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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는 국제선의 경우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무조건 핸드폰 전원을 꺼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효석 실장과 통화 후 바로 중개소나 환전소를 통해 비트라 코인을 구입하는, 내 알바생들이 이용하는 계좌로 100억의 돈을 이체 시켰다.
공항에 오는 동안, 나는 그들이 사용 중인 계좌를 살폈다. 그랬더니 원래 들어 있었던 100억 중 90억 가까이 돈이 이미 빠져 나간 상태였다.
비트라 코인 알바생들이 그 동안 그 돈을 사용해서, 내게 100만에 가까운 비트라 코인을 매집해 준 것이다.
나는 그들이 돈 걱정 없이 얼마든지 더 많은 비트라 코인을 사들일 수 있게끔 계좌에 든든하게 총알을 쏴 주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아아. 맞다.”
그리곤 대표 알바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좀 전에 계좌에 빵빵하게 돈 채워놨으니, 알바생들에게 걱정 말고 시중에 나온 코인, 다 사들이라고 해.”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고.”
나는 빠르게 대표 알바생과 통화를 끝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으니까.
동시에 일등석의 스튜어디스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통화를 끝냄과 동시에 핸드폰 전원까지 끄려 했다. 그러자 그걸 보고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이 말했다.
“비행기 모드로 해 두시면 전원 끄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
그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끄려던 핸드폰 전원 버튼에서 손을 뺐다. 그때 우리 말을 들은 듯 내 쪽으로 다가 온 스튜어디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희 항공사 규정에 따르면 비행 이착륙 시 핸드폰 전원을 꺼야하지만 1만 피트 이상 올라갔을 때는 비행기모드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또 저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A370의 경우, 일등석에 한해 기내 와이파이와 휴대폰 로밍기능을 제공하고 있답니다.”
나도 그건 들어 본 거 같았다. 비행기에 타면 무조건 항공사 규정을 지키라고 말이다.
그건 김종훈도 알고 있는 상식인 듯 스튜어디스의 말에 김종훈도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전원을 껐다. 그걸 보고 나도 끄려다 만 내 핸드폰 전원을 끄자 스튜어디스가 그제야 우리를 지나쳐 다른 일등석의 승객들을 챙겼다. 그때 김종훈이 나를 보고 아는 척하며 말했다.
“핸드폰에서 나오는 라디오 주파수 대역의 발진(發振) 전파가 비행기간 통신과 항법 및 감시용 라디오 수신기들과 동일한 주파수에서 발생한다더군요. 즉 핸드폰 발진 전파가 항공시스템 신호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죠. 그로인해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특히 비행기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이 착륙 시에 휴대폰 전원을 끄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중국 남방항공의 경우 핸드폰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던데 역시 미국 항공사는 다르군요.”
김종훈의 그 말을 듣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툭하니 말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작년에 기내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 공익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높은 고도에서 비행기 내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기로 허용했기 때문이지. 그 법안은 항공기가 고도 1만 피트 상공에 도달한 이후 핸드폰 인터넷 사용과 통화까지 허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다만 이착륙 시에는 '비행기모드'로 전환하거나 전원을 꺼야 해.”
내 그 말에 김종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마디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셈이니 말이다.
그 뒤 김종훈은 입을 꾹 다물었고 내가 그에게 뭘 물어보기 전까지 그 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다.
* * *
일등석 서비스는 확실히 좋았다. 단지 자꾸 필요한 게 없는 지 물어 귀찮기는 했지만.
그 상대가 상냥하고 예쁜 스튜어디스라 참았지, 아니었다면....벌써 욕이 튀어나왔을 거다.
“여기....”
그리고 스튜어디스가 나와 김종훈에게 건네는 잠옷. 나는 아니지만 백준열은 미국행에서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했다. 그래서 왜 스튜어디스가 잠옷을 건넨 건지 알았다. 하지만 김종훈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해 했다.
“이걸 왜....”
나는 그런 그를 두고 잠옷을 들고 곧장 탈의실로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 사이 나를 따라 온 듯 탈의실 앞에서 잠옷을 들고 서 있던 김종훈.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빨리 갈아입고 와.”
