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아무래도 두 여자로부터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면 그녀들의 생각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개눈깔」아이템을 사용하면 말이다.
“그 스페셜 코스로 준비하고 먼저 밴드부터 넣어줘요.”
내 말에 웨이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 후 내가 한 말을 뒤집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는지, 그야말로 후다닥 특실을 빠져 나가는 웨이터.
“자자. 한 잔씩 합시다.”
나는 거국적으로 세 여자들과 양주잔을 부딪쳤다. 당연히 술은 원샷이었고 내가 먼저 술잔을 깨끗이 비우자 세 여자들도 눈치껏 잔에 양주를 다 마시고는 빈 잔을 테이블 위에 올 놓았다. 그때 웨이터가 급하게 양주부터 두 병 새로 가지고 룸 안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우리는 마저 한 잔씩 더 양주를 마셨고, 그 술기운에 기분이 확 좋아진 김희수가 말했다.
“우리 춤추러 나갈까?”
그러자 그 옆에 박수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언니. 밴드 온다잖아? 노래 불러야지. 노래.”“아아. 맞다.”
그때였다. 웨이터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더니 진짜 빨리 밴드가 우리가 있는 특실로 들어왔다. 악기들과 앰프, 스피커들이 줄줄이 특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우리 앞에서 즉석 밴드 무대가 준비 되었다.
그걸 신기한 듯 쳐다보는 세 여자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내게 그건 별거 아닌 무대 준비 과정일 뿐이었다. 해서....
“나 화장실 좀....”
화장실을 핑계로 특실을 나온 나는 아까 거기 두고 나왔었던 내 핸드폰을, 이번에는 잘 챙겨서 그걸 넣어 둔 호주머니 속에서 꺼냈다.
“으음....”
그런데 막상 어디로 전화를 하려고 꺼낸 핸드폰인데, 나는 거기로 전화하기를 망설였다.
그런 이유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전 대통령의 아들이 누군지를 나는 철수에게 알아보라고 시킬 생각이었다.
한데 그것보다는 류지혜에게 전화해서 바로 물어보는 게 더 빠를 거 같다는 생각이 좀 전에 들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직접 겪어 본 류지혜라면, 어쩌면 내가 물어보는 물음에 쉽사리 대답해 줄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 까짓 해 보자.”
나는 류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신호 연결 음이 울리자마자 그녀가 바로 내 전화를 받았다.
-왜요?
“물어 볼 게 있어서요.”
-뭔데요?
“아까 내게 말했던 전 대통령 아들 말인데. 그 전 대통령이 전(全) 씨 성을 쓰는 대통령입니까?”
-아뇨.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 예상대로였다. 전 씨 성을 쓰는 대통령이 아니라면, 전 대통령이 누군지는 이제 명확해졌다. 류지혜는 내 궁금증을 바로 풀어주었고 볼일 다 본 나는 그녀와 통화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잠깐만요. 지금 그거 물어 보려고 저한테 전화한 거예요?
“네. 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지라....”
-하아....
내 대답에 기가 차하던 류지혜. 그때 그녀 곁에 누군가의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야. 그 개새끼야? 그럼 여기 우리 술값 그 새끼보고 계산해라고 해.
더불어 류지혜의 핸드폰에서 들리는 경쾌하고 신나는 사운드가 여기 클럽에서 나오는 소리와 일치했다. 그 말은 류지혜가 이곳 클럽을 떠나지 않고 친구와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
“혹시 여기 있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핸드폰에서 들리는 음악과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똑 같아서요.”
-귀가 상당히 밝으시군요.
“그래서 옆에 계시는 친구 분 말도 들었습니다. 술값은 제가 책임질 테니 마음껏 즐기십시오.”
내가 류지혜에게 호의적으로 구는 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류지혜는 못 따 먹어도 그녀 친구는 얘기가 다르지.’
혹시 지금 내가 특실에서 공들이고 있는 두 여자들과 빠구리를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때는 류지혜 주변의 여자를 공략하는 게, 생판 처음 보는 여자들을 꼬시는 것보다 빠를 테니 말이다.
* * *
백준열에게 까이고 특실을 나선 류지혜.
“하아....기막히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류지혜는 화가 나기보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그녀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친구 정미옥. 그녀는 바로 친구 전화를 받았다.
“어.”
-나 클럽 앞이야. 이제 들어가려고. 특실 들어가면 되지?
“아니. 그냥 거기 있어. 내가 나갈 테니까.”
-나와? 왜?
