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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끝으로 서지연은 오늘 저녁에도 나를 만나기를 원하고 있었다. 말은 일 때문이라는데 다른 속셈이 있어 보였다.
“끄응....”
늦바람이 무섭다고 그 동안 삼명호텔과 결혼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호텔 업무에만 열중이었던 서지연이, 나와 관계를 맺고 나서 남자에 눈을 뜬 거 같았다.
그녀와의 만남이 「개막장」아이템을 성장 시키는 데 도움이 되니까, 오늘 만나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나는 다른 약속이 있다. 그것도 무려 개지수를 쌓을 수 있는 미션이 주어져 있는 인물과의 만남이 말이다.
나는 곧장 답 메시지를 보냈다. 선약이 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귀찮게 바로 서지연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럼 내일 보자고.....
“하아....뭐 그러던지.”
주말을 시작으로 다음 주말까지 서지연과 만날 수 없을 만큼 바쁠 예정인 나로서는 관리차원에서라도 내일 밤에 서지연을 만나서 그녀의 욕정을 충족 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원래라면 오늘 찾았어야 할 내 여자 아나운서 출신 MC 임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그녀가 오늘 부친 생일 때문에 가족 모임 참석 후 본가에서 잘 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가족 모임 장소가 어딘지 물어 본 뒤 부담 없이 즐기라고 했다.
가족 모임으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내가 선 지급해 놓겠다는 뜻이었는데, 임연수는 그게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들었다.
-고마워요. 챙겨 줘서.
“뭘....우리 사이에.”
임연수는 내가 말한 ‘우리’라는 말이 듣기 참 좋다는 나름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듯 먼저 전화를 끊었다. 보아하니 방송국인 모양이었다.
언제든 돌발적으로 문제가 터져 나오는 곳이 방송국 아니겠나? 연예 기획사 대표인 내가 그걸 이해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기분이 살짝 상한 나는 그냥 순수하게 궁금했다. 임연수가 왜 먼저 전화를 끊었는지 말이다.
해서 나는 견신 시스템의 「개 짖는 소리」 스킬을 통해 방송국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임연수와 그 주변을 도청, 감청했다. 그랬더니....
“어라라....”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황당함이 상당히 가미 된 추임새가 흘러나왔다.
그 만큼 지금 임연수와 그녀 주변에 말들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헛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KVS라디오 PD 안형수....작가 이미영....”
이것들이 임연수를 상대로 깜찍한 짓을 꾸미고 있었다. 뭐 내가 듣기로도 그들의 꿍꿍이는 그대로 두면 충분히 먹혀 들 거 같았다. 문제는 그로 인해 곤란해지는 게 임연수라는 거다.
임연수야 지금 맡아하고 있는 그 라디오 프로그램 MC에서 하차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전부터 말해왔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어느 방송국, 어느 프로그램의 MC라도 꽂아 넣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태 내 도움을 받는 걸 거부하고 혼자 힘으로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임연수가 지금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자긍심은 상당히 컸다. 그녀 혼자 힘으로 이룬 성과라고 말이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스스로가 아닌, 외부의 압력으로 쫓겨난다면 상처가 클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내 여자가 상처 받는 게 싫다. 내가 몰랐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알고 있으면 더 더욱.
“으음....”
그래서 나는 잠깐 고심을 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를 말이다.
* * *
TV 시청률만큼이나 라디오 역시 청취율을 따졌다. KVS라디오국의 3년차 PD 안형수. 그는 좀 전 부장에게 불려가서 한 소리 들었다. 그가 맡고 있는 임연수의 ‘FM살롱’의 청취율이 저번 달에 비해 0.5%나 떨어진 것이다.
당연히 굳은 얼굴에 냉기 풀풀 풍기며 곧 시작 될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FM살롱’을 송출하기 위해 라디오 녹음부스 문을 열었다.
“하아....”
“부장님이 또 그래요?”
그가 생방송 대기 중인 라디오부스 안에 들어서며 영혼이라도 빠져 나간 듯 창백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자, 그걸 보고 ‘FM살롱’의 메인 작가 이미영이 물었다. 그러자 안형수가 맥없이 고개만 두 번 끄덕거렸다.
“큰일이네. 청취율이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건지....”
그러면서 이미영의 시선이 ‘FM살롱’의 MC 임연수에게로 향했다. 임연수를 쳐다보는 이미영의 눈빛은 상당히 강렬했다. 마치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이 임연수인 거처럼 말이다.
