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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너 지금 매형이 신경 쓰여서 망설이는 거면....이것만 생각해. 오빠가 대표가 됐을 때 누굴 제일 먼저 쳐 낼지.”
누나인 윤해수의 그 말에 윤현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매형과 누나 아니겠어요?”
“맞아. 그 다음은?”
“네?”
“너도 순망치한이라는 말은 알거 아냐?”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이다. 윤현태는 다행히 그 말뜻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나의 말이 모순인 것이 자신과 매형, 누나가 손을 잡고 형인 윤현일을 쳐 낸다고 해도 그 다음은?
보나마나 매형과 누나가 자신을 쳐 내고 회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게 아닌가? 그런 윤현태의 생각을 읽은 윤해수가 말했다.
“우리가 오빠를 쳐 낸다고 해도 오빠 지분은 그대로 일거 아냐? 그러니까 우리의 동맹이 깨지면 오빠가 다시 대표 자리를 노리게 될 거고. 그런 마당에 우리가 널 건드릴 리 없잖아. 안 그래?”
일견 듣기로 윤해수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게 원래 모르는 거다. 큰형인 윤현수가 그렇게 실종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면 큰형이 그렇게 된 것도....
‘혹시 매형과 누나가....’
윤현태는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자기도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으니까.
‘해결사들이라고 했던가?’
매형인 박민석이 아는 자들이라는 데, 그런 자들이면 큰형을 어떻게 했을 가능성도 다분했다. 순간 윤현태는 엊그제 윤현일이 한 말이 떠올랐다. 회의 후 형이 스쳐지나가 듯 말했다.
[이 회사는 윤씨 회사지 박씨 회사가 아냐.]
‘그건 형의 말이 맞아.’
윤현태는 대답을 기다리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윤해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누나와 손잡을 게.”
“잘 생각했어.”
기다렸던 대답을 윤현태에게 들은 윤해수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하지만 윤현태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나 미안. 누나와는 손을 잡아도....매형과는 아니야.’
윤현태는 윤해수가 여길 나가는 즉시 형인 윤현일에게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형과 손을 잡고 먼저 매형인 박민석을 쳐 내기로 했다. 대신 누나의 회사 감사 자리는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쪽으로 형에게 잘 말해 보기로 하고서.
“고마워. 지금 네 결정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윤해수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윤현태의 방을 나와 곧장 자신의 남편인 박민석 상무를 보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윤현태는 윤해수가 자기 방을 나가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형인 윤현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시큰둥하니 윤현태의 전화를 받는 윤현일. 그런 그에게 윤현태가 좀 전 윤해수에게 들은 얘기를 전하자....
-뭐? 해결사? 이것들이....
당연히 그 얘기를 들은 윤현일은 격분했다. 하지만 윤현태와 달리 윤현일은 한 수 앞을 내다 봤다.
‘조폭 새끼만으로 불안 했는데 잘 됐군.’
윤현일도 해결사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받은 돈 값을 확실히 하는 자들이라고 말이다.
그런 전문가들이라면 아무래도 조폭두목인 강찬성 보다야 확실하게 일처리를 해 낼 터. 그렇다면 혹여 강찬성이 실패했을 시 그 해결사들이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어떡하든 그 놈에게서 아버지가 넘긴 주식만 받아내기만 하면 됐다.
그 다음은....결국 제주도에 있는 아버지가 결정할 일이었다.
부친이라도 이미 쌀이 밥이 되어 버린 걸 어쩌랴.
윤현일이 아는 한 그의 아버지는 어째든 아버지 주식을 꿀꺽한 그 놈이 도로 토해 낸 주식을, 다시 그 놈에게 되돌려 줄 양반은 결코 아니었다. 그 과정이 어쨌든 주식을 도로 내 놓은 그 놈이 잘못한 거라 여길 테니 말이다.
그리고 윤현일은 확신했다. 부친이 이제 사실상 장남이 된 자신의 손을 들어 주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형인 윤현수가 실종 된 마당에, 아버지와 윗대에 대한 제사를 지내 줄 아들은 바로 둘째인 자신이었으니까. 뿌리 깊은 유교 사상이 몸에 밴 부친이었고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이었다.
‘그래. 나는 지켜보기만 하면 돼.’
