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757화 (75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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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잔뜩 굳은 마이어 록펠러의 입이 열렸다.

“원하는 게 뭔가?”

그 말에 나는 그가 왜 록펠러 가문의 가주인지 알 거 같았다. 지금 그의 두 눈은 내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으니까.

“별거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살짝 지원을 좀 해주시면 됩니다.”

그런 그에게 굳이 돌려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내가 원하는 바를 바로 말했다.

“지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날 쏘아보는 마이어 록펠러.

“아시겠지만 타지에 온 상인에 대한 현지의 텃세는 어디든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

내 그 말에 잠시 눈알을 굴리던 마이어 록펠러가 내가 원하는 지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런 지원이라면 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록펠러 가문에 문제가 될 일은 만들지 않을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그래도 혹여 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마이어 록펠러의 우려하는 목소리를 가차 없이 중간에 끊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 문제가 누구 때문에 벌어졌는지 명명백백하게 가려야겠지요. 그리고 그게 현지에 누군가의 수작이란 게 밝혀지면....”

나는 말을 끝내지 않고 얼버무리면서 마이어 록펠러를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록펠러 가문에서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 경고를 한 것이다. 괜히 너나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이 완벽할 순 없다. 그렇지만 그 실수야 양쪽에서 잘 조율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록펠러 가문에서 작정하고 나를 엿 먹이려 수작질을 부린 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럴 경우 나는 앞서 내가 언급한 걸 미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끄응....”

나의 그런 반응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마이어 록펠러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도저히 참기 힘든지 마이어 록펠러가 뭐라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마이어 록펠어의 비서실장인 아담이 나섰다.

“회장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

그 말에 마이어 록펠러가 힐끗 아담을 쳐다봤고 아담이 눈빛으로 뭔가를 말했다. 그걸 또 신기하게도 알아먹은 마이어 록펠러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 약만 먹고 오도록 하지.”

그렇게 내게 통보하듯 말하고 마이어 록펠러가 자신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아담이 쪼르르 뒤따랐고.

그렇게 집무실 밖으로 나간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나누는 말이 내게 안 들릴 거라 여겼다. 하긴 사람의 귀로 그게 들리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겠지만. 한데 나는 그게 들린다. 내 개 특성이 그런 걸 어쩌겠나?

그들은 같이 복도를 걸어서 집무실에서 가까운 빈 방으로 들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데 이거 참 난감하군.”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자네가 끊어줘서 망정이지 아니면 자칫 녀석에서 실언을 할 뻔했어.”

“그러실 거 같아서 나서긴 했지만....대화 중 끼어든 점 송구합니다.”

“아니야. 잘했어. 그 보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해 빠르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미 대화의 주도권은 내게 넘어와 있는 상태. 그들이 머리를 굴린다고 그걸 뒤집을 방법은 없었다.

해서 그들은 일단 내 얘기를 들어주는 쪽으로 하되, 언제든 빈틈을 만들거나 나를 통해 내 약점을 찾는 쪽으로 얘기를 끝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집무실 안으로 돌아왔을 때....

* * *

뿅뿅뿅뿅~

나는 게임을 하는 척 하고 있었다. 사실은 밖에서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전부 들으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내가 게임을 한 건 맞았다. 혹시 이곳에 CCTV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나는 누가 봐도 그들이 나가자 바로 게임을 시작한 걸로 보일 터였다.

“아아. 오셨습니까? 하도 안 오셔서 잠깐....”

나는 마이어 록펠러 앞에서 허겁지겁 하고 있던 게임을 접었다. 그걸 기가 찬 얼굴로 쳐다보던 마이어 록펠러. 아무래도 자신이 이딴 놈 때문에 지금 곤욕스러운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는 티내지 않고 그는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고, 나와 마저 하던 얘기를 나눴다.

내 요구를 다 들어 주기로 하고 돌아 온 마이어 록펠러를 상대로, 나는마저 하던 대화를 빠르게 이어나갔다. 그러자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우리는 할 말을 다 나눴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제가 드린 부탁은 다 들어 주시는 걸로 알고 저는 이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봐도 날 싫어하는 티를 팍팍 풍겨 대는 고집스런 늙은이와 나도 더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노구라 배웅은 힘들겠군.”

