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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29화 (62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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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보통 정치인에게 있어 캠프라는 것은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결성 된다. 하지만 경기도지사가 되었을 때부터 류상현은 일종의 비밀 캠프를 차려 두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만의 선거 캠프를 결성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캠프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러던 차에 현 대통령이 하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 말인즉 곧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는 거다.

“하하하하. 드디어 내게 기회가 주어진 것인가?”

여타 보궐 선거와 달리 대통령 선거는 그 선거가 치러진 해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통령의 정해진 임기가 다 보장 된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만 되면 청와대 주인으로 임기 동안 이 나라의 왕이 된다는 얘기다.

왕!

류상현에게 있어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바로 그 왕과 같았다. 그러니까 제왕적인 대통령!

류상현은 바로 그런 강력한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안 해 본 일도 없었고, 앞으로 못 할 일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자식 정도 희생시키는 건 사실 고민하고 자실 일도 아니었다.

응당 자신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어줘야지. 안 그런가?

다만 자식 복 만큼은 지지리도 없었던 류상현은 슬하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뒀다.

근데 두 아들 중 제일 쓸 만했던 큰 아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죽었다.

안 된다고 했건만 기어코 오토바이를 사 달라더니....

재수 더럽게 없게 음주 차량과 추돌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첫째에 비해 좀 떨어지던 둘째 아들 녀석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더니 거기 애들과 마약을 하다가 갱단에 의해 총에 맞아 죽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류상현의 슬하에는 딸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두 아들을 잃은 게 류상현에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국민들이 그런 그를 측은하게 여기면서 그의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그래서 애초 어렵다는 선거판을 뒤집고 경기도지사에 당선 될 수 있었고.

이제 그에게 남은 건 그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물론 선거에서 이긴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하지만....

“삼명그룹만 도와준다면....”

이번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린 게 바로 삼명그룹이었다. 삼명그룹에서 그걸 숨기려 해도 그게 어디 숨겨질 일이던가?

이미 정치판에 그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그런 삼명그룹이 밀어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선지 대권 주자들이 삼명그룹에 줄을 대려 난리가 난 상황. 당연히 류상현도 그들 중 하나였고. 하지만 삼명그룹에서는 그 어떤 정치인이 접촉해 오는 것도 거부하며, 도도, 혹은 고고하게 버티는 중이었다. 허나....

“내가 삼명그룹의 후계자인 백준열의 장인만 될 수 있다면....”

삼명그룹도 어쩔 수 없이 류상현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딸인 류지혜가 반드시 삼명그룹 후계자인 백준열과 맺어져야 했다.

“아쉽군. 그때 둘을 맺어 줬어야 했는데....”

처음 삼명가의 사모님이 자신의 딸과 선을 보자고 했을 당시에, 백준열은 삼명그룹의 확실한 후계자가 아니었다. 삼명가의 개망나니 막내아들이었지. 그리고 그때 류상현은 차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삼명가의 사모님 앞에서는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거처럼 굴었지만, 그 앞에 똥차들이 너무 많았다. 그 똥차들을 다 치우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십여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봤었는데....

그게 이렇게 바뀌었다. 당장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딸과 선을 봤었던 그 삼명가 막내 녀석은 삼명그룹의 후계자가 되어 있었고 말이다.

당시 사모님에게 문제가 생겨서 선보는 것이 무산 되는 바람에, 백준열과 자신의 딸을 맺어주지 못한 게 지금와서 너무도 아쉬웠다.

“그랬으면 이럴 필요도 없었을 텐데.”

오늘도 류상현은 삼명그룹을 찾았다. 당연히 그쪽에서는 류상현을 반기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로.

“류 지사. 오랜 만이야?”

“그렇군요. 김 의원님.”

닳고 닳은 노회한 정치인, 여당의 5선 의원 김치국과 삼명호텔 본사 사옥의 로비에서 마주친 류상현. 김치국은 여당 내 킹 메이커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여기 왔다는 건 여당에서 이미 누구를 밀지 정한 상태라는 거다.

“백 회장 뵙기가 쉽지 않군. 안 그런가 류 지사?”

