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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키프로스 정부 역시 지난달에 15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모든 예금에 대해 7-10%의 일회성 부담금을 부과한다는 조건에서 유로존에 신청을 했고요.
이어진 박 비서의 말에 나는 살짝 냉소적으로 물었다.
“지중해 소국인 키프로스와 아직은 정부가 혼란한 상태의 아일랜드에서 왜 갑자기 모든 예금에 대해 부담금을 매기려는 걸까? 그것도 7-10%씩이나 말이야.”
-그, 그건....아직까지 알 수가....좀 더 지켜보면....
“쯧쯧....더 지켜보다가 돈 벌 타이밍을 놓치는 거야. 두 나라 모두 러시아와 유럽계 자금의 세금 도피처지. 한데 예금자에게 손실을 부담시키는 금융 조건을 발표했어. 아마 지금 쯤 아일랜드와 키프로스의 거의 모든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이 시작 됐을 거야. 맞지?”
-예. 맞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들과 러시아는 키프로스와 아일랜드의 거의 2배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지. 그러니 그들 자본가들이 자기들 나라도 돈을 보내진 않을 거야. 자아. 그럼 그 자금이 과연 어디로 갈까?”
-그, 그건....
“힌트를 주자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 되는 금융자산이 있지. 왜?”
-헉! 혹시 비트라 코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딩동댕. 정답이야. 지금 비트라 코인의 시세가 어떻게 되지?”
-제가 어제 확인한 걸로는 1BTC=20.07$인 것으로....
“이거 비트라 코인이 꽤 오르겠네.”
뭐 앞으로 10년 뒤에는 20달러가 2만 달러도 훌쩍 뛰어 넘게 되지만. 지금 시세에서 사도 무려 1,000배의 투자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비트라 코인이 얼마나 되는 거야?’
나는 아예 알바생들을 고용해서 비트라 코인을 직접 채굴까지 하고 있었다. 당연히 중계상이나 환전소를 통해 나오는 비트라 코인 역시 속속 매입하고 있었고.
‘궁금하네.’
나는 박 비서와 통화 후 지금도 열심히 비트라 코인을 채굴 중일 알바생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동안 내 비트라 코인이 얼마나 더 모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박 비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비트라 코인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 말은 투자회사 블랙 머니에서 따로 비트라 코인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고.
내 말을 듣고 난 박 비서는 당장이라도 비트라 코인 매집에 나설 기세였다. 투자사 대표로서 그런 박 비서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어째든 지금 비트라 코인을 사들이면 몇 배의 시세 이익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라 급한 대로 1억 달러를 들여서 비트라 코인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면....
나는 박 비서의 말을 쭉 듣다가 최종적으로 조언을 했다.
“단 올해를 넘기지 말고 다 매도 해.”
가상화폐의 선두주자인 비트라 코인. 이 놈은 앞으로도 계속 광란의 질주를 거듭한다.
하루 새 1,000달러 이상 치솟는가 하면 몇 시간 새 2,000달러가량 급락하면서 아찔한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하기 때문에, 초보 투자자들은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박 비서가 그런 롤러코스터에 홀려, 과로로 쓰러지는 걸 원치 않았다.
해서 그런 조언을 했고 내 조언을 금과옥조같이 알아듣는 박 비서가 바로 대답을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뒤 미국 출장에 대해 몇 마디 더 하고 나서 박 비서가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그와 통화를 끝냈다.
* * *
나는 박 비서와 통화 후 생각한대로 바로 내 비트라 코인을 채굴하고 관리해 주고 있는 알바생들의 대표격인 알바생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그러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 최종 목표가 10년 뒤까지 200만개의 비트라 코인을 모으는 거였지.’
전화 연결 음이 얼마 안 울려서 대표 알바생이 내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저번에 전화 연결 음이 10번 넘어 울릴 때까지 내 전화를 안 받아 내게 혼쭐이 난 탓인지, 그래도 세 번 쯤 울리자 내 전화를 받는 대표 알바생.
뭐 물론 그 때문에 이런 건 아닐 거다. 내가 대표란 이유로 녀석에게 100만원의 월급을 더 챙겨줘서 일 테지.
“어어. 수고 많아. 애들 말 잘 듣지?”
