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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28화 (6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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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지?’

나는 혹시 그녀가 내가 건 전화를 끊은 건지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떼어내서, 그 핸드폰 화면을 내 눈으로 살폈다. 하지만 통화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태 전화가 없어서 이번에도 저번처럼 못 만나나 했는데....

저번에는 만나기로 했지만 사정이 있어서 못 만났었다. 내가 알기로 류지혜 쪽에 충분히 양해를 구했고, 그쪽도 이해한 걸로 알고 있었다. 한데 이제 보니 류지혜는 그때의 일을 별로 좋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그녀의 어투가 그랬다. 나를 꺼려하는 티를 팍팍 풍긴달 까?

평소의 나라면 나 싫다는 여자와는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류지혜는 예외다. 왜냐하면 백 회장 때문이기도 하고 또 견신 시스템의 미션도 있었으니까.

“그때는 워낙 급한 일이 터져서 못 만났죠. 그래서 오늘 만나기 어렵습니까?”

뭐 류지혜가 여기서 나를 깐다면 나도 굳이 그녀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일단 백 회장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생기는 셈이고, 견신 시스템의 개지수야 류지혜 아니더라도 다른 여자와 열심히 빠구리를 하다보면 10포인트야 못 챙길까?

-아뇨. 만나요. 어디서 볼까요?

하지만 류지혜는 내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쪽도 그쪽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좀 전 퉁명스럽던 그녀 목소리가 싹 바뀐 것으로 봐서, 류지혜가 보통 여자가 아님을 나도 알 수 있었다. 일단 그녀가 약속 장소에 대해 내게 결정권을 넘겼다. 아마도 어디 고리타분한 호텔 커피숍에서 보자고 할 줄 알았겠지.

“홍대에 ‘라미아스’라고 알아요?”

공항철도 홍대 입구역 5번 출구 앞 건물에 위치한 라미아스는 최근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커피 전문점이었다.

-네? 거, 거기를 어떻게....

“요즘 워낙 핫한 곳이잖습니까?”

-그, 그렇기는 한데....

내가 요즘 젊은 세대에서 알아주는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을 알자, 류지혜가 많이 놀란 듯 보였다. 무엇보다 그곳이 있는 곳이 홍대란 점이 아마도 류지혜에게 신선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럼 거기서 6시에 보죠?”

-잠, 잠깐만....6시 30분에 봐요.

“네. 뭐....그러면 그러시죠.”

그렇게 나는 류지혜와 6시 30분에 홍대 ‘라미아스’ 커피 전문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그녀와 통화를 끝냈다.

“들었지?”

나는 내가 류지혜와 통화 중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내 옆의 문대식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문대식이 운전석에 경호팀원에게 지시했다.

“홍대로 가. ‘라미아스’는 알지?”

“물론이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경호팀원도 약속 장소는 아는 거 같았다. 하긴 문대식 밑에 경호팀원들은 전부 문 팀장보다 나이가 어렸다. 내가 알기로도 문대식을 빼고 30대의 경호팀원은 없었다. 그러니 운전석의 경호팀원도 20대의 피 끓는 젊은 남자일 것이고, 무엇보다 연애에 목말라 있었을 테니 여자 만나러 ‘라미아스’는 가 봤을 테지.

“쯧....”

근데 사실 나는 ‘라미아스’라는 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한데 내가 그곳을 어떻게 아냐고? 꼭 가봐야 아나? 나도 듣는 귀는 있으니 그냥 주워들었다.

그러니까 어젠가? 아니 오늘인가?

‘이거 기억력이 왜 이 모양이지? 쯧!’

회사 로비에서 거기 불친절하고 커피 값도 더럽게 비싼데 핫 플레이스라고 쓸데없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거기 미팅 갔다가 차인 젊은 남자직원의 한탄 섞인 말이 그냥 내 귀에 들려왔었다.

그때 ‘라미아스’라는 커피숍 이름이 내 기억에 남았고 나는 그걸 써 먹은 거뿐이다. 이왕지사 홍대에서 만나기로 한 거 ‘라미아스’라는 데가 어딘지 한 번 가 볼 겸해서 말이다.

“으음....어디 좀 살펴 봐 볼까?”

나는 류지혜와 통화 후 그녀가 보인 이상한, 아니 좀 석연찮은 반응들에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견신 시스템의 「개 짖는 소리」 스킬을 통해 그녀 주변을 도청, 감청했다. 그랬더니....

“아이구야....”

