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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철수는 구로모리와 같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넜다. 밤이지만 여기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교차로를 건너고 나자 구로모리가 근처 지하철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저쪽이야.”
“그래? 그럼.....오늘 만나서 반가웠다. 며칠 도쿄에 머물 계획이니까 시간나면 술 한 잔 같이 하자.”
“그래. 연락해. 저녁 8시 이후로는 시간 있으니까.”
그렇게 구로모리와 작별을 고한 철수는 구로모리가 향하는 지하철 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10분쯤 걷자 택시 승강장이 보였다. 거기로 간 철수는 줄을 섰고 이내 택시를 잡아탔다.
“힐튼 호텔이요.”
그리곤 일본에 오기 전에 미리 잡아 놓은 호텔로 향했다. 그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금쯤 구로모리와 통화를 끝냈겠지.”
그 말 후 철수가 핸드폰을 꺼냈고 구로모리로부터 알아 내 저장해 둔, 그의 형 료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내 통화 연결 음이 울리고....
-여보세요?
아주 굵고 울림 있는 남자 목소리가 철수의 귀에 들려왔다.
“료마상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자기가 누군지 동생인 구로모리에게 들어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료마. 그런 그에게 철수가 깍듯한 인사말과 함께 자신이 누군지 밝혔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왜 찾으신 건지....
그러자 료마가 조심스레 무슨 용건으로 자신에게 이렇게 전화를 건 건지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그런 그의 반응에 철수도 느꼈다. 상대가 동생과 이미 통화한 걸 철수가 파악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철수도 더 뜸 들이지 않고 료마에게 말했다.
“실은 도쿄에서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지요?
“하시모토 나나미라고....”
-나나미?
료마도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 듯 생각에 잠겼고, 그런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철수가 자신이 아는 나나미에 대한 정보를 료마에게 밝혔다.
“왜 얼마 전 닛본TV의 드라마 ‘마녀의 손길’에서....”
-아아. 누군지 알겠군요. 그 드라마 속 여주인공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바로 그녀가 제가 지금 찾고 있는 나나미입니다.”
철수는 료마가 나나미가 누군지 아는 듯하자 바로 이어 말했다.
“지금 그녀가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 가급적 빨리 파악해 주십시오.”
그 말에 료마가 즉각적으로 대답을 했다.
-유명인인 만큼 찾는 게 쉽기는 하지만....급하게 찾게 되면 그 만큼 의뢰비가....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내일까지 알아내려면....백만 엔은 주셔야....
“3백만 엔 드리겠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알아봐 주십시오. 가능하지요?”
갑자기 의뢰비를 3배로 부풀리는 철수. 그 효과는 확실했다.
-물론입니다. 내일 아침 식사가 끝나시기 전까지 나나미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착수금으로 지금 즉시 백만 엔을, 그리고 내일 아침에 2백만 엔을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식사가 끝나기 전에 나나미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 잔금까지 다 치를 테니 계좌번호를 알아서 보내라는 소리였다. 그걸 못 알아들을 료마가 아니었다.
-통화 끝나는 즉시 계좌번호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계좌로 착수금 백만 엔을 보내라는 소리였고 철수도 바로 알아 들었다.
“그러죠.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고 료마의 말처럼 그 즉시 핸드폰이 울렸다. 철수가 확인하니 료마가 계좌번호를 보냈다. 철수는 그 즉시 자신의 핸드폰으로 료마의 계좌로 백만 엔을 쏴 주었다. 그러자 료마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즉시 일 진행하겠다고 말이다.
도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흥신소의 실무진을 직접적으로 이끌고 있는 료마 부장이었다. 그가 설치면 이 도쿄 안에 있는 나나미를 찾는 건 철수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쉬울 수도 있었다.
“물론....어려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료마 부장이 괜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인맥이라면 분명 내일 아침까지 나나미가 어디 있는지 자신에게 알려 줄 것을 철수는 확신했다. 그때 택시 차창 너머로 힐튼 호텔이 보였다.
* * *
철수가 먼저 간 세르게이가 짐 풀었을 호텔 방에 다다랐을 때였다. 세르게이가 시킨 룸서비스가 그 방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서 와.”
