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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확실히 시스템이 류지혜에 대한 독소 조항만 걸지 않았어도, 나는 류지혜와 그녀의 친구 정미옥을 같이 따 먹었을 거다.
그 정도로 두 여자다 섹스 어필하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밤 류지혜는 독을 잔뜩 품은 여자다.
‘따먹었다간 좆 되는 거지.’
그러니 애매하게 류지혜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짓도 해선 안 됐다. 즉 지금처럼 확실하게 선을 긋고 물러나는 게 맞았다. 백미러를 통해 내가 탄 차를 넋 놓고 쳐다보고 있는 두 여자가 보였다.
“미국에 갔다 와서 한 번 만나보는 것도....쩝쩝쩝.”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괜한 아쉬움에 내가 입맛을 다실 때였다.
디리링!
핸드폰이 짧게 울렸고 확인하니 철수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왔다. 확인하니 내가 보낸 보상금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그게 내가 철수에게 의뢰했던 신미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되었고....
“미국이라....”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나는 이번 주말에 미국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LA에 갈 생각은 없었다. 근데 아무래도 LA에 들러야 할 거 같았다.
어차피 출장 기간도 1주일로 주말까지 포함하면 9일을 미국에 있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루 정도 시간을 할애해서 LA에 가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출장 중 스케줄 하나가 늘어난 가운데, 나를 태운 차는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특급 호텔로 향했다.
“임페리얼 호텔과 파라다이스 호텔 중 어디로 모실까요?”
운전석 옆 조수석의 경호팀원이 내게 물어왔다. 그 말에 차 앞을 쳐다보니 지금 내가 탄 차가 달리고 있는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에 두 개의 특급 호텔이 보였다. 나는 그 중 오른쪽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을 보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호텔로 가요.”
“네.”
내가 파라다이스 호텔을 선택한 건, 순전히 거기가 신호를 받지 않고 지금 차선에서 바로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만큼 지금 나는 많이 피곤했다. 클럽에서 세 여자들에게 시달린 데다가 술도 좀 마셨고, 또 지금 시간이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잔다고 쳐도 3시간 정도 밖에 잘 수 없었다.
“쯧....이러다가 나도 유태열 꼴 나겠어.”
나도 모르게 유태열이란 이름이 튀어 나왔다. 바로 클럽에서 과로사 한 그 세계적인 DJ말이다. 그러고 보니 유태열이 내게 부탁한 게 생각이 났다. 대신 나는 ‘최고의 디제잉’이라는 유태열의 재능을 내 걸로 만들 수 있게 될 거고.
“근데 내가 디제잉을 잘해서 어디다 써 먹지?”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삼명그룹 후계자인 내가 디제잉 할 일이 뭐가 있겠나? 하지만....
“뭐 어디든 써 먹을 때가 있겠지.”
유태열의 부탁이 들어주기 힘든 거라면 또 모르지만, 나로서 그의 부탁은 너무도 들어 주기 쉬운 부탁이었다.
“뉴욕에 가족들이 있다고 했었지.”
유태열은 가족을 위해서 지치고 힘들어도 디제잉을 했다. 그런데 덜컥 그가 죽어 버리면서 가족들이 걱정 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내게 자신의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몇 가지 부탁을 했다.
근데 그게 결국 돈 문제였다. 보험과 예금, 적금 들어 놓은 거, 또 누구에게 돈 빌려 준 거, 그리고 그가 속한 레이블과 소속사에 넣어 둔 그 만이 아는 투자 금에 대한 얘기들.
유태열은 그것들을 잘 정리하면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십 수 년은 편히 먹고 살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가 없는 세상에 그가 남긴 돈이 그의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달 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우선 미국의 어마무시한 상속세부터 시작해서 차용증도 없는 데 돈을 갚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투자 금 역시 레이블과 소속사에서 날려 먹었다고 배 째 버리면 받을 수 없는 돈이었고.
나는 그걸 알지만 차마 귀신 유태열에게 그걸 말할 수 없었다. 대신 그와 약속을 했다.
그의 가족들에게 그가 남긴 돈을 확실하게 챙겨 주겠다고.
‘그냥 내가 그 돈 줘 버리면 되니까.’
유태열의 말대로라면 그의 자산은 대략 200만 달러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200만 달러를 내가 뉴욕에 가서 그의 가족을 만나 줘 버리면 그와의 약속을 지키는 셈이었고, 그 길로 그는 승천하고 나는 그의 재능을 챙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그러려면 내가 뉴욕에 가야 한다는 건데....
