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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90화 (68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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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재벌 3세라도 출국 심사는 받아야 했다. 단지 그 일을 나대신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이 다 했지만.

“여기....”

내 여권과 신분증을 김종훈 비서가 제출하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물론 전용 심사대를 이용했고 심사는 패스트 트랙으로 척척 처리 됐다.

비행기 탑승할 때도 줄은 서지 않고 먼저 비행기에 탑승했다. 괜히 일등석이 편한 게 아니었다.

“이쪽으로....”

비행기 안에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스튜어디스가, 나와 김종훈 비서를 일등석 좌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여깁니다.”

“고마워요.”

상큼한 스튜어디스의 미소와 몸에 밴 친절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나의 맞은편에 앉은 김종훈 비서가 내게 물었다.

“미국에서 9일이나 뭐하시려고요?”

원래 내 출장 일정은 일주일, 즉 7일이다. 그런데 김종훈 비서는 이틀을 늘여 9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이번 주 일요일 저녁에 미국으로 가려던 일정을 이틀 앞당겼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이번 주 일요일 저녁 8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편으로 컬럼비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일주일로는 모자랄 거 같았다. 가급적 미국에서 일을 벌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현지 투자처를 만들려면 일주일로는 일정이 빠듯했다. 또 개인적인 일도 좀 봐야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틀을 앞당겨서 이렇게 금요일 저녁 비행기에 탑승한 거다. 그리고 내 수행 비서인 김종훈에게 나는 이번 미국 출장에서 뭘 할지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김종훈 비서로서는 당연히 그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미 몇 번 그 점을 내게 물어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대답을 미뤘고, 오늘 오전에 그에게 비행기 타면 얘기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김종훈 비서가 비행기에 타자마자 이렇게 내게 앞으로 미국 일정을 물어 오는 게 전혀 문제 될 건 없었다.

“....”

나는 대답 대신 내 지갑 속에서 뭔가를 꺼내서 그걸 김종훈 비서에게 건넸다.

김종훈 비서는 내가 건네는 그걸 받아서 자기 눈 가까이 가져가, 이리저리 확인해 보고서 내게 말했다.

“이건 미국 슈퍼 로또로 불리는 메가 밀리언이 아닙니까?”

김종훈 비서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걸 왜 자기에게 줬냐며 말이다.

“....”

그런 그를 보고 내가 말없이 싱긋 웃었고. 그 웃음에 김종훈 비서가 뭔가 눈치라도 차린 듯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설, 설마 이 복권에 당첨 되신 겁니까?”

“....”

나는 이번에도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당첨금이 몇 번이나 이월 돼서 누적 당첨금이 거의 2조에 육박한다고 알려졌는데....아아....잠깐만....”

김종훈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핸드폰을 꺼내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뭔가를 열심히 검색했다. 그리곤 잠시 후 아쉽다는 듯 내게 말했다.

“당첨자가 또 있네요. 그럼 1조밖에 못 받겠군요.”

미국에서 이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당첨자가 설레발을 친 모양이었다. 미국 언론에 자신이 메가 밀러언의 당첨자라고 말이다. 그런 김종훈에게 내가 말했다.

“누가 그래? 당첨자가 두 명이라고?”

“네?”

내 말이 무슨 소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종훈. 그런 그에게 내가 턱짓을 했다. 바로 김종훈이 직접 자기 손에 들고 비행기에 탑승한 007가방을 말이다. 당연히 김종훈은 내가 왜 그가 들고 탑승한, 중요한 서류가 든 007가방을 턱짓으로 가리켰는지 알지 못했다. 해서 내가 내입으로 직접 얘기를 해줘야 했다.

“그 가방 안에 9999장의 당첨 복권이 들어 있어.”

“....”

그러자 이번에는 김종훈 비서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당첨자가 있어도 복권 당첨금은 사실상 내가 다 먹는다는 얘기였다.

2조라는, 김종훈 비서가 생각하기에 거의 천문학적인 그 돈을 말이다.

* * *

김종훈도 얼마 전 미국에서 분, 메가 밀리언 광풍에 대해 알고 있었다.

