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94화 (69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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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렇게 국제전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10여 분간 김 비서의 푸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라고 써 있는 데 글쎄 다른 서류철을....어머. 죄송해요. 대표님.

하지만 김 비서는 그리 아둔한 여자가 아니다. 아니 눈치라면 내가 아는 사람 중 단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일명 촉이 좋은 여자다. 그런 여자가 자신이 지금 무슨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를 리 없었다. 그랬기에 그걸 인식하자 바로 내게 사과부터 해왔다.

-제가 미쳤나 봐요. 멀리 출장 가 계신 대표님께 쓸데없는 넋두리나 하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그 정도도 못해 줄 사이던가?”

-그, 그건....

김 비서도 아마 느끼고 있을 거다. 그녀가 왜 이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좀 전에 했다. 그녀와 나 사이.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 보니 그녀가 불안한 것이다. 그게 신경 쓰여 일하는 데 있어 신경질이 늘어난 거고. 왜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이번 출장에 김 비서를 데려 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김 비서는 지금 서울 JYB엔터 본사에 있었다.

“다음다음 주 월요일에 볼 건데 뭐. 8일만 참아.”

-....

내 그 말에 아무 대답도 없는 김 비서. 그녀가 잠시 후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네.

이쯤에서 김 비서와 사적인 얘기는 끝내는 게 좋았다. 어째든 내가 김 비서에게 연락을 한 건 그녀를 이런 식으로 챙기려던 건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전 대통령 말인데....”

나는 양태석에게 부탁했었던 그 일, 즉 전 대통령의 아들이 무슨 돈이 있어 그렇게 많은 돈을 물 쓰듯 하는 지를 김 비서를 통해 알아보게 시켰다.

양태석은 대 놓고 들쑤시는 스타일이었다. 대신 알아내는 게 빨랐다.

상대가 그걸 알아차리기 전에 내가 궁금해 하는 걸 내게 알려주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상대가 상대다 보니 그가 들쑤시는 그 즉시 상대가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그쪽에서 바로 삼명그룹에 압박을 가해 온 거고.

하지만 김 비서는 양태석과는 달랐다. 인맥을 통해서 알아보는데 내가 급하다고 하면 급한 대로, 그렇지 않으면 천천히, 대신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러니까 전 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한 조사는, 애초 양태석 보다는 김 비서가 적임이었던 것.

그걸 알기에 나는 양태석으로 하여금 그 조사를 끝내게 한 거다.

-전 대통령이라 함은 김덕삼 대통령을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그러자 김 비서가 툭하니 말했다.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 말이다.

-김덕삼 대통령의 아들 중에 그렇게 대 놓고 펑펑 돈 쓰고 다닐 아들이라면, 차남인 김경철 뿐인데....

김 비서가 어떻게 전 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해 잘 아는 지 까지는 나야 모르지. 하지만 내 느낌에 이번 일에 김 비서가 확실히 중요한 역할, 즉 키포인트가 되어 줄 거 같았다.

“너무 깊게 파진 말고. 그쪽의 정보력도 대단한 거 같으니까.”

내 그 말에 김 비서가 바로 수긍하며 말했다.

-그야 당연하죠. 옛 안기부 직원들이 김덕삼 대통령 주위에 아직도 많은데. 그래도 차남 김경철이 써 대는 돈의 출처 정도는 어떻게 알아 낼 수는 있을 거예요.

김 비서는 되지도 않을 일에 대해 절대 확신 하지 않는다. 한데 전 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에는 상당한 자신감을 내 비쳤다.

뭐 그렇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나는 그것까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것 말고 다른 지시 사항은 없으신 거죠?

“어.”

-그럼 저는 골통 2인들에게 인수인계해야 할 게 많아서 이만....

내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그녀, 김 비서에게 더 이상 나와 통화할 시간이 없었다.

* * *

그렇게 김 비서와 통화 후 나는 블랙머니 박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박 비서에게는 출장 오기 전에 필요한 오더를 충분히 다 내려 둔 터였다. 그래서 딱히 그에게 업무적으로 추가 지시를 내릴 건 없었다. 한데 출장 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림 산업, 즉 내 중학교 동창이면서 내 여자이기도 한 장혜원의 시아버지 되는, 박정명 회장과의 투자 문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림 산업 투자 문제는 어떻게 되었어?”

나는 전화 건 용건을 박 비서에게 바로 물었다.

