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38화 (63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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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대한민국에서 밴드를 한다는 건 척박한 환경에서 농사를 짓는 것과 같았다.

현이수는 그런 밴드 생활을 꽤 오래 했다. 햇수로 따지면 한 15년 정도....

그 동안 밴드하면서 한 공연 만 1,000번은 넘었다. 알바 뛰어가며, 또 중 고등학생들 레슨해가며 이를 악물고 했지만, 통장잔고가 넉넉해 본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돈이 좀 벌린다싶으면 장비를 사고, 소모품에 투자를 해야 했다. 안 그러면 공연, 그러니까 연주 자체를 할 수 없었으니까.

그 정도 했으면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지 않았냐고? 물론 알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이 나아졌나?

아니....별로 나아 진 건 없었다. 가끔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서 대상도 받았고, TV와 라디오에 세션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근데 이런 사정을 사람들은 몰랐다. 꾸준히 공연을 하고 무대에 서니 그들이 돈도 잘 벌고 잘 사는 줄 알았다.

밴드 ‘디펑크스’하면 이제는 일반인들도 알만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인디밴드건만, 그들 호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한데 요즘은 공연할 곳도 무대도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엊그제였던가? 멤버 중 한 명이 말했다.

“형. 돈 안 벌어도 좋으니 사람이라도 많이 와서 우리 공연 좀 봤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공연을 잡고 무대에 올라도 이제는....그들을 봐 줄 관객이 없다.

그런 현이수에게 마침 클럽 ‘줄리아나’의 박 사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사장님.”

-이수야. 너 우리 클럽 밴드 알바 좀 해라.

“네?”

-한 타임에 백만 원. 어때?

클럽이지만 술집이다. 그래도 유명한 인디밴드인 디펑크스가 술집에서 노래 반주나 하라고?

며칠 전, 아니 어제였다면 현이수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을 거다. 자신을, 인디밴드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거냐고 노발대발 했을 거다. 하지만....

“거기 요즘 잘 나간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돈 좀 더 쓰시죠?”

-50에도 하겠다는 밴드 많아.

“그치들과 저희가 같습니까? 명품이 왜 비싼지 사장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면서....”

현이수가 아는 줄리아나 박 사장은 가짜 명품을 만들어 팔아서 꽤 돈을 번 자였다.

그런 만큼 박 사장은 누구보다 보통 상품과 명품의 차이를 잘 알았다.

-명품이라....하긴 너희와 그치들의 실력 차이는 확실히 많이 나는 편이지. 그래도 백만 원 이상을 쓴다는 건....

“월, 수, 금. 세 타임 뛰겠습니다.”

-그래? 뭐 그래 준다면....백오십? 어때?

“콜입니다.”

그렇게 인디밴드 디펑크스는 서울에서 요즘 가장 핫 하다는 클럽 줄리아나에서 알바를 뛰게 되었다.

“하아....과연 박 사장이로군.”

근데 막상 클럽에서 반주를 해보니 박 사장의 뛰어난 상술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만 현이수.

박 사장이 VIP고객을 상대로 밴드까지 묶어 팔아서, 하루에도 수십 억 원의 클럽 매출을 올리는 걸 보고 현이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돈 역시 아무나 버는 게 아니란 걸 말이다.

그때 결정적인 악상이 떠올랐고 현이수는 ‘아무나’라는, 그 동안 계속 손봐 왔던 신곡을 드디어 어젯밤 완성할 수 있었다. 밤을 꼴딱 샜지만.

* * *

클럽 줄리아나의 출연자 대기실. 그곳에 클럽 문이 열리고 한 시간 뒤, 밴드 멤버들이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처럼 밴드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현이수. 그는 악보를 정리하고 악기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때 디펑크스의 멤버 중 드럼을 치는 막내 현중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크서클이 잔뜩 낀 현이수를 쳐다보며 물어왔다.

“형. 또 밤 샜어?”

“어. 뭐....”

“저번에 말하던 그 신곡 때문에?”

“어.”

“하아. 형. 그건 주말에 쉴 때 해도 되잖아. 이러다 형 쓰러져요.”

“난 괜찮아.”

“괜찮긴 무슨. 형이 기계도 아니고.....”

“야! 그만 해라. 이수 형이 괜찮다고 하잖아!”

그때 디펑크스의 또 다른 멤버 김철희가 막내 현중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평소 막내라면 멤버 간 불화가 일지 않게 참았을 거다. 하지만 멤버 중 리더 현이수가 관계 된 일이면 얘기가 달랐다.

