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710화 (70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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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쥬리는 외출 준비를 끝낸 상태의 리암을 보고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어어. 저녁 약속이 있어서. 쥬리도 알잖아? 알리샤하고....”

“아아....”

리암의 수행 비서인 쥬리도 오늘 저녁에 리암이 자신의 옛 연인 알리샤와 이곳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한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기껏 리암과 사랑을 나누고 그가 그녀 몸에 남긴 사랑의 흔적을 욕실에서 막 지우고 나왔는데, 그가 딴 여자 만나러 나가려는 지금 상황이 쥬리로서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잔뜩 굳은 얼굴의 쥬리. 하지만 리암은 그런 그녀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룸서비스로....맛있는 거 시켜 먹어.”

그 말 후 뒤돌아서는 리암을 보고 쥬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쥬리는 출입문으로 향해 걸어가는 리암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고작 수행 비서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그녀가 리암의 오피스 커플 사이인 건 맞았다. 그건 스위스의 그들 직장 직원들도 다들 인정한 바이니까. 그러나 그들 사이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들이 여타 다른 커플처럼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아니라, 엄밀히 따져 계약 커플이었던 것.

왜냐하면 둘 사이에 엄연히 계약서가 존재했으니까. 당연히 법적인 효과가 있는....

그 계약서에 따라 쥬리는 리암을 어떤 식으로든 구속할 수 없었다. 그 대가로 쥬리는 리암에게 고액의 연봉을 받기로 되어 있었고 말이다.

그랬기에 아까 쥬리도 리암과 섹스 직후, 상대는 신경쓰지 않고 자기 멋대로 욕실로 가 버릴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 계약서 때문에 리암도 지금처럼 쥬리의 마음이 어떨지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저렇게 그녀를 여기 두고 냉정하게 나가 버릴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쳇....”

리암이 나가며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쥬리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내서는 거칠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곤 그녀 몸을 두르고 있던 가운도 벗어서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리암이 나가면서 이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그녀가 굳이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그렇게 알몸 상태로 쥬리는 화장대로 가서 먼저 젖은 자신의 머리부터 드라이기로 말렸다.

그 다음 가볍게 얼굴 화장을 하고 몸을 일으켜서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알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꼼꼼히 살폈다.

“.....좋아.”

그리곤 만족스런 얼굴로 짧게 감상평을 내뱉었다. 그 정도로 쥬리의 나신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슴과 엉덩이 둘 다 처짐 없이 탄실하고 가는 허리와 늘씬한 두 다리는 그녀의 몸매를 늘씬해 보이게 만들었다. 어디 하나 단점을 찾아 볼 수 없는 완벽한 바디 라인이었다.

이러니 미인들이 제법 많은 스위스에서도 리암이 딴 눈 팔지 않고 늘 그녀만 찾았다. 그건 이곳 미국에와서도 마찬가지였고.

“알리샤....”

제법 미인이긴 했지만 쥬리와 달리 30대의 나이인 그녀는, 지금 거울에 비치고 있는 쥬리처럼 아름다운 얼굴에다가 싱싱하고 탄력 넘치는 몸을 소유하지 못했다. 고로 리암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리암의 옛 추억까지 쥬리가 어쩔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결국 남자라는 동물은 더 아름다운 암컷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었고, 그 암컷은 알리샤가 아닌 자신이었다.

“호호호호호....”

결국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을 알기에 쥬리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밤을 위해 준비한 야한 검은 레이스 속옷을 꺼내 입고, 리암이 제일 좋아하는 레드 슬립 롱 드레스를 걸쳤다.

“뭐 먹을까?”

그리곤 이곳 힐튼 호텔에서 VIP고객을 위해 제공한 특식 메뉴판을 펼쳐 저녁으로 먹을 걸 고르고 프런트에 전화해서 룸서비스로 그 음식들을 시켰다.

어차피 이곳 레스토랑에서 리암과 알리샤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셰프가 방금 쥬리가 주문한 음식도 만들 터였다. 그러니 쥬리는 리암과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 뿐 어차피 같은 음식을 먹는 셈이었다.

그걸 위안 삼아 쥬리는 룸서비스로 온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많이 먹었다. 좀 있다가 돌아 온 리암이 또 그녀를 덮칠지 모르니, 미리 많이 먹어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다.

* * *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컬럼비아의 힐튼 호텔 최상층의 로열 스위트 룸으로 올라 갈 때였다.

