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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텅텅텅텅!
콘크리트 바닥이라 그런지 실내 농구 코트에 비해 그리 경쾌한 드리블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뭉툭한 그 소리도 내 몸을 충분히 흥분 시켰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인 백준열도 그랬고, 슈팅 천재의 능력을 내게 선사한 드라코도 그렇고, 둘 다 워낙 농구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영향으로 나도 농구를 할 때 아드레날린이 특히 많이 분비되고 있었다.
파악!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내 몸이 살짝 들리는 순간, 내 오른쪽으로 긴 퍼스트 스텝과 함께 몸이 공과 같이 움직였다.
그 간단해 보이는 스텝 한방에 나를 마크 중이던, 코트 오른 쪽 농구 동아리 팀의 슈팅가드가 벗겨지고, 바로 눈앞에 빈 골대가 보였다. 문대식에 마크 당하고 있던 농구 동아리 팀의 센터 필립이 내 눈에 보였다. 그를 보면서 나는 가볍게 뛰어 오르며 풀업 점프 슛을 시도했다.
철썩!
농구공은 깨끗하게 림을 통과했다. 그렇게 간단히 골을 넣고는 곧장 수비하러 뛰어가는 나.
이런 식으로 전반에 내가 넣은 골만 벌써 18점이다.
삐이이익!
심판이 휘슬을 불며 전반 경기 종료. 스코어는 25대 11.
더블 스코어 이상 나는 점수 차이에 암울해 보이는 상대 농구 동아리 팀.
그에 비해 우리 팀이 코트 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선보이자, 길거리 농구를 구경하러 코트 주위로 몰려 든 사람들의 얼굴에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스코어가 반대로 적혀 있는 거 아냐?”
“그러게.”
그럴 만 했다. 농구를 하면서 코트 주위에 구경 중인 농구 동아리 팀을 아는 뉴욕대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 본 결과, 지금 우리와 농구경기를 펼치고 있는 농구 동아리 팀원들은 이 근방에서 알아주는 길거리 농구의 최강자들이었으니까.
그런 녀석들을 지금 나와 내 경호팀원들이 처 발라버리고 있었다. 내 경호팀원들은 확실히 일반인들에 비하면 농구를 잘하는 수준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으로 봤을 때 뉴욕대 농구 동아리 팀원들에 비할 바는 못 됐다.
그렇지만 그런 격차를 나, 즉 드라코의 능력을 내 걸로 만든 백준열이 다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걸 증명하는 게 바로 저 더블 스코어 이상의 점수 차였고.
우리 맞은 편 코트 옆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농구 동아리 팀 선수들. 야외 농구 코트에 벤치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팀도 지금은 다들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닦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 팀원들은 내 지시대로 잘 움직여 주고 있었기에 딱히 하프 타임 때 그들에게 해 줄 말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휴식을 취하며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상대 쪽으로 향했다.
그랬더니 저쪽 분위기가 영 심상치가 않았다. 특히 지금 이 경기를 주선한 거나 마찬가지인 필립의 얼굴에 화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그 화를 동료들에게 거침없이 분출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칙칙한 농구 동아리 팀 분위기가 더 암울하게 변했다.
“내가 경기 시작 전에도 말했잖아. 저들 보스의 실력이 엄청나다고. 그러니 전담마크는 필수로 붙여야 하고....또 저들 조직력이 워낙 좋아 지역 방어를 뚫기 어려우니 측면에서 돌아들어가는....스크린을 끼고 도는 움직임이 꼭 필요하다고....”
나는 필립이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이 이해가 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만큼 필립은 옳은 말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그 말이 어째 다른 동료들에게 먹혀드는 거 같지가 않았다. 저러면....
‘어렵겠군.’
나는 상대 진영에서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고 확신했다. 이 경기는 지려야 도저히 질수 없는 길거리 내기 농구가 될 것임을 말이다.
* * *
전반에 나는 스몰포워드(Small forward)로 뛰었다. 스몰 포워드 즉, SF는 농구의 포지션 중 하나로 코트 내에서 점수를 내는 것을 주된 역할로 한다. 그러니까 외곽에서 슛을 쏘고 속공과 리바운드 싸움에도 참여할 수 있는 올라운드 능력이 요구되는 포지션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역할을 넘치도록 해 냈다. 파워포워드와 센터가 한 득점 보다 훨씬 더 많이 득점을 했으니 말이다.
내가 스몰포워드의 포지션을 자청해서 맡은 건 혹시 몰라서였다. 한데 저들 진영을 보아하니 후반에는 내가 굳이 올라운드 포지션을 수행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왜냐하면 저들 스스로가 자멸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필립은 맞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농구 동아리 팀원들은 그런 필립의 생각과 달랐다. 즉 팀이 분열 되고 있었고 그건 하프 타임 때 주어진 고작 2분의 시간으로 봉합 될 문제가 아니었다.
