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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마약 아지트를 찾는 약쟁이들에게 있어 한스는 그리 친절한 인물은 아니었다.
특히 약쟁이들이 한스에 대해 안 좋게 보는 건, 그가 아지트의 진짜 주인인 드레이커와 약쟁이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약쟁이들 입에서 좋지 않은 말들이 나왔던 것이다.
그건 엊그제 제이크 역시 직접 경험해 봤지 않았던가? 드레이커를 만나기 전, 그리고 만나고 나서 한스는 정말 차갑게 제이크를 대했다.
그게 드레이커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 몰라도, 제이크는 자신이 드레이커라면 한스 같은 냉혈한을 곁에 두지 않을 거란 생각을 몰래 했었다.
그랬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았던 한스가 갑자기 친절하게 굴며 다가와 자신의 어깨에 팔까지 둘렀다.
“이봐. 제이크. 우리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눌까?”
누가 보면 한스가 동성애자, 게이인 줄 알겠다. 그 정도로 한스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제이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 그런 한스의 반응에 제이크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 아니. 나는 약만 사가면 되는데....”
제이크는 한스의 영 익숙치 않은 반응에 오히려 겁을 집어 먹은 채, 가급적이면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스의 힘과 웃고는 있지만 거의 협박조에 가까운 은근한 말이 제이크의 발걸음을 아지트 안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약이야 내가 그냥 줄게. 그보다....너 오늘 컬럼비아에 갔더라?”
“그, 그건....”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저기 들어가자.”
아지트 안에서도 마약 조직원들이 휴게실로 쓰는 방으로 한스는 제이크를 이끌었다. 그 방 안으로 들어가자 담배 연기와 섞인 마약 특유의 냄새가 훅하니 제이크의 코를 찔러왔다. 그리고....
“다 나가.”
그 방에 있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 즉 조직원들과 그들과 관계 있는 자들이 한스의 말에 우르르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갔다. 그 중에는 마약쟁이 여자와 떡치고 있던 마약 조직원도 있었는데, 누구도 감히 한스 앞에서 불만 같은 걸 티내지 못했다. 그 만큼 마약 조직원들도 한스를 무서워하는 게 느껴졌다.
“이리로....”
그때 한스와 같이 방안에 들어 와 있던 제이크. 잔뜩 얼어 있는 그를 한스가 비어 있는 소파에 억지로 앉혔다. 그리고 근처 철제 의자 하나를 들고 제이크 맞은편에 앉으며 한스가 말했다.
“담배 줄까?”
“아, 아니. 괜찮아.”
지금의 제이크는 한스가 권하는 건 그게 설혹 마약이라도 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스가 주는 마약을 했다간 마약에 체할 거 같아서 말이다.
한스는 두 번 제이크에게 권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자기 입에 물고 거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그리곤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연기를 맞은편에 어리바리한 얼굴로 앉아 있는 제이크의 얼굴에 내뿜었다.
그 연기를 직통으로 맞은 제이크가 질끈 두 눈을 감으며 파르르 몸을 떨 때 한스의 목소리가 제이크의 귀에 들려왔다.
“복권 일등 당첨 됐다며?”
“....”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이크가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때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 와.”
마치 누가 오기로 되어 있었든 듯 한스가 큰소리로 외치자, 방문이 열리며 조직원 하나가 작은 반짝이는 철제 케이스 하나를 들고 휴게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 * *
조직원은 말없이 그 철제 케이스를 한스에게 건네고는 그대로 뒤돌아 휴게실을 나갔다.
한스는 그렇게 받은 철제 케이스를 아무렇게나 옆에 빈 의자 위에 내 던져두고는, 다시 시선을 제이크에게 고정시키며 말했다.
“당첨금 어디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이크도 눈치를 차렸다. 지금 한스가 왜 이러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미 빈털터리인 제이크. 그는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어 보이는 한스에게, 두 손과 함께 머리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한스.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나한테 당첨금은 없어. 아니 애초에 받은 게 6백 몇 십 달러 뿐인데 무슨....”
“뭐?”
제이크의 두서없는 말에 한스가 팍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엇보다 끝에 6백 달러 운운한 제이크에 한스가 제대로 빡 친 거 같았다. 때문에 얼굴이 새하얘진 제이크가 다급히 말했다.