내 머릿속을 은은하게 울리는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

-발정 난 서양 암캐 알리샤라가 근처에 있습니다. 미션은 종료 되었지만 견신이 추가 미션을 냅니다. 오늘 자정까지 발정 난 암캐를 만족시키고, 개지수의 포인트를 획득하세요. 유의 사항은 똑같습니다. 암캐와 섹스 시 꼭 보지 안에 사정을 하셔야 하고 이때 암캐가 임신하는 일은 없으며 교미 특성이 개화 되었을 때, 그 영향으로 한번 사정할 때마다 개지수 +10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단 지금부터는 입 싸 시도 암캐가 절정시 사정한 걸로 인정합니다.)

나는 이 소리를 또 들을 줄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헛웃음이 났다. 근데 시스템의 말을 듣다보니 깨달았다. 이건 더 꿀 빨라고 견신이 일부러 내게 추가 미션을 내 준 거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의 웃음은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으로 바뀌었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웃어대는 나를 김종훈을 비롯한 보안 회사 바이널리(Binarly)의 커트 지부장 이하 직원들이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던 말든 나는 기분 좋게 다 웃고 나서 그들에게 말했다.

“배고픈데 식사 먼저 합시다.”

“네? 하지만 당장 방부터 확인하시는 게....”

그런 내게 김종훈이 혹여 예약한 방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으니 방 상태부터 확인하자고 말해 왔다. 하긴 엘리베이터 타고 그 예약한 방에 있는 층에 곧 도착할 텐데 그 방을 확인하는 게 더 합리적인....

“로열 스위트 룸인데 뭐. 됐어.”

나는 그런 김종훈의 우려를 가볍게 일축해 버렸다.

-딩동! 27층입니다.

그 사이 우리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리는 사람 없이 우리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우르르 1층에서 내려서 거기 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움직였다.

‘저기 있군.’

견신 시스템의 말대로 알리샤는 이곳 호텔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에 웬 백인 남자와 같이 앉아 있었다.

둘 다 막 식사를 시작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 중인 그들을 보고 나는 일단 레스토랑의 비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대충 음식을 주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시게요?”

그런 나를 김종훈이 제지하고 나섰다.

“저기 아는 사람이 있어서 좀 만나고 올 테니 음식 나오면 먼저 식사들 해.”

저녁 역시 마찬가지로 나는 김종훈을 비롯해서 보안 회사 바이널리(Binarly)의 지부장 커트 이하 직원들도 전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배려 해 주었다.

괜찮다는 데 김종훈은 끝까지 나를 따라 왔고, 내가 만날 사람이 다름 아닌 알리샤란 걸 알게 되자, 그가 얼굴을 팍 찌푸리더니 그제야 뒤돌아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김종훈을 보고 피식 웃은 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와인 잔을 기울이고 있는 알리샤에게로 쭉 걸어갔다.

“알리샤?”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알리샤가 나를 돌아봤고, 이내 깜짝 놀라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말했다.

“준열?”

나는 그런 그녀에게 친근한 얼굴로 다가갔고, 그런 나를 알리샤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인 남자가 살짝 불쾌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알리샤에게 물었다.

“누구야?”

“아아. 이쪽은 내....친구 준열. 그리고 여긴 내 친구 오빠 리암.”

알리샤는 딴에는 생각해서 두 남자를 각자 소개해줬는데 어째 나도 그렇고 리암이라는 남자 역시 그 소개가 그리 마음에 드는 거 같지 않았다.

‘가만....리암?’

그때였다. 내 머릿속에 너무도 익숙한 이름 하나가 떠올랐고 그 이름과 매칭 되는 얼굴이 동시에 생각났다. 근데 그 얼굴과 지금 알리샤와 같이 있는 백인 남자의 얼굴이 완벽히 일치했다.

‘리암 록펠러....스위스 J 박물관의 부관장.'

내가 오늘 밤 어떡하든 만나려 하고 있었던 그 록펠러 가문의 일원인 그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 * *

리암은 알리샤의 어쭙잖은 소개에 눈살을 찌푸렸다. 알리샤가 자신의 여동생인 재키의 친구인 건 맞았다. 하지만 그 둘은 친구라기보다 원수에 가까웠다. 만나기만 하면 하도 싸워대니 말이다. 그러니 알리샤 지금 소개는 리암이 봤을 때 틀렸다. 순간 리암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친구? 알리샤가 동양인, 그것도 남자 친구가 있다고?’

알리샤는 인종주의자는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자는 더더욱 아니고. 하지만 그녀의 집안 특성 상 동양인을 친구로 삼는다는 게, 그녀를 오랫동안 알아온 리암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리암은 경솔하게 굴지 않았다. 그도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만큼 노련해지고 진중해진 그는 일단 상대가 누군 지부터 확실하기 파악하기 위해 알리샤에게 좀 더 자세히 물었다.

“이름이 주여르라고? 일본인? 중국인? 아니면 베트남?”

