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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나나미의 매니저 곤도. 그는 소속사 사장이 시킨 대로 나나미를 가부키초의 한 이태리 레스토랑에 데려다 주었고, 거기에 있던 방송국 높으신 분과 나나미가 식사를 끝내자, 그곳 음식 값을 법인카드로 계산해주고 소속사로 복귀했다. 그러자 소속사 사장인 안도가 그를 보고 말했다.
“수고했어. 그만 퇴근해.”
“네. 그럼 저는 이만....”
곤도는 나나미와 같이 식사를 한 방송국의 높으신 분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그걸 사장인 안도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묻는다고 해도 대답해 줄 안도 사장도 아니었고. 그래서 퇴근하는 척 하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서, 안도 사장 때문에 아직 퇴근하지 못하고 있던 직원에게 슬쩍 물었다.
“가부키초의 이태리 식당 말인데, 오늘 거기서 접대한 사람 누굽니까?”
그러자 그 직원이 곤도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거기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음식 값을 결제한 거예요?”
“네. 뭐....”
“쯧쯧....TVS방송국 부사장 혼다잖아요.”
“아아....”
곤도도 매니저로 방송국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TVS방송국 혼다 부사장이 얼마나 호색한인지도. 더불어 그런 자에게 붙잡힌 거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연예인 나나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그 작자가 변태라서 나나미에게 육체적은 물론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닐지....
곤도도 안도 사장이 나나미에게 성 접대를 시키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 그녀를 거기로 데리고 갔으니 유구무언이었지만 그래도 그 상대가 TVS방송국 부사장 혼다인 줄 알았다면....
“하아....”
곤도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설혹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곤도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안도 사장이 시킨 대로 하지 않으면 바로 잘릴 직원. 그게 곤도 자신이 하이퍼 사쿠라라는 연예기획사에서 가진 입지였으니....
“에이 씨....”
깊은 자괴감에 빠진 곤도는 회사를 나와 곧장 근처 단골 라면집으로 향했다.
일본 술집은 술값과 음식 값 외에 착석료를 따로 받는다. 하지만 그의 단골 라면집은 그러지 않았다. 술집이 아니라 라면집이어서다. 900엔이면 라면 한 그릇에 만두 6개,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도록 구성 된 저렴한 메뉴 역시 곤도 같이 부담 없이 한 잔만 하고 싶은 직장인들의 마음을 충족 시켰다.
“후루룩....쩝쩝쩝....”
곤도가 라면을 먼저 먹는 동안 뒤늦게 맥주가 나왔다. 원래라면 맥주를 먼저 시키고 한잔 하는 동안 라면이 나오길 기다렸을 텐데 오늘은 라면이 먼저 나왔다.
그럴 게 앞서 손님 중 주문을 잘못하는 바람에 평소 곤도가 즐겨 먹던 돈코츠 라면이 주인을 잃었고, 가게 주인이 마침 곤도를 발견하고서 그에게 물었다. 돈코츠 라면을 시킬 건지를.
당연히 곤도는 그렇다고 했고, 그 돈코츠 라면의 주인이 된 거다. 그래서 먼저 라면을 먹으면서 곤도가 맥주를 주문했고.
그렇게 반쯤 라면을 먹은 뒤 곤도는 맥주를 컵에 따라서 시원하게 한잔 마셨다.
“캬아....이 맛이지.”
일본 열도에 ‘가볍게 한 잔(초이노미)’ 문화가 이제는 완전히 정착이 됐다. 곤도도 직장인으로 퇴근 후 마시는 이 한 잔의 맥주가, 그에게 있어서는 피로회복제이면서 삶의 활력소로 자리 잡았다.
맥주로 입가심을 한 곤도는 다시 남은 라면을 먹기 시작했고 그 라면을 다 먹은 뒤, 남은 맥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씻고 잠이 든 그는 다음 날 늦지 않게 출근을 했고, 예정 된 일정대로 매니저 실장과 같이 오사카로 출장을 갔다.
* * *
오사카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회사로 간 곤도는 매니저 실장의 배려로 두 시간 정도 일찍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한 곤도는 자신이 맡은 연예인들을 챙기다가, 나나미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녀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이 되어 안도 사장을 찾았다.
“나나미와 연락이 안 돼? 으음. 그럼 혹시 한국 간 거 아냐?”
하지만 곤도는 안도 사장과 생각이 달랐다.
“엊그제 나나미가 만났던 그 방송국 고위 관계자 말인데요. 그 분께 나나미에 대해 물어 봐 주시면 안 될까요?”
“뭐?”
곤도의 말에 안도 사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도 곤도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간파를 한 것이다. 하지만 안도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곤 나나미가 만났던 그 방송국 고위 관계자가 누군지 솔직히 밝히며 말했다.
