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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739화 (73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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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휘트니에게 제대로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녀 말을 듣고 나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에 내가 잠깐 어처구니없어 할 때, 그녀는 유유히 자기 자리에 앉으며 스코어보드를 통해 현재 두 팀의 점수를 살폈고, 곧장 농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코트 안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몇 분 되지 않아 2쿼터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궁금한 걸 바로 물었다.

“정말 ‘후두’ 안 믿어요?”

그러자 그녀의 대답이 정말 가관이었다.

“훗! 그런 유행 한참 지난 무속신앙을 내가 왜 믿어요.”

그러니까 그녀는 귀신 따윈 안 믿는단 소리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귀신을 볼 수 있다는 내 말을 듣고서 그렇게 한 건 믿는 척 한 거라는 얘기인데....

왜 그런 건지 내가 직설적으로 휘트니에게 묻자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안 믿는데 내 남편이 믿거든요. 그래서 한 번은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 걸 믿는 사람의 얘기를....”

그러니까 그 상대가 운 좋게 내가 걸린 것이고.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휘트니의 젊은 시절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남자, 튜팍 귀신이 그녀에게 해 줄 말이 있다는 내 말이, 귀신을 믿지 않는 휘트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고.

그 추억이란 감성에 취한 휘트니가 내 장단에 맞춰 준 것이다. 그 과정에서 튜팍과의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른 그녀는 그만 울고 만 것이었고.

“그리고 저보고 부적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게 결정적 이었어요. 뭐 참신하달 까?”

휘트니의 이어진 말에 따르면 요즘 후두에서 그들이 파는 부적을 보면 ‘사업번창’ ‘이혼방지’ ‘취업보장’ ‘재판승리’ ‘금전대박’ ‘파산방지’등의 주를 이룬다고 했다.

그 말에 이번엔 내가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부적 문구는 별반 다른 것 없어서 말이다.

그때 우리 얘기에 리암이 끼어들었다.

“그건....그만큼 미국의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는 얘기지. 며칠 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인터뷰한 중년의 여자가 그랬다더군. ‘직장을 잃고 남편에게 이혼 통보까지 받고 건강이 악화됐는데, 후두를 믿으니 취직이 되고 일이 잘 풀린다.’고 말이다. 즉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후두’를 믿는 이유가 있는 셈이지.”

그리곤 나를 보고 은근슬쩍 말했다.

“이곳 경기장만해도 고용하고 있는 인원이 100명이 넘어. 그런데 올해 안에 10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지 못하면 내년에 그들 인원의 삼분의 일을 해고해야 할 처지란 말이지.”

나는 리암이 고용 문제로 나를 압박해 오자 살짝 기분이 상했다. 막말로 뉴욕 닉스의 구단주는 리암이다. 내가 아니고.

나도 사실 뉴욕 닉스가 후 내후년이나 되어야 겨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리암의 투자 제안을 충분히 긍정적으로 받아드렸을 거다. 하지만 올해에는 꼴지, 내년에는 겨우 꼴지 탈출할 팀에 투자를 하는 건....

“오늘 뉴욕 닉스가 이기면 투자 하도록 하죠.”

내 충동적인 그 말에 리암의 얼굴이 환해졌다. 왜냐하면 지금 35대 30으로 뉴욕 닉스가 이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앞서 내가 말했듯이 올해 뉴욕 닉스는 리그 꼴지 팀이다. 그 말은....

‘오늘 경기도 진다는 얘기지.’

그래야 뉴욕 닉스가 리그 꼴찌 팀이 될 테니까. 그것도 모르고 리암이 마치 내가 축구에 이어 농구 팀에도 투자하기로 한 것처럼 기뻐하며 말했다.

“컬럼비아에서 준열 너를 만난 건, 올해 들어 내 최고의 행운이야.”

리암의 그 말에 나는 그처럼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그건 올해가 끝나보면 리암도 자연히 알게 되겠지. 내가 그에게 행운인지 아니면 최악의 불운일지를 말이다.

* * *

2쿼터 후 하프타임 때 홈팀 뉴욕 닉스 치어리더들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고 나서 3쿼터가 시작 되었다.

자신들의 구단주가 와 있어서 일까? 뉴욕 닉스 선수들이 제법 분전하면서, 점수 리드 폭을 꾸준히 5점차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상대 브루클린 선수들이 더 이상 리드 폭을 주지 않고 잘 쫓아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4쿼터에서 얼마든지 반전할 수 있는 여력을 브루클린이 갖추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구단주인 리암은 상대 팀 생각까지 할 정도로 뉴욕 닉스에 관심이 없었다. 그 보다는 지금 마시고 있는 샴페인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여기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말고 모엣 & 샹동(Moët & Chandon)이나 로랑 페리에(Laurent-Perrier) 있으면 그걸로 가져 와줘.”