“쩝....LA에 이어서 뉴욕에도 들러야 겠네.”
순간 미국 출장 시 스케줄 하나가 더 추가 되었다.
“다 왔습니다.”
그때 운전석 옆 조수석의 경호팀원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깼다. 동시에 차가 멈춰 섰고 그 경호팀원이 먼저 차에서 내려서 차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곧장 파라다이스 호텔 입구로 걸어갔다.
* * *
당연히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도 나는 VVIP고객이었고, 프런트에서 바로 거기 최상층 로얄 스위트룸의 키를 받아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만들 퇴근해요.”
나를 스위트 룸 앞까지 경호 해 준 경호팀원들에게 그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간 나는, 쓸데없이 넓은 현관과 호사스러운 공간들을 스쳐지나갔다. 그때 딱 트인 전망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새벽이라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피곤할 뿐. 해서 나는 빈 방 중 하나로 들어갔고,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 위에 꼬꾸라졌다. 푹신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고 그 다음 생각이 끊겼다.
“으으으....”
핸드폰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먼저 호주머니 속에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알람부터 껐다. 그 과정에서 지금 몇 시인지를 확인한 터라 나는 더 자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알람 맞춰 놓은 시간은 7시 30분. 바로 호텔 측에 내가 갈아입을 옷들과 액세서리들, 그리고 아침 식사를 주문하고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자 호텔 측에서 가져다 놓은 옷이 보여 바로 그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주문한 호텔식 아침 식사가 룸서비스로 왔다.
“후루룹....크으으....좋다.”
여기 호텔 한식 메뉴에 육개장이 있어서 시켰는데 국물이 끝내 줬다. 그렇게 육개장을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당연히 내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온 줄 알았다. 한데 그가 아니라 내 수행 비서인 김종훈이었다. 내가 문을 열어주자 곧장 안으로 들어 온 김종훈. 그가 주위를 먼저 살피고 나서 나를 보더니 대뜸 물었다.
“블랙머니에 들렀다가 출근하실 거죠?”
“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내가 김종훈을 쳐다보자.
“어제 그러셨잖습니까? 미국 가기 전 블랙머니 박 비서에게 해 줄 말이 있다고.”
김종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당장 내일,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에 미국 가는 비행기에 타야 하는데 내 지금 스케줄 상 블랙머니에 들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블랙머니 들러서 박 비서에게 내가 없는 동안 해외 투자에 대해 몇 마디 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었다. 왜 말은 해 놓고 깜빡 잊고 넘어가는 일도 있지 않은가? 한데 김종훈이 그걸 지금 거론하니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밖에.
“해서 제가 박 비서님께 연락 해 두었습니다.”
“뭐?”
“대표님 8시 40분까지 블랙머니에 갈 거니 준비해 두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지껄이며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하는 김종훈. 그가 이어서 말했다.
“지금 나가시면 시간 맞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허얼....”
나는 잠시 황당한 눈길로 김종훈을 쳐다봤다. 하지만 김종훈은 뭐 이정도가지고 놀라느냐는 듯 가볍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가시죠?”
“어어. 그래.”
뭐 출근 준비야 상의 위 재킷만 걸치면 끝이었다. 나는 옷걸이에 걸어 둔 이곳 호텔에서 코디 해 준 주름 하나 없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명품 정장 재킷을 걸치고는 호텔 방을 나섰다.
* * *
백준열의 경호팀장 문대식. 그는 평소처럼 시간 맞춰서 백준열이 묵고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에 왔다. 호텔 입구 앞에 백준열을 태우고 갈 차량이 준비 되자 문대식은, 백준열이 묵고 있는 최상층 로얄 스위트룸으로 막 가려 했다. 근데....
“뭐해? 차문 안 열고?”
백준열이 어느 새 호텔 입구를 나왔다. 그런 그를 보고 문대식이 놀라 어리바리하게 굴 때였다.
철컥!
문대식 대신 백준열의 수행 비서인 김종훈이 먼저 차문을 열었다. 그 열린 차 안으로 백준열이 탔고 김종훈은 차문을 닫자마자 바로 앞쪽 조수석에 탔다.
“허얼....”
그런 김종훈을 보고 문대식이 어처구니없어 할 때였다. 차창이 내려지고 차 안의 백준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타?”
