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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뭐, 뭐야?”
강일식은 설마 했는데 진짜로 자신이 탄 차가 경인고속도로로 가는 톨게이트 쪽으로 들어서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말인즉 인천으로 간다는 건데 그가 인천에 갈 이유가....
“헉!”
그때 그의 목이 따끔거리고 약액이 주입 되는 게 느껴졌다. 순간 경악성이 입에서 터져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그 느낌 후 바로 머리가 핑 돌더니 그대로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강일식은 완전히 의식의 끈이 끊겼다.
차에 탄 채 몸을 축 늘어트린 강일식을 보고 그의 목에 직접 주사기를 꽂은 남자가 옆 차창을 내리더니, 그때까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빈 주사기를 차 밖으로 휙 내던졌다. 그리곤 열린 차창을 도로 닫으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팔다리 묶어.”
“네.”
그러자 강일식을 샌드위치처럼 양쪽에 끼고 앉아 있던 조폭 중 다른 한 명이 큰 소리로 대답함과 동시에 호주머니 속에서 케이블 타이를 꺼냈다. 그리곤 그 케이블 타이로 강일식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그걸 힐끗 쳐다보며 그걸 지시했던 다른 쪽에 앉은 조폭이 핸드폰을 꺼내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저 태곤입니다. 네. 지금 잡아서 인천으로 가는 중입니다. 네. 바로 항구로요? 뭐 알겠습니다.”
통화 후 그 조폭이 앞쪽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들었지? 인천항으로 바로 가자.”
그러자 운전석의 조폭이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며 물었다.
“8부두로 가면 됩니까?”
“8부두? 거기가 인천역 근처야?”
“네.”
“그럼 거기 맞아. 전에 인천 유천파가 밀수품 쟁여 두던 그 창고로 가면 돼.”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일식을 태운 차는 인천, 그것도 항구 쪽으로 빠르게 질주했는데, 그때 그보다 좀 더 빨리 인천으로 향한 박성철을 실은 승합차는 인천에 도착했다.
승합차 조수석의 조폭은 뒤에 탄 조폭들에게 간단히 먹을 김밥과 순대, 떡볶이를 사와서 그들에게 넘긴 후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네. 네. 인천항으로요? 알겠습니다.”
통화 후 그도 김밥 한 줄을 먹고 나서 냄새 풀풀 풍기는 승합차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 인천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40여분 쯤 뒤 인천연안의 한 부두. 그곳에 창고 중 한 곳에서 오늘 만났던 박성철과 강일식이 다시 조우를 했다.
“우우우웁....”
자신처럼 사지가 결박 되어 잡혀 온 강일식을 보고 박성철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성철의 입 안은 놈들이 뭘 쳐 넣었는지 도통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커다란 파란색 드럼통이 두 개 모습을 드러냈고, 뒤이어서 레미콘차가 한 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본 순간 강일식은 질끈 눈을 감았다. 반면 박성철은 앞으로 닥칠 일이 뭔지 몰랐기에 어리둥절해 하며 계속 뭔가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입에 재갈이 제대로 채워진 박성철의 말은 그저 주위에 옹알이로 들릴 뿐이었다.
“처리해.”
그리고 창고 안에 조폭들 중 최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그 말 후 거기 있던 조폭들 절반가량을 데리고 먼저 창고를 떠나고, 남은 놈들이 강일식 부터 들어서 드럼통 속에 넣었다. 당연히 강일식은 거칠게 반항을 했다.
퍽! 퍽! 퍼억!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놈들은 미리 준비해 두고 있던 작달만한 방망이로 무차별적으로 강일식의 머리를 때렸다. 그러자 강일식이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렸고, 그제야 그들이 그를 들어 드럼통에 욱여넣었다. 그때 그 짓을 하던 조폭 중 하나가 말했다.
“형석아. 근데 이거 플라스틱 아니야?”
“플라스틱은 무슨....이거 PE로 만든 거다.”
“PE?”
“폴리에틸렌!”
“아아. 그런데 이거 써도 돼? 원래는 쇠, 아니 스틸 드럼통에 작업해 왔잖아?”
“야. 넌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어? 요즘 누가 무식하게 쇠 통을 쓰냐?”
“무식?”
