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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미우라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살피니 저쪽에서 당황 티가 역력했다. 마치 그가 이럴 줄 몰랐다는 듯 말이다.
그때였다. 차체에 몸을 숨긴 체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는 과정에서, 차 안에 있던 일반인 사람들과 미우라의 눈이 마주쳤다.
“살, 살려주세요.”
그러자 잔뜩 겁에 질린 차 안 사람 중 하나가 미우라를 향해 말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우라는 저들이 왜 자신에게 총질을 가하지 않는지 깨달았다.
‘이들 때문이로군.’
현재 미우라가 몸을 숨긴 차 안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운전석의 남자와 뒷좌석의 여자와 아이. 딱 봐도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로 구성 된, 요즘 일본에서 가장 흔한 가족의 형태였다.
그 중 미우라와 눈이 마주치자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그런 아내를 남편이 어떡하든 진정시키려 들었지만 그게 쉬울 리 없었다. 당장 옆에 총 든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총알이 빗발친 걸 차 안에 사람들이 다 봤으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차를 향해서 총알이 날아오지 않고 있다는 건데, 그러면 뭐하나? 당장 그들 옆에 총 든 자가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미우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그의 두 눈이 악독하게 번뜩였다. 그럴 것이 미우라는 야쿠자였다.
민간인을 보는 시선 자체가 저들과는 달랐다. 반면 저들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은 민간인처럼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자들이고.
톡톡!
미우라가 권총으로 차창을 두드렸다. 그러자 차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런 그들에게 미우라가 최대한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문 열어.”
그러자 차 안 사람들이 그 때문에 뭐라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남편과 아내가 차문을 열지 말지를 두고 서로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미우라는 그런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열지 말자고 떠드는 남편 쪽을 향해서.
철컥!
그러자 잠겨 있던 차문이 열렸다. 미우라는 운전석 옆 조수석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미우라는 총구를 운전석의 남편에게 겨눈 채 뒷좌석을 재빨리 훑어봤다. 그랬더니 아내와 아이가 서로를 끌어안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그걸 보고 미우라는 적어도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하며 총구를 겨누고 있던 운전석의 남편에게 말했다.
“차 출발 시켜.”
“네?”
“죽고 싶어?”
미우라가 권총으로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자 남편이 다급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사이 미우라는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저들에게 포위 된 상태가 아니라 얼마든지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그때 미우라 자신이 달려 온 반대 차선에서 이쪽으로 세 대의 차량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미우라는 그들이 우에다 오야붕 밑에 조직원들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미우라가 기꾸지 때문에 정신없이 여기로 달려 왔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우에다 오야붕에게 형식적으로 연락을 취한 것이다. 그러자 우에다 오야붕이 즉시 밑에 조직원들을 이쪽으로 보내 준 것이고.
‘됐다.’
미우라는 자신이 살았음을 확신했다. 더불어....
“기꾸지의 복수를 할 수 있겠군.”
저들을 잘 활용한다면 기꾸지를 죽인, 여기 있는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을 다 없앨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왜에엥! 왜에엥! 왜에엥!
아까는 앰뷸런스만 달려오더니 뒤늦게 경찰차가 나타났다. 그 말은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의 우군이 등장한 것이다.
“젠장....”
이렇게 되면 복수는 물 건너갔다. 미우라는 여기서 무리해서 조직에 피해를 입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출발해!”
미우라는 이대로 여길 빠져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며 자신을 구하러 온 조직원들도 같이 데리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우라가 막 호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 때였다.
퍼석!
미우라가 겁박에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키던 운전석의 남편. 그런 그의 얼굴에 옆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 파편이 튀어 그의 얼굴에 묻었다.
“아아아악!”
그때 뒷좌석에서 차가 떠나갈 듯 비명소리가 울리고, 그 소리에 놀란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니....
“으허허어억!”
기겁한 남편이 여전히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이마에 구멍이 뚫리고 뒤통수가 터져 나간 체 조수석에 앉아 있는 미우라의 모습에 학을 떼며 자기도 모르게 운전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작정 차 밖으로 나가려 했다.
턱! 턱! 터억!
