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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 그렇다고 경찰이 완전 그에게서 손을 놓은 건 또 아니었다. 단지 경찰에도 그 조직의 영향력이 미치다보니, 그를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없었던 것.
경찰 내 누군가가 앤서니의 정보를 계속 그 조직에 제공하고 있다 보니, 앤서니를 전담하고 있는 형사들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FBI에 협조를 요청했고 엊그제 연락을 받았다. 그들의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승인이 떨어진 건 또 아니었다.
“하아....그러니까 며칠이 필요하단거로군요?”
-네. 가급적 빨리 승인이 나도록 저희도 노력할 테니....그때까지 잘 숨어 계세요.
그의 사건을 전담하고 있던 형사 제임스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게 경찰이 할 소린가?
보호해줘도 모자랄 판에 잘 숨어 있으라니....어떻게 경찰이 이렇게 무책임한 소리를....
그래도 FBI까지 끌어 들여 준 게 제임스 형사 덕인지라 앤서니는 차마 경찰 욕은 할 수 없었다.
“그러죠. 승인 나면 연락 주세요.”
-후후....그때는 제가 아니라 FBI요원들이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담당 형사 제임스와 통화를 끝낸 앤서니.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곤 블라인드 쳐져 있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이런 식으로 그는 틈만 나면 주위에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다 그런 자가 보이면 그 즉시 지금 있는 곳을 떠났다.
“응? 저 사람은?”
아까 아침에 잠깐 마트에 갔을 때 봤던 사람이었다. 뭐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이 근처를 지나갈 수 있는 노릇. 하지만 그의 시선이 힐끗 지금 앤서니가 있는 2층을 올려다 봤다. 순간 앤서니는 직감했다.
“들켰군.”
앤서니는 바로 짐을 챙겨서 그 방을 나섰다. 그렇게 그가 방밖을 나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3분이 지났을 때 그는 그 건물을 빠져 나와서 그 다음 블록의 도로에 대기 중이던 택시에 탑승했다.
부우우웅!
그 택시가 떠나고 몇 분 뒤.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 우르르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몇 분 뒤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그 남자들이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앤서니가 택시를 타고 떠났던 그곳 블록의 도로 앞까지.
그때 그들이 찾고 있던 앤서니는 택시를 타고 맨해튼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지금 가려는 곳은 바로 맨해튼 호텔이었다.
앤서니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특급호텔인 그곳까지 그 범죄조직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로얄 스위트룸의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맨해튼 호텔이었던 것.
그래서 앤서니는 돈이 좀 들어도 맨해튼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했고, 거기서 며칠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를 태운 택시가 맨해튼 호텔에 도착하고 택시에서 내린 앤서니는 곧장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프런트에서 키를 받아 예약해 둔 로얄 스위트룸이 있는 23층으로 올라간 앤서니.
“휴우우....”
그 로얄 스위트룸 안에 들어간 뒤에 앤서니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 여기서 꼼짝 않고 FBI요원들이 오기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이곳 호텔의 최상의 특급 서비스를 즐기면서 말이다.
* * *
괜히 VVIP고객들이 머무는 로얄 스위트룸이 아니었다. 앤서니도 업무 차 출장 중에 여러 호텔을 이용해 봤지만 로얄 스위트룸은 처음이었다. 널따란 월풀 욕조에서 뉴욕의 센트럴 파크의 전경이 훤히 다 내려다보면서, 보글보글 거품 목욕을 즐기며 와인을 마시고 있는 지금 앤서니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또 여유가 넘쳤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근데 그 좋았던 기분을 그의 핸드폰 진동음이 망쳐 놓았다. 그는 욕실에 들어오기 전 핸드폰을 꺼둘걸 그랬다며 잠깐 후회를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말이다. 그리고 울린 이상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인지 궁금해서라도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엠마?”
바로 자신의 와이프였다. 다른 전화는 몰라도 엠마 전화는 받아야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그의 딸, 케이트를 지금 그녀가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 엠마.”
앤서니가 전화를 받자 엠마가 바로 자신이 전화를 건 용건을 밝혔다. 그만큼 그녀도 지금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앤서니. 미안한데 케이트 좀 데리고 있어 줄래?
“뭐?”
-오늘 갑자기 출장이 잡혀서 말이야.
당연히 앤서니는 이 호텔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선 안 됐다. 하지만....
“알았어. 그럼 내가 시간 맞춰서 유치원에서 케이트를 바로 픽업할게.”
엠마의 사정이 너무 안 좋았다. LA에서 론칭한 그녀의 레트로 팬웨어의 유통에 문제가 생긴 것. 즉 디자이너인 엠마가 직접 LA로 가서 그 막힌 유통망을 뚫을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때도 엠마는 직접 나서고 나서야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앤서니는 그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고마워. 앤서니. 이틀이면 될 거야.
