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713화 (7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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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그곳을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나올 수 없는 게....하아....딜레마지.”

한때 미국 최고 부자로 손꼽혔던 리암의 고조부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그가 바로 ‘석유왕 록펠러’의 시작이었고 이후 클리블랜드에 정유소를 설립한다.

그 정유소를 바탕으로 오하이오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고, 다른 회사를 무자비하게 인수하면서 미국 석유 시장의 95%를 점유해 버렸다. 뭐 그 뒤야 그가 미국 최고 부자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손꼽혔었다.

뭐 부자가 3대 가기 어렵다는 속담이 있지만, 록펠러 가문은 이런 통설을 뛰어넘어 140여 년 동안 여전히 부자 가문 리스트에 오르며, 여전히 미국 내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가문 중 하나로 꼽힌다.

록펠러 가문과 함께 당대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오른 밴더빌트나 포드 가문은 세대를 거치면서 부가 흩어져 더 이상 가문의 명성과 부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음에도, 록펠러 가문이 몇 대에 걸쳐 여전히 부를 유지하고 미국의 정치와 비즈니스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리암은 그 후광을 입어 자기가 하고 싶은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등의 문화사업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

즉 지금 리암이 가문을 나온다는 건 그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는 그들 사업에서 손을 떼야한다는 소리였다. 그건 리암이 죽기 전에는 할 수 없는 짓이니, 그는 결코 조부와 가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할아버지....”

리암의 조부 되는 마이어 록펠러. 그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2세대인 록펠러 주니어의 아들로 3세대 록펠러가의 수장이 되었다.

록펠러 가문은 가족 구성원이 각자 자기사업을 하거나 다른 길을 걷기보다는 사업이나 정치, 사회에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전통이 있었다.

마이어 록펠러는 바로 그 전통을 잘 이었고, 부동산 투자에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사업에서도 실패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결과 그는 현재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이자 CEO로, 대규모 부동산 지주회사 및 주요 미술품 컬렉션을 보유한 세계적인 부자이며 기부가 였다.

그는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내인 페기와 같이 지금껏 자선 단체에 9억 달러가 넘게 기부를 해 오며 ‘기부왕’이라는 별명으로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조부에게 리암이 감히 반기를 든다?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코 해선 안 될 만용일 수밖에 없었다.

즉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얘기고, 사실 그런 짓을 할 용기 따윈 리암에게 없었다. 그러니까....

“하아아....”

지금의 리암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 때 되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거. 딱 그 이상의 삶은 꿈꾸지 못했다. 아니 꿈 꿀 수조차 없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리암이 쥬리와 섹스하기 직전 침대 옆 엔틱한 협탁 위에 올려놓은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리암은 일단 몸을 일으켜서 누구 전화인지부터 확인했다.

“응?”

근데 불과 한 시간 전에 같이 저녁 식사를 같이했었던 그녀, 알리샤의 전화였다.

“뭐지?”

그때 그녀는 적어도 이곳 컬럼비아에서는 그와 다시 볼 일이 없을 거처럼 말하고, 그와 같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떠났었다. 그래놓고 이렇게 빨리 그에게 전화를 해 온다? 뭔가 확실히 이상했다.

“여보세요?”

그 이상함이 뭔지는 어차피 그녀의 전화를 받아보면 알 일이었다. 그래서 리암은 알리샤의 전화를 받았다.

-리암. 우리 술 한 잔 같이 해요.

“뭐?”

-리암이 지금 묵고 있는 데가 2703호죠? 여기 2702호니까 바로 와요. 올 때 파트너도 데려 오고요.

그 말 후 알리샤는 리암의 말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

알리샤의 일방적인 통보에 리암은 잠깐 어리둥절하게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시선을 그가 지금 있는 방 욕실로 돌렸다. 그 욕실 안에 쥬리가 한창 샤워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상태도 섹스 직후 엉망이었고.

리암은 몸을 일으켜 쥬리의 방을 나와서 곧장 자신이 쓰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방의 욕실로 들어가서 일단 몸을 씻었다.

알리샤의 초대를 받아드리든 아니든 그건 그가 씻고, 또 쥬리가 씻고 나온 뒤 얘기해 보고 결정해도 될 일이었으니까.

