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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는 그 학생이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 바로 어젯밤에 우리랑 농구를 했었던 그 뉴욕대생들 중에 센터 포지션을 맡았던 필립이었다.
“어?”
“저 녀석은....”
나 말고 눈썰미 좀 있는 경호팀원들 중에서도 필립을 알아보는 자가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필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랬더니....
필립이 그 긴 다리로 도로를 무단 횡당해서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성큼성큼 대 여섯 걸음 뛰었을 뿐인데, 이내 우리 앞에 도착한 필립이 곧장 내게로 다가와서 말했다.
“보스. 아직 여기 있었군요?”
“보스?”
나는 필립의 보스란 말에 인상을 구겼다.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범죄 조직의 보스처럼 보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 표정 변화에 필립이 움찔하고는 바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미스터 백 앞에서 다들 꼼짝도 못하고 따르기에 그만....”
뭐야? 그러니까 지금 저 놈이 내 생각이 맞다고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완전 불쾌해 하며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자, 필립이 당황해 하며 중얼 거렸다.
“어제는 보스라고 해도 가만있더니....”
그 말을 들은 나는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제 나는 워낙 경황 중이었던지라, 필립이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렸을 때 그가 내밀고 있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을 뿐....
그러니 이런 불편한 장면을 계속 유지하는 건, 필립이 느끼기에 자칫 내가 속 좁은 인간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근데 무슨 일이지?”
나는 찌푸린 인상을 풀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필립을 반기지 않은 채, 무뚝뚝하니 그에게 물었다. 서로 인사라면 길 건너에서 하고 지나쳐도 되었다. 우리 사이에 그 이상의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 그 말에 필립이 우리 앞에, 그것도 무단횡단까지 해 가며 온 여기 온 이유를 밝혔다.
“농구 한 게임 더 하실 생각 있으신가 해서요.”
“농구?”
필립의 농구란 말에 나는 먼저 문대식을 쳐다봤다. 그랬더니 문대식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보고 알아서 하라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농구라....’
어제 나는 농구는 했지만 그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 농구에서 뛴 나는 드라코에 빙의 된 나였으니 말이다.
원래라면 나는 필립의 제안을 거절했을 거다. 해야 할 일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오후에는 록펠러 본가에 가야 하니 바쁠 예정이었지만.
뭐 거기에 길거리 농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드라코의 능력을 직접 내 몸으로 체험하고 싶은 생각도 강하게 들었고.
‘대체 얼마나 농구를 잘하기에 천재 소리를 들은 건지....’
“5대 5?”
내 그 물음에 필립이 바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콜!”
그렇게 어젯밤에 이어서 오늘 낮에도 뉴욕대생들과 길거리 농구를 하게 되었다.
* * *
어젯밤의 대패 한 후 필립은 도서관으로 돌아가서도 그 분을 좀체 삭 힐 수 없었다.
그 결과 오늘 오전에 시험을 제대로 망친 필립. 그런 그에게 그의 농구 동아리 친구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필립. 너 어제 동양인들에게 쳐 발렸다며?”
“20점도 넘게 졌다며? 그거 사실 아니지?”
“....”
필립도 사실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랴. 그나마 필립은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더블 스코어로 졌다는 건 모르나 보군.’
필립이 아무 말이 없자 그의 농구 동아리 친구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럴 게 농구 동아리에서도 에이스인 필립이었다.
그런 그가 포함 된 상태에서 그런 큰 스코어로 패했다는 건, 그들 농구 동아리의 실력이 자칫 폄하 당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 동양인들 어디 있어?”
“우리랑 한 게임 뛰자고 해.”
“그래. 개 박살을 내주자고.”
농구 동아리 친구들은 다들 분개했고 필립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농구 경기에 나서 줄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들이 여기 있을 거란 생각을 필립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셀리나의 파티 손님이었고 파티가 끝났으니 그들이 여길 떠났을 건 확실했으니까.
“다들 고마워. 하지만....”
필립은 농구 동아리 친구들에게 그들이 파티 참석 후 지금쯤 뉴욕을 떠났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시험은 망쳤지만 내일 시험까지 망칠 수 없었던 필립. 그는 가까스로 농구 동아리 친구들을 달래고 그들과 같이 가볍게 길거리 농구로 땀 좀 빼고 점심을 먹은 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생각으로 대학교 정문을 나섰다. 그리곤 길거리 농구를 하기 위해 큰 길을 따라 인근에서 제일 가까운 야외 농구 코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어? 저 사람들은....”
