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42화 (63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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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DJ, 디스크 자키(disk jockey)’를 줄인 말이다.

한마디로 디제이는 음악으로 청취자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과거에 디제이는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 또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언변과 해당 음악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음악을 선곡하고 틀어주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디제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클럽 디제이, 힙합 디제이라는 인식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클럽 디제이는 하우스, 테크노 등의 음악을 디제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재조합한고, 힙합 디제이는 MC 뒤에서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힙합 반주를 틀거나 스크래칭이라는 기법으로 연주를 한다.

이때 믹싱과 스크래치 등의 기술을 통해 즉흥적으로 음악을 가공하고 들려주는 하우스 디제이들은 단순히 음악의 전달자가 아닌 창조자로 대접 받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디제이를 꼽으라면 단연 첫 손가락으로 유태열이 꼽혔다.

그 대단한 디제이 유태열은 오후 5시가 다 되어 잠에서 깼다. 그것도 그 스스로 깬 게 아니라 그의 매니저인 마이클에 의해서.

촤아아아!

마이클이 활짝 커튼을 열어 젖히자 침대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던 유태열이 인상을 팍 쓰며 갖은 욕설을 다 내뱉었다. 그 만큼 유태열은 잘 자고 있을 때 누가 그를 깨우는 걸 정말이지 싫어했다.

“shit....piss....fuck....cunt....cocksucker.....motherfucker....”

그 중 마지막 욕설은 마이클도 화가 났던지 유태열에서 정색하며 말했다.

“이봐 태열. 가족은 건드리지 말자고.”

그 말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유태열이 그때까지도 뜨지 않고 있던 눈을 겨우 뜨고 상대를 확인한 후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하아아....쏘리....마이클.”

사과와 함께 드디어 잠에서 깬 듯 유태열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드러나는 그의 상체와 팔을 휘감은 온갖 문신들. 그런 그에게 마이클이 언제 움직였는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서 건네며 말했다.

“이거 마시고 정신 차려. 그리고 빨리 씻어. 방송 스케줄 잡혀 있으니까.”

방송이라는 마이클의 말에 유태열의 얼굴이 좀 전처럼 팍 일그러졌다. 하지만 유태열의 매니저인 마이클은 또 다시 유태열에서 온갖 욕을 듣기 싫었다. 그가 잡은 스케줄이라면 또 모를까.

“이건 태열 네가 잡은 스케줄이야. 왜 전에 신세 진 PD 있다며? 그 PD 프로그램에 나가는 거니 행여 나 욕할 생각 마.”

“....”

마이클의 말에 유태열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던 욕을 도로 삼켰다. 기억이 난 것이다. 방송 출연 말고 오늘 밤에는 클럽 무대에도 서야했다.

“하아. 오늘이 바로 그 신세 갚는 날이었나?”

또 한숨과 함께 유태열이 마이클을 보고 묻자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 신세 갚아야 한다며 네가 한국에서 스케줄을 하루 더 늘렸지. 그 때문에 매니저인 나만 죽어나고 있고.”

유태열은 그냥 DJ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DJ로 특히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때문에 미국에서만 잡힌 그의 스케줄이 내년까지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런 고로 그의 스케줄이 하루 밀린다는 건 매니저나 그가 속한 레이블, 소속사 입장에서는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매니저이자 친구인 마이클의 푸념이 시작 되자, 유태열은 서둘러 그에게서 받은 생수를 따서 들이켰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란 걸 그도 확실히 인지한 것이다.

벌컥! 벌컥!

단숨에 500 미리 리터 생수 한통을 다 마셔 버린 유태열. 그는 빈 통을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이클이 뭐라 더 말하기 전에 휑하니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그를 보고 마이클이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거 너무 혹사....아니 무리하는 거 아닌지 몰라....”

친구이자 자신이 관리해야 할 연예인인 유태열. 그의 무리한 한국행에 대해 누구보다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마이클이었다. 하지만 유태열은 기어코 한국에 왔고, 최근 사흘 동안 5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 냈다.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오늘 저녁은 푹 쉬게 해 주고 싶었다.

한데 유태열은 기어코 그 쉴 시간마저도 포기하고 예전 한국에서 신세 진을 것을 갚겠다며, 방송과 클럽 디제잉 무대에 서겠다고 꼭 필요한 휴식 시간을 포기했다.

* * *

샤워 후 나온 유태열. 그런 그에게 매니저인 마이클이 챙겨 온 옷을 건네며 말했다.

