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98화 (69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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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호텔 직원들이 제일 눈치 보는 사람은 당연히 호텔 총 지배인이다. 하지만 그 총 지배인은 일반 직원들이 보기에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사람. 해서 호텔에서 실무 진으로서는 최고 위치에 있는 각부서 지배인이, 호텔 직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파워가 있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상하 수직적인 관계 덕분인지 몰라도 일반 호텔 직원들도 자기들 밑에 계약직, 혹은 기타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해서 갑질 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호텔 시설 관리부서의 토마스는 그런 호텔에서 따지고 보면 을乙에 불과한 호텔 직원에게 오늘 오전에 제대로 갑질을 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 호텔 내에서 어디다 하소연 하거나 불만을 토로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규직인 그 호텔 직원 보다 못한 호텔에서는 병丙의 위치에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세탁, 건조실의 로건에게 연락이 왔다.

“뭐? 제이크가 아직 안 와?”

토마스는 속으로 이거다 싶었다. 호텔 직원에게 당한 갑질을 자신도 제이크라는 호텔에서 정丁의 위치에 있는, 그보다 낮은 놈에게 풀 수 있을 거 같았던 것이다.

로건과 제이크는 일종의 임시직이었다. 세탁, 건조일이 워낙 힘들다보니 이직률이 워낙 높았고, 그 때문에 호텔 측에서도 그들을 계약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 제이크란 놈은 약쟁이였다.

당연히 토마스도 약쟁이를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약쟁이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세탁, 건조실에서 일할 직원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해서 토마스는 제이크에게 직원 카드까지 만들어 주면서, 그가 가급적 오래 일할 수 있게 나름 배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약쟁이가 그런 은혜 따윌 알겠는가? 딱히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한데 토마스가 생각한 거보다 제이크는 더 성실하게 일 해 주었고 그로인해 세탁, 건조실에서 일할 직원을 구하느라 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좋았다.

한데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제이크가 오후 근무 시간인 1시가 넘어서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제이크의 직속상관인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말이다.

“어디....”

토마스는 혹시 몰라 자신의 핸드폰을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제이크에게 오전 중 걸려 온 전화는 없었다. 그 즉시 토마스는 관리 사무실에 전화해서 세탁, 건조실에서 일하는 제이크에게 걸려 온 전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없다고요? 알았습니다.”

토마스는 모든 정황을 다 살핀 후 제이크가 무단결근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제이크가 그의 전화마저 받지 않는 거였다. 실제 세탁, 건조실에서 일하다 관둔 사람들 중 절반이, 그런 식으로 잠수를 타 버려서 토마스를 빡 치게 만들었었다.

다행히 제이크는 토마스의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쉰 토마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제이크에 대한 갑질의 말들이었다. 그가 오전에 호텔 직원에게 당한 거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제이크의 약점을 후벼 팠다. 토마스도 가급적이면 제이크에게 약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한데 오늘 제대로 열 받은 토마스는 이성을 잃었고 해선 안 될 말까지 입에 담아버렸다. 그랬더니....

“뭐, 뭐라고?”

제이크가 토마스에게 버럭 욕을 했다. 그리곤 호텔을 관두겠다고 말했다.

“잠, 잠깐만....”

그제야 토마스가 급해졌다. 왜냐하면 제이크가 이렇게 관두면 좆 되는 건 그의 직속상관인 토마스 본인이었으니까.

뚜뚜뚜뚜뚜....

하지만 제이크는 토마스가 잠깐 기다려 보라는 말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토마스는 바로 제이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나 제이크는 더 이상 토마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놈에 주둥이....”

토마스는 후회를 했지만 역시 한 번 그가 내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 사실을 위에 보고하자 오전에 그를 닦달했던 호텔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토마스를 쪼아댔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인 토마스는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호텔에 남아서 세탁, 건조실에서 일할 직원을 구한다는 게시물을 여러 구직 사이트에 올려야 했다.

그리고 제이크에게 일을 몰아주고 혼자 널널하게 일했던 로건. 그는 급하게 보충 된 용역에서 나온 게을러터진 사람 덕분에 평소보다 몇 배는 힘들게 일을 해야만 했다.