그때 임연수의 핸드폰이 울렸고 임연수가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라디오부스 밖으로 나가며 그 전화를 받았다. 그걸 보고 이미영이 툴툴거렸다.
“방송시작까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어디 가는 거야?”
그래도 MC인 임연수를 배려했다면 자신의 불만을 혼잣말로 주위에 안 들리게 얼버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영의 목소리는 라디오 부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들릴 정도로 컸다. 한마디로 부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라디오 방송에 있어서 메인 작가의 영향력은 컸다. 물론 PD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작 그 PD가 지금 이미영의 지근거리에 있었고, 그걸 두고 아무 말도 없었다는 건 PD의 암묵적인 승인 하에 메인 작가가 이렇게 MC를 까고 있다는 소리였다.
부스 안 관계자들도 알았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 말이다. 그들 나름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청취율을 올리기 위한 다방면에 걸쳐 여러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릴 만큼 경쟁 라디오 프로그램의 MC의 인지도가 너무 높았다. 그 MC가 출연 중인 드라마의 시청률이 30%를 넘기고 있으니, 그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보니 그들이 모든 노력이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가 버렸고 청취율은 또 떨어졌다. 그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PD와 메인 작가에게 전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주어진 MC가 상대 프로그램의 MC에 비할 바가 못 되니 그게 불만이고 짜증이 나겠지. 그들이 아무리 잘해 봐야 MC가 그걸 다 까먹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 테고 말이다.
임연수도 처음 ‘FM살롱’의 MC로 왔을 때 환영을 받았다. 그 전 MC의 인지도가 임연수보다도 낮았으니까.
무엇보다 임연수는 아나운서 출신답게 차분하니 진행을 잘 했다.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이다보니 이슈가 될 일이 없었다.
“쯧....스캔들이라도 좀 낼 것이지.”
하다하다 안형수는 이제 임연수가 대형 스캔들이라도 터트려 줬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그거라도 이슈가 되면 청취율이 얼마라도 더 올라 갈 테니 말이다. 그때 이미영이 확실히 목소리를 낮춰 안형수에게 말했다.
“최민호 쪽에 컨펌 해 봤는데....”
이미영의 최민호라는 말에 안형수가 반짝 눈빛을 빛냈다. 그럴 게 최민호는 요즘 핫한 보이 그룹의 멤버였다. 그것도 멤버들 중에 외모가 독보적으로 빛나서 가장 인기가 많은 꽃 미남 멤버 말이다. 그런 최민호가 자신의 프로그램의 MC로 와 준다면....청취율 수직 상승은 보장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민호씨가 라디오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그래요? 그럼 MC 제안을....하아....아니다.”
안형수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좀 전 MC 임연수가 나간 부스 문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그런 그를 보고 이미영이 말했다.
“민호씨 매니저와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안PD님도 같이 가실 거죠?”
“당연히 가야죠. 우리 프로를 살릴 수 있다는데....뭐 그러려면 먼저 똥차부터 치워야 하는데....”
그 말을 하면서 또 MC 임연수가 나간 부스 문을 쳐다보는 안형수. 그런 그에게 이미영이 살짝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제 발로 나가게 만들어야죠.”
그 말 후 비릿하게 웃는 이미영. 뭔가 생각이 있어 보이는 그녀를 보고 안형수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작가라 그런지 몰라도 사람 갈구는 거 하나는 끝내주는 이미영이었다.
* * *
MC 임연수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요즘 청취율이 조금 하락 중이었지만, 자기가 더 열심히 하면 청취율은 다시 돌아 올 거라 여겼다.
즉 그녀는 지금 그녀가 맡고 있는 ‘FM살롱’의 MC 자리에서 하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데 얼마 전부터 PD와 메인 작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러자 그들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라디오 스튜디오 안의 관계자들도 이제는 그녀를 냉대하기 시작했다.
“하아. 이런 식으로....”
보아하니 ‘FM살롱’의 모든 관계자들이 그녀를 왕따 시키기로 한 모양이었다.