해서 나는 우리 팀의 센터를 맡고 있는 문대식을 불러서 말했다.
“그러니까 후반에는 슈팅 가드로 뛰시겠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오늘 내 슛이 잘 들어가더라고. 그러니 더 많은 슛을 쏘는 게 맞지 않을까?”
“뭐....마음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내가 우리 팀의 구단주고 감독이고 코치였으니 문대식은 순순히 내 뜻을 따라주었다.
그가 봐도 스코어 차가 워낙 많이 나니까, 내가 슈팅 몇 번 실패하더라도 경기의 승패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듯 했다.
뭐 어차피 전반도 내 위주로 경기를 이끌어 나왔지만 후반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밀어줘야 할 터였다. 그래야 내가 마음 껏 슈팅을 쏴 댈 테니까 말이다. 문대식은 그 점을 돌아다니며 후반에 뛸 경호팀원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걸 보고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생수 통을 입으로 가져갔다.
삐이익!
그때 심판이 간결하게 휘슬을 불고는 외쳤다.
“후반전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은 칼같이 2분이 지나자 후반 경기를 진행 시켰다. 그렇게 다시 점프볼.
툭!
신장에서 우월한 상대 쪽 센터 필립이 공을 먼저 건드렸다.
척!
하지만 그 공을 내가 잡았다. 필립은 제대로 자신의 동료에게 공을 쳐 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 방향으로 뛰어들면서 그 동료보다 먼저 공을 낚아채 버린 것. 그렇게 후반전은 전반과 달리 우리 팀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텅텅텅텅!
나는 빠르게 상대 진영으로 드리블해서 들어갔다. 그러자 우왕좌왕 거리면서도 농구 동아리 팀 선수들은 황급히 자신들 진영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신의 맡은 바 지역 방어에 들어갔다. 스크린플레이나 포스트플레이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수비에 임하는 상대 선수들을 보면서, 나는 무리해서 공격하는 대신 유연하게 공을 옆으로 돌렸다.
* * *
사실 점프볼을 잡은 다음 그대로 공을 드리블해 들어가서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그 만큼 내가 점프볼을 받은 게 상대 팀에 충격적이었던지 그들 발이 한 동안 코트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블 스코어로 앞서가고 있는 데, 치사하게 속공 플레이를 하긴 좀 그래서,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상대 팀의 지역방어 형태로 수비를 다 갖추자, 그제야 본격적인 공격에 들어갔다.
패스가 돌다가 최종 종착지로 내게 공이 왔고, 나는 3점 라인 밖에서 여유 있게 슈팅을 쐈다. 그걸 보고 상대 팀은 물론 코트 밖에 구경꾼들도 다들 황당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철썩!
그 슛이 너무도 깔끔하게 림을 통과하자 다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부터 들어가기 시작한 내 3점 포는 그 뒤로도 계속 시도가 되었고....
철썩!
“와아아아!”
벌써 3번째 성공을 하면서 코트 주위 사람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저 동양인 누구야?”
“진짜 잘 쏜다. 던지면 다 들어가고.”
“NBA 선수 아닐까?”
“그러기에는 키가 너무 작은 데?”
“슈팅 가드라면 가능한 키잖아?”
“뭐 그러고 보니 그렇기는 하네.”
내가 NBA의 슈팅 가드일 거란 얘기까지 들으니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일까? 네 번 째 슛이 좀 흔들렸다.
텅! 데구르르!
하지만 림에 맞고 튀어오른 공은 림을 두 바퀴 돌다가 림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바로 뒤돌아 우리 진영으로 뛰어갔다.
우리는 후반 시작 되고 네 번의 공격을 모두 성공시켰다. 하지만 상대는 앞선 3번의 공격 시도 중 딱 한 번 성공하고 나머지 두 번은 우리의 단단한 지역방어에 가로 막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그 결과....스코어는 37대 13.
이번 공격에 득점하지 못하고 내게 3점 포를 또 두들겨 맞으면 더블 스코어가 아니라 트리플 스코어의 차이가 날 수 있었다.
이건 아마추어 길거리 농구지만 정말이지 굴욕적인 스코어 차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랬기에 상대 팀도 비장한 얼굴로 이번 공격에 임했다. 하지만....
툭!
너무 비장한 게 오히려 상대 팀에 독이 됐다. 상대 포인트 가드가 잠깐 패스 길을 찾느라 한눈을 판 사이, 우리 쪽 센터 문대식이 협력 수비를 위해 노차지 존 앞에서 베이스 라인으로 넘어간 것. 그렇게 두 명의 압박에 상대 포인트 가드는 패스를 못하고 공을 뺏기고 말았다.
텅텅텅텅!