내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왜요?”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조수석의 김종훈과 내 옆 자리의 문대식이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바로 시선을 옆 차창으로 돌렸다. 그러자 김종훈과 문대식도 더는 내게 관심을 두지 않고 각자 생각에 빠졌다. 마치 나처럼 그들도 생각할 게 있는 듯.

* * *

류상현 경기 도지사의 딸 류지혜가 잘 논다는 건, 이미 그녀가 다니는 배꽃 여대생들 중 모르는 학생보다 아는 학생이 더 많았다. 더불어 배꽃 여대 주변의 대학생들도 익히 아는 바였고.

실제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남학생들 중 소위 잘 나간다는 부류의 경우, 다들 클럽에서 류지혜와 썸을 타는 걸 당연시 여겼다.

물론 그 중에는 특히 류지혜의 마음에 들어서 그녀와 뜨거운 시간을 가진 녀석들도 있었다. 바로 그런 녀석들의 입을 통해서 류지혜가 얼마나 뜨거운 여자인지 소문이 돌면서,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류지혜의 인기가 상당했다.

실제 그녀가 뜨는 홍대 클럽의 경우 남자들이 폭주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류지혜도 요 며칠 홍대 클럽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류지혜는 쌓인 욕구를 풀지 못해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 그녀에게 부친인 류상현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아. C....”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거기다가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의 전화가 걸려오니, 그녀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싫어도 받지 않을 수 없는 전화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걸 제공해 주고 있는 존재의 전화였으니 말이다.

만약 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한 시간 안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가 정지 될 터였다.

“네. 아빠. 네? 하아....또 선보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부친은 또 다시 그녀를 귀찮게 했다. 아직 대학 생활이 남았건만 부친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딸인 그녀를 기어코 제물로 삼을 생각인 거 같았다.

올해만 들어서 그녀가 만나야 했던 정재계 쪽 유력 인사의 자제들만 10명이 넘었다. 그 중에는 삼명가의 자제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다. 근데....

“그 백준열이라는 사람을 또 만나라고요?”

-또는 아니지. 저번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했잖느냐?

“그게 그거죠. 어차피 인연이 아니니까 못 만난 거고....”

-아니지. 인연이니 이렇게 또 만날 기회가 온 거 아니겠느냐?

“하아....”

류지혜는 싫은 티를 팍팍 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끄덕할 류상현이 아니었다.

그 더럽고 추악한 정치판에서 굴러먹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류상현이었다. 딸내미의 이정도 푸념으로는 절대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그건 류지혜도 잘 알았다.

-너도 이번 대통령 하야의 배후가 누군지는 알지 않니? 백준열은 무려 거기 차기 주인이 될 녀석이다.

“정말요? 하지만 백준열 위로 두 형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들은....없어졌다. 그러니 네가 백준열과 결혼만 한다면....차기 삼명그룹 사모님은 네가 되는 거지.

삼명그룹 사모님이라는 류상현의 말에 류지혜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만날게요.”

-그래. 그래야지. 후후후후.

의미심장하게 웃는 류상현. 이런 걸 보면 그도 자기 딸에 대해 나름 잘 아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호호호호. 내가 삼명가의 안주인이 된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부친 류상현과 통화 직후 류지혜의 얼굴이 갑자기 표독스럽게 변했다.

“당신부터 철저히 부셔주겠어. 청와대? 웃기지 마. 당신이 갈 곳은 감옥 아니면....지옥뿐이야.”

대체 부친인 류상현과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그녀가 보이는 이 반응은 도저히 그녀를 낳아주고 길러 준 아버지라 보다, 무슨 철천지원수에게서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 * *

류지혜는 부친의 전화를 받고 기분이 완전 바뀌었다. 짜증만 가득했었는데 그게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고 자신의 장밋빛 미래에 피식거리며 계속 헛웃음이 나왔다.

“류지혜. 너 미쳤어?”

“어?”

“동철이가 너를 쳐다보는 것도 싫다며?”

“그래. 근데 그 색마 새끼 얘기는 왜 지금 꺼내는 거야? 기분 더럽게.”

배꽃 여대 의상학과에 다니는 류지혜. 그런 그녀의 유일한 단짝인 정미옥이 그녀가 부친 다음으로 싫어하는 새끼 얘기를 꺼내자 인상을 팍 찌푸리는 류지혜. 그런 그녀의 반응에 정미옥이 기가 차하며 말했다.

“허얼. 너 좀 전 동철이보고 웃었거든.”

