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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86화 (68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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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인질 혹은 피해자가 납치범 혹은 가해자에게 동조하고 감화되어, 납치범 혹은 가해자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납치범 혹은 가해자를 변호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우리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는 납치범과 인질 사이에 벌어지는 사례로 유명하지만,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식 등 가족 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많이 보인다.

흔히 ‘그 이가 때리긴 해도 착한 사람이라고요.’와 같이 가정 폭력 피해자인 아내가 오히려 가해자인 남편을 변호하는 현상이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나나미에게 사부로는 스톡호름 증후군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고생한 그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적어도 그가 그녀에게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그에 비해 뗀지 탐정사무소의 직원들은 어디까지는 나나미에게 있어서 남이었고, 믿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이 새벽에 그녀를 더 안전한 곳으로 데려 가겠다는 말이 그녀에겐 영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사부로가 끼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나나미는 그 뒤 군소리 없이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안전하다는 그 모처로 이동 중일 때였다.

“사부로의 뭐가 그렇게 믿음직스럽던가요?”

그녀 옆에 같이 타고 있던 뗀지 탐정사무소 여직원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나미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자신을 사유리로 부르라고 하면서, 처음 뗀지 탐정사무소에 왔을 때부터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와서 친절하고 다정하게 지금껏 그녀를 대해 온 여직원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그런 호의에 감격해 그녀에게 마음을 열만도 했을 텐데. 나나미는 아니었다.

이유 없는 친절 따윈 있을 수 없다는 걸 나나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았고, 지금에 이르러 거의 그에 관한 달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그녀가 뗀지 탐정사무소 여직원에게 속아서 휘둘리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이쪽에서 상대를 속이기 위해 그런 거 같이 연기를 하고 있을 뿐.

“글쎄요....”

사유리의 그 물음에 나나미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깐 고민스런 얼굴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툭하니 내 뱉은 나나미의 말에 사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심함?”

“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너무도 다른,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황당한 나나미의 대답에 사유리가 황당해 하고 있을 때였다. 나나미는 자기가 말하고도 그렇게 말한 이유를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나에게 그렇게 무심한 남자는 준열상을 빼고, 일본 남자 중에서는 사부로라는 그 자가 처음이긴 하네. 하지만....’

백준열과 사부로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사부로는 백준열에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외모며 인품, 기질, 그리고 가진바 매력과 능력 등등.

백준열이 나나미에게 있어 태양이라면 사부로는 반딧불에 불과했다.

‘보고 싶네. 준열상이....’

백준열을 생각하자 어느 새 나나미의 동공이 풀리고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누가 봐도 행복한 미소.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하아. 사부로에게 완전 빠졌군.’

한데 그걸 보고 사유리가 오해를 했다. 나나미는 백준열을 생각하고 그런 미소를 얼굴에 지었는데, 사유리는 그 애정의 대상을 사부로라 생각한 것이다. 사유리 눈에 누가 봐도 사부로에게 푹 빠져 보이는 나나미.

그런 그녀에게 사유리는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녀도 사랑을 해 봐서 알았다.

나나미가 사랑에 푹 빠진 이상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나나미는 사부로의 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뭘 물어도 사부로에 대해 유리하게, 또 좋게 말 할 수밖에.

* * *

도쿄 외곽 사이타마에 있는 뗀지 탐정사무소의 수련관. 그곳에 있는 인원은 모두 12명이었고 미리 본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듯 사부로가 운전한 차가 도착하자, 그들 모두가 나와서 일단 그들을 맞았다.

“이곳 관장인 카이토다. 소장님께 연락은 받았는데....저 여잔가?”

40대 중후반의 괄괄한 목소리의 중년 남자가 턱짓으로 사유리 옆에 나나미를 가리키며 사부로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사부로는 수련관의 관장인 카이토에게 확인 차 대답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뒤 입을 꾹 다물었고 그걸 보고 사부로로부터 더 이상 자신이 궁금해 하는 얘기를, 저 사부로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없음을 직감한 카이토가 뒤돌아서 자기 앞에 서 있는 두 30대 중후반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비어 있는 방 내어줘.”

그 말 후 불쾌한 얼굴로 사부로에게는 더 말도 않고 그대로 수련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카이토 관장.