검은 정장 차림의 동양인들. 하도 눈에 잘 띠는 그들을 필립이 못 알아볼 수 없었다.
필립은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마침 도로로 지나가던 버스 때문에 그의 소리가 묻혔다.
그때 필립의 눈에 어젯밤 맹활약을 펼쳤던 저들의 보스가 보였다. 자신을 미스터 백이라고 소개한 게 생각난 필립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러자 동양인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고, 필립은 그들을 향해 반갑게 웃으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때 그들 쪽으로 검은 승용차들이 도로가로 와 줄줄이 늘어서는 게 필립의 눈에 보였다.
순간 필립은 저들이 이대로 저 차들을 타고 떠나버리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위를 살피면서 도로를 무단횡단해서 그들에게 뛰어간 그는, 곧바로 동양인들의 보스인 미스터 백에게로 갔고, 그와 얘기해서 어제 패배를 복수할 기회를 잡는데 성공했다.
필립의 농구 경기 제의를 미스터 백이 승낙한 것이다. 그래서 필립은 농구 동아리 친구들과 같이 근처 야외 농구 코트로 먼저 움직였고, 그들이 몸을 풀고 있을 때 검은 정장 차림의 동양인들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어젯밤에 도대체 몇 번의 황홀경을 경험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셀리나.
그런 그녀가 아침에 눈을 떴다. 그녀는 평소처럼 몸을 일으켜서 곧장 욕실로 가려 했다.
사람은 자고 일어났을 때 몸에 꽤나 많은 노폐물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 밖으로 분비하게 되는데, 워낙 깔끔한 성격의 그녀는 자기 몸에 그게 남아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으윽!”
그런데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의 몸에 이상 신호가 전해져 왔다. 아랫배에 강렬한 통증과 함께 허리와 어깨, 목에서도 근육통이 감지 된 것이다.
“어머머....”
그때였다. 그녀 옆에 웬 남자가 누워 자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잘 생긴 동양인 남자는....
“준열?”
그녀도 이제는 잘 아는 남자였다. 어젯밤 그녀와 뜨거운 시간을 같이 보낸, 그녀를 정신없이 몰아쳐서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만들었던, 그 당사자였으니까.
결벽증이 점점 더 심해지는 가운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녀와 같이 이렇게 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은 남자는 이 남자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녀의 결벽증에 따르면 지금 그녀는 어마어마하게 불쾌해야했다. 섹스 후 씻고 자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준열이라는 남자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고. 그러니까 지금 그녀 옆에 지금 쓰레기통이 널브러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뭐지?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그녀 옆에 잠든 동양인 남자는 불쾌하긴커녕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쪽!”
그래서 자고 있는 그 남자의 볼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뽀뽀 까지 해 버린 셀리나.
그녀는 자신의 이런 행동에 흠칫 놀라며 당황해 하다가 결국 몸을 일으켰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그렇게 평소처럼 깔끔하게 몸을 씻고 나온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방안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녀와 그의 옷가지들을 챙기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준열의 옷과 양말 등을 유심히 살폈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 집에서 일하던 메이드가 그녀가 갈아입을 옷들을 가져왔고, 그 옷들을 챙겨 입은 그녀가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의 집사인 샘이 준열이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왔다.
“저기 둬.”
셀리나는 그 옷들을 준열이 깨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침대 바로 앞에 있는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두게 했다. 그 다음 샘에게 말했다.
“저 사람 일어나면 아침 식사 할 수 있게 샘이 좀 챙겨 줘.”
“네. 아가씨.”
그 말 후 셀리나는 오늘 오전에 만나기로 약속한 뉴욕대 법학과 교수 루이스를 만나러 집을 나갔고, 그 미팅 후 곧바로 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10분 전 쯤 나가셨습니다.
“식사는?”
-급한 약속이 있으시다며....먹은 걸로 치겠다고....아가씨께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더군요.
“그래?”
뭐 어차피 오늘 저녁에 그와 만날 테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깼으면서 여태 자신에게 전화 한통 없는 백준열이 서운한 셀리나였다.
이기적인 셀리나는 백준열이 자신이 남긴 메모를 봤을 테니, 그걸로 오늘 밤에 그와 만나기로 약속이 잡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준열은 셀리나와 오늘 밤에 만나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일부러 셀리나에게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그건 셀리나의 그 일방적인 약속을 자신이 지킬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자기밖에 모르는 셀리나가 알 턱이 없었다.
