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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63화 (6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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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여기서 얼라이먼트란 스윙에 필요한 신체 부위, 그러니까 양발과 무릎, 골반, 양팔, 어깨 등이 목표선과 일치시키는 동작을 두고 말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얼라이먼트는 그것들의 연장선이 목표선과 수평으로 바라보도록 자세를 취하는 게 제일 좋았다.

스윽!

이은혜가 백스윙을 하면서 드라이버가 위로 올라갔다가 백스윙 탑에서 자신만의 템포로 거침없이 다운스윙을 했다.

따악!

이는 백준열이 보기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윙이었고, 정확히 맞은 공은 살짝 왼쪽으로 휘어져서 그대로 페어웨이 안으로 들어왔다. 비거리는 여자라 그리 멀리 나오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세컨 샷으로 충분히 그린 위에 공을 올릴 수 있는 거리였다.

300야드를 넘게 쳐서 세컨 샷에 온 그린 하나 200야드 정도 치고 세컨 샷으로 온 그린 하나 어차피 계산되는 타수는 같았다.

짝짝짝짝!

“굿 샷!”

백준열은 안정적인 이은혜의 티샷에 박수와 함께 칭찬을 했다. 그러자 이은혜가 생글거리며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캐디에게 넘겼다. 그리곤 백준열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너무 안정적으로 친 거 같죠?”

“아닙니다. 아직 구력이 1년도 안 된 골린이가 이 정도라면 자질이 있는 거죠.”

“어머! 그래요? 호호호호.”

백준열의 칭찬에 이은혜는 크게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전혀 백준열의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골프치는 데 살짝 활력을 북돋웠다. 그런 점이 당연히 백준열은 좋았다.

‘이래서 김학수가 이 여자를 내게 붙인 거로군.’

이은혜의 이런 매력을 아마도 김학수 그 인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맛도 봤을 테고.

아까 「개눈깔」아이템으로 백준열이 김학수를 봤을 때, 그의 몸에는 질투의 빛도 제법 강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건 백준열이 흡사 자기 여자를 강탈해 갔을 때나 보일 빛이었고, 그때 백준열의 옆에는 이은혜가 서 있었다. 그 정도면 누구나 유추가 가능했다.

김학수와 이은혜가 제법 깊은 사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김학수는 백준열을 포섭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 여자를 내 놓았다. 하지만....

‘C발! 지금 장난치나? 지가 쳐 먹던 떡을 왜 나한테 넘겨? 더럽게....’

백준열은 김학수의 그런 처사가 진짜 기분 나빴다. 이은혜가 대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미인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놈 저놈 다 건드린 여자를 이전 개새끼 백준열이라면 또 몰라, 지금의 백준열은 싫었다.

그걸 몰랐기에 김학수의 오늘 계획은 시작부터 완전히 틀어져 버렸고, 백준열이 그걸 전혀 티내지 않다보니 그 사실을 김학수는 전혀 눈치 차리지 못했다.

* * *

김학수는 백준열을 충분히 만족시킬 황제 골프 회동을 준비했다. 이를 위해 골프장은 물론 그가 아는 연예기획사에 뿌린 돈만 백억이 넘었다. 그러니 오늘 반드시 백준열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의 꼭두각시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

백준열은 골프를 치면서 영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럴 게 같이 뭉쳐 다니며 공을 쳐야 김학수를 직접 손봐주던지 할 텐데, 이렇게 떨어져서 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거기다가 김학수가 제일 예쁘다고 붙여 준 이은혜도 보기는 좋았지만 자꾸 질척거리며 그의 신경을 긁어댔다.

“좀 전 제 스윙 이상하지 않았어요?”

“내가 보기에는 괜찮았습니다만....”

백준열의 대답에 이은혜가 연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세세한 면들에서 이은혜는 같이 골프치는 백준열의 신경을 쓰이게 만들었다. 그게 카트를 타고 세컨 샷을 하기 위해 필드로 이동할 때 여실히 드러났다.

백준열의 입장에서 그가 접대하는 골프가 아닌 접대 받는 골프인 만큼 그런 기분을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어디 아프세요?”

눈치 빠른 이은혜가 그걸 모를 리 없었고. 단지 그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하긴 여태 그녀와 같이 골프를 친 남자들 중에 그녀를 좋게 보지 않은 남자가 없었으니까.

사실은 백준열이 유별 난 거지만, 그러니 더더욱 그의 파트너인 이은혜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캐디는 달랐다.