그가 사주한 조폭 두목 강찬성이 해 내든, 아니면 매제인 박민석 상무가 움직인 그 해결사들이 해 내든지, 어떡하든 부친이 넘긴 그 주식만 그 놈에게서 되찾기만 하면 윤현일은 바로 제주도에 계신 아버지, 윤재구 회장에게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부친이 알아서 그 주식을 회수해서 자신에게 넘겨 줄 테니 말이다. 그때까지 윤현일은 팔짱 끼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형! 형! 왜 아무 말이 없어?”
-어어. 미안. 생각 좀 하느라. 알았으니까 넌 가만히 있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라고.
“그, 그래도....”
-어허.
“알, 알았어.”
형인 윤현일의 강압적인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지만 윤현태는 도통 형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형이 그럴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에이. 몰라.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니....”
윤현태는 며칠 두고 보기로 했다. 자기 말대로 잘 알아서 한다면 계속 지켜 볼 것이고 아니면....
“그때....매형과 누나 편에 서지 뭐.”
누구 편에 서든 어차피 자신은 회사 대표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이쪽이 됐던 저쪽이 됐던 싸워 이기는 쪽에 서면 될 일이었다.
* * *
김 비서에게 오후 골프 스케줄을 잡게 시켜 놓고 JYB엔터로 돌아가는 중 내 눈에 한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옥상에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 누가 봐도 옥상 위로 쳐져 있는 그물망들이 그곳에 골프 연습장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가만....저 건물은....”
우연인지 하필 내 소유의 건물이었다. 나는 내 손목시계를 보고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저 건물로 갑시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런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운전석의 내 수행비서 김종훈이 말했다.
“대표님. 무슨 일이신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한마디로 스케줄에 없는 내 돌출 행동에 김종훈이 나름 태클을 건 거다. 하지만....
“대표님 스케줄은 대표님이 결정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말하기 전에 내 옆에 문대식이 시큰둥하니 대꾸했다.
“그거야....”
문대식에 말에 김종훈이 발끈해서 뭐라 말을 하려 할 때였다.
“골프장 가는 거 빼고 이후 스케줄 다 취소해.”
내가 아는 한 오늘 중요한 스케줄은 없었다. 그랬기에 나도 오후에 서진그룹 김학수 부회장과 골프 회동을 가지기로 급작스런 약속을 잡은 거고.
“대, 대표님?”
이후 스케줄을 다 취소하란 내 말에 당황한 김종훈이 몸을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차창을 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내 옆에 문대식은 환하게 웃었고 반대로 내 앞의 조수석 김종훈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내가 내 수행비서가 아닌 경호팀장의 편을 들어 준 거다.
내가 무슨 탕평책을 펼치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는 데 그쪽에 유리하게 말하는 쪽의 편을 들어 준 거지.
잠시 후 나를 태운 차가 내가 지목한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어?”
근데 그 지하 주차장의 지정 주차 칸에 떡하니 차 한 대가 주차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내 눈이 팍 찌푸려졌다. 내가 그런 건 그 지정 주차 칸에는 엄연히 주차 금지 봉이 설치되어 있었다.
즉 지정 차량이 아닌 차는 절대 저기 주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바로 그 지정 차량이었고.
한데 그 주차 금지 봉이 내려져 있고 거기에 떡하니 다른 차가 주차가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겠는가?
“여기 관리소장 불러.”
싸늘한 내 말에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이 즉시 들고 있던 수첩에서 이곳 건물 관리소 전화번호를 찾아 거기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10여분 쯤 뒤 이곳 건물 관리소장으로 보이는 대머리 중년 남자가 헐레벌떡 지하주차장으로 뛰어왔다.
“대, 대표님! 오, 오셨....”
“저 차 누구 차요?”
나는 그가 하는 인사도 받지 않고 바로 지정 주차 칸에 주차 되어 있는 차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 그것이....”
그러자 관리소장이 창백해진 얼굴로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당신 차지?”
“....”
내 물음에 순간 두 눈이 커다래진 관리소장. 하긴 저 주차 금지 봉이 내려졌다는 건 누군가 이곳 주차 시설에 손을 댔다는 거고, 그 시설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이곳 관리 직원뿐이었다. 근데 그 직원 중에 감히 건물 주인의 지정 주차 칸에 차를 댈 간 큰 직원이라면....관리실의 우두머리인 관리소장 일 거란 건,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는 바였다.