* * *

견신이 주신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내가 아니다. 나는 좀 더 집중해서 알리샤와 대화를 나눴다. 그 사이 내 메인 음식이 바닥이 났고 나는 디저트를 시켰다. 그때 그녀에게 물었다.

“알리샤. 나 혼자 먹기 좀 그래서 그런데....같이 디저트 먹는 거 어때요?”

“저는 이미 디저트 먹었는데요?”

“시키기만 해요. 먹지는 않아도 되니까.”

먹지 않을 음식을 시킨다? 분명 돈 낭비다. 하지만 미국 상류층의 경우 체면이 돈보다 우선이었다. 보이는 게 그 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데 지금 알리샤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남자인 나만 먹고 여자인 알리샤는 쫄쫄 굶기고 있는 듯 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당연히 오해 할 수 있는 모습이었고, 그걸 눈치 차린 알리샤가 내 말뜻을 알아들은 듯 디저트를 바로 주문했다.

“그럼 저는....컵케이크로 할게요.”

그렇게 디저트로 나는 브라우니를, 알리샤는 컵케이크를 주문했고 주문한 디저트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오늘 같이 갔던 복권 제작 공장에서의 일을 얘기했다. 알리샤는 그녀가 자기 일을 보고 있을 동안 내가 뭘 했는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때 저는 인터넷 검색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검색이요? 뭘 찾아봤는데요?”

“제가 미술에 관심이 좀 있어서....”

나는 알리샤를 이용해 먹기 전 미리 떡밥을 좀 깔았다. 복권국에서 일하는 알리샤와 미술은 사실 접점이 없다. 하지만 한 다리 건너서 그녀의 지인인 리암은 아니다. 그는 미술계에서도 유명한 스위스 J 박물관의 부관장이었으니까.

“저 같은 경우 주로 19세기 미술에 관심을....대표적인 19세기 미술가들은 관례를 따르고 대중에 부합하는 부류와 스스로 선택한 고립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류로 나뉘는데....산업혁명과 새로운 중산층의 등장이 ‘예술’을 빙자한 값싸고 조잡한 상품을 생산해서....”

이럴 때 백준열의 그 쓸데없는 잡 지식이 도움이 됐다. 내 막힘없는 19세기 미술사에 대한 강론을 알리샤는 흥미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 사이 우리가 주문한 디저트가 나왔고, 먹지 않을 거처럼 굴었던 알리샤는 막상 나온 컵케이크를 내가 보는 앞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걸 보고 내가 웃으며 물었다.

“어째 식사가 시원찮았나 보군요?”

그러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뇨. 사실 배는 불러요. 메인 요리에 디저트까지 다 먹었으니까. 근데 이 컵케이크는 도저히 못 참겠네요.”

“하긴....케이크 배는 따로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한국에서 국룰이라는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말했는데....

“어머? 그런 말이 있었어요?”

당연히 그런 말이 미국에 있는 지야 나는 모르지. 하지만 이럴 때는 그냥 우기는 게 맞았다.

“그럼요. 저도 최근 파티에서 들은 핫한 얘기니까요.”

여기서 내가 말을 빼거나 얼버무리면 그건 내 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지금은 무조건 못 먹어도 Go 다.

“호호호호. 준열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아는 것도 많고.”

“아닙니다. 다 주워들은 거죠. 그런 식으로 보면 제가 귀는 참 밝은 편이로군요.”

나름 겸양을 떤 거다. 그 정도 눈치는 알리샤도 있었던지 싱긋 웃으며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저는 어려운 미술사 얘기보다는 아까 준열이 해 준 그 야한 농담 식 얘기가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그런 얘기 더 있으면 해줘요.”

“아아. 네. 뭐....”

나는 그게 알리샤의 본심인지부터 살폈고, 그녀 몸에 드리운 기운이 그녀가 진심으로 내게 말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좋습니다. 하죠. 하지만 이게 마지막입니다. 여기서 더 이런 농담을 하면 알리샤에게 제가 농담이나 잘하는 사람으로 비쳐 질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쩝. 그건 아닌데. 뭐 준열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하기 싫은 사람 억지로 등 떠미는 건, 저도 싫으니까요.”