3개월간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누적된 당첨금 총액이 무려 16억 달러, 현 한화로 2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당연히 김종훈도 메가 밀리언 당첨 번호 여섯 숫자를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그 여섯 숫자가 정확히 찍혀 있는 메가 밀리언의 복권이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백준열 대표가 중요한 서류라며 잘 챙기라고 했던 그 서류 가방 속에, 이와 같은 메가 밀리언 당첨 복권이 무려 9999장이 더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메가밀리언 당첨자는 1001명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중 10000장을 가진 백준열 대표가 당첨금 16억 달러를 거의 다 챙기게 될 예정이었고.

“그, 그러니까 지금 이 슈퍼 복권 당첨금 찾으러 미국에 가시는 거란 말씀이시군요?”

“맞아.”“허얼....”

그때였다. 갑자기 표정이 변한 백준열. 그가 김종훈의 손에 들려 있던 당첨된 복권을 낚아채서 다시 자신의 지갑 속에 넣었다. 김종훈은 백준열이 왜 그러는지 의아했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상냥하고 친절했던 스튜어디스가 그들 말고, 또 다른 일등석 손님을 한 명 에스코트해서 여기로 온 것이다.

“어머! 준열씨!”

근데 그 손님이 백준열을 아는 듯 했다. 그 손님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앞에 있던 스튜어디스까지 밀쳐버리고는 백준열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 손님의 물음에 백준열이 시큰둥하니 대꾸했다.

“미국에 볼일이 있어서요. 그러는 조 본부장님은 여기 어떻게....”

“저요? 저도 미국 출장 때문에요.”

“근데 왜 이 비행기를....한국항공을 이용하시지 않으시고?”

“아아. 그게....이건 비밀인데 타 항공사의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 보려고요.”

그 손님, 그러니까 한국항공의 재벌 3세인 조은아 본부장은 딴에는 비밀이랍시고 백준열의 귀에 대고 말을 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얼굴이 백준열의 얼굴로 바짝 다가왔고. 하지만 기겁한 백준열이 뒤로 몸을 빼버리면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백준열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종훈 비서 뿐 아니라, 그녀 뒤에 서 있던 스튜어디스 귀에도 다 들렸다.

당연히 스튜어디스는 기가 찬 얼굴로 조은아를 쏘아봤다. 하지만 조은아는 너무도 뻔뻔하게 굴었다. 되레 자신을 쳐다보는 스튜어디스에게 버럭 화를 냈다. 그것도 반말로 말이다.

“뭘 봐? 지금 손님을 째려보는 거야?”

조은아의 그 말에 스튜어디스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버벅거리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 그게 아니라....”

그런 스튜어디스에게 조은아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손으로 꺼지라고 제스처를 취하면서 가차 없이 말했다.

“됐어. 가 봐.”

“....”

그런 조은아의 행동과 말에 스튜어디스는 거의 울거 같은 얼굴로 부들부들 몸을 떨다, 결국 몸을 돌려서 비행기 입구 쪽으로 가버렸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은아가 백준열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꼭 주제 파악 못하는 것은 어디에도 있어요. 그쵸?”

같은 재벌 3세인 백준열에게, 자신이 지금 말한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조은아. 하지만 백준열의 반응은 싸늘했다.

“주제 파악은 누가 못하는지 모르겠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백준열을 쏘아보는 조은아. 그런 그녀에게서 아예 시선을 돌린 백준열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못 생긴 주제에 감히 누굴 넘봐.”

“....”

백준열의 그 말에 얼굴이 시뻘게 진 조은아. 그녀가 당장이라도 백준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듯 분노해서 막 뭐라고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저기에요.”

좀 전 조은아에게 면박을 당했던 그 스튜어디스가 정장차림의 외국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 외국인은 당당히 조은아 앞에서 자신이 누군지 소개하고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밝혔다.

“저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사의 시니어 FA 존 메니너라고 합니다. 좀 전 제가 듣기로 저희 승무원에게 심한, 인격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하셨다던데 사실인가요?”

“....”

근데 조은아가 그 말에 당황해 하며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걸 보고 김종훈도 눈치를 챘다.

‘저 여자 영어를 못하는구나.’

그건 외국인도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그에게 그게 중요한 건 아닌 듯 했다. 그는 마저 하던 말을 조은아에게 이어서 했다.