“그래. 스틸 드럼통 그거 무겁기만 하고 바닷물에 잘 부식 돼서 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잖아? 드럼통 안에 들어 있던 시체가 바다 위로 떠올라서 말이야. 그에 비해 이 PE 드럼통은 가볍고 바다 속에서도 백년은 거뜬하다니 요즘 다들 이걸 쓰는 거지.”
“아아. 그렇구나.”
조폭들이 하는 말에 그제야 자신과 강일식이 어떻게 될 건지 깨달은 박성철. 그의 얼굴 안색이 삽시간에 푸르죽죽해졌다.
* * *
대통령이 갑자기 하야를 선언하고 청와대를 나오는 그야말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사태에,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의 부인인 차미진은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에....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자 청와대의 안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버린 친구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사모님. 대검반부패부에서 소환장이....”
“뭐?”
놀란 그녀가 거금을 들여서 끌어 모은 서진그룹 법무 팀에 속한 그 면면도 화려한 전관 급 변호사들을 통해 알아보니....
“영부인께 제공한 뇌물이 아무래도 문제가 된 거 같습니다.”
“아아....”
이는 차미진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영부인에게 제공한 돈의 출처가 서진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 불똥은 서진그룹에 튀었고, 그로인해 국세청과 금감원에서 즉각적으로 조사단을 보내면서 서진그룹 본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공정위와 관세청에서도 조사를 나올 거라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서진그룹 본사 분위기는 그야말로 흉흉했다.
“부회장님. 오후 스케줄은....”
“다 취소해. 지금 스케줄이 문제야!”
눈치 없이 스케줄 얘기를 꺼낸 수행비서에게 버럭 소리를 내 지른 서진그룹 부회장 김학수.
그는 이럴 때 부친의 부재가 정말 뼈아팠다. 만약 부친인 김명진 회장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유연하고 여유 있게 대처를 해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부친 만큼의 연륜이 없는 그는 국세청과 금감원에서 나온 자들과의 기 싸움에서도 벌써 밀려서 쩔쩔 매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럴 때 모친인 차미진이라도 곁에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텐데, 그녀도 온다고는 해 놓고 벌써 올 시간이 다 됐는데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보니 김학수는 점점 더 얼굴빛이 굳어갔다.
아무래도 김학수가 너무 초조해 하는 걸 보고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비서실장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제가 연락 해 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은 곧바로 차미진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과 30분 전 비서실장은 차미진과 직접 통화를 했다. 본사에 국세청과 금감원의 조사단이 왔다는 말을 듣고 차미진은 버럭 화를 내며 이쪽으로 바로 오겠다고 했었다.
“뭐? 그게 무슨....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런데 차미진 쪽에도 문제가 생겼다. 차미진이 여기로 오려고 서진문화재단에서 나오다가 급습한 검찰수사관들에 의해 체포 되어 지금 대검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지 뭔가?
그 사실을 제일 먼저 파악한 서진그룹 법무 팀이 대검으로 움직이는 중이라는 데, 워낙 경황 중이라 아직 부회장인 김학수에게까지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한 듯 했다. 안 그래도 이쪽에 연락을 하려 했는데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 와서 다행이라는 차미진의 비서 말에 비서실장은 헛웃음이 다나왔다.
‘이게 지금 다행스런 일이냐?’
생각 같아서는 차미진의 비서를 혼쭐내고 싶었지만 비서실장은 그럴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지금 일선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비서를 타박해서 어쩌려고? 해서 비서실장은 좋게 사모님 잘 케어 하라는 말로 차미진의 비서를 진정시키면서 일단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뭔데?”
사나운 얼굴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서진그룹 부회장 김학수. 그런 그에게 비서실장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잠시 입맛만 다셨다. 그런 그를 보고 답답하다는 듯 김학수가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말해.”
“그게....”
비서실장은 김학수의 모친이자 아직은 서진그룹 회장인 김명진의 부인인 차미진이 지금 대검에 잡혀 가고 있는 중임을 얘기했다.
“뭐, 뭐라고?”
당연히 김학수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안 그래도 정신없는 그의 멘탈이 완전 탈탈 털려 넋 나간 얼굴이 되었다.
* * *
“부회장님!”
“어? 어어....”
그런 김학수를 일단 정신 차리게 만든 비서실장. 그가 빠르게 말했다.