용역에서 나온 사람과 달리 호텔에서 주급을 받는 로건으로서는, 맡은 바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기에 평소 제이크에게 했던 대로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 * *

제이크는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안 그래도 호텔가서 그만두겠다고 얘기하려 했는데 자신의 직속상관인 토마스가 이렇게 전화해서, 그에게 관두겠다고 말 할 수 있어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토마스의 약쟁이란 말에 빡 쳐서, 그에게 욕을 하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지만. 뭐 어떤 식이 됐던 호텔을 그만두기만 하면 됐다. 어차피 호텔에서 이번 주의 주급을 주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깟 푼돈 따위....”

이제 곧 억만 장자가 될 자신에게 수십 달러쯤이야....

“어디 보자.”

제이크는 자신을 억만 장자로 만들어 줄 당첨 복권을 숨겨 둔 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에게 남긴 유품 중 두꺼운 성경책을 책장에서 빼내서는, 그 성경책의 북 커버를 벗겨냈다. 그러자 북 커버 안에서 복권 한 장이 나왔다. 그 복권을 소중히 자신의 지갑 속에 넣고 그 지갑을 품속에 고이간직한 채, 제이크는 차를 렌트해서 주 복권국이 있는 컬럼비아로 향했다.

당연히 차로 이동 중 휴게소 따윈 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휴게소는 마약 거래 외에도 폭력, 강간, 성매매 같은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기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또 경찰이 오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제이크다 보니 그는 운전할 때 이미 화장실을 다녀왔고, 차에서도 내내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컬럼비아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었고, 한 모텔에서 잠을 잔 그는 컬럼비아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도 넣고, 거기 딸린 음식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도심의 주유소는 당연히 안전한 곳이었고, 거기 음식점에서 식사 후 제이크는 미주리주 복권국에 전화를 걸었다.

“네. 복권 당첨잡니다. 네. 그 사람 맞고요. 네. 전에 말한 대로 익명 수령을 하고 싶어서요. 네. 네. 그러죠. 그럼 30분 뒤에 거기서 보도록 하죠.”

사실 제이크는 복권 당첨이 되자 복권국에 전화를 했었다. 그러니까 복권국에 미리 당첨자 신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노출 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었고. 대신 당첨자가 있다는 건 밝혀도 좋다고 밝혔다. 더불어 자신이 복권국에 갔을 때 자신의 신변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었고.

“자아. 가자. 제이크. 넌 오늘부터 억만 장자다.”

제이크는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 거린 뒤, 주차 해 놓은 차로 가서 그 차를 몰고 미주리주 복권국이 있는 컬럼비아 번화가 시내로 진입해 들어갔다.

“저기군.”

컬럼비아는 세인트루이스와 달리 높은 건물이 몇 개 없었다. 하지만 그 몇 개 안되는 높은 건물 중 한 곳에 미주리주의 복권국이 있었고, 제이크는 그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갔다.

오전이라 지하주차장의 1층은 아직 다 차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크는 지하 1층을 지나 지하 2층으로, 또 거기서 지하 3층으로 쭉 내려갔다. 그리고 지하 3층의 엘리베이터 실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아갔고, 거기에 무장한 경호인력이 대기 중이었다.

제이크는 그쪽으로 곧장 차를 몰아갔고 거기 경호원들의 저지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경호원 중 한명이 운전석으로 다가와서 차창을 두드렸다. 제이크는 곧장 차창을 내렸다. 그러자 그 경호원이 물었다.

“제이크씨?”

“네.”

“복권국 보안 1팀장인 더스틴이라고 합니다. 복권 당첨 축하드립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럼. 내리실까요?”

제이크는 차를 정차시킨 채 더스틴이 열어주는 운전석 차문 밖으로 내렸다. 그러자 즉시 다른 경호원이 제이크의 차에 타서 그 차를 근처 비어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시켰고, 그 사이 더스틴의 안내를 받으며 제이크는 대기 중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부푼 가슴으로 복권 당첨금을 수령하러 복권국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 * *

복권국 VIP실 안. 말이 VIP실이지 그곳은 사실상 복권 당첨자가 잠깐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혼자 융성한 대접을 받고 있던 제이크. 하지만 그 대접과는 달리 업무처리는 형편없었다.

