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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아네. 그게 사실은....
그랬더니 고로다가 알아서 주절주절 자신이 아는 바를 전부 다 얘기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혼다 부사장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미심쩍은 부분까지 다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렇군요. 고로다 과장은 그 사극 드라마의 조연 배우 자리를 미끼로, 지금 혼다 부사장이 연예 기획사 중 한곳에 스폰을 받을 거라 보는군요?”
세이코가 대 놓고 스폰서 얘기를 꺼내자, 고로다 과장이 질겁하며 말했다.
-아니. 제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 그런 일이 방송계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
“알았어요. 내가 다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그로인해서 고로다 과장이 곤란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감, 감사합니다.
그렇게 세이코는 TVS방송국의 드라마 제작국에 건 전화를 끊고 나서 바득 이를 갈았다.
“그새를 못 참고....”
아무래도 그녀가 미국 출장 중 남편인 혼다가 거하게 뻘 짓을 저지를 모양이었다.
그가 이럴수록 이혼 사유만 늘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혼다로 인해서 그녀가 입게 될 피해, 그러니까 그녀의 이복 오빠와 남동생 쪽 사람들에 의해 그가 벌이는 그 오입질이 간파 되고, 그게 속속 부친인 구로다 회장의 귀에 들어가게 될 거란 점이었다.
구로다 회장의 건강 상태는 몇 달 전에 급격히 나빠졌다가 지금은 많이 나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이가 80살을 훌쩍 넘긴 구로다 회장이 언제 또 건강이 나빠질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때문에 지금은 세이코 뿐 아니라 구로다 회장의 두 아들들에게 있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오늘 내일 당장 구로다 회장이 세 자식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후계자로 선포해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 그녀를 도와줘도 모자랄 남편이라는 작자가, 그녀의 후계자 행보에 사사건건 이렇게 초를 쳐 대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세이코는 지금 쓰고 있던 핸드폰 말고 다른 핸드폰을 그녀의 핸드백에서 꺼냈다.
근데 그 핸드폰은 전원 자체가 꺼져 있었다. 해서 그녀는 그 핸드폰의 전원부터 켰다. 그리고 핸드폰이 통화 가능한 상태가 되자 곧장 1번 단축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러자 전화번호 하나가 핸드폰의 액정 화면에 떴고 이내 통화 연결 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그리고 핸드폰의 스피커에서 특유의 굵은 동굴 목소리가 울려왔다.
“기무하라 소장. 나에요. 세이코.”
-아아. 세이코상. 무슨 일입니까?
언제나 그렇듯 상대는 그녀에게 무심했다. 그리고 철저히 사무적으로만 그녀를 대했다.
세이코는 그게 불만이면서도 은근히 좋았다. 그녀가 누군지 알면서 이런 식으로 그녀를 대하는 남자는 그리 흔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중 하나과 지금 그녀와 통화 중인 이 남자였고.
“제가 왜 전화했을 거 같아요?”
-으음. 또 바깥 분 때문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되묻는 기무하라 소장. 그는 사설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탐정사무소라고 하면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그런 탐정이 운영하는 사무소를 떠올릴 텐데, 실상은 그쪽보다는 심부름센터의 개념이 더 강했다.
기무하라 소장이 운영 중인 뗀지(天地)탐정사무소는 직원을 100명 넘게 둔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그곳 직원들 대 다수가 제 1공정단 출신들이었다.
제 1공정단은 일본 육상자위대의 여단급 공수부대로 대게릴라전이나 적 특수병력에 대응하는 특수부대였다. 그래서 뗀지 탐정사무소에서는 비밀스럽고 특히 거친 쪽 일을 많이 다뤘고, 그로인해 이용료가 상당히 비쌌다.
때문에 일본 최상류층에서 주로 그곳을 이용했는데, 세이코 역시 그곳 최우수 고객 중 한 명이었다. 여자인 그녀를 뗀지 탐정사무소의 단골로 만든 작자가 바로 바람둥이 남편 혼다였고.
“맞아요. 그 인간 또 발동이 걸린 거 같은데....그 뒤처리 좀 부탁할게요.”
현재 그녀가 남편 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은 뗀지 탐정사무소 뿐이었다.
평소의 기무하라 소장이었다면 그녀의 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드렸을 터였다. 하지만....
-으음. 세이코상. 그 일은 저희가 맡기가 어렵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당연히 기무하라 소장이 받아드릴 거라 생각 중이었던 세이코. 그렇다보니 그의 거절이 세이코에게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저번 일 이후 남편 분께서 야쿠자, 그러니까 조직 쪽 사람을 끌어들였습니다.