그 공을 문대식이 드리블해서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는데, 상대 센터 필립이 문대식 앞을 가로막아 시간을 끈 사이 상대 수비 진영이 자리를 잡았다. 그때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는 필립을 따라 문대식이 탱크처럼 제한구역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딱 봐도 무리해 보이는 돌파. 이에 필립과 상대쪽 파워 포워드가 문대식을 에워싸려 했지만, 이내 홱 몸을 튼 그가 뒤로 길게 패스를 했다.
그곳에 약속 된 플레이를 위해 내가 서 있었고, 그 공을 받은 내가 3점 슛을 쏘려 할 때였다.
파앗!
상대팀 포인트 가드가 내 앞에서 훌쩍 뛰며 슛을 방해했다. 해서 나는 페이크를 넣은 뒤, 재차 뛰었는데 상대 포인트 가드가 이를 악물고 다시 폴짝 뛰며 팔을 한껏 위로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앞서 공을 뺏긴 것을 어떡하든 만회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째든 녀석의 그런 행동은 내가 슛을 쏘는 데 충분히 방해가 되었다. 때문에 정확하게 3점 슛을 쏠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허공에 뜬 내 몸이 슬쩍 뒤로 젖혀졌다. 그리곤 내 손을 떠난 공이 높은 궤적을 그리며, 바스켓 링으로 날아갔고 그대로 림에 다다랐다. 그리고 림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썩!
그걸 보고 코트 안팎의 사람들이 모두 난리가 났다.
“미친....여기서 페이드어웨이 점프(Fadeaway Jumper)슛을 보게 되다니.”
“저, 저게 가능한 슛이었어?”
“가능하니까 했겠지. 그리고 그걸 우리는 운 좋게 본 거고.”
페이드어웨이 점프(Fadeaway Jumper)슛은 비스듬하게 뒤쪽으로 점프해 수비를 피하면서 쏘는 점프슛을 말하는데, 뒤로 점프하면서 수비수를 피할 뿐 아니라, 공의 포물선도 보통 점프슛보다 높은 궤도를 그리기에, 수비수 입장에선 막기가 난감한 슛이었다.
페이더웨이의 경우 타점이 뒤에 있다 보니 당연히 수비수는 공격수보다 키가 엄청나게 크지 않는 이상, 수직으로 뜨면 절대 블록 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페이더웨이를 막을 때 수비수는 공격수 방향으로 뛸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 컨택이 발생한 것만으로 수비자 파울 요건이 성립 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상대는 항상 페이더웨이를 막을 때 신체접촉 없이 막아야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페이드어웨이 슛 한방에, 후반전에 우리 팀을 따라 잡아 보겠다던 뉴욕대 농구 동아리 팀의 기세가, 단박에 꺾여 버리고 말았다. 하긴 스코어가 40대 13으로, 무려 점수 차가 트리플 이상이 나 버렸으니 상대 팀으로서 의욕을 잃을 만 했다.
* * *
그 뒤로 나는 더는 3점 슛을 쏘지 않았다. 그러면 경기가 너무 재미없어지니까.
아직 7분 가까이 시간이 남아 있는데 정작 우리와 싸워야 할 상대, 즉 뉴욕대 농구 동아리 팀원들에게 투지가 싹 사라져 있었다. 그러한 마당에 내가 3점 슛 쇼를 이어나간다? 저쪽에서 자칫 졌다고 기권을 해버릴지 몰랐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경호팀원들은 이제 몸들이 풀린 상황. 더 농구를 즐기고 싶었다. 해서 나는 슈팅 가드에서 다시 스몰포워드로 포지션을 바꿨다. 그러는 사이 우리 쪽에서도 실수가 나왔고, 그걸 상대 팀이 득점을 하면서 저쪽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뭐 그래봐야 트리플 스코어는 어떻게 커버해도 더블 스코어의 격차까지는 따라 잡을 수 없었지만.
저쪽이 두 골을 넣을 때 우리 쪽은 한 골 정도 넣어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가급적 득점에 관여하지 않고 패스 길을 열어주는 역할과 내 맡은 바 지역에 수비에만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공이 넘어왔고 공격 시간이 다 되어 가는 터라, 나는 오른발부터 원투스텝을 밟아, 내 마크맨 쪽으로 공을 내밀었다.
“헉!”
그러자 패스가 있을 줄 알고 옆에서 움직이는 상대 팀 파워포워드.
하지만 패스는 나가지 않았다. 패스 페이크로 상대 팀 파워포워드 속인 뒤, 나는 공을 다시 당기며, 왼쪽으로 그대로 뛰어 올라 가볍게 왼손 레이업 슛을 넣었다.
철썩!
“와아아아아!”
잠잠하던 내가 득점을 하자 코트 밖의 구경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가 워낙커서 나도 흠칫 놀랐다. 그때였다.
“오리엔탈 몬스터!”
“유 아 더 베스트 슈터(The best shooter)!”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최고의 슈터라 불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이 웅장해지고 피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