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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사람 좋고 실제로 친절하기까지 한 철수. 하지만 그가 뭔 일을 시작하면 결코 기다려 주는 스타일은 아니란 걸 이제는 알게 된 세르게이.
그는 철수가 며칠 집을 비우게 될 경우, 지금처럼 짐을 다 챙기면 바로 집 정리, 즉 청소에 들어간다는 걸 알기에 서둘러 자기 짐을 챙겼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그건....
우우우웅!
언제 챙겨 왔는지 진공청소기로 오피스텔 청소를 시작하는 철수. 세르게이는 철수가 그에게 오기 전에 필요한 짐을 캐리어 안에 더 쑤셔 넣었다.
쭈우우우욱!
그리고 캐리어 지퍼 잠그는 소리가 들리자, 철수가 청소기 작동을 멈추고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캐리어 차에 실어.”
그러며 턱짓으로 자신의 캐리어를 가리키는 철수. 세르게이에게 움직이는 김에 자신의 캐리어도 같이 차에 실으라는 소리였다. 자신의 몸 하나는 늘 청결을 유지하는 세르게이. 그런데 사는 곳을 치우는 건 영 관심이 없는 그였다.
당연히 철수가 청소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걸 알기에 철수가 세르게이에게 청소하는 동안 그가 밖에 나가 있게 배려를 해 준 것이다. 세르게이도 이제는 그걸 아는 터라 군말 없이 자신의 캐리어와 철수의 캐리어를 챙겨서 오피스텔을 나섰다.
그리고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던 자신의 차로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간 세르게이는 차 트렁크에 캐리어 두 개를 싣고 곧장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곤 음악을 틀고 등받이를 뒤로 넘기며 그 등받이에 등을 기대로 편하게 몸을 뉘였다.
그렇게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몇 곡 듣고 난 세르게이가 차에서 나와서 다시 오피스텔, 철수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말끔하게 집 청소를 끝낸 철수. 물걸레로 청소를 한 듯 대리석 바닥이 다 번쩍였다.
“이리 와서 앉아.”
그때 주방 정리도 다 끝낸 듯 철수가 세르게이에게 2인 식탁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세르게이는 철수가 시킨 대로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철수가 갓 내린 원두커피가 가득 든 잔을 세르게이 앞에 내 놓았다.
“오오. 향 좋네. 고마워.”
커피라면 서양인답게 좋아하는 세르게이. 그래서 일부러 커피 잔에 커피를 꽉 채워 준 철수, 그 역시 커피 잔 을 든 체 세르게이와 마주보고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한 모금 커피를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이번 의뢰는....”
철수는 세르게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자신들의 VVIP고객인 백준열의 의뢰가 뭔지 얘기를 했다. 세르게이는 맛있게 커피를 마시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커피 맛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철수의 말이 이해되어 그런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후자임은 곧 밝혀졌다.
“그러니까 일본에 가서 그 백대표가 말한 일본 여배우의 근황을 살펴서 알려주면 된다는 거군.”
그 말에 철수가 몇 마디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그 여배우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알아서 정리해 주는 거 까지.”
“문제는 무슨....일본도 치안률은 꽤 좋은 곳인데. 뭐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세르게이의 그 말에 철수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치안은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양호하다. 취객이 만취 상태로 비교적 안전하게 밤길을 걸어 다닐 수 있고, 어딘가 물건을 놓고 왔더라도 다시 찾을 확률이 높은, 치안 면에선 그야말로 일류라 칭해도 무방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뭐 선진국이라 해도 소매치기, 음성적인 강도, 길거리 시비, 범죄연루 등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별다른 '터치'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치안은 호평 받을 만하니까.”
세르게이가 그에 대해 덧붙여 말하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철수가 말했다.
“하지만 외국에 잘 나가지 않는 한국인들은 이를 당연히 여기기 때문에 한국의 우수한 치안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실제 한국은 영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작은 국토에 인구 밀도가 매우 높고, CCTV와 치안 유지 기관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3면이 바다인데다가 유일하게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북쪽은 휴전선과 군사분계선으로 막혀 있어, 범죄자가 도주하기에 심히 열악한 환경이라 사실상 섬나라에 가까운 환경으로 보면 됐다.