“괜찮지 않으니까 이러죠. 철희 형. 형 눈에는 이수 형이 괜찮아 보여요?”

“뭐?”

“자자. 그만. 곧 룸에 들어 갈 거 같은데, 싸울 시간 있으면 각자 악기들 좀 점검하지?”

현이수는 두 멤버들을 일단 떼어 놓았다. 싸움이라는 게 좀 떨어져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싸웠지? 또 그때 내가 그렇게 말했어야 했나?

그러다 같이 공연하고 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 그 일은 잊어 먹는다. 현이수는 두 멤버들의 좀 전 충돌도 그렇게 해소 될 거라고 봤다.

“특실에서 밴드 찾습니다.”

그리고 현이수의 촉 대로 특실에서 밴드를 호출해 왔다. 현이수는 밴드 멤버들과 같이 연주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서 특실로 향했다.

특실 안에는 한 명의 남자와 세 여자가 있었는데, 남자는 잘 생겼고 여자들은 다들 미인이었다. 그런데 현이수가 보기에 저들은 클러버들이 아니었다. 명품으로 도배 한 남자는 재벌 2, 3세 같아 보였으나 세 여자들은 일반 직장인들. 그래서 현이수는 저들이 회식하러 여기 온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난잡하게 놀지는 않겠군.’

모든 게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연주 준비가 다 끝나자 세 여자 중 한 명이 먼저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고 제법 노래를 잘 불렀다. 일반인 치고 조찬휘의 노래를, 제대로 목도 풀지 않고 그 정도 불렀으면 잘 부르는 편에 속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남자가 나섰는데 그 남자의 선곡이 현이수를 당황케 만들었다.

‘미친....’

천지창조의 ‘단 하나의 사랑’이라니! 천지창조는 현이수가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밴드였다. 그리고 ‘단 하나의 사랑’은 그가 가장 부르고 싶어하는 곡이었고. 사실 디펑크스에는 제대로 된 보컬이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제일 나은 현이수가 여태 노래를 불러왔는데 현이수의 보컬 실력으로는 ‘단 하나의 사랑’을 제대로 부를 수 없었다.

그러니까 감히 자신도 부르지 못하는 그 명곡인 ‘단 하나의 사랑’을 지금 자기 앞에 희멀건 놈이 부르겠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진 것이다.

‘뭐? 한 키 올려 달라고?’

거기다 더 기가 찰 노릇인 것은 안 그래도 높은 단 하나의 사랑의 키를, 저 인간이 한 키 더 올려 연주해 달라는 게 아닌가? 두 키를 내려서도 제대로 부르기만 하면 다행인 그 노래를 말이다.

현이수는 일단 자기 마음을 진정 시키고 앞서 노래를 불렀던 여자처럼 조언을 했다. 그랬더니 그래도 그의 말이 먹혀들었는지, 생각을 바꿔서 원키로 연주를 해 달라고 했다. 한데 그 말 후 더는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휑하니 뒤돌아서 노래 부를 준비를 하는 남자를 보고 현이수는 문득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왜 한 고집하는 사람이 고집 센 사람을 만나면 동질감이 아니라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며 꺼려진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그래. 어디 쪽팔려 봐라.’

보아하니 세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해서 어려운 노래를 선곡한 거 같은데, 그럼 어디 불러 봐라.

현이수는 원키로 전주를 시작했고 눈앞에 남자가 노래 들어갈 타이밍을 잡아주었다. 그랬더니 남자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허어....”

남자의 입에서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듣고서 현이수는 너무 놀라서 연주 박자를 놓칠 뻔했다.

무의식적으로 기타를 치는 가운데 현이수는 놀란 가슴이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그 남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고음.

폭발적으로 솟아오르는 음정이 현이수의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탄탄한 발성과 정확한 발음과 누가 들어도 듣기 편하고 좋은 고음.

현이수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목소리였다. 천지창조의 보컬 서지훈의 싸다구를 연타로 때려 대듯 미친 고음을 쭉쭉 뽑아내는,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현이수는 그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만든 신곡 ‘아무나’를 제대로 불러 줄 보컬을 찾았다고 말이다.

* * *

백준열의 노래가 끝났다.

“....”

그런데 특실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백준열 앞에 세 여자들은 다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고, 뒤쪽 밴드 사람들의 상황도 다를 건 없었다.