“진, 진짜야. 나 6백 몇 십 달러 밖에 못 받았어. 나한테 벌금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을 줄 몰랐다고. 못 믿겠으면 복권국에 연락 해 봐.”
“....”
한스는 눈앞에 약쟁이의 대답에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럴 게 자신이 놈에게 한 질문은 별 게 아니었다. 당첨금으로 얼마를 받았는지 그 금액만 명확히 말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놈은 계속 딴 소리만 지껄여대고 있었다.
한스는 당연히 제이크가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놈이 진실만을 말하게 만들어 주면 됐다.
스윽!
한스가 좀 전 옆에 의자에 던져 둔 철제 케이스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철제 케이스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린 뒤 그 케이스 뚜껑을 열었다.
달칵!
그 안에는 약병과 주사기가 들어 있었고 한스는 한 손에는 약병을, 다른 손에는 주사기를 챙겨 들었다.
푹!
그리곤 앰플형 약병에 주사기를 꽂으며 제이크에게 물었다.
“신종 마약, 엑스타시 맛은 너도 봤지?”
“....”
한스의 물음에 제이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한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게 엑스타시야. 잘 정제 시킨 물약이지. 이거 한 방 맞으면....바로 뿅 가.”
그 말을 하면서 음흉하게 웃음을 짓는 한스. 하지만 제이크는 그런 한스는 거들떠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온통 한스의 손에 들려 있는 주사기에 꽂혀 있었다.
“팔?”
그런 제이크에게 충분히 주사기에 약액을 담은 한스가 말했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팔을 한스 앞으로 서슴없이 내 놓는 제이크.
한스는 누가 마약 조직원 아니랄까? 익숙한 손놀림으로 딱히 제이크의 팔에 혈관을 찾느라 철제 케이스 안에 들어 있던 노란 고무줄도 쓰지 않고, 제이크의 팔뚝에 능숙하게 주사기 바늘을 꽂았다. 그리고....
한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주사기의 주사액이 서서히 제이크의 팔뚝의 혈관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 * *
확실히 흡입하는 것에 비해 직접적으로 혈관에 주입 된 마약의 효과가 빨랐다.
“아아....으헤헤....으흐흐흐흐....”
주사기를 제이크의 팔뚝에서 빼내자 바로 그 약 효과가 발휘 되는 듯 제이크의 잔뜩 겁먹어 굳어 있던 얼굴이 스르르 펴지면서, 환희에 사로잡혀 헤벌쭉 입을 벌리고 연신 이상한 소리를 흘려댔다. 그걸 보고 한스기 피식거리며 말했다.
“약효 하나는 확실하네.”
이번에 새로 유통시키고 있는 신종 마약 엑스타시. 앞서 팔아오던 마약에 비해 그 효과가 너무 빨라 조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마약이 효과가 좋으면 잘 팔릴 테니 마약 조직 입장에서는 좋은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약은 철저히 음지에서 팔리는 불법 약물이다. 근데 그게 많이 팔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도 정도껏이지 마약이 널리 팔리는 데 그걸 가만히 손 놓고 지켜 볼 정부는 어디도 없었다. 그 즉시 마약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질 것이고, 마약 조직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갈 건 뻔했다. 그리고 그 잡혀 들어간 마약 조직원들을 대신할 조직원을, 한스 같은 조직의 간부들이 다시 뽑아 교육을 시켜야 했고 말이다.
그 짓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한스였다. 두목인 드레이커야 말만 하면 그만이지만 그 밑에 간부들은 거의 쉬지도 못하고 거의 일 년 가까이를 좆뱅이 쳐야 했다.
돈이고 뭐고 한스는 그런 짓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한스 말고 다른 조직 간부들도 마찬가지니, 신종 마약의 판매에 대해 다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아. 이제 말해 봐. 당첨금에 대해서.”
한스는 팔짱을 끼고 느긋이 등을 철제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아도 약에 취한 제이크가 술술 다 얘기 할 것을 한스는 확신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에헤헤헤. 당첨금? 마더 펔(Fuck)!”
한데 한스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건 약에 취한 제이크가 제대로 빡 쳐서 욕설부터 내 뱉었고, 그 뒤로 이어진 녀석의 말은 한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고 끼고 있던 팔짱도 간단히 풀어버렸다.
“뭐, 뭐라고? 어떤 미친놈이 같은 번호의 복권을 만장이나 사?”