그 말 후 자리로 돌아가니 내 좌석이 일자로 펴지고 시트까지 씌워져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 좌석이 침대로 변신을 한 거다. 나는 그 침대에 누웠고 이내 잠옷으로 갈아입고 온 김종훈이 그런 나와, 자신의 좌석 역시 침대로 변신해 있는 걸 보고 놀라워했다. 그걸 보고 피식 웃던 나는 눈을 감았다.
백준열이야 유학생활까지 한 미국이지만 나는 미국에 처음이다. 그렇다보니 흥분이 된 듯 처음엔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도 나름 바쁘게 보낸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꼬박 잠 들어버렸다.
“으음....”
그렇게 잠에서 깨어보니 7시간을 푹 잤다.
“깨셨군요? 혹시 샤워 하실 생각이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샤워라는 말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스튜어디스를 따라 샤워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비행기 안에서 샤워라니. 세상 참 살기 편해졌다. 아니지. 이건 내가 VIP니까, 일등석을 이용하니까 가능한 서비스였다. 같은 비행기 안이지만 지금 이코노미의 승객들은 온몸이 쑤시고 난리가 났을 거다. 당연히 샤워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을 테고.
이런 걸 보면 21세기,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 살기는 편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했다.
샤워 후 좌석으로 돌아가니 김종훈이 기내식을 먹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십니까?”
“샤워 하고 왔지.”
“샤워요?”
내가 샤워 다녀왔다고 하자 두 눈이 휘둥그레진 김종훈. 그는 허겁지겁 식사를 하더니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 하러 갈 때 스튜어디스에게 내 좌석을 원래 상태로 만들어 두라고 한 터라 나는 내 자리에 앉자 마자 아침 식사 주문을 했다. 일등석 서비스답게 메뉴판이 주어지고 내가 먹고 싶은 걸 스튜어디스에게 차례로 얘기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가 내게 받은 주문표를 들고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음식을 가져왔다. 나는 맛있게 식사를 하고 그 후로도 일등석의 특별 서비스를 즐기면서 목적지인 컬럼비아 메트로폴리탄 공항 상공에 다다랐다.
여기가 미국 아니랄까? 비행기가 공항에 바로 착륙하지 않고 상공을 좀 돌았다. 그러자 김종훈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이 비행기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그런 김종훈에게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착륙할 비행기가 많아서 그래. 곧 내릴 테니 걱정 마.”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LA와 뉴욕의 공항에서 착륙할 비행기가 많아 혼잡해서 대기 중인 비행기가 상공을 빙빙 도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다행히 내 그 말이 있고 이내 우리를 태운 비행기가 곧장 공항을 향해 착륙을 시도했고, 사뿐히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뭐 탈 때처럼 일등석 승객들이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고, 나와 김종훈 둘 다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미국....별거 없네요.”
“그러게.”
나도 모르게 김종훈의 말에 동조 해버렸다. 그 만큼 미국 공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시끄럽고 또 더러웠다. 그렇게 천조국이라는, 나의 미국행은 초장부터 그 환상이 홀딱 깨진 체 시작 되었다.
* * *
컬럼비아 공항을 나가려면 반드시 거야야 할 곳. 바로 입국심사대에 나와 김종훈은 줄을 섰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니 이건 심사가 아니라 무슨 심문을 당하는 거 같았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입국 심사관들이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뭐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불법 입국이 많은 곳이라 저러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뭐 다행이라면 나와 김종훈이 영어를 잘한다는 건데....
“사우스 코리아?”
“맞아. 한국에서 왔어.”
“미국에 온 용건은?”“비즈니스 및 관광.”
내 앞에 김종훈이 비교적 간결하게 심사관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그때 심사관이 흠칫했다.
“컬럼비아 팰리스 호텔....에서 묵는 군?”
“맞아.”
“좋은 데서 묵네. 통과.”
“....”
앞에 사람과는 달리 너무도 싶게 통과가 되자 살짝 어리둥절해 하는 김종훈. 그런 그에게 뒤에 내가 말했다.
“빨리 나가.”
그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종훈이 심사대를 통과해서 나가고....
“저 사람 내 비서야.”
