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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
백준열의 손이 빠르게 건반을 훑었다. ‘서른이 되어’라는 노래는 빠른 템포의 곡이 아니다. 하지만 백준열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빠른 건반 연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은 초반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백준열의 그 속주가 앞서 그가 불렀던 노래의 감성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주의를 완전히 환기시켜 버린 것이다.
그때 그런 백준열의 연주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디펑크스의 리더 현이수. 그리고 그 현이수 뒤에서 어디 얼마나 잘 치나 보자며, 도끼눈으로 백준열을 쳐다보고 있던 키보디스트 김철희.
“꼴깍!”
그 둘은 거의 동시에 침을 삼켰다. 밴드 멤버들인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좀 전 백준열이 친 그 속주가 얼마나 대단한 연주였는지 말이다.
‘저건 피아노 좀 친다는 사람의 수준이 아니야.’
현이수가 그렇게 생각할 때 그 뒤에 한때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친 적이 있었던 김철희. 그가 경악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저런 빠른 속주로 아르페지오를 하는데 미스 터치가 하나도 없다니....’
백준열은 건반 누르는 손에 전혀 망설임이 없을 뿐 아니라 불협화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속주가 변하며 익숙한 멜로디가 특실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이수가 무심코 흥얼거렸다.
“....머물러 있는 시간은 없어....아아!”
그리고 백준열의 연주가 그가 부르기로 한 ‘서른이 되어.’의 전주가 시작됨을 인식한 그 순간....백준열이 키보드 옆에 장착 된 마이크에 자기 입을 가져가며 노래를 시작했다.
“또 하루가 멀어져 가고 우리는....”
백준열의 차분한 저음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특실 안에 울리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백준열에게로 집중 되었다. 그 정도로 백준열의 목소리는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렇게 시작 된 백준열의 노래. 하지만 그가 키보드를 치며 부르던 그 서정적인 노래에 하나 둘씩 다른 악기의 연주가 가미 되면서 반주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현이수를 비롯한 디펑크스 멤버들이 백준열의 키보드 연주에 자신들의 악기를 얻어 연주를 해 나갔고, 키보디스트 김철희도 반쯤 넋 나간 얼굴로 탬버린을 흔들었다. 그때 백준열의 목소리에 변화가 일었다. 순간 그의 감성이 변했고 ‘서른이 되어’의 노래가 풍성해진 반주에 더 단단하고 힘 찬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아아....”
뭔지 모르지만 백준열의 노래를 듣다보니 가슴이 벅차고 뭐든 해 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백준열은 ‘서른이 되어’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걸 제일 먼저 느낀 게 바로 박수영이었다.
‘너무 멋있어.’
백준열의 노래가 슬슬 끝나갈 때 즈음, 박수영의 눈에서 연신 터져 나온 하트가 그대로 백준열에게로 날아가서 꽂혔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백준열은 그게 보였다. 그녀 몸에 휘황찬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저 핑크 빛 무리를 말이다.
‘됐다.’
백준열은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노래를 마무리 짓고, 연주 중이던 키보드에서도 손을 거두었다.
* * *
‘서른이 되어’ 라는 노래는 서른 보다는 마흔이 되어서, 쉰이 되어서 더 가사의 절절한 맛이 느껴지는 곡이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청춘은 다 보내고 빈 가슴을 가진 쉰이든, 다가 올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든, 보낸 시간을 추억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렇게 조금씩 잊히고 또 그렇게 하나씩 이별하며 그렇게 하루가 멀어지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노래다.
그런 깊이 있고 감성적인 노래를 백준열은 너무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면서 거기에 다른 뭔가를 더 얹었다.
“....놀라워.”
백준열의 그런 능력에 현이수는 다시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백준열이 키보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 여자 쪽으로 가려 할 때 현이수가 말했다.
“잠깐만....”
“네?”
현이수가 붙잡자 백준열이 어리둥절해 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런 그에게 현이수가 말했다.
“혹시....제 곡 한 번 들어 봐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백준열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재차 현이수를 쳐다봤고, 현이수는 그에게 그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만든 곡이 있는데, 내가 그 곡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뭐 그런 얘깁니까?”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수도 아니고....”