카트로 이동 후 두 사람의 어프로치 샷을 위한 골프채를 챙겨 준 뒤, 캐디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첫 홀을 백준열이 보기로, 이은혜가 파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작을 보이며 끝냈을 때, 두 대의 카트가 백준열이 있는 홀의 그린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백 대표. 컨디션이 별로라며?”

백준열에게 김학수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물었다.

“네. 뭐....”

그런 김학수에게 백준열은 딱 봐도 기분 나빠 보이는 얼굴로 시큰둥하니 대답했다. 그러자 김학수의 시선이 바로 그의 파트너인 이은혜로 향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네 파트너가 이러는 거냐고 말이다.

당연히 이은혜는 억울했다. 분명 좀 전까지 자신과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 중이었던 백준열.

한데 김학수가 나타나자 그 앞에서 대 놓고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제 3자인 캐디의 눈에는 백준열이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게 보였지만, 그의 파트너인 이은혜의 눈에 그게 보이지 않게 백준열이 그 만큼 매너 있게 행동을 한 것이다.

그걸 다행스럽게 김학수가 눈치 차렸고, 캐디로부터 그 연락을 받자마자 그는 박충호와 함께 여기로 달려왔다.

‘캐디도 포섭해 두기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진짜 다 된 밥에 재 뿌릴 뻔 했다. 김학수는 자신의 그런 철두철미한 준비성에 대해 속으로 흐뭇해하면서 백준열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드나?”

“....”

김학수의 물음에 백준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다들 알았다. 그 무언이 바로 긍정의 대답임을 말이다.

당연히 이은혜는 얼굴을 구겼고 반대로 김학수와 박충호의 파트너인 한초임과 제시는 눈빛을 빛내며 다들 기대어린 눈으로 백준열을 쳐다봤다.

지금 상황에서 백준열이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다른 여자로 파트너 교체가 이뤄 질 게 유력했으니까. 하지만....

“재미가 없네요. 재미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백준열의 그 말에 김학수가 백준열을 위해 준비한 황제 골프 회동의 계획이 전면 수정에 들어가야만 했다.

* * *

백준열이 재미없다는 말이 김학수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아니. 이게 왜 재미가 없어?’

자신을 비롯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백준열을 떠받들었다. 거기다 캐디부터 시작해서 여기 남자는 달랑 셋뿐이었다. 나머지 주위 여자들은 다들 예뻤고. 하다못해 캐디들도 외모로 뽑았다. 혹시 몰라서 말이다. 개새끼 백준열의 취향에 캐디들 중 하나가 맞을지도....

물론 진짜는 따로 준비가 되었다. 연예 기획사에 속한 연예인 여자들 중에서 접대가 가능하면서 골프도 어느 정도 칠 줄 아는 애들로 말이다.

그렇게 김학수가 준비한 여자 연예인이 모두 11명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일이 생겨 못 오게 되었다는 연락을 좀 전 받은 김학수. 그 때문에 그 연예인 소속 기획사 대표에게 한 소리했는데 그 직후 백준열의 캐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 전화를 받자마자 김학수는 부리나케 백준열이 골프 치는 이곳 홀로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 김학수는 예상 밖의 백준열의 반응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때였다. 박충호가 백준열과 김학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역시 골프에는 내기가 있어야죠.”

내기라는 박충호의 말에 김학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맞아. 내기.’

골프 칠 때 왜 내기를 하겠는가? 다 재미 때문이다. 그제야 박충호가 왜 내기 얘기를 꺼냈는지 이해한 김학수가 백준열을 보고 말했다.

“그럼 우리 내기 골프 칠까?”

그러자 그제야 굳어 있던 백준열의 얼굴이 펴지며 말했다.

“뭐 내기를 하면 그래도 약간 긴장도 될 거 같고 재미도 있겠네요.”

백준열이 내기에 관심을 보이자 김학수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물었다.

“근데 무슨 내기를 할까?”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박충호가 말했다.

“골프로 할 내기야 많죠. 스트로크, 스킨스, 조폭 스킨스, 어니스트 존, 낫소, 라스베거스, 하이로우, 딩동댕....”

박충호가 열거하는 내기들 중 하나를 백준열이 고르면 됐다. 어디까지나 이 골프 회동의 접대자, 즉 주인공은 그였으니 말이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김학수에게 시선을 돌린 백준열. 그가 말했다.