“혼다 부사장의 평판이 좋지 않은 건 맞지만, 그가 나나미를 어떻게 했을 거라는 건 억측일 뿐이야.”
“하지만....”
“거기까지.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그분을 건드릴 수 없어. 그랬다간....너만 잘못 되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끝장날지 몰라. 그러니 너는....나나미를 좀 더 찾아 봐. 특히 한국 쪽으로다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잔뜩 풀죽어 대답하는 곤도를 보고서 안도 사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이럴 시간 있으면 나나미 말고 네가 맡은 다른 애들이나 잘 챙겨.”
결국 곤도는 안도 사장에게 핀잔만 듣고 사장실을 나왔다. 그리곤 곧장 나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에휴. 나도 모르겠다.”
안도 사장 말대로 곤도에게는 나나미 말고도 챙겨야 할 연예인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연락하고 그들 위주로 스케줄을 짜고 또 스케줄을 직접 뛰다보니 하루가 금방 흘렀다. 그래도 밤에 스케줄은 없어서 해가 지고 나서 퇴근할 수 있었던 곤도.
그는 여느 때처럼 집에 가기 전 단골 라면 가게에 들렀다. 평소의 곤조는 돈코츠에 쇼유, 즉 간장 베이스의 돈코츠 라면을 주로 먹었다. 하지만 오늘은 미소, 그러니까 된장 베이스의 돈코츠 라면을 먹기로 했다.
일본 라면은 4가지 종류로 분류하는 데 그게 바로 쇼유(간장), 미소(된장), 시오(소금), 돈코츠(돼지뼈)다.
쇼유, 미소, 시오는 소스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돈코츠는 소스가 아닌 육수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결국 돈코츠+쇼유, 돈코츠+미소처럼 같은 돈코츠 라멘이더라도 사용하는 소스에 따라서 라면의 종류가 달라졌다.
“맥주 먼저 주시고.....라면은 된장 돈코츠로 주세요.”
곤도는 직원이 다가오자 바로 생각하고 있던 걸 주문했다. 그러자 직원이 시원한 맥주부터 곤도에게 내어 주었다.
“캬아....”
곤도는 그 맥주를 마시며 오늘도 머릿속에 잔뜩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곤도가 두 잔째 맥주를 따라 마신 후 주문한 돈코츠 라면이 나왔다. 곤도는 라면을 그릇째 들어서 국물부터 맛 봤다.
“후루룹....크으....”
된장 소스가 푹 우려진 돼지뼈 국물과 잘 어우러져서 곤도의 입에서 절로 탄사가 터져 나오게 진한 맛을 냈다.
국물 맛을 확인하고 나서 라면 그릇을 도로 내려놓은 곤도는 젓가락을 챙겨 들고 본격적으로 라면의 면을 건져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쩝쩝쩝....”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채 곤도가 열심히 라면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매니저 실장의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자신의 직속 상사라 곤도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네. 네. 네에? 나나미요?”
매니저 실장이 갑자기 나나미에 대해 물었고, 곤도는 안 그래도 엊그제 이후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걸 매니저 실장에게 얘기했다. 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걸 전부 다 말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혹시....네? 아아. 그건 아닙니다. 네.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네. 나나미에게 연락 오면 실장님께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안도 사장에 이어서 매니저 실장에게도 괜히 곤도에게 뭐라고 했다. 매니저로서 여배우를 어떻게 케어 한 거냐고 말이다.
옳은 소리라 뭐라 말도 못하고 점점 더 얼굴만 일그러트리던 곤도. 그는 매니저 실장과 통화를 끝내고 잔뜩 화난 얼굴로 마저 먹던 라면이 아닌, 맥주병으로 손을 움직여서 남은 맥주를 컵에 다 따른 뒤 단숨에 그 컵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라면 가게 직원에게 외쳤다.
“여기 맥주 한 병 더요.”
뜨끈하고 기름진 라면 보다 차갑고 깔끔한 목 넘김이 끝내주는 맥주가 더 당기는 곤도였다.
* * *
료마는 자신의 넓은 인맥을 십분 활용해서 나나미라는 여배우가 지금 어디에 누구와 같이 있는지 기어코 알아냈다.
“TVS방송국의 혼다 부사장? 거기다 야쿠자에....뗀지 탐정사무소 사부로까지....”
그런데 료마 자신이 생각한 거 보다 뭔가 일이 복잡하게 꼬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왜냐하면 나나미라는 그 여배우와 같이 있었던 자들과 지금 같이 있는 자가 워낙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어서 말이다.
우선 엊그제 나나미는 혼다 부사장을 만나 같이 있다가 야쿠자들에 의해 모처로 옮겨졌다.
근데 그곳이 바로 야쿠자 두목의 운영 중인 별장이었고, 그녀는 용케도 그곳에서 탈출을 했고 그런 그녀를 도운 것으로 보이는 뗀지 탐정사무소의 사부로와, 지금 뗀지 탐정사무소 본사 건물에 같이 있었다.