“와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하나 둘씩 프로그램 MC를 맡아가고 있을 때, ‘FM살롱’의 PD와 메인 작가가 찾아와서 그녀에게 애원을 했다. 자기 프로그램의 MC를 맡아달라고 말이다. 그래 놓고 청취율 좀 떨어졌다고 그녀를 이렇게 쫓아내려는 그들의 행태에 임연수는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남자인 백준열 대표에게 얘기를 할까도 생각을 했다. 그에게 말하면 이따위 라디오 MC 말고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MC자리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그녀는 버티는 데까지는 더 버텨 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자기 힘으로 올라왔는데 여기서 포기하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리고 청취율은 곧 올라 갈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자 싶었다. 임연수도 알았다. 그녀의 경쟁 프로그램 MC의 인기가 지금 얼마나 높은지. 하지만 그 인기는 그 MC가 출연 중인 드라마가 끝나면 사그라지게 되어 있었다. 한데 오늘....
“어?”
생방송으로 진행 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10분 전에 백준열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전화라면 그녀는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 예외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 일보다 더 중요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백준열 대표였기에 그녀는 그 전화를 받았다. 물론 라디오 부스 안에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잠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와 통화를 했는데 얼마 안 가 ‘FM살롱’의 관계자가 나와 그녀에게 말했다.
“임연수씨. 스탠바이 5분 전입니다.”
“아네.”
임연수는 어쩔 수 없이 백준열 대표와 통화를 끝내고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하여튼 이래서 프리랜서들은 안 된다니까. 조직에 안 속해 있다보니 다들 빠져서는....”
PD 안형수가 누구 들으라는 듯 말했고 그런 그의 말에 메인 작가 이미영이 비꼬듯 말을 덧붙였다.
“놔둬요. 남자 전화라던데. 혹시 알아요? 열애설이라도 터질지?”
보아하니 임연수가 전화를 받으며 라디오 부스를 나갈 때 그 주위에 있던 관계자가 그녀 핸드폰에서 흘러나온 백준열의 목소리를 들은 거 같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같은 여자이면서도 어쩜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지. 임연수는 생각 같아서는 이미영의 저 밉상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싶었다. 하지만 아나운서 출신의 바른 이미지의 그녀가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해서 겨우 인내하며 부스 안의 MC석에 앉으며 헤드폰을 막 쓰려는데....
“근데 그 남자 너무 매너 없네. 방송 10분 전에 전화를 걸다니....”
“....눈치가 없는 거겠지. 누구처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라리 자기를 욕하지. 감히 자기 남자인 백준열 대표에 대해 매너 없네, 눈치 없네 떠드는 안형수와 이미영을 보고 임연수가 제대로 빡 쳤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한 소리 하려는데....
“방송 시작 10초전....7, 6, 5....”
카운터가 시작 되면서 임연수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일단 쓰던 헤드폰을 마저 썼다.
* * *
한 시간 동안 진행 된 생방송 방송이 끝나고 임연수는 쓰고 있던 헤드폰을 벗었다. 하지만 그녀 입에서 평소 나와야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면 그녀를 뺀 나머지 ‘FM살롱’의 관계자들은 그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임연수는 방송 중 많은 생각을 했다. 그 결과 ‘FM살롱’의 하차를 결정했다. 저들이 그렇게 원한다니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대신 그녀는 백준열에게 말해서 현재 KVS의 간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MC를 맡기로 했다.
그러니까 청취율 거지 같이 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약 인기 최고인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꿰차면서 보여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못나서 청취율이 떨어진 게 아니라 너희 둘이 무능해서 그런 거란 걸 말이다.
임연수가 굳은 얼굴로 MC석에서 일어나서 녹음실 밖으로 나오는 걸 지켜보며, PD 안형수와 메인 작가 이미영도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싹 달라진 임연수의 모습에서 그들도 직감하고 있었다. 임연수가 제대로 화가 난 걸 말이다. 그랬기에 둘 다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홧김에 MC자리에서 하차해 주기를. 근데....
지이이잉!
안형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부장이었다. 방송도 끝난 터라 안형수는 부스 안에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부장님. 네. 네? 알, 알겠습니다.”
짧게 부장과 통화 한 안형수. 그가 자기 옆에 이미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장님이 바로 튀어 오라는데요?”
“네? 왜요?”
“그야 모르죠. 근데....이 작가님도 데리고 오라네요?”
“네에?”
갑작스런 부장의 호출에 안형수와 이미영이 당황해 할 때, 부스 밖으로 나와서 그들 앞에 다가와 서 있던 임연수가 그런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