그가 복권국에 온지 30분이나 지났건만 아직 복권 수령과 관련 된 담당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두 명이 VIP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젊은 여자고 또 한 명은 중년의 남자로 누가 봐도 남자가 중역이고, 여자는 그 비서처럼 보였다. 제이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젊은 여자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능력까지 갖춘 경우는 미국에서 그리 흔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미주리주 복권국 수퍼 바이저 알리샤에요. 여기는 매니저 앤서니고요.”

“네. 뭐....”

사실 예상 밖이었던지라 당혹하긴 했지만 제이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여자가 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나야 수령금만 받아 가면 그만이니....’

사실 제이크는 수퍼 바이저가 뭔지 몰랐다. 단지 직함에 수퍼가 붙었으니 복권국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을 거란 거 정도는 은연 중 눈치 까고 있었다. 뭐 어째든 여자 지위가 높던 말든 관계없이 제이크는 친절하게 자신들을 소개한 두 사람들에게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빨리 당첨금이나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절차에 따라서 당첨 복권부터 보여주시겠습니까?”

“여기....”

그 말에 제이크는 미리 지갑에서 꺼내 놓은 당첨 복권을 자신의 수퍼 바이저라 소개한 알리샤에게 건넸다.

그렇게 제이크로부터 당첨 복권을 받은 알리샤는 우선 자기 눈으로 복권의 실물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복권을 뒤집어 본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복권에 사인을 해 두셨군요. 잘 하셨어요.”

그 칭찬 후 그녀는 곧장 뒤돌아서 사람을 불렀고, VIP실 안으로 들어 온 사람에게 그 복권을 넘겼다. 그리곤 제이크에게 말했다.

“복권이 진짜인지 확인할 동안, 이후 절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세금 문제인데....”

알리샤는 세금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상세히 제이크에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났을 때 제이크의 복권을 들고 VIP실 밖으로 나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알리샤에게 말했다.

“진짜가 맞습니다.”

그 말에 알리샤가 고개를 끄덕인 후 제이크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서류작업에 한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불편하시더라도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

제이크도 당첨금 수령을 위해서 당첨 사실 확인 절차와 서류 작업에 9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제이크의 당첨금 수령 업무를 맡음 담당자 2명이 막 VIP실을 나설 때였다.

“아아. 참....아쉽게도 당첨자가 혼자가 아니세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제이크가 알리샤를 똑바로 쏘아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지금 여기 그 다른 당첨자 분도 와 계셔서요. 신기하게도 저희 주에서만 두 분의 당첨자가 나오셨지 뭐예요.”

그 말 후 알리샤는 곧장 VIP실 밖으로 나갔고, 제이크는 그 말의 충격에 한 동안 얼빠진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억만 장자는 틀렸군.”

당첨금을 두 명이 나눠 가지면 제이크가 받을 수령금 또한 반 토막이 날 수밖에 없었다. 크게 실망한 제이크. 하지만....

“그래도 8억 달러가 어디야?”

말이 8억 달러지 세금 다 떼고 나면 그보다 적은 금액이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도 충분히 제이크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렇게 제이크가 스스로 실망감을 극복해 내고 당첨금 수령을 기다릴 때였다.

똑똑똑!

그 새 한 시간의 시간이 흘렀고 두 담당자가 다시 제이크 앞에 나타났다.

“서류작업 다 끝났습니다. 당첨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바로 받아 가셔도 좋습니다만.”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제이크가 황당한 눈으로 알리샤를 빤히 쳐다봤다. 그가 수령할 돈이 수억달러인데 그걸 여기서 받아 갈 수 있다고? 지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 알리샤가 준비해 온 봉투 하나를 꺼내서 제이크 앞에 내 놓으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저희 미국에서는 600달러 이하의 복권 당첨금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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