그래서 철수는 초인종을 누를 것도 없이 룸서비스와 같이 그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그를 가운 차림의 세르게이가 반겼다. 세르게이는 아직 젖은 머리를 말리지 못한 채였다. 그 말은 이제 막 샤워를 했단 거고....
철수와는 달리 세르게이는 샤워만 한 시간 정도 했다. 자기 몸 하나는 그렇게 깔끔을 떨며 구석구석 씻는 인간이, 정작 주변 청소는 전혀 하지 않는 게 철수로서는 미스터리하기까지 했다. 털털한 성격의 철수가 당연히 그 점을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세르게이가 그에 대해 별 말 하지 않고 생 깠다.
뭐 어째든 세르게이가 먼저 씻은 건 칭찬해 줄만 했다. 왜냐하면 식사하고 나서 철수도 바로 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오. 주문 잘했네.”
그리고 또 하나 세르게이가 시킨 룸서비스의 음식이 철수의 마음에 들었다. 일본 음식은 대개 짜다. 그래서 일본에 오면 철수는 호불호가 없는 음식을 주로 시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파스타고.
그랬는데 세르게이가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피자를 시킨 것이다. 덕분에 배고픔을 해결한 철수. 그가 짐을 풀고나서 속옷을 챙겨서 욕실로 향하며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바쁠 테니 일찍 자.”
그 말에 호텔 방의 냉장고에서 일본 캔 맥주를 꺼내 홀짝 거리던 세르게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철수가 세르게이와 달리 10분 만에 씻고 욕실을 나왔을 때였다.
“드르렁....드르렁....”
세르게이가 시끄럽게 코를 곯아대며 잠들어 있었다. 그걸 보고 철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피곤했던 모양이군.”
여행은 아니지만 여행 같이 일본에 왔다. 하지만 여행은 생각보다 힘들다. 여행이 주는 기쁨이 그 힘듦을 많이 순화 시켜 줘서 그렇지.
“으아아아함....”
잠든 세르게이 옆에 비어 있는 싱글 침대를 보니 철수의 입에서도 절로 하품이 나왔다. 세르게이는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잠든 듯 했지만 철수는 바로 침대로 갔다.
샤워 후 속옷을 갈아입었지만 가운만 걸친 상태로 침대에서 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눕고 보니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 잠깐 자고 일어나서.....’
가운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자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밀려드는 수마에 잠식 되어 잠들어 버린 철수. 옆에 세르게이가 그렇게 시끄럽게 코를 곯아도, 그 소리가 철수의 귀에는 바람 소리나 파도 소리처럼 느껴졌다.
“으으음....”
그렇게 잠깐 자고 눈을 뜬 철수. 그런데 어째 주위가 환했다. 철수는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7시 30분?”
그리고 옆 침대에 아직도 코를 곯고 자고 있는 세르게이가 보였다. 철수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욕실로 향했다. 세르게이가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 그가 먼저 씻으러 말이다.
* * *
욕실에서 씻고 나온 철수는 세르게이를 깨웠다.
“세르게이.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아침? 어어. 그래. 먹어야지.”
다른 걸로는 아무리 깨워도 끄덕 하지 않는 세르게이. 하지만 먹는 거 가지고 깨우면 저렇게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먹을 걸 찾았다.
“내 아침은?”
“이제 시키려고. 뭐 먹을 거야?”
철수의 그 말에 뻥 진 얼굴로 그를 쏘아보는 세르게이. 하지만....
“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자기가 먹을 걸 바로 말하는 세르게이. 그리고 다시 누우려는 그에게 철수가 말했다.
“빨리 씻어. 아침 먹고 바로 일하러 가야 하니까.”
그 말에 세르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철수에게 물었다.
“뭐? 벌써 그 여배우 찾았어?”
“어. 나나미 어디 있는지는....누가 곧 알려 줄 거야.”
“누가?”
“있어. 그런 사람이.”
철수가 그렇다니 세르게이는 더는 묻지 않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터덜터덜 욕실로 향했다. 철수는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룸서비스로 시켰다.