“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때였다. 저편에서 동철이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한 손을 들어보였다. 아주 대 놓고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한 거다. 그걸 본 순간 류지혜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나갔다.

“야이 X새끼야. 어디서 아는 척이야. 확 그 가운데 다리 잘라 버릴라. 내 눈에서 안 꺼져!”

버럭 소리치는 그녀를 보고 웃고 있던 동철이 질겁해서는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후다닥 뒤돌아서 그녀 눈에서 사라졌다.

그걸 보고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는 류지혜. 그런 그녀에게 다가 온 정미옥이 그녀 손목을 잡아 끌며 말했다.

“야! 빨리 따라와.”

“뭐?”

“사람들 다 쳐다본다. 쪽팔리니까 빨리 좀....”

정미옥의 말에 그제야 주위를 둘러 본 류지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좀 전에 내 뱉은 말이 좀 많이 과격했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못이기는 척 정미옥의 이끌림에 따라서 움직여 주었다.

정미옥은 근처 커피 전문점으로 류지혜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그녀들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각자 자기 갈 길을 갔다.

“휴우....”

그걸 가게 안 창문을 통해 지켜보던 정미옥. 그녀가 한숨과 함께 도끼눈으로 류지혜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 그 성질 좀 제발 죽여라. 이러다 내가 쪽팔려서 더는 너하고 못 다니겠다.”

“으음....미안.”

류지혜도 좀 전 일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정미옥에게 바로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미옥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커피 전문점 안쪽에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며 아직 가게 안에 서 있은 류지혜를 보고 말했다.

“나 아이스 카페 라떼. 샷 추가해서.”

“어. 알았어.”

정미옥의 주문에 류지혜가 반색하며 바로 매대로 가서 주문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스 카페 라떼 한 잔 사주는 걸로 정미옥이 봐 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거다. 주문하고 계산까지 마친 뒤 호출 벨을 들고 정미옥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간 류지혜. 그녀가 정미옥 눈치를 살피며 그녀 맞은 편 자리에 앉자 정미옥이 먼저 말했다.

“은지나 보러 가자.”

은지라는 말에 류지혜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하아....너나 가. 나 안 가.”

“야!”

“됐어. 좀 이따가 선 보러가야 돼. 은지는 주말에 보러 가자.”

류지혜의 선이라는 말에 좀 전에 발끈했던 정미옥이 오히려 화를 누그러트리고 류지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류지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리고 이번 선은 잘 좀 잘 보려고.”

“뭐?”

류지혜의 말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지 정미옥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 * *

왜 유년 시절 친구 세 명이 붙어 다니면 ‘삼총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처럼 류지혜와 정미옥, 하은지는 배꽃 여대 의상디자인 학과의 ‘미녀 삼총사’로 불렸다.

그 셋 다 원체 화려한 외모를 뽐내고 다니다보니 미녀라 불렸는데 그것도 초창기, 그러니까 1학년, 그것도 1학기때 얘기고, 당장 2학기부터 그녀들은 미녀 삼총사에서 날나리 삼총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날나리라는 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는 소리다. 즉 류지혜와 정미옥, 하은지는 남자관계에 있어서 많이 개방적이었는데, 문제는 그녀들이 한 남자에 만족할 성향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사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또 사귀었는데, 바로 그게 문제가 되었다. 그녀들과 좋게 헤어지지 않은 전 남자들이 그녀들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낸 것이다.

그래도 그녀들은 꿋꿋하게 자신들의 자유로운 연애관을 고수했다. 그런데 하은지와 사귀었던 전 남친 이동철이라는 놈이 너무나도 황당한, 찌질 한 짓을 저질렀다. 하은지와 헤어지고 나서 눈이 돌아버린 녀석이 그만 자기 질 나쁜 친구들을 동원해서 하은지를 집단 폭행 및 강간까지 저지르려 한 것이다.

다행히 류지혜가 빨리 신고하는 바람에 강간까지 당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다친 하은지는 입원해서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기가 찰 노릇은 그 일을 사주한 이동철이 아무런 죗값도 치르지 않았다는 거다.

왜냐하면 이동철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그쪽에서 어떻게 손을 썼는지 모든 건 이동철의 나쁜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한 우발적 범행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꼭지가 돈 류지혜는 부친인 류상현에게 그걸 얘기했다. 친구의 복수를 해 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이동철의 아버지가 갑자기 류상현을 지지한다면서 떡 하니 탈당을 하고 류상현의 캠프로 들어오지 뭔가.

그러니까 류상현이 딸의 친구 복수대신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실익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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