내가 알기로 지금 리암이 마시고 있는 샴페인은 미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브랜드의 샴페인이었다. 하지만 그게 질린다는 듯 그는 그 다음과 그 다음다음 인기가 있는 샴페인을 가져오라고 경호팀장인 제이크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저 샴페인만큼 만이라도....뉴욕 닉스에 신경을 써 주지....’

그랬다면 뉴욕 닉스가 이렇게 리그 꼴지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리암은 딱 봐도 오늘 뉴욕 닉스가 이길 거로 확신하는 듯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뉴욕 닉스의 필패를 확신하고 있었고....

“3쿼터도 끝났네요.”

스코어는 68대 63으로 뉴욕 닉스가 5점차 리드 하는 가운데 나도 살짝 요의가 일었다.

그래서 화장실로 향했고 거기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데....

[아까 보니까 너의 곁에 튜팍이 있던데. 너 귀신이 보이지?]

빌어먹을. 오늘 무슨 귀신 붙는 날 이기라도 한 듯 튜팍에 이어서 또 다른 귀신이 화장실에서 내게 들러붙었다.

‘하아. 넌 또 누군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내 자리로 돌아가면서, 나는 내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는 또 다른 화장실 잡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녀석이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내가 꽉 들러붙은 채 대답했다.

[나는 드라코 블룸이다.]

‘드라코? 어디서 많이들은 본....아아! 맞다.’

나는 내게 들러붙은 이 화장실 잡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올해 초에 교통사고로 덜컥 죽어 버린, 이곳 뉴욕 닉스의 에이스 슈팅가드 드라코 였던 것. 그런 그가 원귀가 되어 이곳 경기장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코는 분명 경기장의 관중석에 있는 나를 봤다고 했다. 그 말은 곧 그가 화장실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지박령은 아니라는 얘기. 그렇다면 드라코는 농구장 건물 안에서 폭 넓게 살고 있는 원귀였다.

‘누가 운동선수 아니랄까....’

내가 화장실에서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을 때 이미 4쿼터 경기가 시작 된 상태였다. 그때 경기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코트를 보던 드라코 원귀. 그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프레드와 터너는 체력이 약하니 4쿼터 중반부터 투입해야 하는데....보나마나 역전 당하겠군.]

그리고 드라코 원귀의 말대로 4쿼터 중반에 뉴욕 닉스의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 둘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팽팽하던 경기가 삽시간에 뒤집혔다. 5점 차 리드는 금세 따라잡혔고 상대 슈팅 가드의 3점포가 연거푸 터지면서, 뉴욕 닉스가 나름 분투하면서 두 번의 공격에 4점의 득점을 했지만, 결국 뉴욕 닉스는 브루클린에 95대 97,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이....”

당연히 뉴욕 닉스의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던 리암.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다가 결국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바닥에 집어 던져 버리고는 씩씩 거리며 VIP석을 빠져 나갔다. 그걸 보고 히죽 웃으며 나는 내 옆에 휘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늘 만나 영광이었어요. 휘트니.”

“저야 말로 재미있었어요. 특히 튜팍은....”

튜팍을 언급하면서 씁쓸하게 웃는 휘트니. 미신을 믿지 않는다는 그녀 앞에서 나도 더 이상 앞서 내가 했던 말들에 대해 더 언급하기 싫었다.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려 작별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 VIP석을 나섰다.

휘트니는 바로 내 뒤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생각할 게 더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녀의 생각까지 관섭할 수는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튜팍 때문에 그녀와 만나고 얘기를 나눴지 그게 아니면 팬과 아티스트와의 만남, 그녀는 내게 있어 그 이상은 꿈꿔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이번 일로 인해 그녀가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불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 * *

“이 병신, 머저리 같은 새끼들....”

리암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럴 게 너무 쪽팔렸기 때문에. 준열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 떵떵 쳐 놨는데 4쿼터에서 이리 맥없이 역전패 당할 줄이야.

“감독부터 잘라.”

“....”