“가수 하시죠. 당신 같은 분이 가수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가수 합니까? 이 나라 가요계를 위해서라도 부디 무대에 서 주십시오.”
현이수의 말도 안 되는, 거의 생떼 같은 소리에 백준열이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사업을 접고 노래를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현이수도 자신이 지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억지를 늘어놓고 있는지 곧 깨달았다.
그와 달리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그처럼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현이수가 오버하자 그걸 옆에서 뜯어말렸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황급히 백준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례를....”
“아닙니다. 제 노래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니....뭐 기분은 좋네요.”
백준열은 사과하는 현이수를 보고 괜찮다고 웃으며 뒤돌아서 세 여자 쪽으로 향했다.
“형. 오늘 왜 이래?”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형 곡을 왜 저 사람에게 들려 줘?”
“그러게. 우리도 아직 연주 해 보지 않은 곡인데.”
백준열은 세 여자에게로 걸어가면서 뒤에서 들리는 밴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리더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경청했다.
“응?”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백준열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 * *
현이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먼저 백준열에게 사과부터 건넸다. 그러자 백준열이 괜찮다고 웃으며 일행인 세 여자들이 있는 쪽으로 갔고, 그때 밴드 멤버들이 그에게 한 소리씩 했다. 그 소리를 다 듣고 난 현이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만든 ‘아무나’를 가장 잘 불러 줄 수 있는 목소리야.”
“뭐? 형. 진짜 오늘 왜 이래요? 형이 만든 곡을 불러 줄 사람은 많아. 저 사람 아니라도 어디에 또 있을 거라고.”
그 말에 현이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없어. 저 사람만이 내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어.”
그때였다. 세 여자들에게로 가던 중인 백준열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뒤돌아 현이수를 보고 말했다.
“좀 전에 그쪽이 만든 곡이 있다고 했죠?”
“네.”
“그 곡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백준열의 말에 현이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대답하더니 곧장 파일 철 속에서 악보를 꺼냈다. 어젯밤 그가 밤새 완성 시킨 그 신곡이 그 악보에 담겨져 있었다.
“이리들 와 봐.”
그리고 그 악보를 밴드 멤버들에게 나눠주며 현이수는 자신의 밴드 멤버들과 심각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백준열은 몸을 돌려서 세 여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엉덩이를 걸쳤다.
그러자 김희수를 뺀 나머지 두 여자. 강혜정과 박수영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백준열의 양 옆에 와서 앉았다. 그리곤 백준열을 향해 극찬을 늘어 놨다.
“대표님. 노래 너무 잘하세요. 저 완전 반했어요.”
“저도요. 진짜 장르 가리지 않고 다 잘 부르시는 거 같아요.””
백준열은 완전 자신에게 홀딱 반해 보이는 두 여자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그 동안 참아 온 「개목걸이」아이템의 능력을 두 여자들에게 사용했다.
‘좋아. 이걸로 끝.’
두 여자들의 호감도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렇게 「개목걸이」아이템의 능력을 사용한 이상, 김희수처럼 두 여자들은 언제 어디서도 백준열이 원하면 그의 말자지를 빨아 주게 되어 있었다. 물론 그 짓을 지금 눈앞에 밴드가 있는데 시키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무슨 변태성애자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였다.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
박진감 넘치는 도입부, 기타 밴드 리더의 제법 빠른 속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의 리듬감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베이스 키타, 그리고 묵직한 드럼소리. 여기를 무슨 밴드 공연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때 밴드 리더가 노래를 시작했다.
“오우워~ 잘난 사람 많은 이 서울 바닥에....”
백준열은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밴드의 강렬한 도입부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밴드 리더의 어설픈 노래를 듣고 그가 왜 이 노래를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는지 알거 같았다.
‘적어도 4옥타브는 넘나들어야만 제대로 소화가 가능한 노래다.’
미친 고음의 곡인데 이 노래의 매력은 바로 후렴구였다.
