존재를 인식한 듯 그녀에게 말했다.
“죽을 고비는 넘긴 거 같은데....당신 말대로 운이 좋군.”
운이 좋다는 철수의 그 말에 여전히 창백한 얼굴의 나나미가 싱긋 웃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거봐요. 오늘 운수대통이라니까.”
아침에 그녀가 본 오늘 운세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게 나왔었다. 그래서 나나미는 한국에 가서 복권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오늘 하루 종일 죽을 고비만 넘기고 지금까지 온 그녀는 깜빡 그 사실도 잊었다. 그걸 철수가 일깨웠고 그제야 그 생각이 난 나나미는 지금까지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진짜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운이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철수가 불안한 눈으로 저쪽을 쳐다볼 때였다. 갑자기 저쪽에서 하얀 기를 든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철수와 세르게이의 총구가 그쪽을 향할 때 그 하얀 기를 든 사람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얘기 좀 합시다. 비무장으로 그쪽으로 가겠소.”
당장이라도 죽일 듯 굴었던 저쪽에서 갑자기 얘기를 하고 싶다니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서라도 철수와 세르게이는 저자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오시오.”
그 자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오는 걸 허락했다. 물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면서. 특히 저격수들은 무조건 조심해야만 했다.
* * *
혼다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아직도 얼떨떨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한 건 지금 저기 컨테이너 박스들 사이에 숨어 있는 저년 놈들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저들이 살아나서 여길 나가게 되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그의 장인이 그에게 이렇게 힘을 몰아 준 거고.
“특수부대도 실패했습니다. 아무래도 말씀하신 그걸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야쿠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까지 동원했는데 실패할 줄 몰랐다. 그때 장인인 미츠비시 그룹 구로다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금 혼다가 저지른 일에 불 같이 화를 냈다. 그러며 그 뒷수습을 위해서 팔을 걷어 붙였다. 그러다가 방위청장을 움직였고 비밀 요원들이 나섰다. 근데도 그들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고, 그 소식에 발끈한 장인이 기어코 자위대의 특수부대까지 동원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 특수부대에서 챙겨 온 바주카포까지 쓸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건 혼다의 지시뿐이었다. 그가 특수부대장에게 바주카포로 저들을 없애버리라고 말만 하면 끝인 상황.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장인과 같이 미국 출장을 간 자신의 아내 세이코였다.
“여보세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혼다는 지시를 내리기 전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뭐?”
아내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지만 저들을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들을 죽이면 혼다 자신도 죽는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장인이 저들과 같이 자기도 죽이려 하고 있단 얘기였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아내의 말이 혼다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래서....
“바주카포....쏘지 마.”
“네?”
“놈들과 얘기를 하겠다.”
이제 와서? 하려거든 피튀기는 총격전이 벌어지기 전에 하던지 말이다.
현장 책임자인 혼다의 그 말은, 도쿄항 하루미 부두의 컨테이너 하역 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특수부대원들이 순식간에 맨붕 상태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