“그럼요. 그렇게까지 하시면 저도 거북하니까요.”

나는 끝까지 지지 않고 마이어 록펠러의 말에 대꾸를 하면서,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그의 속을 뒤집어 놓고서 집무실을 나섰다.

“대표님!”

그러자 집무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문대식이 나를 반겼다.

“가지.”

나는 딱히 그런 문대식과 얘기하지 않고 다른 경호팀원들이 있는 접객 실 쪽으로 움직였다. 집무실 밖은 아주 대 놓고 CCTV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접객 실에서 나머지 경호팀원들과 합류한 나는 곧장 록펠러 본가를 나섰다. 당연히 내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리암은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록펠러 본가의 정문을 나서자 리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그 뒤로 내가 맨해튼 호텔로 가는 동안 리암에게서 한 번 더 전화가 걸려왔지만 역시나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리암도 더는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걸로 그와의 관계도 끝났다.

맨해튼 호텔에 도착하자 사전에 연락은 받은 호텔 측 관계자들이 나와서 나를 맞았다.

“여기 있는 부지배인 부르너가 앞으로 고객님의 버틀러 역할을 맡아 줄 겁니다.”

“부지배인 부르너입니다.”

“반가워요. 백준열입니다.”

맨해튼 호텔 측에서 내 전담 집사로 부지배인을 붙였다는 건, 그만큼 내게 신경을 써 주고 있단 얘기였다. 그런 대우야 나로서는 환영할 일. 나는 기꺼워하며 부지배인 부르너의 안내를 받으며 내가 쓸 이곳 호텔의 VVIP전용 로얄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 * *

오후 일정을 전부 다 소화하고 난 세이코. 그녀는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

오늘 그녀가 만났던 투자하기로 거의 약속 되어 있었던 미국의 증권사, 그곳의 임원들. 그들과 그들 회사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들이 얘기한 것과 실제는 그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났던 것이다.

그 점을 두고 서로의 의견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팽팽한 신경전을 펼친 탓인지 지금 세이코는 말할 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생각나자 욱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 세이코.

“아무래도 XXX증권사에 대한 실사가 필요하겠어. 이건 뭐 우리 투자를 당연시 여기는 게....”

차안에서는 당장 XXX증권사와 체결한 MO U(사전업무협약)를 파기해야 한다고 길길이 날 뛰던 세이코. 하지만 막상 숙소인 맨해튼 호텔에 도착하자, 그녀는 다시 차분하고 냉철한 CEO 세이코로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는?”

“숙소에 계십니다.”

그녀는 곧장 같은 맨해튼 호텔에 묵고 있는 부친 노무라 회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XXX증권사의 일을 그에게 소상히 얘기했다.

“그래서 네 견해는?”

묵묵히 세이코의 얘기를 경청하던 노무라 회장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가 대답했다.

“내부 실사까지는 어려워도 외부 실사는 해 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들의 부실이 우리 예상보다 더 크다면....MO U를 깨는 것도 감수하셔야 할지 모르겠어요.”

“으음....”

세이코의 MO U체결 파기 얘기에 노무라 회장이 얼굴을 굳혔다. 그럴 것이 그로 인해 야기 될 문제들이 벌써부터 노무라 회장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걸 파기하면....하워드 상원이 많이 실망할 거다.”

하워드 상원의원은 이번 사절단이 제일 신경 써야할 미국 측 통상본부장이었다. 그런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건 일본과 미국 간의 경제, 통상 협력을 깨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일본 정부가 가만있겠다. 일본 정부에 밉보이면 제아무리 미츠비시 그룹이라고 해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런 이해관계를 모를 리 없는 세이코. 그녀가 부친의 말에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아....그래도 외부 실사는 해야 해요. 그래야 거길 떠안아도 어떻게든 대응을 할 수 있고 또 부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라.”

마지못해 딸의 요구를 수용한 노무라 회장. 그가 골치 아프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세이코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만 나가보라고 말이다. 그걸 보고 세이코도 뭔가 더 부친에게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서 노무라 회장의 숙소를 나섰다.