“케이트 걱정은 하지 말고. 당신 일이나 잘 해결 해.”
앤서니가 너무 바빠서 결국 가정이 파탄 나서 이혼한 두 사람. 하지만 둘은 여전히 베스트 프렌드로 서로를 응원했고, 케이트의 부모로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그렇게 엠마와 통화 후 앤서니는 시간을 확인했고 이내 욕조에서 나왔다.
자신의 딸인 케이트의 유치원 하교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 할 거 같아서 말이다.
앤서니는 최대한 변장을 한다고 하고서 호텔에서 제공 받은 렌트카로 딸의 유치원을 찾았다.
“케이트!”
“대디?”
그래도 아빠랍시고 변장한 앤서니를 바로 알아보는 케이트. 그런 케이트를 데리고 앤서니는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꼼꼼히 주위를 살피며 자신의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찾았어요. 네. 맨해튼 호텔 2302호....”
앤서니와 그의 딸인 케이트가 들어간 그 로얄 스위트룸의 복도에서, 한 중년 여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그 방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 * *
미국인들은 유니섹스가 보편화 된 사회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만의 직업으로 여겨지던 곳에 도전하는 여자들이 많이 늘었고, 또 계속 늘어나가는 추세였다.
소방관, 버스기사, 수리공 등등 남자들의 성역으로 꼽히던 곳에 요즘 여자가 간간히 보인다. 그렇게 봤을 때 킬러라는 극한, 아니 극악한 직업에도 소수지만 여자 킬러가 있었다.
그 중 베테랑인 중년의 수잔은 일급 킬러로 찾는 고객이 꽤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며칠 전 암살 의뢰가 들어왔다. 근데 의뢰한 곳이....
“토리오파라면 뉴욕 갱이잖아?”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과도 관계가 있다고 알려진 그곳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쏴 죽이는 곳으로 악명이 자자한 범죄 조직이었다.
그런 곳에서 왜 자신에게 암살 의뢰를 맡기는 건지 수잔을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냥 수틀리면 조직원들 보내서 쏴 죽여 버리면 그만 일 테니까. 그곳이 공공장소든, 주택가든, 학교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해서 수잔은 그 의뢰를 맡기 전에 미리 조사를 해 봤다. 그랬더니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자가 꽤나 잘 나가는 투자회사 직원인데, 경찰에 신고를 하고 지금 요리조리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이 넓은 뉴욕 바닥에서 머리 좋은 백인이 숨어 지내고자 한다면 아무리 뉴욕 최대 범죄 조직이라도 찾기 쉽지 않았다. 거기에 곧 FBI에서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토리오파에서도 조급해진 것이다. 킬러를 고용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받아야지. 이 정도 처리하는 거야 나한테는 껌 씹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수잔은 토리오파의 의뢰를 받아드렸다. 하지만 작정하고 숨은 미꾸라지 한 마리를 제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죽여도 죽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의뢰를 받고 이틀을 허탕 친 수잔. 그렇지만 그녀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살인마도 자기 핏줄은 챙기는 법이거든.”
수잔은 그녀의 타깃인 앤서니가 딸인 케이트를 보러 유치원에 올 거라 확신을 했다. 그래서 유치원 근처에 죽치고 있었는데....
“저기 왔다.”
드디어 그녀가 기다리던 앤서니가 모자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딸의 유치원에 타나 난 것이다. 그녀는 앤서니가 타고 온 차를 은밀히 뒤쫓았고 맨해튼 호텔에 도착해서도 그에게 들키지 않고 그가 묵고 있는 방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앤서니는 설마 사람 좋게 생긴 중년 아줌마가 자신의 뒤를 쫓을 줄 몰랐기에 허무하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말았다.
수잔은 앤서니의 위치를 토리오파에 알리는 한편 그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평소의 그녀는 혼자 일 처리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거추장스런 작자를 한 명 달고 움직여야 했다.
그래 준다면 토리오파에서 의뢰 금을 2배로 주겠다고 하니, 수잔으로서도 이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자를 달고 아주 늦은 밤에....수잔은 앤서니가 있는 그 호텔 방으로 갔다.
달칵!
그리고 힘들게 구한 이곳 호텔 컨시어저의 만능키로 간단히 그 로얄 스위트룸의 문을 연 후,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헉! 당신들 뭐야?”
그곳 거실용 공간의 소파에 앉아 있던 앤서니는 그들의 등장에 기겁을 했고. 수잔은 자신이 할 일을 마저 했다. 들고 있던 핸드백 속에서 꺼낸 소음기 달린 권총으로 앤서니의 가슴을 쏜 것.