나도 튕겼는데 네가 만날 수 있을 거 같느냐는 투였다.

“네. 뭐....”

류상현은 당장 김치국에게 여당에서 추대한 대권 후보가 누군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하수였다. 김치국에게 뭘 묻는 순간 그의 날카로운 혀 놀림에 말의 주도권을 내 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럴 때는 침묵이 최선이었다. 뭐 어차피 여기서 캠프로 돌아가면 그 궁금증은 풀릴 일이었고.

* * *

자신을 만나고도 대면 대면해 하는 류상현을 보고 김치국은 허허롭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겉과는 달랐다.

‘저 새끼가 왜 저리 여유가 있어 보이는 거지? 설마....’

김치국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하면서 주위를 슬쩍 살핀 뒤 류상현에게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자네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류상현도 원래 여당 출신이었다. 하지만 공천권을 두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탈당을 했고, 어렵사리 무소속으로 지금의 경기도지사 자리에 앉았다. 그가 경기도지사에 당선 되자마자 당연히 여당에서 재입당을 권해 왔었다.

하지만 민심의 향배가 여당보다는 야당 쪽으로 기울어 있었기에 류상현은 쉽사리 여당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그렇다고 야당도 조건이 맞지 않아서 들어가지 않고 지금까지도 당적 없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대권에 도전하려면 여든 야든, 어디든 들어가서 그 당의 대권 후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여당에서 류상현의 자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앞서도 얘기했듯이 여당에서는 류상현 앞에 똥차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 똥차 중 하나가 바로 지금 류상현 자기 앞에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사람 좋게 웃고 있는 김치국이었고.

“네. 제가 잘 생각해 보고 거취를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류상현은 전에 했던 대답 그대로 미온적으로 김치국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전에도 김치국은 지금처럼 류상현을 떠보려고 입당 권유를 했었던 것이다.

“쳇! 뭐 그러던지. 가자.”

자신의 말이 류상현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자, 그 사람 좋게 웃고 있던 김치국의 얼굴이 삽시간에 싹 돌변했다. 그러자 그 사람 좋아 보이던 얼굴이 그야말로 심술보 가득한 놀부의 얼굴로 변했다.

실제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김치국은 놀부 심보로 유명했다. 정치판에서 구르고 구른 류상현이야 당연히 김치국의 그 놀부 심보에 여러 번 당했었고. 그러니 누구보다 김치국에 대해 잘 아는 그가 김치국의 수작질에 놀아날 일은 없었다.

쌩하니 삼명그룹 본사를 빠져 나가는 김치국과 그를 따르는 보좌진들을 보고 류상현은 코웃음을 쳤다.

“킹 메이커? 웃기고 자빠졌네. 당신 뒤에 삼명그룹이 없었다면....과연 그런 행운이 따랐을까?”

당시는 몰랐다. 그래서 류상현도 한 때는 김치국을 대단하게 봤고. 하지만 알고 보니 김치국은 삼명그룹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근데 보아하니 그 하수인 노릇도 이제 못할 모양이었다. 딱 봐도 삼명그룹에서 김치국과 손절한 거 같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받대하지 않고 벌써 그를 만나줬겠지.

그렇게 류상현도 막 삼명그룹 본사를 나가려는데....

“류 지사님?”

딱 봐도 삼명그룹 사람임을 알 수 있는 자들이 그 앞에 나타났다.

“네. 그런데요? 누구신지?”

“네. 저는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이동훈 비서실장입니다.”

“아아. 네. 반갑습니다. 이 실장님.”

좀 전 김치국이 류상현에게 보였던 그 가식적인 그 미소를 지으며 류상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동훈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그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 좀 나누실까요?”

이동훈 실장의 말에 류상현이 눈에 이채를 띠며 대답했다. 류상현도 알고 있었다. 자기 눈앞의 저 이동훈이라는 작자가 삼명그룹의 실질적인 2인자란 걸 말이다.

“그러시죠.”