-아아. 그거요. 그거라면 대표님 지시대로 투자 할 거처럼 했다가, 저희가 미리 조사해 뒀던 그림 산업의 문제점을 가지고 그쪽 잘못으로 추궁해서 계약하기로 한 걸 파토 냈습니다만....

박 비서는 내가 지시한 대로 그 일을 잘 처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한 그림산업은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 사이 내가 왜 전화 했는지 바로 깨달은 박 비서가 말했다.

-그림 산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볼 까요?

바쁜 박 비서 입장에서 그런 일은 너무도 사소했기에 자신이 처리하고도 그 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아보지도 않은 듯 했다.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아뇨. 2분 정도면 됩니다.

2분이야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들고 있던 내 핸드폰을 침대 위에 대충 던져두었다. 물론 스피커폰으로 통화 모드를 바꿔서. 그 다음 그 핸드폰 옆에 드러누웠다.

머리 뒤로 팔베개를 하고서.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격자무늬에 멍을 때리고 있는데, 스피커폰에서 박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알아봤는데 그림산업의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박 비서가 좋지 않다는 건 그 회사가 얼마 못 버티고 파산 신청을 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 나는 몸을 일으키고 내 핸드폰을 원래 통화 모드로 돌린 채, 그걸 내 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M&A브로커들 움직여서 박 회장 수중에 목돈 들어가는 일 없게 처리 해.”

-네? 그렇게 까지요?

내 말은 그림산업 박 회장을 사실상 거지로 만들라는 소리였다. 박 회장이 내 철천지원수도 아닌데 내가 그렇게까지 하려는 걸 두고서, 박 비서가 과연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지 의문을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그 아들은 몰라도 박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람이야. 수중에 돈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양반이지. 그리고 그런 부류는 대개....은혜는 잘 잊어도 원한은 절대 못 잊거든.”

내가 한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를 박 비서가 아니었다. 그 역시 일 처리하는 데 있어서 후환을 남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은 유형이었고.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확실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 나는 박 비서에게 내가 지시한 투자 중 문제가 생긴 건 없는지 물었고, 박 비서는 별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딱히 더 박 비서와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대로 통화를 끝냈고, 핸드폰을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두고는 막 자려고 침대에 누우려 했다.

“응?”

그때 내 전면, 그러니까 침대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가 내 눈에, 그러니까 내 관심을 끌었다.

“저 그림은....”

내가 무슨 그림에 대해 알겠나? 지금 내가 보는 그림에 대한 안목은 순전히 백준열의 쓸데없는 상식에 근거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그림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인 ‘나무2’로 수십 년간 행방을 알 수 없다가 6년 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내년에 그 그림이 진품이 아니라 위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계 미술계에 쓰나미급 충격을 선사했다.

* * *

당연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나무2’는 진짜가 아니다. 정교하게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전시를 한 거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 콘솔 장식장 위에 팸플릿이 놓여 있었다.

그 팸플릿에는 컬럼비아의 한 미술관에서 스위스 J 박물관의 협조를 받아서 유명 화가의 그림 전을 한 달 간에 걸쳐 열고 있다고 했다. 즉 이 호텔에서 나름 전시 홍보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그 유명한 ‘나무2’의 위작을 볼 수 있단 말이군.”

그 말을 내 입으로 뱉어 놓고 실제로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내 안 어딘가 아직 남아 있는 백준열이 흥분을 하고 있었다.

그 위작 스캔들의 주인공 볼프강 벨트라키. 그는 독일의 화가로 충격적인 건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 말고도, 그는 다른 화가들 하인리 캄펜동크, 앙드레 드랭, 키스 반 동겐 등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 14점을 위조해서 500억 원이 넘는 이득을 취했다.

“근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내 상식으로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백준열의 머릿속의 그 쓸데없는 지식이 그에 대한 대답을 내 놨다. 그 이유가 내 머릿속에 불쑥 떠 오른 것이다.

“....그렇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보통 미술품을 감별할 때 화가 고유의 붓 터치, 기법 등 이런 화풍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정밀 현미경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캔버스의 재질, 사용된 물감의 종류까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위작을 감별해 낸다.

그런데 위작의 대가 볼프강은 위작을 그릴 때 그림만 잘 그린 게 아니라, 그 원작의 화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자신이 그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원작 화가가 어느 시대 사람인지, 그 시대에 사용한 재료들은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하는 건 물론이요, 똑같은 물감, 똑같은 붓, 똑같은 캔버스를 사용한 거다.