제이크를 통해서 한스는 그가 수중에 6백 몇 십 달러 밖에 당첨금으로 받지 못한 사연을 전부 듣고서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으헤헤헤헤....”
하지만 한스 눈에 마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제이크는 절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좀 전에 제이크가 지껄인 말들이 전부 다 사실이란 얘긴데....
한스는 바로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프랭키? 나야. 지금 아지트 휴게실로 좀 와.”
잠시 후 한스 앞에 오늘 하루 종일 제이크의 뒤를 쫓아다녔던 조직원 프랭키가 나타났다.
“찾으셨습니까?”
“그래. 미안한데 지금 컬럼비아로 바로 가 줘야겠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프랭키가 두 눈을 부릅 뜨자 한스가 턱짓으로 제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제대로 헛다리짚은 모양이다. 저 새끼 말고 당첨금 16억 달러를 챙긴 놈이 따로 있다네. 동양인이라니 컬럼비아가서 뒤지면 금방 찾아 낼 거야.”
정말이지 별거 아닌 거처럼 말하는 한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프랭키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금이 몇 신데 컬럼비아로 다시 가란 말인가? 거기다가 컬럼비아를 뒤져서 그 당첨된 동양인을 찾는 게 한스의 저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컬럼비아에 사는 동양인만 해도 족히 수천 명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스 앞에서 프랭키는 감히 부정적인 말을 내뱉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 줘.”
아까처럼 한스가 비릿하게 웃는 얼굴로 프랭키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런 그에게 프랭키가 나름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저....지원을 좀 받았으면 하는데....”
“지원?”
프랭키의 지원이라는 말에 한스가 팍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프랭키도 이왕 힘겹게 꺼낸 말, 자기 할 말을 마저 다 했다.
“아무래도 저 혼자보다는 조직원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좀 더 빨리 그 동양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프랭키의 말이 일견 옳았다 싶었던지 한스가 말했다.
“내일 쉬는 애들 데리고 가.”
“네. 고맙습니다.”
내일 쉴 예정인, 그러니까 오늘 자정 무렵 이곳 아지트에서 근무 교대할 조직원들을 데리고 가도 좋다는 한스의 대답을 들은 프랭키. 그는 그 조직원들을 전부 다 컬럼비아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컬럼비아로 가지 않고 기다렸다. 자정이 될 때까지.
당연히 한스는 프랭키가 그들 중 일부, 많아야 세 네 명 정도 데리고 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스 입장에서야 15명이나 되는 그 조직원들을 프랭키가 다 데리고 컬럼비아로 갈 거라고는 상식적으로 생각지 못했으니까.
* * *
사람이라면 자기 할 일을 끝냈는데 누가 또 다른 일을 시킨다면 딱 열 받는다.
그건 세인트루이스에서 악명 높은 드레이커 마약 조직의 조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우리가 왜 너를 따라 가?”
자정에 근무 교대하고 막 탈의실에서 퇴근 준비 중이던 마약 조직원들. 그런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나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저 프랭키를 향해, 조직원들은 당장이라도 녀석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줄 기세로 쏘아 봤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도 프랭키는 당당했다.
“한스님의 지시다.”
“한스님이....”
“젠장....”
하지만 프랭키의 입에서 한스라는 이름이 거론 되자, 그를 향하던 마약 조직원들의 살기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다들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주변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 틈에 프랭키가 말했다.
“멀리 가야하니까 차 준비하고 기름도 꽉 채워.”
“....”
프랭키의 그 말에 마약 조직원들의 분위기가 다시 살벌하게 변했다. 그들도 그제야 프랭키가 하려는 일이 세인트루이스 안에서 처리할 일이 아님을 간파한 것이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데?”
마약 조직원들을 대표해서 한 조직원이 프랭키에게 물었다. 그러자 프랭키가 바로 대답했다.
“컬럼비아!”
프랭키의 컬럼비아라는 말에 마약 조직원들은 내일 자신들의 쉬는 날이 통째 날아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이의나 불만 따위는 재기하지 못했다. 그랬다가 그 얘기를 한스가 듣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말에 마약 조직원들이 다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프랭키는 잰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
쿠쾅쾅쾅!
프랭키가 나온 뒤 탈의실 안에서 살벌한 욕설과 함께 뭔가를 때려 부수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프랭키는 피식 거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유히 아지트 밖으로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