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729화 (72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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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당연히 되지요. 쥬리. 적어도 다음 주까지는 윈드 걸스 멤버 전원이 한 사인이 들어 있는 6집 앨범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쥬리는 나에 대한 악감정을 싹 풀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내친김에 택배를 받을 주소를 물었다. 그리고 그 주소를 김 비서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내며 윈드 걸스의 사인한 6집 앨범을 그 주소로 보내라고 했다.

김 비서라면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바로 알 터였다. 그렇게 내가 김 비서에게 제법 긴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10여분 뒤였다.

디링!

김 비서의 답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알겠습니다. 윈드 걸스 멤버 전원의 사인이 들어 있는 6집 앨범에, 멤버들의 사진이 박힌 로그 머그잔, 접시와 다양한 굿즈들을 같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김 비서다. 하나를 알려주는 열을 헤아리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쥬리에게 말하자 그녀가 크게 기뻐하며 연인인 리암이 지켜보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와락 끌어안기까지 했다.

“너무 좋아요. 준열. 윈드 걸스 멤버들의 머그잔과 접시라니....”

감격한 쥬리를 가까스로 떼어 낸 뒤 내가 다른 노래를 부르려 할 때였다. 알리샤가 불쑥 내게 물었다.

“준열. 혹시 악기 다룰 줄 알아?”

당연히 알지. 히트 곡 메이커이자 ‘작곡 천재’로 불렸던 R드래곤의 재능을 고스란히 흡수한 내가 아니던가?

특히 R드래곤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상당한 걸로 알려져 있었다. 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극찬할 정도로 말이다.

“피아노 정도는 칠수 있어요.”

내 그 대답에 알리샤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잘 됐다. 여기 피아노 있으니까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 불러줘.”

“네?”

이 호텔 방에 피아노가 있다고? 설마....그랜드 피아노는 아니겠지?

그런 내 예상대로 이곳 호텔 방에 수억을 호가하는 그 그랜드 피아노는 없었다. 하지만 그랜드 피아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전자 그랜드 피아노는 있었다.

바로 노래방 옆방에 노래방처럼 방음처리가 된 연주실이 있었고, 거기에는 놀랍게도 피아노와 기타, 드럼이 비치되어 있었다. 기타도 통기타 뿐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도 있었고.

“우와....잘하면 우리끼리 연주도 가능하겠는 걸. 리암오빠. 드럼 좀 치지 않아?”

“어? 나보고 지금 드럼을 치라고?”

“왜? 안 돼?”

“안 될 거까지야. 악보만 있다면....”

“쥬리. 혹시 기타 칠 수 있어요?”

알리샤가 혹시나 하며 쥬리를 쳐다봤는데 쥬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이 스쿨 때 잠시 밴드부에서 베이스 기타를 쳐 보긴 했는데....”

쥬리의 베이스 기타라는 말에 알리샤가 강하게 눈빛을 빛냈다. 나는 그걸 보고 알리샤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 *

베이스는 소리가 낮아 연주보다는 보컬위주로만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그 존재가 잘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베이스 기타는 음이 있는 드럼느낌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드럼 소리 같은 데 음이 달라진다면 그게 베이스 기타 소리라고 보면 될 거다.

즉 베이스 기타는 밴드에서 낮은 음역 대에서 멜로디 악기들을 이어주며 사운드의 큰 틀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거 같았다.

그런 베이스 기타를 쥬리가 좀 친다고 하니 알리샤가 저렇게 강하게 눈빛을 빛내며 말하는 걸 테고.

“이야. 이거 진짜 밴드 결성해도 되겠네. 나 기타 좀 칠 줄 알거든.”

그러니까 알리샤가 지금 여기서 당장 4인조 밴드가 결성 한 것이다. 피아노에 보컬인 나와, 드럼에 리암, 베이스 기타에 쥬리, 리드 기타에 알리샤 자신으로 말이다. 마침 연주실 안에는 그 악기들이 다 갖춰져 있었고.

“가자.”

그렇게 알리샤에 이끌려서 노래방에서 옆에 연주실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각자 악기에 앉고 또 매고 섰다. 하지만....

항상 상상은 현실에 못 미치는 법. 알리샤의 상상은 멤버들의 기량을 너무 상향해서 잡았다는 점.

둥! 둥! 두웅! 두둥!

투다다닥! 투닥! 쾅! 쾅! 채앵!

어떻게 인터넷에서 악보는 찾았지만 당장 베이스 기타와 드럼이 따로 놀았고 알리샤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도 엉망이었다. 유일하게 제대로 연주가 되고 있는 건 내 피아노 뿐....