“뭐, 뭐라고요?”
기무하라 소장의 야쿠자, 조직이라는 말에 세이코의 목소리가 확 커졌다. 그럴 것이 일본에서 야쿠자와 조직이란 곧 지정 폭력단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지정 폭력단은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곳 사람들이 결코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단 점이었다.
즉 혼다에게 뜯어 낼 게 있으니 그 야쿠자가 그에게 달라붙은 것이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아니 병신새끼 혼다가 늑대를 막으려고 호랑이를 끌어 들인 거다.
“하아. 그래서 제 의뢰를 받지 않겠단 건가요?”
-그럴 리가요. 단지 의뢰비용 조정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얼만데요?”
-10억 엔입니다.
“뭐라고요?”
원래 세이코는 1일 이용료로 1억 엔 밑으로 지불했다. 대개의 경우 뗀지 탐정사무소를 하루 만 이용해도 남편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되었다. 그건 이번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 중이었고. 한데 뗀지 탐정사무소의 기무하라 소장이 지금 그 10배 넘게 요구하고 있었다.
-남편분이 끌어들인 조직은 고베야마구치 구미고 현재 그곳 조장 중 한 명인 우에다와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알아보니 우에다는 구미 내에서도 상당한 강경파로 그 밑에 조직원들이 사납고 잔인하기로 유명하더군요. 그들과 충돌 시 유혈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근데 기무하라 소장의 얘기를 들으니 뗀지 탐정사무소에서 그 정도 요구를 하는 게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이 세이코는 들었다.
일본 정부에서 폭력단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과 정책을 통해 야쿠자들의 병폐가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도쿄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이거나, 자동소총까지 동원해 적대조직과 항쟁을 벌이는 일이 요즘도 여전했다.
“좋아요. 10억 엔으로 하죠.”
세이코에게도 10억 엔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다의 뻘 짓으로 인해서 그녀가 구로다 회장 눈 밖에 나는 일 만큼은 반드시 막아야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남편 분에 대한 조치를 지급 즉시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세이코가 이렇게 거금을 들여서 뗀지 탐정사무소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부터 열까지 그들이 다 알아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기무하라 소장과 통화 직후 더 이상 그녀가 남편인 혼다 때문에 신경 쓸 일은 없어졌다는 얘기.
그래서 통화 후 세이코는 바로 욕실로 갔다. 그리고 간단히 샤워 후 침대로 가서 그 위에 꼬꾸라졌다.
배 고품, 시차적응이고 뭐고 지금 그녀는 너무 피곤했고, 침대 시트의 까칠한 감촉과 호텔 특유의 은은한 냄새가 얼굴에 느껴지고 코에 맡아짐과 동시에 그녀는 깊은 수면 상태에 빠져들었다.
* * *
혼다는 가부키초의 한 건물 7층에 위치한 자신의 단골 레스토랑 VIP룸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안내해 VIP룸 안까지 따라 들어 온 레스토랑 여사장에게 혼다가 말했다.
“미츠. 요즘 장사는 어때?”
“고만고만해요. 그보다 오랜만이네요?”
“말도 마. 마누라 무서워서 어디 마음대로 나 다닐 수가 있어야지.”
혼다가 그의 아내에게 꽉 쥐여 산다는 건, 이미 그의 주변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바였다. 그랬기에 레스토랑 여사장의 그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혼다.
거기다가 눈앞의 여사장 미츠는 예전 혼다와 깊은 관계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친구사이로 지니고 있었다.
호색한인 혼다가 그렇게 한 건 순전히 미츠가 예전의 미모를 잃고 뚱뚱해졌기 때문이었다.
그걸 미츠가 모를 리 없었기에, 예전으로 돌아가려 나름 다이어트도 해봤지만 살 빼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젠 미츠도 포기하고 더는 혼다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 둘은 나름 선을 넘지 않고 비즈니스 적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 말은 그 무서운 마누라 어디 멀리 갔단 얘기네요?”
“맞아. 미국 출장 갔어.”
“며칠이나요?”
“일주일.”
“와아. 그래서 입이 귀에 걸리신 거네요.”
“그렇게 티나?”
“당연하죠. 저는 부사장님이 로또에라도 당첨 된 줄 알았어요.”
“로또? 하하하하. 맞아. 로또. 여자 로또에 당첨 되었지.”
“네?”
혼다의 ‘여자 로또’라는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그를 빤히 쳐다보는 미츠. 그런 그녀에게 혼다가 그런 게 있다며 정확히 그게 뭔지 말해주지 않고 나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미츠는 그 여자 로또가 뭔지 10분도 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여기 혼다 부사장님이 와 계신다고....”