피슝!
“컥!”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 앤서니. 하지만 그 순간 살아보겠다고 몸을 튼 녀석은 심장이 아닌 폐에 구멍이 뚫린 채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쯧쯧....”
그걸보고 가볍게 혀를 찬 수잔. 그냥 가만있었으면 한 방에 깔끔하게 심장을 꿰뚫어 죽여 줄수 있었는데 말이다. 수잔은 확인 사살을 위해 두 번째 총알을 소비했다.
피슝!
이마 한가운데 정확히 총알이 박히며 고개가 뒤로 젖혀진 앤서니. 그는 더 확인하고 자실 거 없이 죽었다.
그렇게 자신의 타깃을 사살한 수잔이 따라 온 토리오파의 조직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됐지? 그럼 이만 가도록....”
그때였다. 안쪽의 한 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수잔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왜냐하면 앤서니가 유치원에서 픽업했던 그 여자 아이를 아직도 여기에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새끼....’
수잔은 당연히 앤서니가 그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 주었거나, 아니면 그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갔을 줄 알았다.
대개의 경우 엄마라면 이혼한 남편의 호텔 방에 자신의 아이를 밤 늦도록 남겨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 방에 누가 있는 거 같은데?”
그때였다. 수잔이 달고 온 토리오파의 조직원이 턱짓으로 인기척이 난 방을 정확히 가리켰다.
“나도 들었어.”
이렇게 되면 수잔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혹시 몰라 소음기 달린 권총의 총구를 그 방을 향한 채 움직였고....
“하아....”
잠시 후 그 방 문을 열었다. 한데 그 안에 자기를 닮은 귀여운 토끼 인형을 끌어안은 채 말똥말똥한 눈으로 수잔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젠장....”
그 아이를 보고 수잔이 절망할 때 그녀 뒤에 토리오파의 조직원이 나타나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런....저 아이가 우릴 다 봤네.”
그게 무슨 소리이겠나? 증인을 없애기 위해 저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어떻게 저런 어린 아이를 죽인단 말인가? 그때 토리오파의 조직원이 비릿하게 웃는 얼굴로 수잔에게 말했다.
“못하겠으면 비켜. 내가 할 테니까.”
수잔은 그 자의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그 방을 나왔고, 대신 그자가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딩동! 딩동! 딩동!
갑자기 호텔 방 밖에서 누군가 이 방 초인종을 눌렀다. 순간 수잔과 토리오파의 조직원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둘 다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아이의 방을 나와서 인터폰 비디오 화면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 * *
토리오파에서 킬러 수잔에게 붙인 자는 안토니오란 자로 뉴욕 마피아 조직의 킬러였다.
그러니까 조직 내에서 키우는 전문 킬러란 얘긴데. 안토니오가 조직을 대신해서 수잔의 감시자 노릇을 하게 된 것은 깔끔한 뒤처리를 위함이었다.
즉 조직에서 고용한 킬러 수잔이 앤서니를 제거하면, 그 뒷수습으로 안토니오가 수잔을 제거하는 걸로 이번 일을 가급적 조용히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말이다.
이는 마피아 총보스의 밀명이었고, 안토니오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명령을 수행해야만 했다.
처음 안토니오는 왜 조직에서 굳이 여자 킬러를 고용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수잔이 앤서니를 찾아내는 걸 보고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됐다. 이제 남은 건 수잔이 앤서니를 죽이고 자신이 그런 수잔을 제거하면 끝날 일이었다.
한데 변수가 생겼다. 뭐 그리 큰 건 아니고 앤서니를 제거하고 났더니 그곳에 그 딸이 같이 있었던 것.
당연히 그 딸은 죽어야 했다. 수잔과 그를 봤으니까. 근데 수잔이 망설였고 그걸 보고 안토니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잘 됐네.’
수잔 대신 아이를 죽이고 죽인 그 아이의 방에서 권총을 결합해서 방을 나가자마자, 그 권총으로 수잔까지 제거해 버리면 될 테니 말이다.
여자지만 수잔도 킬러다. 그것도 아주 노련한 일급 킬러. 때문에 안토니오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면 그걸 바로 알아차릴 터.
해서 지금 안토니오는 권총을 분해한 다음 자신의 호주머니와 양말, 앞가슴에 테이프로 총신을 붙인 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한데 다 모아서 결합하려면 적어도 1분 이상의 시간은 필요했다. 안토니오는 바로 그 시간을, 바로 아이가 있는 그 방안에서 아이를 죽이는 걸로 벌 생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