게다가 으슥한 곳은 경찰이 시도 때도 없이 순찰을 돌거나 아예 군 주둔지가 인접해 있어 무슨 일을 벌이기도 힘들었다.
특히 으슥한 곳일수록 범죄예방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해두었고, 그거에도 모자라 가로등까지 설치해서 주위를 밝게 해놓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요즘 들어 각 지자체에서 CCTV 관제센터를 운영하여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감시하며 범죄 발생 예방에 힘쓰고 있었다.
게다가 전 국민들에게 전반적으로 심어져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 그리고 사건의 발생, 경과 등을 실시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네이바, 다둠 등의 대형 포털사이트와 코코오톡 등의 MMS, SNS 등의 잘 구축된 통신 환경도 단단히 한 몫 했다.
“내가 알기로 한국의 살인 률이 작년 기준 10만 명당 0.6건인 걸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 하는데, 그 밖의 강도, 상해, 폭행 등 물리적인 폭력이 동원되는 범죄 역시 매우 낮고 말이야.”
세르게이의 그 말에 철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살인 검거 율이 무려 100%라고.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죽이려다 걸렸다면 그냥 조용히 경찰서 찾아가서 자수하는 게 답이라는 거지.”
자부심 가득한 철수의 그 말에 세르게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어.”
결론은 한국이 최고지만 일본도 살만한 곳이라는 거다. 그 만큼 세르게이는 이번에 맡은 의뢰가 별 일 없이 끝날 거라 보고 있었다.
“온천에 몸 좀 담그고 오자.”
“시간 나면....”
세르게이는 핸드폰을 꺼내서 도쿄 어디 온천이 좋은지 검색을 했고 그런 그를 보며 철수는 미묘한 웃음과 함께 커피 잔에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마셨다. 그리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시간 다 됐어. 그만 공항으로 가자.”
그 말에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둔 세르게이도 식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곧장 오피스텔을 나섰고 그들이 나간 방안은 좀 전 두 사람이 비운 커피 잔에서 나는 잔향이 은은히 남아 있었다.
* * *
입국 수속을 마치고 하네다 공항을 나온 철수와 세르게이. 그들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쿄 시내로 들어갔다.
“도쿄의 밤은 빛난다더니 그 말이 맞군.”
휘황찬란한 도쿄 시내의 전경에 세르게이가 혀를 내두를 때 그 옆에 앉은 철수가 말했다.
“도쿄에 괜히 야경 명소가 있는 게 아니니까.”
그 말 후 철수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공항에서 로밍을 한 철수의 핸드폰에 통화 연결 음이 정상적으로 울렸다. 그리고....
-철수. 벌써 온 거야?
핸드폰에 한국말이 들려왔다. 그 말에 철수가 싱긋 웃으며 대꾸를 했다.
“어어. 지금 도쿄 시내야.”
-그래? 나 지금 시부야 쪽인데.
“시부야 어디?”
-타워레코드 근처.
“세이부 백화점 지하에 커피 전문점 있지?”
-있지. 세 개나.
“그 중 하나에 들어가 있어.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백화점 언제 문 닫는지는 알지?
“당연하지. 여기서 10분이면 가니까 걱정 마.”
-알았어. 거기서 기다리지.
그렇게 통화를 끝낸 철수. 그가 능숙한 일본어로 택시 기사에게 변경 된 목적지를 얘기했다. 그러자 택시기사가 그 말을 알아듣고 곧장 U턴을 했고 5분 쯤 뒤 택시가 세이부 백화점 앞에 멈춰 섰다. 그때 철수 혼자 택시에서 내리며 여전히 택시 안에 타고 있던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먼저 호텔가서 짐 풀고 있어.”
“알았다.”
그렇게 철수가 백화점으로 걸어가고 이내 택시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리곤 택시는 하라주쿠에 위치한 힐튼 호텔 앞에 멈췄다.
세르게이는 팁까지 포함해서 택시비를 결제했다.
철컥!
그러자 트렁크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운전석에서 택시기사가 택시에서 내려서 쪼르르 트렁크로 돌아갔고, 이내 그 안에 캐리어 두 개를 끄집어냈다. 그 사이 택시에서 내린 세르게이가 그 두 개의 캐리어를 챙기며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아리가또.”
