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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귀 하나는 엄청나게 밝은 문대식이었다. 내 근처에서 김종훈이 한 말을 용케도 들은 모양이었다.
-김 과장 거기 있습니까?
“어. 뭐....”
나는 문대식이 또 김종훈을 자극하는 소리를 할까 싶어 사실 조마조마했다. 한국에서도 그들의 기 싸움 때문에 신경이 쓰였는데, 그걸 또 미국에서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내가 먼저 쫀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내가 갑이다. 그 생각과 동시에 확 열불이 치밀어 올랐는데....
-차를 렌트하고 가져 온 짐들을 먼저 그 차에 실어 놓은 뒤에 대기하고 있어도 될까요?
그래도 문대식이 김종훈을 자극하는 말을 하지 않고, 본연의 맡은 바 경호 일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도 확 치밀어 올랐던 화가 좀 누그러졌다.
“그, 그래.”
그리고 생각 난 게 있어서 문대식에게 바로 물었다.
“그리고 라면하고 고추장 같은 거 가져 왔지?”
어제 문대식이 미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에 나한테 보고 차 전화를 해 왔었다.
그때 내가 여기 음식이 안 맞을 수 있으니 라면이나 고추장 등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알아서 좀 챙겨 오라고 했었다.
-물론이죠. 맛깔나는 쌈장도 가져 왔습니다. 팀원 중 음식 잘하시는 어머님이 밑반찬도 싸주셨는데 이따가 맛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오오....”
문대식의 대답에 내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잘하면 오늘 밤에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문대식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나는 잠깐 눈을 붙였다.
내가 자려고 비행기 좌석의 등받이를 뒤로 넘기자, 그걸 보고 김종훈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가 할 말이야 뻔했다. 문대식과 그의 경호팀원들에 관한 거겠지.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고 30분 뒤에 김종훈이 나를 깨웠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어어. 알았어.”
나는 잘 자놓고 안 잔 거처럼 굴었다. 그때 진짜 자러 전용기 안의 실내부로 들어갔었던 리암이 생생한 얼굴로 나와서 나보고 말했다.
“준열. 뉴욕에 온 걸 환영해!”
뉴욕이 무슨 자기 꺼 마냥 말하는 리암이 좀 가소로웠지만 뭐 어쩌겠나?
아직은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기에 나는 그의 농담을 받아 주었다.
“영광입니다. 오늘....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뉴욕 공항을 나올 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대기 중인 차들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 농구 경기가 열릴 뉴욕 닉스가 홈구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곧바로 향했다.
“그럼 내가 먼저 가 있을 게.”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내 경호팀, 즉 한국에서 온 경호팀과 합류해서 가야 했기에, 나는 리암과 같이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문대식이 렌트한 차량도 뉴욕 공항 주차장에 대기 중이었기에,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리암 일행의 뒤를 쫓아 갈 수는 있었다.
* * *
원래는 기존 경호 인력으로 농구장을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2중, 혹은 3중으로 경호를 해야 하니, 그 만큼 경호인원이 더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온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합류하면 농구장에 가도 충분히 안전한 경호가 가능해졌다.
일단 문대식의 경호 인원이 문대식을 포함해서 12명이나 되었으니까.
즉 문대식의 경호 인원 만으로도 2중 경호가 가능하니, 기존에 준열이 미국에서 고용한 보안 회사 바이널리(Binarly) 컬럼비아 지부장 네이슨 커트와 그 밑에 직원들은 이동시 길을 터주는 역할만 잘 해도 됐다.
준열이 농구장에 간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오기로 한 자신의 경호팀원들에 대해 얘기하자 카트는 오히려 더 좋아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밀착 경호하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을 통제하는, 몸으로 때우는 경호 일이 더 마음 편하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농구장에서 경호를 끝으로 그들과 계약도 끝내기로 이때 카트와 얘기를 끝냈다.
뉴욕 공항 주차장에서 대기 타고 있던 문대식과 그 팀원들과 합류한 준열 일행은 곧장 앞서 출발한 리암 일행 뒤를 쫓았다.
“저기가 NBA구단 뉴욕 닉스의 홈구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 인가 보군요?”