* * *
길거리 농구 경기 전 양쪽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하자며 간단히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그 전 백준열은 필립이 속한 뉴욕대 농구 동아리 멤버들에게 어제와 같은 제의를 했다.
자신들을 이기면 1000달러를 주겠다고 말이다. 대신 지면 어제처럼 100달러의 햄버거 값을 주는 호의는 베풀지 않았다. 지면 그걸로 끝. 뉴욕대 농구 동아리 멤버들은 지면 손가락 빨며 각자 갈 길을 가야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동양인들에게 질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왜냐하면 필립 말고 지금 경기에 나서는 멤버 중 2명이 고등학교 때 선수로 뛰어봤고, 나머지 2명 역시 길거리 농구에서 나름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녀석들이었으니까.
당연히 대학 농구팀에 비빌 바는 못 되더라도 아마추어로서, 이곳 뉴욕대 근처에서 그들은 길거리 농구의 최강이라 자부했다.
“자자. 가볍게 뛰어주고 천 달러 챙기자고.”
“흐흐흐흐. 좋지.”
필립은 분명 말했다. 다른 동양인은 몰라도 미스터 백의 농구 실력은 대단하다고. 하지만 농구 동아리 친구들 중 그의 말을 심각하게 들어주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경기는 시작 되었고 양 팀 선수들이 센터서클에 점프볼을 위해 섰다. 심판은 그들이 농구 경기하러 여기 오기 전에 3대 3 농구를 즐기고 있던 일반인이 시간 있다며 기꺼이 나서 주었다. 그는 인근 고등학교 풋볼 코치로 호루라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농구공을 든 상태로 심판이 양팀 선수들에게 말했다.
“경기는 전 후반 즉 1, 2쿼터로 15분씩 진행합니다. 다들 부상조심하시고....페어플레이 부탁할게요.”
그 말 후 심판이 호각을 불면서 공을 공중으로 높이 띄워 올렸다.
탁!
“그렇지. 필립. 나이스!”
“야! 야! 위치 잡아!”
점프볼의 승자는 당연히 농구 동아리 팀. 그 팀의 제일 장신인 센터 필립이 간단히 점프볼에서 우위를 선보이며, 준열 팀의 최장신인 문대식을 압도해 공을 건드렸고, 그 공이 농구 동아리 팀의 가드에게 전달된 것.
그렇게 농구 동아리 팀이 선공을 취하게 되자 준열 팀 선수들은 각자 마크맨을 지정한 뒤, 수비 쪽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본격적인 농구경기가 시작 되었고, 준열은 드라코의 슈팅 천재 능력을 믿고 이 경기에 임했다.
“디펜스! 디펜스!”
준열 팀의 생각 밖의 탄탄한 지역 방어에 막혀 점수를 내는 데 실패한 농구 동아리 팀.
“패스!”
나의 외침에 공이 넘어왔고, 나와 비슷한 키의 농구 동아리 팀 가드가 내 앞을 막아섰지만....
차착!
잽스텝 한번 하고 돌아와서 슛 동작. 그 페이크에 움찔하는 농구 동아리 팀 가드의 왼쪽을, 간단히 돌파한 준열은, 훤히 보이는 림에 슬쩍 공을 놓고 왔다.
철썩!
레이업 슛으로 먼저 2점 선취 득점을 올린 준열은 곧바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서 수비에 임했다.
그렇게 전반 시작 후 5분의 시간이 흘렀고 스코어는 10대 2로 준열 팀이 앞서나갔다.
거기에 공격권은 준열 팀에 있었다. 여기서 또 준열 팀이 득점을 한다면 10점 차 이상의 리드를 내 주는 꼴. 그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농구 동아리 팀의 선수들은 악착같이 수비에 임했다.
철썩!
“아아!”
하지만 준열이 간단히 잽 스텝 한번하고 돌아왔다가 다시 잽 스텝 후 슛 동작을 취하자, 그 페이크에 움찔거리며 농구 동아리 팀의 포워드가 반응을 보였다. 그 즉시 준열이 그대로 그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던져 넣고 잽싸게 돌아들어가며 다시, 그 공을 받아 돌파에 성공했다. 이어 그대로 골대로 돌진 후 스텝을 밟아 뛰어 올라 레이업슛에 성공한 것이다.
스코어를 기어코 12로 만들어 버린 백준열.
처음 농구 동아리 팀은 자신들이 이 경기를 압도적으로 리드해 나갈 거라 여겼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사정이 달랐다.
농구 동아리 팀은 준열에 제대로 댄 팀 룰을 써 보지도 못한 채, 이미 팀워크가 무너진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