“이거 쉽지 않네.”

어떡하든 합을 맞춰보려던 알리샤는 결국 20여분 뒤 두 손을 들었다. 그런 알리샤를 보고 리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쉬우면 한 집 건너 밴드가 만들어졌겠지.”

그 말에 쥬리가 바로 거들며 투덜거렸다.

“그럼 시끄러워서 제대로 잠도 못 잤겠네요.”

쥬리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력으로는 밴드 연주는 어림도 없는데 알리샤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지금 이렇게 베이스 기타를 매고 있는 자신이 어지간히 못 마당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말 후 아예 매고 있던 베이스 기타를 풀어버렸다. 그런 쥬리를 알리샤도 말리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도 갑갑한지 매고 있던 일렉트릭 기타를 풀어 원래 놓여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깔끔히 고집을 꺾고 포기를 선언한 거다. 그리곤 여전히 피아노에 앉아 있는 준열을 향해 말했다.

“그냥....준열의 노래나 듣자고.”

알리샤의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리암과 쥬리가 동조의 박수를 치면서 연주실이 준열의 독주실로 변했다. 그리고 준열은 피아노를 치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처음은 세 사람이 알 만한 유명 팝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부르던 그는, 자기 취향대로 한국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복을 벗고 나서 맨 처음으로 만났던 그녀. 그 당시가 나는 자꾸 생각이 나서....”

왜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건지 준열도 몰랐다. 그저 앞서 불렀던 팝송이 아련하고 슬펐던 노래였기에 그 영향이 컸지 않았을 까? 뭐 어쨌든 부르기 시작했으니 준열은 끝까지 집중해서 감성이 흐트러지지 않게 노래를 불러 나갔다.

“오늘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몇 년 뒤 너를 봤을 때 너의 곁에 있는 그 남자....”

비록 한국말로 부르기에 그 의미를 못 알아듣고 있었지만, 연주실 안의 세 사람들은 다들 아련하니 뭔가 옛 추억에 빠져 있는 거 같은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나의 옆에는 나를 사랑하는 한 여자와 잠을 못 이루는 나를 달래주는 오래전에 그 노래만이.”

준열이 노래를 끝냈을 때 알리샤가 말했다.

“준열. 이 노래 가사 말이 혹시 옛 추억에 관한 거야?”

준열은 알리샤의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좀 전 부른 노래가 20~30대 남자의 성장과정을 표현한 곡이라고 말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 살에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나이를 먹어가며 지금은 새로운 연인과 아름답게 사랑을 하고 있는 나와 첫 사랑을 추억하는....

* * *

나의 가사 설명에 세 사람은 다들 먹먹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긴 다들 첫 사랑은 있을 테니까.

부모만큼이나 첫 사랑에 대한 추억은 애달프고 아련한 슬픔이 있을 테니....

내가 슬픔이라고 말한 건 여기 있는 세 사람도 결국 첫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고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듯 세 사람 모두 얼굴에 슬픔이 묻어나왔다.

“좀 밝은 노래 없어요? 막 신나서 춤 출 수 있는?”

그때 알리샤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노래를 원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가 하필 똘끼남의 ‘강북 스타일’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그 노래를 절대 부르지 않았을 텐데. 알리샤가 하도 졸라서 나도 모르게 피아노 반주를 먼저 쳐버렸다.

♩♬♪♫~, ♫♪♬♩~

“어머....이 리듬 뭐야?”

“우와....죽이는데?”

그리고 시작 된 내 노래.

“오빠! 강북 스타일~ 예에....”

나는 주변 반응에 취해서 강북 스타일을 끝까지 부르고 말았다.

“자아. 지금부터 어디 갈 때까지 가봅시다. 섹시 레이디....”

그리고....연주 도중 몸을 일으켜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세 사람 사이에서 강북 스타일의 대표적인 안무인 말발굽 춤을 추고 말았다.

그걸 보고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따라 말발굽 춤을 추기 시작했고....

“준열. 이 노래 뭐야?”

“우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노래는 처음이에요.”

“이거 누가 부른 노래야? 당장 앨범 사야겠어.”

노래가 끝난 뒤 그 후폭풍에 가까운 반응에. 나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 노래를 들은 사람은 달랑 셋뿐이었고 그들만 입을 다문다면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리고 2년 뒤 강북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기 전에,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줘 놓으면 될 일이었다. 2년 전에 내가 불렀던 그 노래를 똘끼남이라는 한국가수에게 넘겼다고 말이다.

