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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자본주의 마인드의 위력은 역시나 컸다. 내가 박충호 일당과 싸울 때 카트에 타고 있던 이은헤의 눈길이 좀 수상했었다. 그래서 내 전담 캐디에게 부탁을 좀 했다. 혹시 이은혜가 깜찍한 짓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랬더니....
“아아. 그래요? 지금 갑니다.”
그 캐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좀 전 이은혜의 핸드폰에서 나와 관련 된 사진, 동영상, 그리고 녹취록을 삭제 시켰다고 말이다.
나는 내 앞에 널브러져 있는 김학수를 발로 툭 차보고는, 그대로 몸을 틀어 이은혜와 내 전담 캐디가 같이 있는 카트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거기 도착했을 때 캐디가 말 대신 손짓으로 이은혜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거기 이은혜가 수풀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찾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은혜가 수풀 속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내서, 그 상태를 살피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잠시 후 이은혜가 핸드폰에 아무 문제가 없는지 안도해 하며 시선을 돌렸고, 그런 그녀와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는 이은혜를 향해 손짓을 했다. 이리 오라고 말이다.
그러자 잠깐 쭈뼛거리던 이은혜가 포기의 의미인지 몰라도 짧게 한숨을 내 쉬더니 내 쪽으로 왔다.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은혜가 잠깐 갈등하는 듯하더니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내가 그걸 받아서 보니 국산 핸드폰으로 포렌식을 할 경우 지워진 동영상과 사진, 녹취 파일이 복구 될 수도 있었다.
하여 나는 바로 필드 쪽으로 몸을 튼 다음, 이은혜의 핸드폰을 내 눈 위로 슬쩍 던졌다.
당연히 중력의 법칙에 따라 핸드폰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때....
부웅! 퍼석!
내가 휘두른 골프채에 이은혜의 핸드폰이 완전 박살이 났다. 그걸 보고 기겁하는 이은혜와 캐디.
‘내가 좀 심했나?’
그 장면에 두 여자가 너무 놀라 해서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은혜와 캐디 모두 나를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보고, 속으로 이러길 잘했다 싶었다. 왜냐하면 이래야 어디 가서 누구한테 오늘 여기 일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저 내게 위해가 될지 모를 증거를 없앤 거뿐인데 그게 두 여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먹혀 든 거 같았다. 여기서 벌어진 일을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면, 내가 좀 전 박살 낸 핸드폰처럼 만들어 주겠다는 뭐 그런 살벌한 의미로 말이다.
괜히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한 게 아닌 거다.
그 직후 내가 이은혜를 쏘아보자 그녀가 알아서 눈을 내리깔고 내 눈치를 봤다. 그리고 내게 자본주의 마인드가 제대로 심어진 캐디는, 내가 박살 낸 이은혜의 핸드폰 잔해를 챙기더니 내게로 와서 말했다.
“이것들은 제가 잘 없앨게요.”
그 말에 나는 그러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돈이 최고야.’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만큼 사람들에게 있어 최고의 약발을 발휘하게 하는 것도 없었다.
* * *
사람 여럿 패 놓고 여기서 더 골프 칠 생각은 없었다.
일단 손목시계로 지금 몇 시인 지부터 확인을 했다. 아직 오후 4시가 되진 않았다. 여기서 바로 클럽 하우스로 가서 씻지않고 바로 출발하면, 얼추 4시쯤에 서울CC를 떠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곧장 클럽 하우스에 있는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내 전화를 김종훈이 재깍 받았고 그런 그에게 나는 곧 거기로 갈 테니 떠날 준비를 해두라고 했다. 그리고 내 전담 캐디를 쳐다봤다. 그러자 내가 통화 할 때 말을 엿들은 듯 그녀가 알아서 카트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걸 보고 나도 곧장 카트 뒷좌석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때 쭈뼛거리며 이은혜가 내 옆에 타려고 했다.
“잠깐....”
그런 그녀를 내가 바로 제지했다.
“네?”
나의 그런 행동에 왜 그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은혜.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넌 여기 더 있어.”
내 그 말에 일견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은혜에게 내가 계속 말했다.
“누군가 지금 이 사태를 설명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박충호는 네 회사 대표잖아?”
나는 거기에 더해서 ‘김학수는 네 스폰서고.’ 라는 말을 더 하려다 말았다.