“따라 오시죠.”

그때 두 남자 중 한 명이 나서서 사부로와 그 일행들에게 말했다. 사부로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그 남자를 따라 수련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뒤를 일행인 나나미와 사유리가 뒤따랐다.

그렇게 사이타마에 있는 뗀지 탐정사무소의 수련관 3층 건물의 3층의 한 방에 들어가게 된 사부로와 그 일행들.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여기 있으시오.”

그 방에 들어가자 사부로가 바로 나나미와 사유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방을 빠져 나갔다.

그런 그를 보고 나나미가 사유리에게 물었다.

“어디 가는 거죠?”

그 물음에 사유리는 나나미가 좋아하는 사부로가 나간 게 아쉬워서 이런 질문을 하는 줄 알았다.

“아무래도 여기 지원을 받아야 하니 관장과 따로 얘기할 게 있어서 나간 게 아닐까요?”

일견 듣기에 타당한 말인지라 나나미가 바로 수긍하면서 방 한 가운데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 소파의 맞은편에는 벽걸이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나미는 그녀가 앉은 소파 앞 테이블 위에 TV리모컨이 있는 걸 보고 그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그리고 그녀가 TV에 이목이 집중 되어 있을 동안 사유리가 빠르게 이 방 안을 살폈고 창밖까지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체크 한 뒤 나나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나나미상. 배고프지 않아요?”

그러자 나나미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사유리에게 말했다.

“우리 토마토 미트 소스 그라탕이랑 오야코동 먹어요.”

그 말을 듣고 사유리가 피식 웃었다. 그럴 게 좀 전 나나미가 말한 토마토 미트 소스 그라탕이랑 오야코동은 대표적인 모 편의점 음식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둘 다 사유리도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토마토 미트소스에 크리미 한 화이트 소스를 섞고 그 위에 치즈를 올린 토마토 미트 소스 그라탕은 그라탕 안에 동그랗게 구멍이 난 짧은 파스타, 펜네 파스타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야코동은 닭고기와 계란이 들어가는 덮밥이었다. 근데 그 두 메뉴 모두 하필 사유리가 어제 아침에 먹었던 것들이었다. 해서 사유리가 조심스럽게 나나미에게 물었다.

“나나미상. 혹시 카레 우동에 버터향 데미 오므라이스 어때요?”

“오오. 그것도 맛있겠네요.”

다행히 나나미가 자신이 선택한 메뉴에 찬성을 해주자 사유리가 말했다.

“근처에 편의점 있으니까 제가 가서 그걸로 사올게요. 아아. 맞다. 사부로상 것도 제가 물어 보고 사오도록 할게요.”

“뭐 그러시든지.”

사유리가 사부로 것까지 챙기자 나나미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무심히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 그녀가 좋아하고 있음을 사유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 사유리는 사유리가 사부로의 먹을 걸 챙기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지금 그녀 머릿속에는 배고프다는 원초적 감정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전부 백준열 생각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백준열 생각을 하지 않으려 TV를 켜 놓았지만, 당장 TV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얼굴이, 어떻게 된 게 죄 다 백준열의 얼굴로 변해 그녀 눈에 보이고 있었다.

‘미치겠네.’

그럴수록 나나미는 빨리 여기를 나가서 한국에 있는 백준열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 * *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어제까지는 참았다. 하지만 이틀째가 되니 나나미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 사부로는 나나미를 여기서 내 보내 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걸 사유리가 끼어들면서 망쳐 놓았다.

그 때문에 둘 사이 심한 다툼이 있었고, 그때 본사 소장이란 작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난 사부로가 나나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수련관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 잔뜩 취한 채 돌아왔다.

뭐 그 뒤 사부로가 어떻게 됐는지 나나미는 알 길이 없었다. 사부로와 대판 싸우고 난 뒤 사유리도 더는 그에 대해 나나미에게 얘기해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기....”

나나미처럼 편의점 덕후였던 사유리.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흘 째 아침에도 편의점 음식을 가져 다 주는 사유리에 나나미가 인상을 팍 썼다. 거기다 하필 메뉴도 나나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됐어요.”