준열 옆에 앉아 있던 김종훈이 손가락으로 이제는 눈으로도 보이는 농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준열이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김 과장. 뉴욕에 와 봤다고 하지 않았나?”
“와 봤죠. 하지만 출장차 왔고 업무보고나서 잠깐 쉴 때 주로 야구장을 갔거든요.”
“야구장?”
“네. 제가 메츠의 팬이라서....”
뉴욕에는 메이저 리그 야구팀, 즉 MLB의 구단이 두 개나 있었다. 바로 뉴욕 양키즈와 뉴욕 메츠. 김종훈은 그 중에 메츠 쪽인 듯 했다. 미국에서 야구의 인기야 두 말할 거 없었고, 그건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투자를 하려면 메이저 리그에 투자를 하던지....”
준열이 뭐가 그리 불만인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김종훈이 말했다.
“농구도 미국에서는 인기가 많습니다. 유학 생활까지 하셨으니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
김종훈은 준열이 지금 농구장에 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수행비서랍시고 조언을 했는데 준열은 그 말을 듣고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이다.
그러자 김종훈도 머슥해 하면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준열은 혼자 생각할 게 많아 보였으니까. 그래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도착하기 전까지 차 안은 조용히 정적을 유지했다.
“내리시죠?”
그렇게 10여분 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건물 뒤쪽, 사람들이라곤 경호원들만 보이는 곳에서 김종훈이 먼저 차에서 내려 준열이 내릴 수 있게 차문을 열었다.
준열은 그렇게 차에서 내린 뒤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농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VIP전용 좌석으로 가기 전에 뉴욕 닉스의 구단주인 리암과 만났다.
“여기 어때?”
미국에서 프로 농구의 인기를 보여 주듯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오는 동안, 그 주변에 차들이 워낙 많아서 곳곳에 정체 구간이 형성 될 지경이었다. 물론 구단주를 위한 편의를 그의 손님인 준열과 그 일행도 받다보니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미국에서 농구의 인기를 말이다.
아무래도 리암은 그런 인기를 준열이 직접 피부로 느끼게 만들어서 뉴욕 닉스에 대한 투자까지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네. 뭐....시설도 좋고 이곳으로의 접근성도 괜찮은 거 같기는 한데....안은 어떨지 궁금하군요.”
농구장의 겉은 괜찮은데 안은 어떤지 보고 싶다는 식으로 구렁이 담 넘듯이 리암의 말을 받아 넘기는 준열. 이러면 리암으로서는 농구장 안으로 준열을 데리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슬쩍 농구팀에 대한 투자 얘기를 꺼내 볼 생각이었던 그로서는, 입 안이 쓴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그, 그래.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그렇게 농구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 준열은 VIP석 답게 코트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리암과 같이 앉았다. 그리고 그 주위로 경호원들이 사람의 장벽을 쳤다. 그때 그 경호원들을 보고 리암이 준열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경호원들을 부른 모양이지?”
분명 컬럼비아에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동양인 경호원들이 10명도 넘게 보이자, 리암이 물었고 준열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네. 내가 먼저 오느라 내 경호팀이 좀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전담 경호팀이 있다는 얘기고 그 말에 준열을 보는 리암의 눈빛이 변했다. 왜냐하면 록펠러 가문처럼 혈통을 중시하는 부자 가문이 아니고서는 가문의 일원에게 전담 경호팀까지 굳이 붙이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JYB엔터 대표라고 소개한 준열이, 아무리 봐도 단순히 자수성가한 사업가는 아닐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리암은 경기 시작 전이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으면서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경호팀장 제이크를 거울을 통해 보면서 말했다.
“준열에 대해 좀 알아 봐.”
리암의 말이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들은 제이크가 즉시 대답했다.
“네.”
그리곤 먼저 화장실을 나갔고 리암은 손을 다 씻고 물기까지 다 제거한 뒤 천천히 VIP석으로 돌아갔다.
* * *
뉴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문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공항 주차장! 어어. D블록....”
나는 문대식과 그의 경호팀원들이 대기타고 있는 공항 주차장으로 곧바로 움직였다.