-그럼요. 다들 만족해하고 열심히들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알바로 월 500만원을 벌기 쉽나? 그것도 한 나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조건으로 말이다. 저번에 알바생의 수를 더 늘렸지만 나는 그리 많이 코인이 늘어났을 거라고 보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전화를 했으니 물어야지.
“그래서 지금 내 코인이 얼마나 되지?”
-지금까지....220만개 좀 넘었습니다.
“뭐?”
나는 깜짝 놀랐다. 10년 뒤에나 200만개를 획득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단 기간에 그 목표치를 채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놀란 마음을 빠르게 진정 시키고 대표 알바생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많이 모았네. 어떻게 된 거야?”
그러자 대표 알바생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내게 되물었다.
-그거야 대표님께서 채굴 말고 주위에 비트라 코인이 나오면 다 사들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애들 시켜서 매수 나온 비트라 코인 다 사들이게 했고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러라고 100억이라는 탄알을 알바생들이 비트라 코인을 살 수 있게 따로 지원해 줬었다.
아마 그 돈으로 중개인을 거치든 아니면 환전소에서 바로 사든, 알바생들이 비교적 저가에 여태까지 꾸준히 사들인 것이다.
당연히 알바생들은 자신이 사들이고 있는 돈의 출처와 그 돈이 계좌에 얼마까지 예치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100억에서 알바생들이 얼마를 썼는지 만 살피면, 그 동안 알바생들이 얼마나 써서 비트라 코인을 구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뭐 굳이 그걸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단지 넣어 둔 그 100억을 그 동안 다 썼다면 거기에 돈을 더 넣어 주어야 했기에 어차피 그 계좌를 확인하긴 해야 할 거 같았다. 안 그래도 대표 알바생도 그 점이 우려 되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근 비트라 코인 가격이 좀 많이 올라서....그래도 최저가에 사기는 하는데....
다음 달 정도에 비트라 코인은 몇 배 오른다. 그때 가서 비트라 코인을 사는 건 당분간 멈추게 할 생각이지만 아직은 사는 게 이득이었다.
“이번 달까지는 나오는 거 있으면 사. 돈은 걱정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잘해 주는데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겠지. 나는 흔쾌히 대표 알바생에게 말했다.
“앞으로 3달에 한 번 100%보너스 지급할 테니까. 더 열심히 좀 해줘.”
-네? 와아....보너스라니....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하지만 10년 뒤 알바생들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지금 그들이 별 생각 없이 알바 한답시고 열심히 채굴하고 사들이고 있는, 이 비트라 코인이 무려 1,000배나 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아마 속 깨나 쓰리겠지.’
뭐 내가 10년 뒤, 그 때는 나와 생판 남이 되어 있을 알바생들의 쓰린 속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 * *
대표 알바생에게 이왕지사 편의를 봐주는 김에 매달 보고하기로 되어 있는 비트라 채굴량도, 앞으로는 문자 메시지로 그 수량만 찍어 보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삼명그룹 쪽 문제는 이동훈 비서실장과 통화로 해결을 봤다.
이미 그에게 일주일 미국 출장을 간다고 얘기를 해 둔 터라 출장에 관한한 이동훈 실장도 그에 관한 별말은 없었다.
단지 출장 가기 전에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 중에서 그가 가장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건 바로 내가 류지혜와 선을 본 것이었다.
-회장님께서 저를 많이 질책하셨습니다.
아마 백승렬 회장도 나와 이동훈 실장이 이미 손을 잡은 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랬기에 내가 선 보는 데 대해 이동훈 실장이 그룹 차원에서 압박을 가하지 않은 걸 두고 분명 뭐라고 한 걸 테고 말이다.
“출장 다녀와서 한 번 더 만나 보도록 할게요.”
류지혜와 한 번 더 만나는 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어차피 그녀도 나와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을 테니까.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로인해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서로 윈윈 하는 만남이 될 거라서 그녀도 나와 한 번 더 만나는 걸 거부하진 않을 터였다.
-뭐 그래 주신다면야....
그로인해서 이동훈 실장도 그 동안은 백 회장에게 그 문제로 닦달을 당하진 않을 테니 나름 만족해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혹시 전 대통령 아들의 뒤를 캐셨습니까?
“네. 뭐....”
어차피 알고 얘기하는 거라 나는 숨길 거 없이 그렇다고 일단 대답을 했다.