사유리가 건넨 편의점 도시락을 옆으로 치워 버리는 나나미. 그런 그녀를 보고 사유리도 더는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하아....”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나미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아하니 오늘도 꼼짝 못하고 이 방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할 거 같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까아아악!”

방밖에서 갑자기 여자 비명소리가 울려왔다.

쿠콰쾅!

그리고 나나미가 있는 방의 방문이 뜯겨져 안으로 쓰러졌는데 동시에 사유리도 그 문짝과 같이 방안으로 나뒹굴었다. 그때 두어 바퀴 바닥을 구른 사유리가 몸을 일으키는 게 자연스럽게 나나미의 눈에 보였다.

한데 놀랍게 사유리의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었고, 방밖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사유리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총성이 일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의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지더니 그대로 픽 꼬꾸라졌다. 그리고 쓰러진 바닥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다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렸다.

저벅! 저벅!

이어서 방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는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권총을 든 남자였는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금발머리에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다. 그 남자는 사유리의 죽음을 디테일하게 확인하고는 방안을 훑어봤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시선을 나나미에게로 가져가며 그녀에게 물었다.

“나나미?”

“어! 어떻게 내 이름을....”

그때였다. 제법 훤칠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방안으로 들어왔고 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

“나나미양. 백준열 대표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준열상이요?”

백준열이란 이름 앞에 나나미의 모든 경계심이 눈 녹듯 싹 다 녹아버렸다.

* * *

도쿄 외곽 사이타마에 있는 뗀지 탐정사무소의 수련관. 그곳에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수련관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9시까지인데 그 차는 딱 8시 40분쯤에 수련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이 건물 입구 앞에 떡하니 차를 세우자 당연히 건물 안에서 사람이 뛰쳐나왔다.

왜냐하면 조금 있다가 이곳 수련관 관장인 카이토의 차가 여기 도착할 텐데, 저렇게 건물 입구 앞을 다른 차가 막아서 있으면 그가 화를 낼 게 뻔하니 말이다.

“이봐요. 차를 거기다가 대면 어쩝....허억!”

관장인 카이토 대신 실질적으로 이곳 수련관을 관리하는 두 명의 과장 중 한 명인 타게루. 그런 그의 이마에 차에서 내린 두 사람 중....백인 남자가 그의 이마에 권총 총구를 갖다 댔다.

기겁한 타게루는 뒷걸음질을 쳤고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타게루를 따라서 두 남자들도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피슝!

건물 안에 들어감과 동시에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면서,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 뒤통수가 터져 나간 타게루는 썩은 고목나무 쓰러지듯 건물 안 바닥에 쓰러졌다.

스르르르륵! 끼익!

그때 승용차 한 대가 건물 입구 앞, 그러니까 두 사람이 타고 온 차 뒤에 멈춰 섰다. 그러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백인 남자에게 말했다.

“세르게이. 처리 해.”

“쳇! 알았다.”

좀 전 타게루의 이마에 구멍을 만들어 준 그 백인 남자가 곧장 건물 밖으로 나갔고....

피슝! 피슝!

차에서 내린 중년 남자와 차 안 운전석에 있던 남자를 간단히 총알 두 발로 처리해 버리고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 사이 건물의 배치도를 살피고 있던 남자가 백인 남자에게 말했다.

“3층에 있네. 가자.”

그리곤 앞장서서 계단 쪽으로 움직였고 그런 그를 백인 남자가 곧장 뒤따랐다. 남자는 거침없이 2층을 지나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때 뒤에 백인 남자가 외쳤다.

“철수. 숙여!”

그 소리에 그 남자, 철수가 홱 허리를 숙였고 백인 남자, 세르게이의 총구에서 불을 토해냈다.

피슝! 피슝! 피슝!

세발의 총알이 2층에 있던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 셋의 머리와 가슴을 꿰뚫었다.

앞장서서 움직이던 철수는 전혀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그런 철수를 발견한 뗀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은 당연히 그를 향해 권총을 빼들지 않았다. 하지만 철수 뒤에 세르게이는 아예 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킬러였다. 세르게이를 발견하고 뒤늦게 세 명의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이, 각자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빼내려 했을 때 이미 총알이 그들 머리와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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