류지혜는 친구 정미옥이 바로 이 클럽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전화를 걸자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어차피 여기서 나갈 생각이었으니 그녀와 같이 근처 다른 클럽에 가려고 말이다.
홍대에 클럽이 이곳 줄리아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그럼 태열이 오빠는?
“뭐?”
태열이라는 친구 정미옥의 말에 그제야 류지혜는 오늘 이곳 줄리아나에, 인기 DJ유태열이 디제잉을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DJ유태열은 주로 해외에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렇게 무대에 나서는 건 흔치 않았다. 그러니까 유태열은 DJ계에 있어서 유명 아티스트였던 것.
이곳 클럽의 대표가 유태열과 친분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런 클럽 무대에 설 유태열이 아니었던 것.
그걸 뻔히 아는 클러버 류지혜와 그녀의 친구 정미옥. 그녀들은 오늘 DJ유태열이 디제잉 하는 클럽 무대에서 그가 펼치는 DJ 사운드에 미친 듯 몸을 흔들어 볼 생각이었다. 한데 백준열 때문에 그걸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아니야. 미옥아. 너 안으로 들어와.”
-뭐? 나온다며?
“내가 왜 나가? 나가려면 그 새끼가 나가야지.”
류지혜는 그냥 여기 죽치고 있기로 했다. 뭐 백준열과는 분명 무대에서 만나지겠지만 그녀를 보는 게 불편하면 그가 나가겠지. 잠시 뒤 정미옥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고 류지혜는 마침 그녀들 옆을 지나가던 웨이터를 붙잡았다.
“여기 테이블 하나 준비해 줘요.”
“네? 아아....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웨이터는 류지혜와 정미옥의 외모를 재빨리 훑어보고는 그녀들을 무대 앞쪽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클럽 안에서 주위 남자들의 시선을 제일 많이 받는 자리로 말이다.
클럽 퀸으로 이런 자리 앉는 걸 그 동안 꺼려 왔던 류지혜. 하지만 이제 10여분만 있으면 DJ유태열이 무대 위에 따로 마련 된 디제이 박스에 그 모습을 드러낼 터. 괜히 웨이터와 시비 붙어 그가 디제이 박스에 들어서는 장면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웨이터에게 술은 기본으로 대충 가져 오라고 말하고 친구 정미옥과 시선을 디제이 박스에 두고 있었는데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류지혜는 누구 전화든 바로 걸려 온 전화를 끊으려 했다. 한데....
“백준열?”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백준열이었다. 뭐 더 생각하고 자실 것도 없이 그녀는 백준열의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그가 싱거운 질문을 해왔고 그녀는 그 물음에 대답을 해줬다.
그랬더니 그가 그녀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그녀 술값을 대신 책임져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남자로서 매너는 있었다.
“웨이터!”
해서 류지혜는 비록 특실은 아니지만 자리를 룸으로 옯겼다. 마침 비어 있는 룸이 있어 류지혜와 정미옥은 그 룸으로 들어갔고, 바로 주문을 하고 둘은 곧장 무대로 나왔다.
백준열이 계산한다는 데 꺼릴 게 없어진 류지혜. 그녀는 15억이 좀 넘는 스페셜 코스 시켜 놓고 무대 위에 나타난 그를 봤다.
클럽 죽순이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 DJ유태열이 무대 위에 마련 된 DJ박스 안으로 들어서는 걸 말이다.
* * *
류지혜와 통화 후 진짜 소변이 마려워진 나는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봤다. 그리곤 손을 씻고 특실에 들어갔더니 밴드의 무대 세팅이 다 끝나 있었다.
“내가 먼저 부를게요.”
강혜정이 번쩍 손까지 들며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먼저 나섰다.
“그래요. 먼저 부르세요.”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제일 먼저 밴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자 신난 얼굴의 강혜정이 밴드 쪽으로 가서 자신이 부를 노래가 뭔지 얘기를 했다. 이어 밴드 멤버들 중 기타를 메고 있던 장발에 검은 가죽바지의 남자가 말했다. 아마 저 남자가 밴드의 리더인 모양이었다.
“조찬휘의 티어즈라....가능은 한데 원키로 부르실 겁니까?”
“네.”
“노래방과 밴드 사운드는 다릅니다. 그래서 한 키 낮춰 부르는 걸 추천 드립니다.”
강혜정은 밴드 리더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한 키 낮춰 반주해 주세요.”