하지만 안전벨트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버둥거릴 때 그가 있는 쪽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 사람들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는데 다들 총구를 밑으로 내리고 있었기에 남편은 그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외쳤다.
“살, 살려 주세요.”
잠시 후 차 안에 있던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은 전부 구조 되어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 되었다. 그리고 죽은 체 그 차안에 있던 미우라의 시신도 충분히 사진을 찍고 나서 시체 주머니에 넣어 진 채 부검을 위해 모처로 옮겨졌다.
* * *
우에다는 은연 중 미우라의 능력을 인정했다. 고베야마구치 구미에서 그의 역량은 자신과 같은 조장 급이었다. 하지만 친구인 기꾸지 때문에 자신의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 온 그를, 우에다는 부담스러워 하기 보다는 적절하게 잘 이용했다.
미우라가 감당할 수 있는 쪽의 일을 아예 그를 믿고 맡겨 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구미 내에서 우에다의 입지가 빠르게 커져 나갔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고베야마구치 구미의 총 두목인 후쿠야마의 턱 밑에 다다를 터였다.
강한 놈이 다 먹는 게 이 바닥의 생리였다. 우에다의 세력이 후쿠야마의 세력을 넘어 선다면 고베야마구치 구미의 총 두목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
때문에 우에다에게 있어서 요즘 미우라라는 존재는 더 크고 무게감 있게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미우라의 절친인 기꾸지가 뗀지 탐정사무소 놈들에게 죽었다. 이에 눈이 돌아간 미우라가 미쳐 날 뛰었고.
“료스케. 미우라를 살려서 내게 데려 와.”
“네.”
해서 우에다는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있는 료스케와 그 밑에 조직원들을 미우라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로인해 현재 그가 있는 요오기의 별장을 지키는 조직원이 다섯 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에다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만큼 우에다에게 있어서 미우라는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한데....
“뭐? 경찰! 허어....미우라가? 젠장....철수 해.”
미우라를 구하라고 보낸 료스케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우라가 좀 전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고 말이다. 미우라가 죽은 이상 료스케와 자신의 조직원들을 거기에 둘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거기 경찰까지 왔다니....
우에다는 료스케에게 조직원들을 데리고 바로 요오기 별장으로 복귀할 것을 지시했다.
“이거 일이 제대로 꼬였군.”
이대로 1년, 아니 반년 정도만 더 있어도 고베야마구치 구미의 총 두목 자리에 오를 자신이 있었던 우에다. 하지만 그를 총 두목 자리에 앉혀 주어야 할 대장군 격인 미우라가 덜컥 죽어 버렸다.
미우라를 중심으로 꾸려 나가고 있던 조직 체계에, 그 구심점인 미우라가 사라졌으니....
“괜한 일을 맡았어.”
그러며 우에다의 시선이 요오기의 별장 내에서 나름 VIP룸이라고 볼 수 있는 안쪽 별원을 쳐다봤다.
저 별원에 지금 혼다 부사장과 그가 달고 온 여배우 나나미가 같이 들어있었다.
돈이 될 거 같아서 인연을 맺었는데 그게 이런 식의 악연이 될 줄이야.
총 두목이 되려면 돈이 더 필요했기에 혼다 부사장의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이렇게 그의 오른팔이 댕강 잘려 버렸으니, 이건 무조건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장사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혼다 부사장과 연을 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돈이라도 확실히 챙겨야지.”
아니 오히려 더 혼다 부사장과 밀착 될 필요가 있었다. 어째든 돈만 있으면 미우라 같은 녀석을 포섭하기 더 수월하니 말이다.
* * *
처음 우에다의 오른 팔은 료스케였다. 하지만 미우라가 합류하면서 료스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료스케는 우에다의 왼팔이 되면서, 그의 친위대를 맡아 오야붕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비록 말은 안했지만 료스케는 그게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오야붕인 우에다에게 그걸 얘기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오야붕의 곁을 지키는 게 결코 작은 일이라 볼 수 없었으니까. 분명 중요한 일은 맞았다.
그렇지만 료스케는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중추 역할을 맡고 싶었다. 그래야 그도 기회를 엿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바로 두목이 될 기회.