마치 공연장에서 제대로 된 노래 한 곡이 끝난 듯한 여운에, 현이수를 비롯한 밴드 디펑크스의 멤버들은 전율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는 현이수만 느낀 게 아니었다. 디펑크스의 다른 멤버들 역시 그들 앞에 좀 전에 노래를 부른 남자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걸 다들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백준열이 마이크를 입에 가져가서 말했다.

“분위기 왜 이러지? 내 노래가 그렇게 별로 였나?”

그의 그 말을 하고 나자 움찔하며 세 여자들이 몸을 일으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우와. 대표님. 진짜 노래 잘하시네요.”

“서지훈보다 더 잘 부르시는 거 같아요. 앵콜! 앵콜!”

김희수와 박수영이 백준열을 극찬하는 가운데 유독 강혜영만 아무 말 없이 백준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백준열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저 여자....완전 넘어왔군.’

강혜영에게서 진한 핑크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걸 보고, 백준열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나는 됐고. 이제 나머지 한 명만 더....’

강혜영은 자신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 했다. 따라서 「개눈깔」아이템에 이어서 「개목걸이」아이템의 능력을 사용하면 김희수처럼 쉽사리 따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혜영 옆에 박수영은 아직 자신에 대해 크게 호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박수영이 김희수와 나지막이 나누는 대화가 백준열의 귀에 들려왔다.

“저기 밴드 키보디스트. 연주 너무 좋지 않아요?”

“또 그 프러포즈 얘기 하려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남자....그런 프러포즈 번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

그 말을 끝까지 듣지 백준열이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밴드 한 가운데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디펑크스의 멤버 김철희에게 말했다.

“키보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네?”

그 말에 김철희가 어리둥절해 하며 밴드 리더인 현이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현이수가 나섰다.

“키보드는 뭐하시려고요?”

“키보드 치면서 노래 불러 볼까 해서요.”

“....”

백준열의 대답에 현이수와 디펑크스의 모든 멤버들이 다들 뻥 진 얼굴로 백준열을 쳐다보았다.

* * *

밴드 알바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손님을 다 겪는다. 그 중에 백준열처럼 자신이 직접 연주를 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다들 대충 악기 연주만 해 보고 만다. 그런데 지금 그들 눈앞의 백준열은 자신이 키보드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철희야.”

현이수가 키보디스트 철희에게 턱짓을 보냈다. 자리 빼라고 말이다. 그리곤 백준열에게 물었다.

“독주로 하실겁니까? 아니면 저희도 같이 연주를 해 드릴까요?”

현이수의 그 물음에 백준열이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일단 독주로 시작할 테니까 보시고 따라 오실 수 있으실 거 같으면 내 연주에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그 대답 후 백준열은 김철희가 비운 키보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걸 보고 세 여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때 김희수가 백준열에게 물었다.

“대표님. 지금 키보드 치시려는 거예요?”

“네. 오랜만에 악기 연주하면서 앵콜 송을 부를까 해서요.”

백준열은 세 여자들의 앵콜 연호에 진짜로 한곡 더 노래를 부를 모양이었다. 그리고 세 여자들 역시 앵콜 쇄도가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던 듯, 셋 다 백준열이 또 무슨 노래로 자신들을 놀랠 킬지 기대가 되는 듯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밴드 디펑크스의 리더 현이수가 백준열에게 물었다.

“무슨 노래를 부르실 건가요?”

“아무래도 키보드와 어울리는 서정적인 곡이 좋을 거 같은데....서른이 되어. 어때요?”

“허어....”

백준열의 선곡에 현이수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서른이 되어’는 싱어송 라이터로 유명한 장광섭의 명곡으로 앞서 백준열이 불렀던 단 하나의 사랑과는 완전 그 결이 다른 노래였다.

현이수가 무슨 괴물 보듯 백준열을 쳐다 볼 때 팔을 걷어붙인 백준열이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띵~

경쾌한 소리가 룸 안 가득 울렸다. 피아노만큼의 울림은 아니지만 조금 웅장한 거 같기도 한 울림에 박수영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잡았다.

그때 백준열은 두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고는 가볍게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그럴 것이 막상 자신이 연주를 하려 키보드 앞에 앉았는데 기분이 좀 오묘했던 것이다.

원래 백준열도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연주와 노래를 병행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계용, 그러니까 R드래곤의 재능이라면 얘기는 또 달라지지.

백준열은 히트 곡 메이커 이계용의 재능인 ‘작곡 천재’라는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거기에는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재능, 즉 피아노 연주가 포함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백준열은 R드래곤 만큼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거다. 그랬기에 그가 이렇게 키보드 앞에 당당히 앉을 수 있었던 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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