“사모님께는 저희 법무 팀이 붙었으니 염려 놓으시고....지금은 여기 집중하셔야합니다.”
“어어. 그래.”
대답은 괜찮은 거처럼 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김학수를 보고 비서실장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정작 비서실장 자신도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할 자신은 없었다. 만약 이 자리에 그가 아닌 이전 비서실장, 그러니까 민영석이 있었다면 또 모를까.
한때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민영석에게 나름 배운다고 배웠지만, 아직 부족한 게 여실히 많은 비서실장은 아무래도 자신의 이 자리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내, 내가 뭘 하면 되는 데?”
그래도 자신이 서진그룹의 오너라는 자각은 있는지, 뭐라도 하려는 김학수를 보고 비서실장은 지금 가장 급한 불부터 꺼야겠다 싶어 말했다.
“지금 금감위원장을 만나십시오.”
“금감위원장을?”
뜬금없는 비서실장의 말에 황당한 얼굴의 김학수. 그런 그에게 비서실장이 하던 말을 마저 이어서 했다.
“지금 금감위원장이 한은에서 한은 총재와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 한은으로 가시면 금감위원장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쳐. 금감위원장 만나서 뭐하라고?”
김학수는 지금 서진그룹이 처한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금감원에서 시중 은행을 옥죄면 저희 회사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금감위원장 만나서 담판을 지으십시오.”
“담판?”
“네. 서진그룹 이대로 줄도산 시켜도 괜찮은지 물으십시오.”
대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종종 하는 공갈 협박을 하라는 비서실장의 말에 김학수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선거철에 이 협박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근데 엊그제 대통령이 하야한 상황이 아닌가?
“그러지. 내 금감위원장 만나서 담판 짓고 오도록 하겠네.”
자신이 뭘 해야 할지 그제야 감을 잡은 김학수가 자신감을 내 비치며 움직이자, 그제야 비서실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아....아아. 맞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난 듯 서둘러 어딘가 또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서진그룹 비서실에 비서실장인....”
그는 상대에게 자신이 누군 지부터 밝히고 이내 용건을 말했다.
“오늘 서울CC에서 있기로 한 골프회동 말인데....”
비서실장은 JYB엔터 백준열 대표와 오늘 오후에 힘들게 잡은 스케줄을 취소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스케줄을 뒤로 미뤄서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네? 그래도 그렇지. 스케줄 조정이 어렵다는 건....”
그쪽의 반응이 어째 시큰둥했다. 순간 비서실장은 직감했다.
‘이거 틀렸구나.’
이러면 곤란했다. 누구보다 비서실장이 더 잘 알았다. 김학수 부회장이 백준열 대표와 만나기 위해서 그 동안 들인 공이 얼마인지 말이다. 한데 오늘 이 스케줄 취소로 인해 백 대표와의 만남의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면....
“C발....”
비서실장의 입에서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럴 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김학수 부회장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안 그래도 할 일 많은 비서실장의 입장에서 이런 일은 최악의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어떡하든 하는데 까지 해 봐야지. 그러다가 안 되면....
“그때는 잘리든....내 발로 나오던....”
둘 중 하나의 선택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어째 둘 다 부정적인 결과였기에 비서실장의 입장에서는 의욕이 상실 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학수 부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부회장님.”
혹시 몰라 비서실장은 재빨리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오늘 백준열하고 골프 회동 있는 날 아냐?
이런 처 자빠져 노는 스케줄은 잘도 기억하는 김학수였다.
“네. 맞습니다.”
-아까 말한 스케줄 취소한 게 그럼 그거야?
“네.”
-젠장....그 새끼 만나야하는데....그래서? 다시 약속 잡았지?
“그, 그게....”
-뭐야? 설마....
지금 상황에서 비서실장은 차마 사실대로 김학수에게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빡 친 김학수가 차를 돌려서 여기로 되돌아 올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비서실장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약속 잡았는데 그쪽이 바쁜 관계로 다 다음 주에 잡힐 거 같아서....”
-개새끼. 더럽게 비싸게 구네. 알았어. 다 다음 주로 스케줄 잡아 놔. 뭐 그때까지 이 사태를 진정 시킬 수 있겠지.
그 말 후 먼저 전화를 끊는 김학수. 하지만 비서실장은 통화 끊김 음을 들으면서 한동안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며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까지 과연 이 사태가 진정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