* * *

오늘 묵을 맨해튼 호텔로 이동 중 나는 인터넷으로 록펠러 가문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그 과정에서 나는 미국의 4대 상속부자 가문으로 록펠러, 멜런, 듀폰, 핍스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인텔의 고든 무어, 월마트의 월튼 등이 ‘거부의 사교클럽’에 명함을 내밀었지만, 이들 4대 상속 가문은 미국에서 부를 기준으로 이미 성골이 된 지 오래였다.

“어디 보자. 인터넷 거품이 터지면서 닷컴 졸부들이 몰락하기 시작한지 어언 10년. 작금에 듀폰 가문(화학)의 자산 총액은 무려 145억 달러고, 멜런가(금융)의 재산은 100억달러, 록펠러가(석유)는 85억달러, 그리고 4대 상속 가문 가운데 끝자리를 차지하는 핍스가의 재산은 70억달러로군.”

아실 란가 모르겠지만 한국의 재벌가처럼 이들은 경영권을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지 않는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계열사와 협력업체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과 불법 수단을 동원하지 않아 정부나 시민단체와 힘을 겨루지 않는다. 정치자금 스캔들로 기업 전체가 시민사회와 시장의 비판 대상이 되는 상황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직원 구조조정에 나설 필요가 없으니 딱히 욕 먹을 일도 없다.

대신, 그들은 거액을 기부해 세인의 찬사를 받는다. 우아하고 반듯하며 품위 있는 매너를 자랑하며 초호화 요트를 타고 지구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왕가 후손이나 할리우드 스타처럼 파파라치에 시달리지도 않으며 말이다.

“듀폰가의 현 가주가 뉴욕에 있다고? 거기에 월마트의 월튼도 뉴욕에 머물고 있고?”

나는 오늘 뉴욕의 명사들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그 두 사람이 나와 같은 뉴욕 하늘 아래 있음을 알고는 눈빛을 빛냈다.

“그 늙은이....영 믿음이 안가니....”

록펠러 본가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개눈깔」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랬기에 그곳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의 의중은 충분히 간파가 됐다. 그런데 그 늙은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회색빛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즉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인간이라는 소리. 거기다가 지금 우리 뒤를 누군가 열심히 쫓고 있었다. 그걸 시킨 사람이야 뻔했고.

해서 나는 그 늙은이에게 경고를 보내기로 하고서는, 내 앞 쪽 조수석에 타고 있던 문대식에게 말했다.

“어퍼 이스트(Upper East) 쪽으로 가자.”

어퍼 이스트는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와 이스트 강 사이에 있는 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곳 정도는 문대식도 알았기에 즉시 네비게이션을 사용,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사이 나는 현 듀폰가의 가주인 존 리 듀폰이 어퍼 이스트의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서 그 정확한 주소를 문대식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퍼 이스트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대저택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아까 방문한 록펠러 본가에 비해 격조 면에서는 더 뛰어나 보이는 대저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곳에서 존 리 듀폰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삼명그룹의 후계자라고 해도 당일치기로 존 리 듀폰을 만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존 리 듀폰을 만나고자 한 그 사실과 그로 인해 내가 잠깐 그 대저택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게 중요했다.

“됐어. 다음은 월마트 뉴욕 본사로 가자.”

듀폰 가의 본가를 그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방문하고 나온 뒤, 나는 곧장 월마트 뉴욕 본사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나는 당연히 월마트 회장인 월튼을 만나려는 시도는 했다.

“죄송하지만 선약이 되어 있지 않다면 회장님은 만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월마트 월튼 회장과의 만남은 거절당했다. 월튼 회장 역시 당일치기로 내가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

아마 내가 자신을 만나러 온 사실도 월튼 회장은 모를 터였다. 밑에서 아예 알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가 삼명그룹을 언급했다면 또 모를까. 나는 그냥 한국에서 크게 사업하는 사람이라고만 했고, 그 말에 월마트 관계자는 나를 미친 놈 쳐다보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건 내가 월마트 본사 안에 들어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걸 내 뒤를 쫓고 있을 록펠러 가문 쪽 사람들이 그들의 가주인 마이어 록펠러에게 보고했을 테니 말이다.

“자. 이제 맨해튼 호텔로 가자고.”

“네. 대표님.”

그렇게 누가 봐도 별 쓸데없는 허튼 짓을 두 곳에서 하면서 시간만 낭비한 후, 나는 오늘 묵을 내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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