“저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사의 운송 약관에 따라 승무원에게 심한 폭언과....라는 규정에 따라서 저희 항공사에서는 당신의 탑승을 거부하겠습니다. 지금 즉시 비행기에서 내려주십시오.”

“뭐, 뭐? Get off? 지, 지금 나보고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외국인 항공사 직원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비행기에서 내리라는 말은 알아들은 듯 조은아가 격분할 때였다.

“본, 본부장님!”

“장비서!”

뒤늦게 나타난 조은아 비서. 그 비서가 그녀 곁으로 허겁지겁 다가오자.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 거얏!”

쫘악!

그 비서에서 버럭 소리치더니 대뜸 비서의 얼굴에다가, 사정없이 싸대기를 날려버리는 조은아. 그런 그녀의 패악 질에 백준열과 김종훈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 * *

조은아가 빡 친 건 빡 친 거고, 사태 수습은 해야 했다. 그래서 조은아의 비서라는 딱 봐도 똑똑해 보이는 여비서가 나섰고, 그런 그녀에게 항공사의 외국인 직원은 다시금 자신들의 회사 운송 약관을 들먹였다. 그 말을 전부 듣고 난 조은아의 여비서가 곤란한 얼굴로 조은아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 얘기를 다 듣고 난 조은아는 당연히 미쳐 날 뛰었다.

“미친 것들 아냐? 운송약관 좋아하네. 난 못 내려.”

하지만 그녀가 버틴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지금 타고 있는 이 비행기는, 그녀 부친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항공사 소유가 아니었다. 그리고 미국 항공사를 상대로 한국 대기업은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런 고로....

“이거 놔! 이것들이 감히....내가 누군 줄 알고....”

연락을 받고 미국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사의 보안직원들이 와서 강제로 조은아를 비행기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 그녀가 부끄러운지 그녀의 여비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뒤를 따라 비행기에서 내렸다.

“쯧쯧쯧....”

그걸 보고 백준열을 혀를 찼고 그 맞은편의 김종훈 비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주절거렸다.

“진짜 나라 망신 다 시키고 있네.”

그렇게 조은아가 비행기에서 쫓겨나고 그 뒤로 승객들이 비행기 탑승이 완료 되자, 비행기는 예정대로 인천 공항을 출발해서 목적지인 컬럼비아를 향해 날아올랐다.

“하아....”

그 비행기를 공항 터미널에서 보고 길게 한숨을 내 뱉던 조은아의 여비서.

지이이잉!

그런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녀는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네. 네. 알겠습니다.”

한국항공 본사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은 조은아의 여비서 장미진은 곧장 공항 터미널 입구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고, 거기서 본사에서 나온 법무팀장과 팀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조은아가 억류 된 거나 마찬가지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항공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거기서 두 시간 가까이 실랑이 끝에 겨우 그곳을 나온 조은아. 그녀가 씩씩거리며 자신의 여비서 장미진에게 소리쳤다.

“너...꼴도 보기 싫으니까,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 자리에서 해고당한 장미진.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의 해고에 대해 그리 충격을 받은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만을 남겨두고 조은아와 법무 팀만 우르르 공항 터미널 밖을 나가버리는 걸 보고 장민진은 허탈감과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바로 그때였다.

“장미진씨?”

“네?”

웬 중년 남자가 나타났고 놀란 장미진은 헐레벌떡 자신의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뒤, 그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신지?”

“....”

그런 그녀에게 중년 남자가 말없이 웃으며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장미진은 일단 그 중년 남자가 준 명함을 받아서 살펴봤다.

“JYB엔터테인먼트 매니저먼트 김효석 실장님?”

장미진은 뜬금없이 자기 앞에 나타난 연예기획사 실장을 쳐다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얼굴이 좀 반반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연예기획사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의 외모는 아니었다. 특히 키가 좀 작았고 몸매도 그리 특출나게 잘 빠진 것도 아니었고. 해서 실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공항에서 캐스팅이라니....그런데 자기 이름을 상대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 점을 장미진이 의아해 할 때였다.

“반갑습니다. 저희 대표님 연락 받고 왔는데....못 볼 걸 봤네요.”

“아아....”

김효석 실장이라는 사람의 말에 장미진은 얼굴을 붉혔다. 그가 여기서 자신이 조은아에게 잘리는 걸 전부 지켜 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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