“아메리칸 식 브렉퍼스트 둘....룸서비스로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철수가 씻고 나온 뒤 옷을 갈아입고 호텔 뷔페를 이용하는 것 보다 룸서비스로 시켜 먹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세르게이는 예외 없이 30분이 지나서야 욕실을 나왔다. 그 사이 철수가 룸서비스로 시킨 조식, 아메리칸 식 브렉퍼스트가 배달되어 왔다. 철수가 그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사이 세르게이가 옷을 챙겨 입고 왔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역시 호텔에서 아침은 아메리칸 식 브렉퍼스트지.”
아메리칸 브렉퍼스트의 기원은 영국식 아침식사인 'Full Breakfast'이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에서는, Continental breakfast로 그냥 커피 한잔에 빵 한 조각, 잼이나 버터 약간 정도로 아침을 조촐하게 먹은 걸로 알려져 있었다.
미국식 아침식사의 주된 구성요소 육류, 계란, 탄수화물 세 가지인데, 육류는 미국식 소시지나 베이컨, 계란은 스크램블 에그나 계란 프라이, 탄수화물은 토스트나 팬케이크 등으로 제공되는 게 보편적이었다.
여기에 건강을 생각해 간단한 녹황색 채소(주로 그린빈,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당근 등) 볶음을 곁들이고, 추가적인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서 감자튀김이나 으깬 감자, 통감자 구이와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그처럼 힐튼 호텔의 아메리칸 식 브렉퍼스트는 정석적인 메뉴들로 구성 되어 있었고, 철수와 세르게이는 그걸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철수가 막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끝냈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철수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그 전화를 받았다.
* * *
료마는 도쿄 최대 흥신소인 ‘키엔스 기획’의 부장이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부장인 그가 받는 급료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도쿄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기에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특히 아이들이 커가면서 들어가는 교육비가 문제였다. 그래서 아내도 아이들 학교 나갔을 때 부업을 뛰었다. 그런데도 돈이 모자랐고 료마는 별수 없이 일 외적으로 돈이 될 만한 일을 했다. 그게 바로 정보를 파는 것이었고. 그 사실을 아는 자신의 동생인 구로모리가 중간에 중개상 노릇을 해줬다.
그 동생이 아는 사람 중 한국인 철수라는 자가 한 연예인이 어디 있는 지 찾는 의뢰는 사실 료마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었다.
그가 일하는 ‘키엔스 기획’에 그쪽 관련해서 인맥이 잘 형성 되어 있었으니까. 즉 몇 군데 전화를 돌리면 나나미라는 그 여배우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3백만 엔이라니....”
료마의 세달 치 월급이었다. 그는 완전 꿀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생인 구로모리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스미모토 과장. 나야. 료마. 어어. 한잔 하고 있는 거야? 부럽네. 나? 집이지.”
작년에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이전 부서의 부하 직원 스미모토는 솔로의 삶을 즐기고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료마는 지금이 더 좋았다.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는 이 집에 그들과 함께 숨 쉬고 같이 살아가는 게 말이다.
“안 돼. 그랬다가 쫓겨 나. 하하하하. 좀 봐 주라. 어. 나? 부탁 좀 하려고. 왜 전에 하이퍼 사쿠라라는 연예기획사에 친구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 맞아. 거기. 그 친구한테....”
료마는 스미모토 과장에게 부탁을 해서 나나미의 매니저를 통해 지금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예전에 료마에게 크게 신세 진적이 있는 스미모토 과장. 그는 절대 지금 료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어. 그래. 고마워.”
그렇게 통화 후 료마는 냉장고로 가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서 마시기 시작했고, 그 캔 맥주를 다 마신 후 새로 캔 맥주를 하나 더 냉장고에서 꺼낼 때 스미모토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스미모토 과장.”
료마는 그 전화를 바로 받았고 스미모토 과장으로부터 쭉 얘기를 들었다.
“그렇군. 그러니까 나나미가 도쿄 시내에 있는 건 확실하단 얘기로군?”
-그렇습니다. 나나미의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그제 저녁 가부키초의 한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그녀와 헤어졌다는데....
“잠깐. 그 헤어진 시간이 몇 시라고 했지?”
-7시쯤이라고....
“알았어. 고마워.”
나나미의 매니저로부터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을 다 알아낸 상태였다. 여기서 그쪽 얘기를 더 하는 건 시간 낭비. 그 뒤의 나나미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료마는 스미모토 과장과 통화를 서둘러 끝냈고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