어디서 본적이 있는, 일본에서는 흔치 않는 초 미인이 레스토랑에 나타나서 혼다를 찾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본 순간 미츠는 알았다. 혼다가 말한 여자 로또가 바로 지금 그녀 눈앞에 있는 초 미인이란 걸 말이다.
“네. 이쪽으로....”
미츠는 그 초 미인을 혼다가 있는 VIP룸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돌아오니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좀 전 그 분 하시모토 나나미 아니에요?”
“하시모토 나나미?”
“네. 왜 저번 달에 종료한 닛본TV의 드라마 ‘마녀의 손길’의 주연 여배우....”
“아아. 그 미치코!”
어디서 봤나 했더니 미츠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었다. 근데 그런 대단한 여배우가 왜 여기에 왔단 말인가? 미츠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좀 전 그녀가 데려다 준 혼다가 있는 VIP룸을 빤히 쳐다봤다. 그때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메뉴판을 들고 VIP룸으로 가는 게 보였다.
“요시다. 잠깐만.”
“네?”
그런 직원을 불러 세운 미츠. 그녀는 곧장 요시다가 멍하니 서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주문 내가 받을 게. 그거 이리 줘.”
요시다로부터 메뉴판을 받은 그녀가 대신 그걸 들고 VIP룸 문을 두드렸다. 그리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나나미의 외모에 반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혼다와, 그런 그를 불쾌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초 미인의 모습이 미츠의 눈에 들어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런 그들에게 다가간 미츠가 모른 척 물었다. 그러자 혼다가 미츠에게서 메뉴판을 받아 그걸 초 미인 앞에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나나미상. 뭐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주문해요.”
미츠는 갑자기 느끼해진 혼다의 목소리에 토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걸 꾹 참고 메뉴판을 보고 있는 나나미를 보고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네.’
그러며 이런 초 미인을 혼다가 따 먹을 걸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렸다. 특히 사정 직후 여자의 보지를 보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정액을 보고 음흉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강한 혐오감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곧 혼다로부터 그런 짓을 당하게 될 나나미라는 자신의 막내 동생 뻘인 눈앞의 여배우가 불쌍하면서 측은했다. 그러며 어떻게 도울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나미가 말했다.
“티본 스테이크에 스프는 양송이, 시저 샐러드, 그리고 크림 파스타 주세요.”
2명이 먹어도 남을 음식을 떡하니 주문하는 나나미. 그런 그녀를 미츠가 황당한 눈으로 쳐다 볼 때 혼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렇게 줘.”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츠는 욱했다. 그렇게 쳐 먹고 뭐하려고....
* * *
가부키초에 위치한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나미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 있는 이태리식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 직원에게 물었다.
혼다 부사장이 와 있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그녀를 혼다 부사장이 있는 룸으로 안내해 주었다.
“오오. 나나미상. 어서 와요.”
딱 봐도 느끼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그녀를 반겼다. 그는 몸소 움직여서 나나미가 앉을 의자까지 빼주었다.
“여기 앉아요.”
“네.”
과한 중년 남자의 친절에 오히려 나나미가 거부감을 느낄 때였다. 그녀 자리를 빼주고 그녀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은 느끼한 중년 남자가 말했다.
“화면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니까 훨씬 더 예쁘네요.”
“아네.”
“안도 사장과는....”
상대는 나나미의 외모 칭찬에 이어서 자신과 그녀 소속사 사장과의 돈독한 관계를 얘기했다.
자기 딴에는 나나미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모양인데, 정작 그녀에게는 최악의 말들이었다.
우선 나나미는 자신이 예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랬기에 누가 면전에서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는 걸 싫어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곧 떠날 예정인 소속사의 대표와 친하니 뭘 어쩌라고?
확 신경질이 나려는 그때 마침 룸 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레스토랑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보고 상대가 나나미 앞에 메뉴판을 펼쳐 놓으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으라고 했다.
원래 나나미는 여기서 차나 한 잔 마시며 혼다 부사장에게 좋게 얘기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메뉴판의 메뉴를 보고 나자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그래서 먼저 시간부터 체크한 나나미.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네. 그렇다면....’
여기서 먼저 저녁을 먹고 공항에 가서 바로 수속하고 서울로 가면 될 터였다.
원래는 공항에 가서 수속하고 남은 시간에 공항 안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선후가 좀 바뀐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해서 나나미는 그냥 이곳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공항에 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