“방송국 측에 2시간 이상 출연은 어렵다고 미리 얘기해 뒀다. 그러니 방송국 들렀다가 2시간 정도 차에서 잘 수 있을 거야.”

마이클이 잘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유태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유태열은 굳이 뒷말은 이어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가 말로 내 뱉으면, 재수없게 꼭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곤 했으니 말이다. 해서 오늘만은 제발 자신이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다.

‘두 시간 아니라 한 시간이라도 자고 싶다.’

그 정도로 지금 유태열은 잠이 부족했다.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확실히 몸에 과부하가 걸렸다. 특히 머리가 멍한 것이 좀 전 한 시간 좀 넘게 잤는데도, 머리 상태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마이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마이클이 스케줄이고 뭐고 다 펑크 내 버리고 자신을 병원부터 데리고 갈 테니 말이다.

마이클은 유태열에게 있어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려 30년 지기다. 자기 몸보다 유태열의 몸을 더 챙기는 녀석이니 아프다고 말하면 뭘 할지 뻔했다.

“강된장에 열무비빔밥 먹고 싶다고 했지?”

“어.”

“마침 방송국 가는 길에 그 음식 잘하는 식당 알아 놨다.”

“오오. 역시 마이클!”

한국에 오면 꼭 먹고 싶은 음식들이 있었다. 그 중에 몇 가지는 이미 먹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끓여주신 된장국에 열무김치 넣어 슥슥 비벼 먹은 그 열무비빔밥.

그 맛이 생각이 나자 입에 군침이 돌기 시작한 유태열. 그는 서둘러 호텔을 나섰고 마이클이 미리 예약한 한식당으로 가서 열무비빔밥을 먹었다.

“어때? 그 맛이야?”

마이클이 물었다. 정작 그는 된장 냄새 때문에 비빔밥을 전혀 먹지 못하고 있으며 말이다.

“쩝쩝쩝....맛있기는 한데....”

유태열은 한술 크게 떠서 비빔밥을 입속에 넣어 씹다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말처럼 이곳 식당의 열무비빔밥은 맛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끓여주신 된장국 맛과 여기 강된장은 그 맛이 확연히 달랐다. 뭐 그래도 꽤 잘 익은 열무김치가 유태열의 식욕을 자극하면서 밥 한 그릇은 그냥 먹을 수 있었다.

“가자.”

유태열은 식사를 끝내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야 자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저녁을 먹지 못한 마이클에게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계산 후 한식당을 나와 차로 간 그들은 근처 햄버거 스루에 들렀다.

“우걱우걱....쭈웁....카아....이 맛이지.”

금새 햄버거 하나를 반쪽 자리로 만들어 버린 마이클. 그가 연이어 콜라를 빨대로 빨아 먹으며 말했고, 그걸 보고 유태열이 자기 손에 쥐어져 있던 햄버거를 마이클에게 건넸다.

“이것도 먹어.”

“....너 먹어.”

유태열은 마이클이 햄버거를 시킬 때 자신도 하나 시키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이유는 마이클이 고작 햄버거 하나에 만족할 인간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친구인 그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다이어트니 뭐니 하며 예전처럼 패스트푸드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마이클. 그가 그러는 이유는 마이클에게 부정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국에 와서 고생하며 제대로 식사도 못 챙겨 먹고 있는데 무슨 식단 조절이란 말인가?

“오늘 한 끼 밖에 못 먹었잖아? 이 정도는 먹어도 돼.”

“그, 그럴까 그럼....”

마이클은 바로 눈앞에 햄버거 유혹을 이겨 내지 못했다. 결국 유태열의 햄버거까지 다 먹어치운 뒤 마이클은 오늘 유태열이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 SVS방송국으로 향했고. 다행히 늦지 않게 녹화 준비 중인 스튜디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PD님!”

“오오. 태열씨. 어서 와요.”

40대 초중반의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반갑게 유태열을 맞아 주었다. 유태열이 한국에서 DJ로 활동할 당시 FD였던 장현철은 유태열이 처음 방송 무대에 설 수 있게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물론 그 출연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 프로그램이 폭망해서 사라져 버린 탓에 당시 유태열이 찍은 분량은 방송에 나가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어째든 방송사 관계자 중에 가장 먼저 유태열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준비는 확실히 되어 있으니 두 시간이면 충분해.”