“스트로크는 좀 진부하고 스킨스가 나은 거 같기는 한데....”

스트로크는 내기골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방식으로 1타당 정한 금액을 각자 스코어의 차이를 곱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하수에게 불리함을 만회해주기 위해서 핸디캡에 해당되는 금액을 미리 지불하고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에 반해 스킨스는 최근 제일 많이 하는 형태의 게임으로 각 플레이어가 일정한 금액을 사전에 내놓고 홀마다 가장 적은 타수를 친 사람이 홀상금(스킨)을 얻는 방식이었다.

“조폭 스킨스도 재미있을 거 같기도 하고....”

조폭 스킨스는 조폭들이 골프를 칠 때 마지막 18홀에 보스에게 돈을 몰아주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스킨스 방식을 따르는데 ‘보기’를 할 경우에는 이전 홀에서 딴 돈의 ‘절반’을, ‘더블 보기’를 하면 딴 돈의 ‘전부’를 승자에게 모두 빼앗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잘 하지 않는 내기인데, 통 큰 사람들이 가끔은 벌이는 게임이었다.

* * *

백준열의 잡 지식이 어디 가겠나? 골프 내기 얘기가 나오자 내 머릿속에 그 내기들에 대한 지식들이 전부 떠올랐다.

내 입에서 조폭 스킨스 얘기가 나오자 대 놓고 흥분하는 박충호.

‘누가 조폭 출신 아니랄까....’

내가 조폭 스킨스로 내기 골프를 치겠다고 하면 박충호만 좋아하겠지. 그럼 당연히 패스지.

‘라스베거스라....’

라스베가스는 4명이상, 짝수일 경우에만 진행할 수 있는 게임으로 1등과 4등, 2등과 3등으로 팀을 나누기 때문에 골린이들도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즐기는 2인1조 게임 방식이다. 지금 상태에서 가장 무난히 즐길 수 있는 내기 방식이라 볼 수 있었다. 매 홀마다 팀원이 바뀔 수 있어서 이번 홀의 동지가 다음 홀의 적이 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릴이 없었다. 그리고 그 스릴을 보강한 라스베가스에서 약간 변형된 방식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신 라스베거스였다.

‘뽑기 통에 5개의 뽑기 중 조커(J)를 하나 넣어서 조커를 뽑은 사람은 타수에 상관없이 무조건 보기가 된다. 그리고 같은 패를 뽑은 사람들이 서로 한 팀이 되고 짝이 없는 나머지 한 명은 조커와 한 팀이 돼서, 뽑기로 결정이 된 팀끼리 합산한 점수를 비교해, 진 팀이 이긴 팀에게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지.’

신 라스베가스는 잘 치고도 조커가 나오면 보기가 되기 때문에 잘 치는 골퍼가 불리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당히 스릴이 있는 게임 방식이었다. 이동 중에 보니 카트 안에 뽑기 통이 비치되어 있는 걸 내 눈으로 이미 확인까지 했고.

“신 라스베거스로 하죠.”

내가 그렇게 무슨 골프 내기를 할지 그 방식을 결정하자, 김학수와 박충호의 반응이 극렬하게 갈렸다. 은근 내가 조폭 스킨스를 선택하기를 바랐던 박충호는 팍 얼굴을 찌푸렸고 반대로 김학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김학수가 신 라스베거스로 골프 내기를 많이 해 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트 안에 뽑기 통이 그럼....’

김학수도 보통이 아닌 게 내가 골프 내기를 하자고 할 줄 알고 미리 준비를 해 둔 것이다. 아무래도 이동 할 일이 많은 골프에서 카트를 이용할 때마다 내 눈에 뽑기 통이 보인다면....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김명진 회장에 가려져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김학수도 그렇게 무능한 인간은 아니었다. 단지 그 모친인 차미진의 극성에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억눌려 있지만, 그가 서진그룹의 회장에 올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제법 괜찮은 경영인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뭐 그 전에 꺾여 버릴 테지만....’

김학수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쩌겠나? 세상 이치가 그런 걸 말이다.

김명진 회장에 이어서 그 장남인 김학수가 무사히 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도록 두기에, 서진그룹이라는 먹잇감이 너무 먹음직스럽고 또 많았다.

그걸 김학수 혼자 독차지하게 두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걸 노리는 맹수는 내가 아니더라도 많았다.

내가 이미 그 목줄을 물은 상황에서 다른 맹수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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