뭐 굳이 그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내 그 말만으로도 충분했던지 이은혜는 알아서 내 카트에서 물러섰다.
웨애애애앵!
그 사이 카트의 방향을 180도 튼 내 전담 캐디. 그녀가 클럽 하우스가 있는 쪽으로 최대한 빠르게 카트를 몰아갔다.
“좋군.”
배터리 전기 운송 수단인 카트지만 작정하고 달리니 제법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바람까지 불어주니 카트 뒷좌석에서도 제법 운치가 났다. 바로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고 나는 귀찮지만 혹시 몰라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봤다. 그랬더니....
“나나미?”
일본에 간 나나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올 거처럼 내게 말하고 일본으로 건너 간 그녀였다. 나는 안 받을 이유가 없어서 나나미의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준열상. 저예요. 나나미.
“네.”
-죄송해요. 여기 문제가 좀 생겨서 한국에 가는 건 다음 주? 아니 그 다음 주나 되어야 할 거 같아요.
나나미가 자기 입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니 나도 살짝 걱정이 됐다. 어째든 나나미도 이제는 내 여자니까 말이다.
“어디 다치거나 아픈 건 아니죠?”
-네. 제 몸은 괜찮아요. 단지....아니에요. 여기 문제 해결 되면 그 즉시 한국으로 갈게요.
“네. 뭐....”
나나미에게서 왠지 길게 통화할 분위기가 아님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더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고 그대로 통화를 끝냈다.
“으음....”
그리고 잠깐 생각을 하다가 내 전담 해결사인 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철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바로 그에게 용건을 말했다.
-그러니까 일본의 여배우 나나미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고, 현지에서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 주라 이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움직이도록 하죠.
내 느낌인지 몰라도 철수가 살짝 흥분한 거 같았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사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본은 정말 가까운 거리의 나라다. 하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가 또 일본이었다. 역사적으로 아픈 과거사 때문에 말이다.
뭐 어째든 한국에서 일본은 하루 만에 충분히 비즈니스 출장이 가능한 나라였기에, 나는 현재 나나미의 상태를 알아보고 혹시나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걸 돕기 위해서 도우미들을 일본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 도우미들이 바로 철수와 세르게이였고. 아무래도 일본에서 그들 정도 되어야 내 여자인 나나미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 * *
후지TV의 버라이어티 예능 방송 ‘즐거운 모임’ 촬영 후 곧바로 도쿄로 향하던 나나미. 자신의 매니저인 곤도에게 크게 실망한 상태의 그녀는 차 안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
그런 그녀로 인해 안도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백미러로 계속 나나미를 살피며 운전 중이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전화인지 재빨리 확인한 곤도. 그의 얼굴이 확 펴졌다.
“네. 대표님.”
곤도가 너무도 반갑게 자신의 소속사 하이브 사쿠라의 대표인 안도의 전화를 받았다.
“네. 지금 도쿄로 가는 중입니다. 네. 아아. 네. 잠시만....”
아직 차가 도로라고 볼 수 없는 소롯길에 있었기에 곤도는 잠시 차를 갓길에 댔다. 그리곤 몸을 틀어서 자신의 핸드폰을 차 뒷좌석의 나나미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나미상. 대표님께서 바꿔 달라 십니다.”
나나미는 그런 곤도를 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에게 완전 실망한 상태의 그녀는 그와 말을 섞는 거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의 전화라며 받으라고 건네는 그의 핸드폰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곤도에게서 잽싸게 핸드폰을 챙겨 일단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나나미. 수고 많았지?
나름 다정하게 얘기한다고 한 소속사 대표의 말인데 나나미는 그 말을 들으니 화딱지가 치밀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대표가 멍청해서 생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말이라고.....하아. 아니에요. 근데 왜 전화 하셨는데요?”
나나미는 치민 화를 겨우 참아내고는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녀는 이미 안도 사장과 얘기를 다 끝낸 상태였다.
후지 TV의 예능프로를 끝내고 나서, 그녀는 바로 하네다 공항으로 이동, 한국으로 가는 걸로 말이다. 한데....
-나나미. 정말 미안해.
“설, 설마....”
-TVS에 혼다 다에스케 부사장이 너 좀 보자고....