-그거 당장 중단 하십시오. 그리고....아닙니다. 그 뒷일은 출장 다녀오시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지요.
확실히 전 정권의 권력 실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즉각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반응을 보인다니....
현 최고 권력자를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린 나인데, 어떻게 된 게 전 정권의 권력자를 상대하는 게 더 버겁게 느껴졌다.
뭐 자세한 건 출장 다녀와서 몸소 직접 체험해 보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이동훈 실장의 말을 들어야 할 거 같았다. 해서 나는 이동훈 실장과 좀 더 통화를 하다가 더 할 얘기가 없어지자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곧바로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앞전에 내가 전 대통령 아들 알아보라고 한 거 말인데....”
-네. 안 그래도 그쪽 알아보려고 사람을 더 늘리고....
“아니 됐어요. 그 일은 내가 직접 알아 볼 테니, 양 전무는 그 일에서 당장 손을 떼세요.”
-으음....뭐 일단 알겠습니다.
눈치 9단인 앙태석이었다. 내가 당장 손 떼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쯤 벌써 알아챘을 터였다. 그렇게 양태석과 짧게 통화를 끝내자 인터폰이 울리며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공항 가실 시간입니다.
그새 내 퇴근 시간이 다 됐다. 공항 가는 길이 막힐 걸 염려해서 나는 30분 빨리 퇴근하겠다고 했고 그걸 김 비서가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 나갈게.”
미국으로 가기 전에 더 챙겨야 할 게 있었지만 그건 인천 공항으로 가는 도중 전화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장 대표실을 나섰다. 그러자 대표실 밖에 대기 중이던 두 사람, 문대식과 김종훈이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문대식이 뭐가 불만인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정말 저희 없이 가실 겁니까?”
“어어. 달랑 일주일 출장 가는 건데 경호팀을 다 끌고 가는 건 좀 과하지.”
나는 이번 출장에 김종훈 비서 한 명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 때문에 문대식이 저렇게 뿔이 나 있는 거고. 그런 그에게 내가 위로랍시고 말했다.
“나 없는 동안 경호팀과 휴가나 다녀 와.”
“휴가라....하아....”
내 휴가라는 말에 문대식이 좋지도, 싫지도 않은 복잡 미묘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내 말대로 내가 국내에 없는 동안 할 일이 없는 경호팀은 푹 쉬기만 하면 됐다. 그러니 좋아해야 맞는데 문대식을 비롯한 경호팀원들은 그게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 비서에게 휴가비 따로 좀 챙겨 주라고 할 테니까 얼굴들 펴.”
그나마 휴가비 얘기를 하니 미미하나나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좋아하는 거 같기는 했지만 굳은 표정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이제는 내 앞쪽 조수석이 아니라 내 옆에 앉은 김종훈 비서에게 물었다.
“내가 눈치가 좀 없지?”
그랬더니 김종훈 비서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뭐....대표님이 눈치가 좀 없기는 하시죠.”
그러며 김종훈 비서가 내가 뭘 궁금해 하는 지, 그에 대한 해답을 말했다.
“문대식 팀장과 경호팀원들은....그냥 미국이 가고 싶은 겁니다. 그들이 예전에 대표님과 같이 미국에서 살았다면서요?”
“그랬지.”
백준열이 유학기간 동안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은 나와 같이 미국에서 동고동락 했었다.
“그 추억을 대표님과 같이 다시금 되새겨 보고 싶은 겁니다. 미국에 같이 가서....”
“아아....”
김종훈 비서의 말에 그제야 나는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미국에 나만 가니까 삐진 거다.
* * *
인천공항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도착을 했다. 굳이 따라 올 필요 없는 데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우르르 따라와서 나를 배웅했다. 한데 그게 내 눈에는 시위를 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옜다. 그래.’
해서 나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그들에게 내뱉었다.
“알았어.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이대로 가고....내일 따라 와.”
지금 내가 가잔다고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째든 미국에 가려면 필요한 서류와 절차, 그리고 비행기 표도 구해야 하고 말이다. 내 그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문대식이 말했다.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다들 그만 죽상들 풀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자. 아아. 짐은 챙겨야겠네.”
내 그 말에 경호팀원들이 그제야 좋아서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나는 인천공항까지 동행한 내 경호팀원들의 우중충한 얼굴을 펴 주고, 김종훈 비서와 같이 국제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