구단주로서 리암은 그 분노를 풀 대상으로 뉴욕 닉스의 선장을 지목했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들은 그의 경호팀장 제이크는 그럴 권한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리암이 그렇게 하라고 강력하게 더 요구한다면 제이크는 기꺼이 뉴욕 닉스 구단 관계자에게 전화해서 구단주의 그 뜻을 전할 용의는 있었다. 하지만....그 뒤로 리암은 씩씩 거리기만 할 뿐 더 강력하게 감독을 경질시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감독을 자르라는 자신의 말이 그가 홧김에 한 소리라는 얘기. 그래서 제이크는 묵묵히 리암이 내는 화를 받아주었다. 경호의 업무 중에는 의뢰인의 이런 화풀이 대상도 포함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제이크는 지금 자신의 일을 훌륭히 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리암. 배고픈데 저녁 먹으러 가죠?”

리암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리암의 게스트인 동양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 말에 리암이 홱 고개를 돌려서 그 동양인을 째려 봤다. 마치 지금 자신을 놀리려고 비아냥거리는 거냐는 듯.

하지만 그 동양인은 그런 리암을 마주쳐다 보면서 여유 있게 말했다.

“한국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어요.”

“....”

“제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의 풍경도 밥을 먹은 후에 구경을 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로,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고프면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속담이죠. NBA 뉴욕 닉스 투자 건은 저와 약속대로 물건 너 갔지만, 그래도 MLS 뉴욕 시티 FC에 대한 투자는 남아 있지 않나요?”

즉 동양인은 지금 오늘 뉴욕 닉스에 대해 투자하지 않기로 했음을 리암에게 명확히 밝히면서, 더불어 추후 뉴욕 시티 FC에 대한 투자는 얼마든지 할수 있음을 리암에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좀 취한 상태의 리암이지만 그 말뜻을 알아들은 리암이 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뒤돌아서 심호흡을 하면서 풀어헤쳐 놓은 자신의 넥타이를 고쳐 멨다. 그리고 다시 돌아섰을 때 리암은 비즈니스맨으로 돌아와 있었다.

“배고프다고 했지? 이 근처에 스테이크 죽여주는 데가 있는데 거기로 갈까?”

“저야 좋죠.”

그렇게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리암과 동양인 게스트는 경기장 후문 쪽에 대기 중인 차들 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 둘을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겹겹이 에워 싼 채 움직였고, 얼마 후 NBA구단 뉴욕 닉스의 홈구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후문을 빠져 나온 10여대의 차량들이, 일사분란하게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인 엘런 스타 스테이크 하우스로 향했다.

당연히 리암과 동양인 게스트는 다른 차로 각자 움직였다. 그들을 경호하는 인력 또한 엄연히 분리 되어 있었고.

“후우우....”

차안에서 리암은 고쳐 멨던 넥타이를 다시 풀어 헤치고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때 인이어를 끼고 앞쪽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제이크가 뒤돌아 리암을 보며 말했다.

“말씀하신 준열에 대해 캐봤더니....”

“어어. 그래. 뭐가 나왔어?”

제이크의 입에서 준열이란 이름이 언급 되자 리암의 눈빛이 싹 돌변했다.

“한국에서 엔터 사업을 하는 건 맞는데 그의 신분이....”

제이크는 인이어를 통해 전해져 오는 말을 고스란히 자기 입을 통해 리암에게 전달했다.

* * *

“삼명그룹 막내?”

한국의 삼명그룹이라면 리암도 잘 알았다. 세계 30대 그룹 안에 드는 글로벌 그룹으로 미국 내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가문의 막내에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서 자신 만의 엔터 사업을 하는 준열이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제이크의 말을 듣기 전까지....

“....데 올해 들어서 자기 위의 두 형을 제치고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막내인 준열이 그룹 후계자라는 말에 리암의 두 눈에 빠르게 생기가 감돌았다.

“그러니까....준열이 삼명그룹의 후계자란 말이지?”

그렇다면 얘기가 또 달라졌다. 준열이 충분히 자신의 스포츠 사업에 투자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쯧....아쉽군.”

그랬기에 리암은 못내 아쉬웠다. 오늘 경기에서 뉴욕 닉스가 승리하기만 했어도 농구 팀에 대한 투자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원래 사업은 9회말 투아웃 투 쓰리 풀카운트에서도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한 법이니 말이다.

“좋아. 투자 말고....아예 구단을 녀석에게 팔아 버리는 거야.”

리암은 이번 기회에 자신이 떠맡은 스포츠 사업을 싹 정리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뉴욕 닉스에 뉴욕 시티 FC까지 얹어서 한국에서 온 대기업 후계자에게 비싼 값에 팔아먹을 생각을 한 거다. 한마디로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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