“그래서요? 또 된다고 한 거 아니죠?”
-나나미. 미안. 너도 알다시피 방송사에, 그것도 거기 실세인 부사장의 눈 밖에 나면....
“그만! 그 미안하다는 소리 좀 제발 그만하세요. 제게 약속하셨잖아요? 후지 TV 예능 출연이 마지막이라고.”
나나미를 돌아버릴 거 같았다. 물론 그녀도 알았다. 연예 기획사가 메이저 방송사에 철저히 을乙의 관계에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 번이지. 이런 식으로 거듭 그녀를 속이는 건 아무리 소속사 대표라도 너무 한 것이었다. 그리고 안도 사장은 거기에 대해 진심으로 나나미에게 미안 해 하지 않았다.
-그 참....그러니까 내가 미안하다잖아?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혼다 부사장이 잠깐만 보면 된다는 데 그럼 어떡해? 하네다 공항 가는 길에 잠깐 거기 들렀다가 가. 그러면 다 해결 될 일을 가지고 성질은....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안도 사장의 그런 반응에 나나미의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더는 지금의 소속사인 하이브 사쿠라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가타부타 떠들 필요도 없었다.
“알았어요. 사장님 말대로 하네다 공항 가는 길에 잠깐 들를게요.”
-그래. 이거지. 이게 바로 프로 의식 아니겠어? 하하하하.
“어딘지는 매니저에게 말씀하세요.”
나나미는 안도 사장이 징글징글 했다. 그래서 그의 웃음소리가 끔찍이도 듣기 싫었고, TVS의 혼다 부사장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의 위치를 핑계로, 바로 전화를 그녀의 매니저인 곤도에게 돌려주었다.
“네. 네. 신쥬쿠....아아....가부키초의 돈키호테....그 맞은 편....알겠습니다.”
안도 사장으로부터 나나미를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한창 설명을 듣고 난 곤도. 그가 통화를 끝내자 핸드폰을 수습하고 바로 차를 몰았다. 그때부터였다. 내내 나나미의 눈치를 봐 오던 곤도가 더는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게 처음에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안도 사장만큼이나 자신의 매니저인 곤도도 꼴 보기 싫었으니까. 하지만 도로를 타고 차가 빠르게 도쿄에 가까워지면서 나나미는 하나씩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뭐야? 완전 나를 무시하고 있잖아?’
매니저로서 아무리 운전 중이라지만 뒷좌석의 연예인을 무슨 짐짝 취급하다니.
아니지. 실린 짐은 혹시 무너지거나 자빠지지 않나 수시로 확인이라도 하자. 지금 나나미의 매니저 곤도는 그녀를 있으나 마나한 존재, 즉 어디에나 있는 공기처럼 여기고 있었다.
‘이거 느낌이 좋지 않은데....’
연예계에 발을 들이면서 그녀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현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그녀가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말이 위기대처 능력이지 그건 다 그녀의 촉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그녀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 같으면 그녀는 그게 느껴졌다. 불안하고 초조한데 뭔가 또 흥분도 되는....
“매니저님. 저기서 잠깐 차 좀 세워주세요.”
차가 막 신주쿠에 들어서면서 도쿄의 복잡한 교통 신호에 계속 걸릴 때였다. 나나미가 근처 편의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거기 나나미가 왜 가려는 지 그 이유는 곤도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편의점 앞에 내려 달라면 그렇게 해주면 됐다. 그럼 그녀가 알아서 편의점에서 필요한 걸 사가지고 나올 테니 말이다.
곤도는 신호가 오자 바로 차를 출발 시켰고, 편의점 앞의 인도 옆에 최대한 차를 붙여 대며 말했다.
“빨리 사오세요.”
“....”
나나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쌩하니 차에서 내려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나나미를 보고 곤도가 피식 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카(バカ, 바보)....그러게 왜 안도 사장 눈 밖에 나서는....”
그 말 후 곤도는 한 시간 전 쯤 자신과 안도 사장의 전화통화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흐흐흐흐....”
그러며 뭐가 그리 좋은 지 실실거리며 웃었다. 그때 살거 다 샀는지 편의점 안에 들어갔던 나나미가 나오는 게 보였고 곤도는 싹 웃음을 지우고, 나나미가 차에 타자마자 바로 차를 출발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