물론 그 전에 리암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실 리암과 같이 움직이면 나야 편했다. 하지만 그러면 내 신병이 리암 측에 넘어가 버린다. 리암이 그럴 리 없지만 나를 작업해서 망망대해 어디다 버리면....
그럴 가능성이 0.000....1%라도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맞는 거지. 그게 남의 일도 아닌 내 일인데 말이다. 해서 나는 내 경호팀원들과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 귀찮은 걸음을 내디뎠다.
“대표님!”
문대식이 말한 주차장 D블록으로 가자, 거기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내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무슨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질겁하며 말했다.
“뭣들 하는 짓이야? 쪽팔리니까 앞으로 이러지 좀 말라고.”
그러면서 문대식이 열어주는 차에 탔다. 그러자 쪼르르 내 옆에 김종훈이 탔고. 그런 김종훈을 노려보며 차문을 닫아 준 문대식. 그가 내 앞쪽 조수석에 타며 말했다.
“어디로 갈까요?”
문대식의 그 말에 내가 옆에 김종훈을 쳐다보자 김종훈이 리암의 경호팀에 받은 무전기로 송수신을 하면서 어디로 갈지 문대식에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목적지인 뉴욕 닉스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출발했다.
그때 나는 내게 들러붙은 미제 귀신 때문에 정신이 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면....
뉴욕공항에 도착해서 VIP전용 화장실에 잠깐 들렀을 때였다. 거기서 오줌을 누는 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 물음에 대답을 했고.
[너....내가 보이는 구나?]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순간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뒤로 귀신이 말을 붙여서 모른 척 했지만 녀석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 붙었고, 이렇게 차 안에까지 쫓아와서 귀찮게 굴었다.
[이봐. 연기 그만하고 이제 나와 진지하게 얘기 좀 나누지? 근데 너 나 몰라? 아아. 이런 너 원숭....아니 동양인이로군.]
하지만 녀석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미국에서 몇 차례 인종차별을 당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국에서 내가 이렇게 돈을 펑펑 쓰고 다니고 있는데도 이런 대우를 받는데, 일반 알뜰한 동양인들은 얼마나 냉대를 받겠는가?
한데 이제는 귀신까지, 더 기가 찬 건 그 귀신이 백인도 아닌 흑인이라는 거다.
-어이. 검둥이! 그 입 집어버리기 전에 나한테서 사라져!
[오오! 드디어 아는 척을 하는군. 근데 지금 나보고 뭐라고 했지? 검둥이? 죽고 싶나? 옐로우 몽키?]
비록 영기로 뿌옇게 보이긴 했지만,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히죽거리고 웃으며 손가락을 권총처럼 내 이마에 갖다 대고 으르렁 거리는 흑인 귀신은, 그 다지 환영할 만 한 모습은 아니었다. 귀신이기 망정이지 아니면 녀석의 입과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진짜 얼굴을 찌푸렸을지 몰랐다.
뭐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어디 귀신 상대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겠나? 보아하니 원한이 있어 승천치 못하고 헤매는 원귀인 모양인데, 이런 잡귀를 없애는 것쯤은 지금의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러려면 좀 귀찮았을 뿐.
나는 「개목걸이」의 능력 중 퇴마, 즉 귀신을 쫓는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잠, 잠깐만....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잡귀가 눈치는 또 빨라요. 하지만 녀석과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퇴마의 능력을....
[너 진짜 내가 누군지 몰라? 나 튜팍이야. 튜팍이라고. 튜팍!]
* * *
화장실 잡귀가 자신이 누구라고 말하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한데 또 녀석이 튜팍, 튜팍 거리는 게 또 신경이 쓰였다.
그 튜팍이라는 소리는 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았던 것이다. 해서 나는 퇴마 능력을 사용하는 걸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서 인터넷으로 녀석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뭐야? 너....그 좆까(Fuck You)였어?
유언을 진짜 좆같이 남겨서 유명한 인간. 미국의 래퍼이자 배우. 튜팍 에이커.
그의 풀 네임이 언급되자 그제야 그에 대한 백준열의 잡 지식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백준열이 어린 시절부터 꽤나 좋아했고, 또 실제로 그가 공연을 한 것으로 유명한 이스트할렘의 한 공연장을 찾아가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