심지어는 화가가 그린 시간과 생활패턴, 주변 환경까지 철저히 조사를 했다니 말 다한 거지.

원작 화가가 저녁에만 그림을 그렸으면 저녁에만 그림을 그렸고, 비 오는 날에 그렸다면 똑같이 비오는 날에만 그림을 그렸다. 또 원작이 2일에 걸쳐 그렸다면 볼프강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2일 안에 그림을 완성 시켰다. 이러니 그가 그린 위작을 원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태 없었던 거지.

“근데....어떻게 위작임이 들통 난 거지?”

그에 대한 정보도 당연히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니까 볼프강이 딱 한 번 한 실수 때문에 그의 치밀한 위작 행각이 탄로가 난 것이다.

볼프강이 스위스 J 미술관에 하인리히 캄펜동크의 작품 ‘푸른 그림과 말’을 구입했고, 그 보존을 위해 그림 성분을 조사했을 때였다.

티타늄화이트 물감 속 성분에 화가 하인리히 캄펜동크가 활동했던 시대에 사용되지 않았던 산화성분이 포함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모든 것이 들통 난 볼프강은, 자신이 위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단다.

[내 이름을 건 그림을 76억에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말 후 모든 걸 자백한 볼프강은 4년간 교도소에 수감 되었다가 출소 후, 위작 스캔들로 탄 유명세를 잘 활용해서, 당당히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나?

“그러니까 저 그림을 그린 볼프강의 위작이....아직은 들통 나지 않은 상태란 거지?”

그리고 볼프강의 위작들 중 무려 10점을 보유하고 있는 스위스 J 미술관은, 백준열이 기억하고 있기로 바로 록펠러 재단 산하에 속해 있는 곳이었다.

록펠러 재단, 즉 미국 역대 최고 부호로 알려진 록펠러가 만든 재단이다.

올해 신문에서 나도 봤다. 록펠러 가문의 총 재산이 1720조라는 걸 말이다. 로스 차일드 가문은 1030조고. 참고로 이때 대한민국 1년 예산은 350조였다.

* * *

어째서 지금 이때 이곳에서 스위스 J 미술관의 작품들이 전시 되고 있는지, 그 이유까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획전을 유치한 사람, 즉 스위스 J 미술관의 관계자는 분명 록펠러 재단 측, 즉 록펠러 가문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사람일 공산이 컸다.

“록펠러라....”

나는 미국에 아무런 인맥이 없다. 물론 유학을 했으니 당시 같이 학교를 다녔던 동창들을 잘 찾아보면 인맥은 형성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들 나이 아직 30살도 되지 않았는데 미국 정재계에 무슨 힘, 즉 영향력이 있겠나?

그런 고로 나는 미국에서 투자사업을 해나가려면 어떡하든 새로운 인맥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컸다.

그 인맥을 나는 럭키 가이, 즉 운이 좋은 사람의 이미지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 일환으로 선택한 게 바로 미국 슈퍼 로또로 불리는 메가 밀리언의 당첨되는 거였고,

그 당첨금을 전부 미국 내 사업에 다 투자함으로서, 나는 미국 내 큰 이슈를 불러일으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이슈를 통해 내 주위로 몰려 올 사람들이 든든한 내 인맥이 되어 줄 것이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투자사가 글로블 투자사로 성장하려면, 그 보다 더 강력한 인맥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록펠러 가문이라면....”

그 인맥이 록펠러 가문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그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좀 전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바로 위작의 대가 볼프강을 활용해서 말이다.

“일단 스위스 J 미술관의 누가 이런 전시회를 기획했는지부터 알아봐야겠군.”

나는 ‘나무2’의 그림을 잠시 더 쳐다보다 그 밑 콘솔 장식장 위에, 내 손에 들려 있던 팸플릿을 도로 내려놓았다.

전시장이 어딘지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잘 기억이 되어 있었다. 내일 복권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나는 컬럼비아를 떠나기 전에 그 전시장을 찾기로 했다.

그곳에서 뭐라도 건지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뉴욕에 갈 거고 그때 록펠러 가문을 직접 찾아가면 될 일이니까.

내가 만나고자 한다면 록펠러 가문의 사람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째든 나는 이때에도 글로벌 그룹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삼명그룹, 거기 백승렬 회장의 공식적인 후계자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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