“아뇨. 한국 사람입니다.”

근데 대답은 알리샤가 아닌 그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아아. 사우스 코리아. 반가워요. 알리샤의 전 남친 리암이라고 합니다.”

리암은 알리샤가 잘못 소개한 자신을 눈앞의 동양인 남자에게 정정해서 말했다. 그랬더니....

“네. 리암씨. 반갑습니다. 저는 알리샤의 현 남친인 준열이라고 합니다.”

“....”

리암처럼 동양인 남자 역시 자신을 잘못 소개한 알리샤의 말을 정정해서 말했던 것이다.

시건방진 동양인 남자가 제대로 리암에게 카운터펀치를 먹였고, 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던 리암.

그가 피식 웃으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알리샤를 쳐다보며, 마치 그녀보고 해명하라는 듯 말했다.

“현 남친이라는 데?”

그러자 알리샤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순순히 수긍하며 대답했다.

“뭐 맞는 거 같아. 지금 내게 남자는....준열 뿐이니까.”

“허얼....”

알리샤의 대답에 리암이 기가 차 할 때였다. 그들 앞에 서 있던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좀 앉을 수 있을까요?”

은근슬쩍 그들 사이에 같이 끼겠다는 얘기. 당연히 알리샤에게 있어 백준열이 그들 테이블에 끼는 건 실례가 아닐 거다. 그가 진짜 그녀의 남친이 맞다면 말이다. 하지만 리암에게는 아니었다.

“실례니까 그냥 서 있어요.”

알리샤는 몰라도 리암은 동양인 남자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테이블에 동양인 남자를 앉힐 생각도 없었고. 그런 냉정한 리암의 말에 알리샤가 얼굴을 찌푸렸다가 반대로 동양인 남친에게 최대한 웃으며 말했다.

“준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여기 호텔에 새로 방을 잡았습니다.”

“아아. 숙소를 옮긴 거로군요. 그럼 여기는....”

“네. 저녁 먹으러 왔습니다.”

백준열은 그저 저녁 먹으러 여기 왔다가 우연히 알리샤를 보고 반가워 여기 온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일행이 그런 백준열에게 결례를 저지른 것이다.

리암 입장에서는 그게 결례가 아닐 수 있었지만 알리샤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녀 때문에 백준열이 리암에게 모욕을 당한 셈이니까.

“미안해요. 준열.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그보다 여기 끼긴 어려울 거 같으니 전 이만 제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백준열은 너는 절대 이 테이블에 나와 같이 앉을 수 없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리암을 씁쓸한 얼굴로 쳐다보고는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알리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를 붙잡지 못했다. 대신 날선 목소리로 리암에게 말했다.

“리암 오빠. 사람이 왜 그래?”

“뭐?”

“어떻게 나이를 먹어도 똑같아? 그 좁아터진 속은?”

“뭐, 뭐라고? 속이 좁아? 너 말 다했어?”

“다했다. 어쩔 건데? 왜? 그때처럼 나 또 때리려고?”

“....”

알리샤가 독기 어린 얼굴로 어디 또 때려 보라며 얼굴을 디밀자 순간 리암이 움찔했다.

그럴게 알리샤와 연인 관계가 깨진 것도 다 그가 알리샤의 뺨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얘긴가? 만약 그 사실을 그의 가족들이 알았다면, 특히 록펠러가문의 가주인 할아버지가 알았다면, 그는 제대로 된 상속도 받지 못했을 터였다. 상속에서 철저히 배제 당했을 테니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아찔해진다.

당시 리암은 알리샤 앞에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삭삭 빌었고, 그녀와 헤어지는 걸 결국 막지 못했다. 당시는 그녀 입을 막기 급급했으니까. 알리샤는 그래도 사랑했던 그를 위해 입을 다물어 주었고, 그건 리암에게 있어 커다란 빚이었다.

“미, 미안. 내가 좀 흥분했어.”

“하아. 아냐. 나도 잘한 거 없어. 오빠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했으니까.”

알리샤의 말처럼 리암은 속 좁다(be narrow-minded)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다. 왜냐하면 록펠러가문의 가주이자 리암의 조부 되는 마이어 록펠러가 가족들 앞에서 리암을 보고 그 표현을 썼던 것이다.

당시 사촌들과 어울려 놀고 있던 리암에게 그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는 그저 사촌들에게 자기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속 좁게 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 후 록펠러 가문의 가족들은 리암 만 보면 속 좁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그로 인해 리암은 그 표현에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이어 록펠러가 가족들에게 앞으로 리암에게 속 좁다는 말을 쓰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이미 리암의 마음에 크게 스크래치가 난 뒤였다.

당연히 마음에 난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리암의 심리적 콤플렉스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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