장PD가 자신 있게 말했고 유태열은 스튜디오 안을 둘러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PD의 말처럼 그 준비만큼은 그가 봐도 확실해 보였다. 오늘 유태열이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 프로그램은 바로 ‘도전왕’이라는 멘토 시스템을 통해 각 분야에서 최고 위치에 올라 있는 사람이 출연, 그와 같은 자리에 오르기를 갈망하는 후진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니까 유태열의 경우는 세계적인 디제이인 그의 노하우를 신인 디제이들에게 전수해 주면 됐다. 물론 달랑 한 시간 편성 된 프로그램에 그의 노하우를 전부 알려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태열은 크게 국내 신인 디제이들에게 최신 디제잉 기법의 아우트라인만 잡아 줄 생각이었다.

“자자. 올 사람 다 온 거 같은데 촬영 시작하자고.”

그렇게 SVS의 예능 프로그램 ‘도전왕’의 녹화가 사작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튜디오 안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 되고 30분 쯤 지났을 때 문제가 터져 나왔다.

* * *

게스트들도 다 왔고 출연진들에 문제도 없었다. 촬영에 관한한 모든 준비가 갖춰졌고.

“스탠바이....큐!”

장PD의 큐 사인과 함께 ‘도전왕’의 사회자 김성훈이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갔다. 한데 오늘 유태열에게 그의 노하루를 전수 받기로 한 신인 디제이 중 하나가 사고를 쳤다.

촬영을 시작하고 10여분 쯤 지났을 때부터 얼굴 표정이 점점 이상해지더니, 유태열과 같이 미니멀 음원으로 마디 구성 체크와 함께 이큐밍 믹싱을 할 때였다.

“어딜 만져요!”

짜악!

뜬금없이 그 신인 디제이가 유태열의 뺨을 때렸다.

“....”

유태열은 황당한 눈으로 그런 신인 디제이를 쳐다봤고.

문제는 그 신인 디제이가 여자란 점이었다. 즉 지금 유태열이 여자를 성추행했단 거다.

그로인해 스튜디오가 발칵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스튜디오고 그들이 함께 믹싱 작업을 할 때 무려 8대의 카메라가 돌아가며 앞 뒤 좌우에서 그 모습을 찍고 있었다.

즉 신인 여자 디제이의 말처럼 유태열이 그녀를 성추행했다면 그 장면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촬영이 중단 되고 그걸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고....

“죄, 죄송해요.”

신인 여자 디제이가 유태열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유태열이 그녀의 은밀한 부위를 만진 게 아니라 그녀 옆의 다른 신인 남자 디제이가 그런 게 밝혀진 것이다.

디제잉 박스 뒤에도 카메라가 찍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변태 녀석의 말로였다.

그 신인 남자 디제이는 그 사실이 밝혀지자 바로 경찰에 잡혀갔다.

유태열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확신한 그 신인 여자 디제이가 바로 경찰에 신고까지 해 버린 탓에 말이다.

“....”

유태열은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사과하는 신인 여자 디제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은 촬영을 묵묵히 해냈다.

“자아. 이렇게 정확한 믹싱 타이밍만 숙지되면 이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네요. 와아. 신기하다.”

미안한 마음 때문일까? 신인 여자 디제이가 최대한 밝게 유태열을 대했다. 하지만....

“다음은....매칭에서나 모니터링등도 더 여유를 가지고....”

유태열은 지극히 사무적으로 신인 여자 디제이를 대했다. 그로 인해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도전왕’의 촬영은 계속 되었고, 촬영 시작 4시간 만에 필요한 분량을 모두 뽑아 낸 장PD가 머쓱한 얼굴로 유태열에게 말했다.

“태열아. 미안하게 됐다. 아까는 사정이....”

“....”

하지만 유태열은 묵묵부답 장PD의 옆을 스쳐 지나서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하아....”

그걸 보고 장PD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인맥 중에 세계적인 DJ유태열과의 끈이 완전 끊어진 것을 말이다.

그 일이 터졌을 때 장PD는 어쨌든 유태열을 믿어주고 그의 편을 들었어야만 했다.

그래 놓고도 얼마든지 뒤로 유태열이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장PD는 그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그 때문에 유태열은 자신의 결백이 증명 될 때까지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사야만 했다. 그리고 그가 우려한대로 촬영 시간도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더 늘어서 4시간이나 걸렸고.

그로인해 그가 다음 스케줄인 클럽 디제잉을 하러 가는 동안 쉴 수 있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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