오야붕 곁에서는 오야붕의 눈치를 봐야 하니 언감생심 그럴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료스케가 점점 더 우에다에게서 마음이 떠나고 있을 때 하늘이 무심치 않은지 기회가 찾아왔다.
“좀 더 천천히 가.”
오야붕의 지시를 받고 료스케가 밑에 조직원들을 이끌고 위험에 처한 미우라를 구하러 가게 된 것. 하지만 오야붕과 달리 료스케는 그리 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규정 속도를 지켜가면서 미우라가 있는 곳에 다다른 료스케.
원래라면 료스케가 먼저 미우라에게 전화를 걸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를 구하러 가고 있음을 알렸어야 했고. 하지만 료스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쉬운 건 료스케 자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미우라의 절친 기꾸지가 죽은 것으로 보이는 현장에 다다랐을 때였다.
“저기 미우라입니다.”
그때 료스케 옆의 운전석에 수하가 외쳤다. 미우라가 인질을 잡고 차 안에 있는 게 료스케의 눈에도 보였다. 그리고 미우라가 핸드폰을 꺼내는 것 역시....
료스케는 곧 자신의 핸드폰이 울릴 거라 보고 호주머니 속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그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저, 저격입니다. 미우라가 저격에 당했습니다.”
꺼낸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거는 거 같았던 미우라. 그런 미우라의 미간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총알에 구멍이 났다.
“저, 저런....”
료스케는 그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응?”
그런 그의 눈에 오토바이 한 대가 그들이 온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분명 수상쩍은 오토바이였다. 하지만 료스케는 그 오토바이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이왕 꺼낸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네. 오야붕. 막 현장에 도착했는데 경찰이 떴고....미우라가 죽었습니다. 네.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시체라도....네. 알겠습니다.”
오야붕 우에다를 곁에서 모시던 료스케였다. 우에다가 어떤 인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에다는 쓸모 있는 자를 우대하지 죽어 쓸수 없게 된 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 료스케는 미우라의 시신을 운운했고, 역시나 우에다는 이미 죽은 미우라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경찰 얘기에 조직원들에 피해가 생길까 그걸 더 걱정했다. 즉 료스케에게 바로 그 현장을 철수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철수한다.”
이에 료스케는 오야붕의 지시에 따라서 뗀지 탐정사무소 직원들과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고 차를 돌렸다.
저들도 이쪽이 누군지는 파악한 듯 보였지만 굳이 뒤를 쫓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도쿄 시내에서 더 이상 총격전이 벌어지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료스케는 별 탈 없이 조직원들을 이끌고 우에다가 있는 요오기의 별장으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 * *
“일본?”
“어. 세 시간 뒤에 비행기 타야 하니까 빨리 준비 해.”
철수의 뜬금없는 말에 세르게이가 황당해 할 때였다. 철수는 그러던 말든 자기 짐을 챙겼고, 그걸 보고 세르게이도 일단 자신의 오피스텔 한쪽에 처박아 준 캐리어를 꺼내왔다. 그리고 캐리어를 열고 그 안에 작은 백팩 속에서 여권을 꺼내서 살피더니 철수에게 말했다.
“여권 유효기간 만료까지 5개월 남았는데 괜찮을까?”
그러자 철수가 바로 대답을 했다.
“만료 되지만 않았으면 괜찮아. 근데 여권 갱신하러 러시아에 한 번 들어가 봐야겠네?”
여전히 짐 싸기 바쁜 상태에서 철수의 그 말에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는 러시아에서 보낼까 싶어. 괜찮으면 철수 너도 따라 갈래?”
그러자 철수가 바로 고개를 내저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 추운 데를 내가 왜 따라가.”
그 말에 세르게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러시아에서 콘돔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거든. 너도 알잖아? 러시아 미녀들이 화끈한 거? 내가 가면 그냥 다들 좋아서....”
그러니까 세르게이가 러시아에 가서 화끈한 러시아 미녀를 철수에게 소개해 준다는 소리였다.
“바늘 가는 데 당연히 실이 따라 가야지. 가자! 러시아!”
철수가 바로 말을 바꿨고 세르게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거리다가, 어느 새 철수가 짐 다 챙겨 캐리어에 넣는 걸 보고 후다닥 자기 짐을 챙기러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