그렇게 김치국과 달리 류상현은 삼명그룹의 정치인들에 대한 냉대에 밖으로 나가는 대신 안으로 모셔졌다. 그리고....

“오늘 말입니까?”

“네. 이따가 영애께 연락이 갈 겁니다.”

이동훈의 말에 류상현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는 지금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크게 웃었다. 이동훈 실장은 딱 그 얘기만 하고 떠났다.

하지만 류상현은 알았다. 자신의 딸과 백준열이 만나서 잘만 얘기가 된다면....이동훈 실장이 앞으로 그에게 할 말이 더 많아 질 거란 걸 말이다.

* * *

그렇게 삼명그룹을 나온 류상현. 하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유일하게 웃으며 삼명그룹 본사를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딸인 류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딱딱하게 구는 딸내미의 반응에 류상현의 얼굴에서 웃음 끼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다정한 말투로 류지혜를 달랬다.

이번 일은 절대 잘못 되어서는 안 됐다. 그랬기에 류상현은 속이 부글거렸지만 그걸 참고 인내심 있게 딸을 설득했다. 그랬더니 평소와 달리 딸아이가 그의 말을 잘 경청했고, 백준열과 선 보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뭐 하긴....그 걸레년도 자기가 삼명그룹 사모님이 되는 건 좋은 모양이로군.”

그런데 류상현의 입에서 차마 자기 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딸이 클럽 죽순이에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성관계 문란하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핏줄을 걸레년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류상현과 동행중이던 보좌진 중 그의 수행비서가 어디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네. 네에? 하아....알겠습니다.”

그런데 딱 봐도 그는 저 수행비서가 어디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인지 알아봤다. 그래서 그 수행비서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집 사람이 또 약을 건너 뛴 건가?”

“네. 일주일 넘게 약을 드시지 않고 숨겨 온 것으로....”

“C발....이건 아내가 아니라 숫제 원수야. 원수.”

류상현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지금 아내와 이혼을 하고 싶었다. 이혼 사유야 명확했다. 그의 아내는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우울증에 공황장애라는데 그것뿐만 아니었다. 그녀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러니 헤어지려 했으면 벌써 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에 가야 할 그에게 이혼경력은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숨겨왔다.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그때는....”

순간 류상현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어째든 선거 때 아내가 반드시 그의 곁에 있어주어야 했다. 그러려면....

“뭐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원하는 거 다 해줘. 대신 약 꼬박꼬박 챙겨 먹이고.”

그래도 약만 잘 먹으면 그가 필요한 순간에 정상적인 모습은 보일 수 있는 아내였다.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어떡하든 아내를 잘 달래야 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그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그 순간....그는 원수라고까지 말한 자신의 아내를 정신병원에 쳐 넣어버릴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 생각은 그 누구도 몰랐다.

“빨리 가 봐.”“네. 지사님.”

류상현의 지시에 그의 수행비서가 보좌진에서 떨어져 나가서 어디 론가로 향했다.

류상현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그의 보좌진들은 다들 알았다. 수행비서가 지금 어디로 가는 지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들 모른 척 했고 류상현의 다음 스케줄을 챙기기 바빴다.

류상현은 삼명그룹 다음으로 그의 대선 행보에 꼭 필요한 곳, 그러니 그의 텃밭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경기도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의 직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경기도청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도지사의 업무를 보면서 한편으로 대권 주자로서 행보를 걸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년이 제대로 해 줘야 할 텐데....”

바로 그의 딸인 류지혜가 백준열을 만나서 그의 환심을 사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러려면....

“박 비서!”

“네. 도지사님.”

아무래도 류지혜가 제대로 꾸미고 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본 바탕이 괜찮아서 꾸미면 어디서도 미인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

해서 류상현은 자신의 보좌진 중에서 자신의 미용과 코디를 책임지고 있던 비서를 가까이 불렀다.

“박 비서가 우리 지혜 좀 챙겨줘야겠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우리 지혜를 공주로 만들어 줘. 남자라면 누구나 보고 반할 수 있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류상현의 지시에 대답을 하고서 박 비서는 보좌진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곤 류지혜를 부러워하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야 거기로 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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