알리샤는 그 말 후 어서 해보라는 듯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 * *

나는 한입 남은 디저트 브라우니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 먹었다. 그 다음 입가심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알리샤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그녀가 아예 테이블에 두 팔을 올리고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서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그걸 보고 나는 더는 뜸을 들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한 여자가 성당에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상담하고 있을 때였어요. ‘신부님. 제가 암컷 앵무새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요. 두 마리 전부 할 줄 아는 말이 한 가지 밖에 없지 뭐예요.’

‘그게 뭔데요?’ ‘안녕? 우리 섹시한데, 우리랑 떡 한 번 칠래? 에휴. 매번 이러거든요. 어떻게 고칠 수 없을까요?’ 그 말을 듣고 난 신부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저런! 내일 우리 집에 한 번 그 앵무새들을 데리고 와요. 마침 나도 수컷 앵무새 두 마리를 키우는데, 녀석들은 매일같이 성경을 낭송하고, 나랑 같이 기도를 올리거든요. 네 마리가 같이 있으면 더 이상 그런 천박한 말은 안하게 될 겁니다.’ 신부의 그 말에 여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면서 말했어요. ‘어머. 정말 그렇겠네요.’ 여자는 다음 날 바로 자신의 앵무새 두 마리와 함께 신부 집을 찾아갑니다. 근데 막상 가보니까 신부 집에 있는 수컷 앵무새 두 마리가 새장 안에 나란히 앉아서 묵주를 들고 기도중이지 뭡니까? 이때 여자는 자신의 앵무새들을 수컷 앵무새 두 마리가 있는 새장에 넣었고 아니나 다를까? 암컷 앵무새들은 곧바로 떠들었어요. ‘안녕 우리 섹시한데, 우리랑 떡 한번 칠래?’ 그러자 수컷 앵무새가 고개를 돌려 다른 수컷 앵무새를 보고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이제 성경 치워 병신아.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라고 말입니다.“

“크크크크....크하하하하!”

알리샤는 내 말을 귀를 쫑긋 세우고 듣다가 내 얘기가 끝나자 바로 웃음을 참지 않고 크게 웃었다. 앞서처럼 아주 대 놓고 목젖이 보이게 말이다. 그 때문에 주위 식사 중인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고 나는 알리샤를 대신해서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알리샤도 웃음의 톤을 좀 낮췄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몇 분 더 이어졌다.

“아이고 배야. 진짜....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예요?”

알리샤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그제야 진정이 된 듯 나를 보고 물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상기 된 얼굴을 마주쳐다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어디 클럽에서 들은 얘기 같은 데....누군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네요.”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재미있으면 됐죠. 뭐. 근데....이제 뭐 할 거예요?”

알리샤가 또 다시 대 놓고 노골적으로 나를 유혹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딱 봐도 내가 뭘 하든 나와 같이 있고 싶다는 티를 아주 대 놓고 나에게 내 보이고 있었다. 뭐 이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녀와 빠구리를 하면 할수록 나는 그만큼 많은 개지수를 획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뭐하긴요. 룸에 들어가서 쉬어야죠.”

“룸?”

“네. 여기 호텔에 방을 잡았거든요.”

내가 이곳 힐튼 호텔에 방을 잡았다는 말에 알리샤가 반짝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입 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당신 방에서 차 한 잔 마시며 더 얘기를 나누고 싶네요.”

알리샤의 그 말이 내게는 너와 더 섹스를 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뭐 그녀가 그런 의미로 내게 한 말이니 내게 그렇게 들리는 게 당연한 거겠지만....

“그럴까요? 그럼 일어나시죠.”

나는 흔쾌히 알리샤의 요청을 받아드렸고 우리는 같이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리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때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은 눈치껏 알아서 빠졌다. 해서 나와 알리샤, 그리고 보안 회사 직원 두 명 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열 스위트 룸이 있는 최고층으로 올라갔고, 당연히 두 보안 회사 직원은 내가 예약한 로열 스위트 룸의 입구를 지키고, 나와 알리샤 만 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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