“네? 아네.”
정신을 차린 문대식이 후다닥 백준열의 옆 자리에 탑승을 하자 차가 바로 출발을 했다. 그리고 조수석의 김종훈의 말을 듣고 문대식이 벌레라도 씹은 얼굴로 변해 있었다.
“블랙머니로 갑시다.”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JYB엔터로 가야 맞았다. 그런데 김종훈의 말대로라면 스케줄이 변했다는 거다. 그런 그 바뀐 스케줄을 정작 경호팀장인 문대식이 모르고 있다고?
“대표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빡 친 문대식이 따지듯 옆 자리에 있던 백준열에게 물었다.
“뭐가?”
한데 정작 백준열이 쀼루퉁하게 그에 대꾸했다.
“블랙머니 가신다는 말은 없었잖습니까?”
그러자 문대식이 따지듯 물었고 백준열 대신 앞쪽에 있던 김종훈이 그에 대답을 했다.
“대표님 스케줄이야 대표님께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거고, 그 통보는 좀 전에 내가 문 팀장님한테 하지 않았습니까?”
“뭐, 뭐요?”
언제 김종훈이 자신에게 통보를 했단 말인가? 문대식이 기가 차 할 때 김종훈이 이어 말했다.
“좀 전에 목적지가 블랙머니라고 내가 말한 거 팀장님도 들었잖습니까?”
“그, 그러니까 그게 통보라는 거요?”
“팀장님이 들었으니 그게 통보죠.”
“허어....”
얼굴이 시뻘게진 문대식이 막 김종훈을 향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백준열이 말했다.
“그만. 스케줄 좀 바뀐 거 가지고 뭐 그리 예민하게 굴어? 나 생각 좀 해야 하니까 조용히 해.”
그냥 입 닥치고 가만있으라는 얘기였다. 명백히 백준열이 김종훈의 손을 들어 준 거다.
“이이....”
그때 앞쪽 김종훈의 옆얼굴에서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걸 본 문대식은 불끈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
주식 시장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곳이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해서 상식적으로 판단을 해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회귀 자가 아니던가?
어떤 종목이 오르고 내릴지 얼추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요즘 특히 신경 쓰고 있었던 건 바로 중국 쪽이었다.
“중국 정부가 곧 위안화를 평가절하 시킬 거야.”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박 비서. 그런 그에게 나는 하던 말을 마저 이어 나갔다.
“아마 곧 중국 정부에서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핑계로 위안화 평가 절하를 단행할 거야. 그래야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더 낮은 가격으로 수출을 할 수 있을 거고, 반대로 수입품의 가격은 오를 테니까.”
“하, 하지만 경제라는 게 그리 쉽게 통제가 되지는....”
“중국이니까. 시장 원리대로라면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잠시 반등이야 있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폭락할 거야.”
“그, 그래도 중국 정부에서 강력한 증시 부양 정책이라도 내 놓으면....”
“뭐 중국 정부도 당연히 가만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들이 내 놓는 정책은....뭐 그 다지 실효성은 없을 거야. 반면 중국 정부에서는 안일하게....그대로 증시가 회복 될 거라고 볼 거고. 그러니까....”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박 비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숏으로 가자.”
내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박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투자금은....”
“10억 달러 다 넣어.”
현재 내가 해외에서 투자해 둔 자금 중 당장 굴릴 수 있는 유동 자금이 10억 달러였다. 그걸 다 투자하겠다는 내 말에 박 비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너무 무리한 투자가....하아....아닙니다.”
물론 예전에도 과감한 투자를 해 온 백준열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갑자기 변한 백준열은 너무 과격한 투자를 일삼았다. 한데 변한 후 백준열이 벌어들인 투자 수익은 200%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블랙머니를 만들고 그 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올해 이미 다 벌어들인 거다. 그러니 백준열이 이런 미친 투자를 하겠다고 해도 박 비서로서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러면 원래 하던 대로 숏 포지션으로 투자 은행을 정하고 10억 달러 다 숏으로 넣겠습니다.”
“그래.”
박 비서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백준열.
‘미쳤어.’
무려 10억 달러를 확실치도 않는 중국 증시의 하락에 쏟아 붓는 걸 결정하고 저렇게 태연한 백준열을 보면서, 박 비서는 그의 배포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자신이라면 백준열처럼 이런 무식한 투자는 죽었다가 깨도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