심사대 앞에 선 나는, 심사관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말을 먼저 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심사관이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그냥 가라고 손짓을 했다.
내 몸에 걸치고 있는 명품을 보고 심사관도 앞에 김종훈이 내 비서란 걸 확신한 거다.
그래서 나는 바로 심사대를 통과했고, 김종훈과 나는 간단히 공항 수속을 마친 후 공항 밖으로 나왔다.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됩니까?”
당연히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아쉽게도 컬럼비아에는 JYB엔터 지사 같은 게 없었으니까. 물론 삼명그룹 쪽은 몇 군데 계열사 지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고 괜히 내 행적을 노출 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잠깐....저기 있네.”
그때 내가 택시 승강장으로 가려는 김종훈을 제지하고 공항 입구 앞에서 'Mr.Baek'이라고 쓴 도화지를 들고 있는 제복 차림의 건장한 백인 남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김종훈이 ‘그게 뭐’라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고, 나는 그런 그에게 따라 오라고 손짓을 하고서는 그 백인 남자를 향해 먼저 걸어갔다.
“미스터 백?”
“맞아요.”
“반갑습니다. 팰리스 호텔의 마이클입니다.”
제복 차림의 백인 남자가 정중히 나를 향해 인사를 하자, 내 뒤를 따라 온 김종훈이 물었다.
“누군데요?”
“내가 예약한 호텔에서 보낸 운전기사.”
“네?”
놀란 얼굴의 김종훈. 그런 그에게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해? 짐들 마이클에게 넘기지 않고.”
“아아. 네.”
그렇게 김종훈이 나와 그의 짐을 팰리스 호텔에서 나온 운전기사 마이클에게 넘겼고, 마이클은 그 짐을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의 트렁크에 넣더니 곧장 내게 달려와서 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나와 김종훈이 차에 타자 문을 닫은 마이클은 곧바로 운전석으로 가서 차를 몰고 호텔로 출발했다.
* * *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는, 내 기준에서 보자면 ‘시골 동네’와 다를 바 없는 도시였다. 고층 건물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설마 여기가 시내는 아니겠죠?”
널찍한 리무진 안, 바로 내 앞에 앉은 김종훈이 차창 밖을 보며 말했고 그런 그에게 나는 그가 실망할 만한 대답을 해 주었다.
“맞아. 여기가 주도인 컬럼비아시의 가장 번화가라 볼 수 있지.”
“네에?”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나는 유학시절,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경기를 보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근처 컬럼비아시에도 왔었고. 그 기억이 나면서 나는 이곳 컬럼비아가 4D나 아이맥스 영화를 보려면 차를 타고 1시간 넘게 달려서 다른 도시로 가야 하는 시골 도시임이 생각났다.
미국에서도 왜 하필 이런 촌구석에 온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김종훈. 하지만 우리가 묵을 호텔 앞에 도착하자 그의 얼굴이 펴졌다.
“와아. 여기 상당히 고풍스러운 곳이군요?”
딱 봐도 고풍스런, 오래 된 ㄷ자 형의 건물 앞에서 김종훈이 감격한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맥 빠지는 소릴지 모르지만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내가 왜 여기를 선택했는지 말이다.
“컬럼비아에서 최고 비싼 호텔이라기에 예약했어.”
“....”
당연히 내 그 말에 김종훈이 실망한 티를 팍팍 내면서 마이클이 차에서 내린 짐을 챙겨 호텔 안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렸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팰리스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보타이를 매고 흰색 장갑을 낀 격식 있는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가 우리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나와 김종훈 중 나를 향해 물어왔다.
“미스터 백?”
“네. 맞아요.”
두 사람 중 누가 물주인지 정도야 눈썰미가 좀 있는 사람이면 다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김종훈에 비해 내가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있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 호텔 스위트룸의 버틀러 샘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중년의 신사는 우리를 프런트가 아닌 엘리베이터 쪽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런 그를 따라 움직였는데 김종훈은 자꾸 나와 프런트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버틀러는 일종의 집사를 말해.”
“집사? 아아. 객실 전담직원을 말하는 군요. 가만....그러고 보니 버틀러 서비스는....”
김종훈도 버틀러 서비스에 대해서는 어디서 들어 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