그걸 알아낸 료마는 제 3자를 통해서 뗀지 탐정사무소에 물었다. 나나미를 왜 그들이 데리고 있냐고 말이다. 빨리 그녀를 내 놓으라고. 그랬더니 뗀지 탐정사무소에서 딱 잡아뗐다. 그런 여자 모른다고 말이다.
즉 이렇게 되면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나나미를 뗀지 탐정사무소에서 빼낼 수 없다는 소리였다.
“뭐 그것까지는 내가 알 바 아니고.”
어디까지나 료마가 받은 의뢰는 지금 나나미라는 여배우가 어디 있는가 이지 그녀를 찾아내서 의뢰자 앞에 데려다 주는 건 아니었다.
“쳇! 잠도 제대로 못 잤군.‘
료마는 시간이 새벽 5시를 훌쩍 넘은 걸 보고 근처 사우나 온천으로 가서 거기 수면실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바로 출근길에 올랐다. 그리고 출근하는 도중 시간을 확인하고 어젯밤에 그에게 의뢰를 한 철수라는 한국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요. 료마.”
-네. 안 그래도 지금 막 아침 식사를 마친 참입니다.
철수의 그 말은 곧 약속한대로 빨리 그가 찾고 있는 나나미라는 여배우가 지금 어디 있는지, 료마보고 빨리 말하란 소리였다. 그걸 모를 료마가 아니었기에 그는 바로 철수가 기다리고 있는 대답을 했다.
“그녀는 지금 사이타마에 있는 뗀지 탐정사무소의 수련관에 있소.”
원래는 긴자 거리에 위치한 뗀지 탐정사무소 본사 건물에 있었던 나나미. 한데 료마가 그곳을 들쑤시자, 새벽 6시쯤에 거기서 도쿄 외곽에 있는 수련관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료마는 그 소식을 뗀지 탐정사무소에 다니는 경비 직원을 통해 사우나 온천을 나와 출근 하려 할 때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철수와 통화 중이니 나나미라는 여배우는 지금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 뗀지 탐정사무소의 수련관에 있는 게 맞았다.
-사이타마의 뗀지 탐정사무소 수련관이란 말이지요?
“그렇소.”
-알겠습니다. 거기 가서 확인하고 잔금을 보내 드리지요.
확인이 되면 남은 2백만 엔을 보내겠다는 상대의 말에 료마는 그러라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오전 중으로 돈이 다 들어오겠군.”
료마는 밤 한 번 새고 간단히 번 3백만 엔으로 뭘 할지 생각하니 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애들 학원 비 보태라고 백만 엔 주고, 나머지 백만 엔은 부모님 결혼 50주년 기념 여행비에 쓰시라고 보내 드리고 나도 백만 엔이 남는군.”
료마는 그 백만 엔으로 뭘 할지 벌써부터 흥분이 됐다. 그때 그의 동생인 구로모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걸 확인한 순간 료마의 환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아....”
그리고 입 밖으로 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보아하니 백만 엔을 료마 혼자 다 쓰긴 글러 먹은 거 같아서 말이다.
동생이지만 진짜 돈 냄새 하나 만큼은 구로모리보다 잘 맡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왜?”
구로모리가 왜 전화했는지 뻔했기에 그의 전화를 받는 료마의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왜긴. 내 친구 철수가 찾는 사람 잘 찾아 줬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지.
어차피 구로모리가 친구라는 그 한국인에게 전화해 보면 들통 날 일이었다. 그래서 료마가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랬군. 그럼 철수가 확인하는 대로 돈이 들어오겠네?
“그, 그렇지.”
-소개료 30%인거 알지?
“아니 무슨 30%야. 10%로면 되지.”
동생 말대로 소개비로 30%를 주면 90만 엔이다. 그러면 료마 수중에 고작 10만 엔이 떨어졌다. 그러니 료마 입장에서 동생에게 소개비 명목으로 30%를 줄 수는 없었다.
-뭐? 10%? 지금 장난해?
“너도 알다시피 애들 밀린 학원 비에, 아버지 어머니 결혼 50주년 여행 보내드려야 할 거 아냐?”
-하아. 좋아. 그럼 20%.
“15%.”
-17%. 더는 안 돼.
“알았어. 그렇게 하자.”
자신과 달리 가정이 있는 형을 생각해서 구로모리가 양보를 한 걸아는 료마.
“고맙다. 동생아.”
-됐고. 이번에 아버지 어머니 동남아, 중국 말고 꼭 유럽에 보내 드리자.
“그래. 그러자.”
두 형제가 자신이 보낼 줄 돈 가지고 돈독하니 우애를 나누고 있을 때, 철수는 호텔을 통해 렌트한 차를 타고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