그렇게 강혜정은 마이크를 쥐었고 뒤에 밴드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티어즈 특유의 신나는 전주가 키보드를 통해 흘러나오고 나를 뺀 나머지 두 여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켜서 박수와 함께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그때 밴드 앞에 강혜정 역시 일행들처럼 살랑살랑 몸을 흔들면서 밴드 반주의 박자를 잡아나갔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어. 그저 너를 기다리는....”
강혜정은 자신 있게 나선 이유를 바로 증명해 냈다. 음정과 박자, 목소리가 마치 조찬휘가 이 자리에 있는 거 같이 느껴질 정도로, 마이크에서 스피커로 전달되어 나오는 그녀 목소리가 비슷했다.
그녀 뒤에서 기타를 치고 있던 밴드 리더가 ‘이거 봐라’며 입 꼬리를 올리고 그녀를 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전문 가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제대로 목도 풀지 않고 부른 탓인지 몇 군데 플랫이 났고, 특히 최고음부에서는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순간 까지 너를 사랑해~”
“와아아~”
짝짝짝짝!
그래서 특실 안에 있던 세 사람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강혜정은 아쉽다는 듯 뒤돌아서 밴드 쪽에 인사를 하고는 우리 쪽으로 털레털레 걸어왔다. 그리고 내게 마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다음은 대표님이에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의 강혜정.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내게 말하고 있었다. 어디 당신의 노래 실력을 보여 보라고 말이다. 나는 그런 강혜정에게서 마이크를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밴드 쪽으로 걸어갔고 그런 나에게 세 여자들이 응원을 보내왔다.
“대표님 파이팅!”
“멋진 무대 부탁해요.”
“진짜 노래까지 잘 부르면 사기캐다.”
나는 밴드 리더에게 다가가서 바로 내가 부를 곡을 말했다.
“단 하나의 사랑. 부탁해요.”
“네?”
그러자 밴드 리더가 황당해 하며 나를 쳐다보더니 설마 하는 얼굴로 물어왔다.
“천지창조의 단 하나의 사랑은 아니죠?”
“맞는데요.”
“네에?”
황당함을 넘어서 기 막혀 하는 밴드 리더. 그런 그에게 내가 더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원키 말고....”
일단 그 말을 들었을 때 밴드 리더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한데....
“한 키 올려서 연주해 주세요.”
“....”
안 그래도 높은 키의 단 하나의 사랑이었다. 4옥타브 파(F6)를 수시로 내질러야 하는 이곡은 그룹 천지창조의 보컬 서지훈도 콘서트에서 부르길 꺼려하는, 아니 겁내 하는 곡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곡을 한 키 더 올려도 충분히 부를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말에 잠시 어이없어하던 밴드 리더.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현장에서 밴드 사운드가 좀 더 음계가 높게 나오니....”
“알았어요. 그럼 원키로 해 주세요.”
강혜영처럼 나도 밴드 리더의 조언을 받아드렸다. 뭐 한 키를 올려 부르든 원키로 부르든, 나는 어떤 여건 속에서도 노래를 잘 부를 자신이 있었으니까.
* * *
앞서 강혜영이 부른 티어즈는 테크노풍의 댄스곡으로 조찬휘라는 솔로 여가수를 대표하는 최대 히트곡이었다.
그 곡들 들으면서 나는 원래 부르려 했던 노래를 접었다. 그러니까 즉석에서 부를 노래를 바꾼 거다. 티어즈 만큼이나 부르기 힘든, 악명 높은 곡으로 말이다.
‘왠지 그래야 강혜영을 꼬실 수 있을 거 같거든.’
티어즈도 그렇지만 원곡자도 부르기 힘들다고 한 곡. 바로 그룹 천지창조의 단 하나의 사랑.
영원히 너를 잊을 수 없다는 가사의 폭풍간지와, 4옥타브를 넘나드는 미친 음역대가 시너지를 이루며 노래방을 이용하는 많은 남성들에게 동경과 좌절을 안겨준 노래 중 하나다.
내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는 동안 뒤에 밴드에서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명한 곡의 간주이다 보니, 세 여자들도 내가 지금 뭘 부르려는 지 알아 차렸다.
“허얼. 대표님. 지금 단 하나의 사랑 부르시려는 거야?”
“미친....그 노래 엄청 높은 데....”
“아아....”
다른 두 여자들과 달리 강혜정 만큼은 내 선곡에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즉 내가 여기서 이 노래만 잘 부른다면 강혜정은 내게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뒤의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고 그 밴드 리더가 단 하나의 사랑의 전주에서 내가 노래 부를 타이밍을 잡아 주었다.
“....둘 셋!”
나는 그 박자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