“이 세상이 끝나 갈 때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 아무나~ 아무나~ 아무나~”
어느 새 백준열도, 그의 양옆에 강혜정과 박수영도 자연스럽게 드럼 박자에 맞춰 리듬을 타면서 중독적인 후렴구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가 2절로 넘어가자 이제는 백준열과 세 여자들이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특실 안에 떼창이 이루어졌고 그때부터 누구의 눈치 볼 거 없이, 다들 일어나서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노래, 아니 소리, 악을 질러댔다.
“아무나~ 아무나~ 아무나~....”
‘이 노래....뜬다.’
자신이 엔터 대표라서가 아니라 백준열은 이 노래는 명곡으로 기리기리 대한민국 가요계에 남을 거라 확신이 들었다.
‘이거....그냥 내가 한번 불러 봐?’
그러면서 슬쩍 욕심이 들었다. 자신이 노래를 못 부르면 또 모를까? 이 노래는 누구보다 잘 부를 자신이 있었다.
* * *
디펑크스의 리더 현이수. 그는 자신이 만든 곡을 열심히 불렀다. 하지만 그의 보컬 실력으로서는 그가 만든 곡의 10분의 1도 제대로 불러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펑크스의 수준급 연주가 그의 그런 모자람을 절반을 커버 쳐 주었다. 어째든 그가 만든 신곡 ‘아무나’는 특실 안에 손님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우와아....노래 진짜 죽여요.”
“내가 왜 여태 이 노래를 몰랐지?”
“그러게. 이 정도 노래면 대학 축제 때 무조건 나와야 될 찐 노랜데....”
세 여자들은 호들갑을 떨었고 그 여자들 사이 한 남자. 그러니까 현이수가 자신이 만든 이 곡을 주고 싶어 하는 그가, 환하게 웃으며 현이수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그걸 보고 현이수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노래 괜찮습니까?”
“네. 정말 좋네요. 제가 욕심이 날 만큼 말입니다.”
“욕심나면 가지세요. 드리겠습니다.”
“....”
현이수의 직설적인 제안에 그 남자는 잠시 말없이 자신의 턱을 한 손으로 쓰다듬더니 몸을 일으켜서 현이수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
그리고 자신의 명함을 현이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일 여기로 찾아오세요.”
현이수는 별 생각없이 남자의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눈앞에 남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그 명함을 살폈다.
“JYB엔터....대표 백준열. 헉!”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키 크고 잘 생긴 남자가 바로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인 JYB엔터의 수장이란 걸 말이다.
백준열은 너무 놀라 자신을 쳐다보고 뻣뻣하게 굳어 버린 현이수를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 젓다가 말했다.
“밴드 연주는 이만하면 됐으니까 그만들 나가 보세요.”
일종의 축객령이었지만 밴드에 있어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원래라면 두 시간은 더 연주를 해주며 특실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데, 달랑 노래 3곡 연주하고 여길 나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고맙습니다.”
현이수는 백준열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드렸다. 현이수도, 그리고 디펑크스 다른 멤버들도 이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여기 올 일이 없을 거란 걸 말이다.
지금 그들 앞에 있는 사람은 무려 대한민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대표다. 그가 디펑크스를 자신의 회사에 받아드리기만 해도, 그때부터 디펑크스는 날개를 달게 될 터였다.
그 날개로 훨훨 날아서 가요계 정상에 우뚝 서기만 하면 됐다. 그러니 여기는 앞으로 성공해서 손님으로나 오면 됐다.
디펑크스가 자신들이 악기와 장비를 빠르게 챙겨 특실을 나가자 바로 웨이터가 달려왔다. 그리곤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밴드에 무슨 문제라도....”
웨이터가 무슨 걱정을 하는 지 바로 알아차린 백준열이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노래 다 불러서 그만 나가 보라고 한 거니까 놔둬요.”
“네.”
혹시나 해서 득달같이 특실로 달려들어 온 웨이터는 백준열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부터 아무도 이 안에 못 들어오게 해주시고.”
“네? 아아....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웨이터가 힐끗 특실 안에 있는 세 여자들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하곤 알아서 안에서 특실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