“당장 차 빼.”
“네. 대표님.”
“그리고 당신 자리도 빼고.”
“네?”
여기 건물 관리소장을 맡아 줄 사람은 많았다. 내 눈앞에 간 큰 대머리 관리소장이 아니더라고 말이다.
만약 이곳 지하 주차장에 차들이 꽉 차 있었더라면 나도 이해를 해 보려 했을 거다. 하지만 내 눈에 지정 주차 칸 말고도 비어 있는 빈 주차 공간이 많았다.
그러니까 저 관리소장은 거의 오지 않는 건물주의 지정 주차 칸을 자기 편 하려고, 또 자기 권위를 세우려 지금껏 이용해 온 거다.
아마 관리소장이랍시고 여기 건물에서 갑질 깨나 했을 거 같았다. 뭐 그런 거까지 내가 신경 쓸 건 없었다. 어차피 저 인간은 지금부터 여기 관리소장이 아니니까.
* * *
서울에 내 소유의 빌딩이 몇 채가 있는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그런 내가 이 건물 옥상에 골프 연습장이 새로 생긴 걸 어떻게 알겠나?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시그니처 골프 연습장의 사장인 배도완이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여기 시설 좋네요.”
“하하하하. 보시다시피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나타난 건물주 때문에 이곳 골프 연습장 사장이 내 눈치 보기 급급했다. 무엇보다 이 건물에서 갑질 깨나 했을 거로 보이는 관리소장의 목을 댕강 잘라 버린 살벌한 건물주이지 않던가?
“한 시간 정도 이용해 볼까 하는데....”
“아이고. 얼마든지 이용하십시오. 제가 VIP로 모시겠습니다.”
점심도 먹어야 했기에 나는 대충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골프 연습을 하기로 했다. 당연히 골프 칠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지금 나는 맨몸 상태다. 하지만....
“제 것을 쓰십시오.”
조물주 위에 건물주다. 없는 것도 이렇게 바로 생긴다. 나는 골프 연습장 사장의 장비를 빌려서 실외 연습장으로 나갔다. 물론 풍향과 습도를 확인하고서.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아서 말이다.
실외골프장은 생각보다 거리가 길었고 그 때문인지 눈이 시원시원했다. 그때 내 옆에 안내자를 자처하고 있던 골프 연습장 사장이 말했다.
“어떻습니까? 보기 시원하시죠? 하하하하. 이 맛에 여기 오시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하하하하.”
“....”
그 사이 나와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 듯 이곳 골프 연습장 배 사장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별 반응이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배 사장도 무안해 하며 입을 다물었다.
타악! 타악!....타악!
이곳 골프장의 인도어 연습장에서 회원 몇몇이 공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인도어Indoor는 실내, 옥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는 야외이지 않나?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를 인도어 연습장이라고 한 것은, 이곳 골프장이 실외에 있는 그물로 만들어진 아웃도어 드라이빙 레인지이기 때문이었다.
실외에 있는 연습장이나, 그물 안에 있다고 하여 indoor 라고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용어 인 것이다.
백준열의 잡 지식에 따르면 1960년대 초 실내의 좁은 공간이나 옥상 위에 연습장을 만들어 놓고 인도어(indoor/실내연습장)로 부르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아직도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튼 연습장에서 타석의 선택은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비어 있는 타석을 먼저 쭉 훑었다. 골프 여신이자 내 여자이기도 한 민혜주가 그랬다.
‘슬라이스가 많이 나는 사람은 연습장 우측 타석에, 훅이 많이 나는 사람은 좌측 타석에 자리 잡는 게 좋다고 말이지.’
여기서 슬라이스란 오른쪽으로 꺾여서 심하게 휘는 볼을 말하고 훅은 반대로 왼쪽으로 꺾여 심하게 휘는 볼을 말했다.
나의 경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훅이 많이 났다. 해서 나는 좌측 타석으로 시선을 뒀고, 눈치 빠른 배 사장이 그걸 보고, 비어 있는 좌측 타석 중에 한 곳으로 나대신 들고 있든 골프채 가방을 먼저 옮겨 놓으며 말했다.
“여기에서 치시죠?”
“그럴까요?”
내가 그 타석으로 가자 배 사장이 조용히 물었다.
“레슨프로를 붙여 드릴까요?”
그 물음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