“아직 미완성 된 곡이니까 다들 이곡이 나오기 전까지....어디에 언급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나는 세 사람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까지 몰랐다. 리암의 입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싸다는 걸 말이다.

“당연하죠. 혹시 멜로디를 누가 도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맞아. 근데 노래 진짜 좋다. 이거 나오면 바로 히트 하겠어. 빌보드 차트에 오르면 순위가 급상승 할 거 같아.”

알리샤의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처럼 똘끼남의 강북스타일은 한국어 가요 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100 진입했고 2위까지 차지하게 되니까. 아쉽게 1위를 놓치긴 했지만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단연 그해 최고의 히트 곡이었다.

“나는 준열이 춘 그 춤이 더 대박 같아. 이렇게 추는 거 맞지?”

나는 내 앞에서 호들갑스럽게 말발굽 춤을 추는 리암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

그리고 직접 몸을 일으켜서 리암 앞에서 제대로 된 말발굽 춤을 춰 보여 주었다.

* * *

그렇게 우리가 연주실에서 나왔을 때 시간은 벌써 새벽 3시가 가까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뺀 세 사람은 생생했다. 하긴 노래방에서, 그리고 연주실에서 계속 노래를 부른 건 나 혼자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목도 좀 잠겼다.

물과 술은 이미 충분히 마신 터라 그걸 더 마시는 건 내가 싫었다. 그때 알리샤가 리암을 보고 말했다.

“해장 좀 할까?”

“해장?”

“어. 왜 그 음식들 있잖아?”

“지금 그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까 몰라?”

그러며 리암이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고....잠시 후 통화를 끝낸 그가 말했다.

“된다네. 마침 수석 셰프가 당직이라서 호텔에 있다니 말이야.”

“오오. 잘 됐다. 그래서 뭐 시켰어?”

리암의 대답에 신이 난 알리샤가 묻자 리암이 바로 대답을 했다.

“네 가지 다 시켰어.”

“우와. 그 네 가지가 다 된다고?”

둘의 대화에 내가 힐끗 쥬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른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해서 내가 알리샤에게 물었다.

“알리샤. 네 가지가 뭔데요?”

“아아. 미국에서 해장 할 때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이 네 가지 있거든. 그걸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네 가지가 뭐냐고요.”

“베트남 쌀국수랑 햄버거, 치킨누들스프, 그리고 피자.”

알리샤의 대답에 쥬리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아아. 미국인들이 술 많이 마신 다음 날 많이 먹는 음식들 말이로군요. 저도 들어 봤어요.”

그때 한 박자 늦게 백준열의 잡 지식에도 미국인들이 특별히 해장할 때 그 음식들을 먹는다는 게 생각났다. 하지만....

‘햄버거랑 피자는 좀....’

쌀국수와 치킨누들스프는 그래도 국물이 있으니 해장이 될 거 같았지만, 역시 한국인에게 해장으로 햄버거와 피자는....목으로 안 넘어 갈 거 같았다.

어째든 네 가지 중 두 가지는 나도 먹을 수 있는 거라, 딱히 리암이 룸서비스로 시킨 네 가지 음식에 대해 그 어떤 불만은 표출 하지 않았다.

그때 알리샤가 쥬리와 같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걸 보고 내가 그쪽으로 가려 하자 리암이 내 팔을 붙잡았다.

“화장 고치러 들어간다니 거기 따라 들어가는 건 좀....”

“아아....”

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보고 리암도 잡은 내 팔을 놓아주었다.

“....”

그 뒤 리암과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개눈깔」 아이템의 능력을 사용 중인 나는 볼 수 있었다. 리암의 몸에 드리워진 다양한 빛 무리를 말이다. 그건 그가 내게 궁금한 게 많다는 거였고 그 중에서 특히 핑크빛이 강하다는 건....

‘섹슈얼한 점에 대해 궁금하다는 건데....’

그가 성적으로 내게 궁금한 거야 당연했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을 테니까. 자신이 네토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크음. 준열. 그러니까....그게....”

어떻게 자신의 궁금증은 해소 시켜야 하는 데 막상 내게 그 점을 묻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 리암. 나는 그런 그에게 살짝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스와핑 해 보니까 어때요?”

“어?”

내 물음에 잠깐 어리바리하게 굴던 리암. 하지만 스와핑의 말뜻을 모를 그가 아니었고, 앞서 그와 알리샤가 관계를 맺고 나와 쥬리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건 엄연한 팩트였다. 그리고 그게 바로 스와핑, 파트너를 교환해서 섹스를 즐기는 행위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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