그리곤 캐리어 두 개를 끌고 힐튼 호텔 입구를 통과해서 그대로 프런트로 향했다.
준비성 철저한 철수가 방 예약을 잘 해 놨기에 세르게이는 방 키를 받아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호텔 입구에서 벨보이를 거부한 세르게이. 그는 직접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호텔 벨보이는 고객의 짐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일은 물론이고 객실까지 손님들의 짐을 옮겨주면서 객실을 안내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보통 5달러 정도의 팁을 주는 게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세르게이는 그 5달러도 아끼고 또 혹시 모르니 타인이 자신과 철수의 짐에 손을 대는 것도 막았다.
더불어 그 타인이 짐을 넣어 준다는 핑계로 그와 철수가 묵게 될 호텔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그다지 탐탁지 않았고 말이다. 보통 벨보이는 짐을 방 안까지 넣어 주니까.
그렇게 예약한 방에 도착한 세르게이는 먼저 자기 짐을 풀었다. 그리고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둘이 쓰는 이곳 호텔 방은 욕실이 하나뿐이었다. 한국에서 철수가 예약을 할 때 세르게이는 스위트룸을 쓰길 원했지만 그걸 철수가 거부했다.
“우리가 돈 벌러 일본가지. 놀러 가는 건 아니잖아?”
철수의 그 말에 세르게이도 딱히 이견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세르게이는 철수가 오기 전에 먼저 씻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오기 전에 룸 서비스에 저녁 식사 주문도 미리 해 두고 말이다.
* * *
백화점 지하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철수. 그는 지하에 있는 매장들의 위치도가 있는 곳에서 잠깐 멈춰 섰다. 그의 눈에 지하 매장들 중 커피 전문점이 어디 있는지가 바로 파악이 됐다.
“뭐 보나마나 저기 있겠군."
철수가 지금 만나려는 사람은 제일 교포 3세인 구로모리란 자였다.
밀수꾼이었다가 이제는 손 씻고 도쿄에서 관광가이드로 먹고 사는 녀석인데, 개 버릇 남 못준다고 가이드 노릇을 하면서 틈틈이 밀수품을 관광객들에게 팔아먹고 있었다. 그런 자를 왜 철수가 일부러 연락해서 이렇게 만나려 하느냐하면....
구로모리의 형인 료마가 도쿄에서 알아주는 흥신소의 부장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로모리는 특히 미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철수는 그게 바뀌었을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스타버스로 향했고 그곳 커피 매장의 한 가운데 4인 자리를 구로모리가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헤이. 철수!”
그가 철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철수는 그런 구로모리에게 다가갔는데 그때 구로모리가 턱짓을 했다. 직원이 들어가 있는 매대 쪽을 말이다.
“아아....”
철수는 바로 구로모리의 의도를 알아서는 매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막 나온 커피 두 잔을 챙겨 구로모리가 있는 자리로 갔다.
“역시 철수. 운이 좋아.”
여기 오자마자 바로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데 그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마자 철수가 이곳 매장 안에 나타난 것이다. 그걸 두고 구로모리는 철수보고 운이 좋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철수는 그 말에 오히려 시큰둥했다.
“별게 다 운이 좋다는 군. 로또 1등이라도 된다면 또 몰라.”
“철수. 너 염세적인 건 여전하구나?”
“그런 너는 너무 낙천적이고?”
“빨리 커피 마시고 할 말 있으면 해. 여기 20분 뒤에 문 닫으니까.”
구로모리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자신에게 틱틱 거리는 철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건 철수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앞에 놓인 커피 잔은 그대로 둔 체 구로모리에게 말했다.
“네 형인 료마의 연락처 좀 알려 줘.”
“형?”
“어. 누구 좀 찾아야 해서.”
철수는 굳이 자신이 여기 온 용건을 구로모리에게 숨기지 않았다. 거기다....
“의뢰비는 두둑이 챙겨 줄 거니까 빨리 말해.”
돈이 될 일이었기에 구로모리로서는 자신의 형의 연락처를 철수에게 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철수에게 바로 형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철수는 구로모리가 불러주는 연락처를 자신의 핸드폰에 잘 저장하고 나서 그제야 눈앞에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그리곤 자잘한 말을 꺼내며 구로모리와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스타버스가 매장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자 구로모리와 같이 백화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