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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20화 (61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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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때 연극 관계자는 이영철이라는 자로 그는 극단 ‘악동’의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지금 무대에 올리고 있는 연극 ‘우리들의 영웅’에서 그는 조연 중에서도 비중이 높은 배역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연극 무대도 한 배역을 두고 두 명 이상의 배우가 준비가 되는 게 기본이었고, 아쉽게도 이영철이 맡은 배역의 경우 그보다 선배이자 인지도도 훨씬 높은 배우가, 요즘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꼬박꼬박 무대에 서고 있었다.

컨디션이 나쁘다거나 어디 좀 아팠으면 좋을 텐데 그 선배는 꾸역꾸역 극단 무대에 서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이영철은 무대가 아닌 그 주변인, 그러니까 연극 관계자로 매번 부러운 눈으로 무대를 쳐다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여주인공 역의 경우 원래 캐스팅 된 여배우가 갑자기 영화에 들어가게 되면서 운 좋게 설수연이 계속 무대에 섰다.

처음에는 후배인 그런 그녀의 행운을 선배로 축하해 주었던 이영철. 하지만 자신은 무대에 서지 못하고 연극관계자라는 허울 좋은 역할로 매일 허드렛일만 하는데, 설수연은 무대에서 빛나니 배가 아팠다.

한데 오늘 국내 유명 연예기획사의 임원까지 그녀를 찾아오자, 이영철은 배알이 꼬일 대로 꼬여 버렸다.

그래도 그 임원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명함까지 받은 터라, 이영철은 그 사실을 배우 대기실에 있던 설수연에게 알리긴 했다.

“수연아. 손님 왔다.”

“손님이요?”

“....”

하지만 그 손님이 누군지에 대해 함구하고 설수연의 물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받은 명함은 그의 손아귀에 구겨져서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갔고. 그래놓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연아. 그냥 내 말 무시 해버려. 네가 만날 사람이 아냐.’

그래서 설수연에게 찾아 온, 이 절호의 기회가 날아가 버렸으면 하는 게 이때 이영철의 저열한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설수연도 눈치는 있었다. 무엇보다 요 근래 이영철이 자신을 대하는 게 예전과 다름을 그녀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설마 자신을 향한 질투에서 비롯 된 거 까지라는 사실까지는 몰라도, 그가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 정도는 그녀도 알았기에, 자신을 찾아 온 손님에 대해 혹시 그가 실수나 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대로 가만있겠나? 당연히 그녀가 챙겨야지.

“하아....”

설수연은 한숨과 함께 자신을 찾아 온 손님을 보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고 배우 대기실을 나섰다.

좀 전 이영철은 대기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자신에게 손님 운운했으니 자신을 찾는 손님은 지금 대기실 밖에 있을 것이었다.

“설수연 배우님?”

설수연이 대기실 밖으로 나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그런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 또래의 여자. 근데 그 여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아아....”

그리고 설수연은 그 여자가 누군지 곧장 생각이 났다. 그녀가 무대에서 연극을 할 때 시종일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바로 그 여자 관객이었다.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네요?”

“객석 중앙 바로 아래에 계셨던....”

“맞아요.”

여자 관객은 설수연이 자신을 알아보자 더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말했다.

“배우님의 연기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연기 중 특히 감정 선이 미쳤더군요. 올해 제가 본 연극 여배우 중에서 단연....이겁니다.”

설수연은 여자 관객이 자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하자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니에요. 저보다 뛰어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저희 극단 배우 분들 중 저보다 못하신 분은 없어요.”

설수연이 겸양쩍게 말하자 여자 관객은 더욱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뭐....여기 분들....다들 연기력이 좋더군요. 그러니 연극 무대에 서시는 걸 테고, 연극인으로 불리시는 거죠. 하지만 그들은 빛나지는 않아요. 설수연 배우님처럼 말이죠.”

“네?”

설수연은 눈앞의 여자 관객이 자신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설수연을 보고 여자 관객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제가 찾아서 저를 보러 나오신 거 아닌가요?”

“네? 아아. 그럼 이영철 선배가 절 찾고 있다고 하신 손님이....그쪽?”

“맞는 거 같네요.”

그 말 후 여자 관객이 자신의 백에서 명함케이스를 꺼내더니, 그 안의 명함을 한 장 설수연에게 건네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설수연 배우님. 저는....”

* * *

차은석도 연예계 바닥에 구를 만큼 굴렀다. 그래서 소규모 연극소규모 연극극단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경우, 희망고문은 기본이고 나는 잘하는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피해 의식이 크다는 걸 잘 알았다. 근데 그걸 알면서 그녀가 실수를 했다.

하긴 지원 받는 곳 없이 유지 되는 극단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투 잡과 쓰리 잡을 뛰어야 하는 그들이다 보니 피해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면서 연극 관계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주고, 여주인공 역의 설수연 배우를 대기실 밖으로 잠깐 불러 내 달라고 한 건 그녀의 명백한 실수였다.

이런 식의 직접적인 접근이 아니라 조용히 설수연 배우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개인적으로 접근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마 그 연극 관계자....극단 배우였겠군.’

분명 그 연극 관계자가 설수연 배우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으니 극단 선배일 테고 말이다. 여기서 차은석이 그 연극 관계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줬다는 걸 밝히는 건 옳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랬다가 그 얘기를 듣고 설수연 배우가 빡 쳐서 대기실로 뛰어 들어가 그 극단 선배와 대판 싸우기라도 한다면....

해서 차은석은 그냥 그 일은 잊고 설수연 배우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자신이 누군지 밝혔다. 그러자 설수연이 자신이 건넨 명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J, JYB엔터에서....그것도 상무이사님이....저에게 무슨....”

어차피 시간도 늦었다. 거기다 설수연도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아직 얼굴 분장도 지우지 못한 상황. 아마 그녀가 여기 뒷정리를 하고 나면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일터. 해서 차은석도 더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고, 설수연 역시 피곤 할 테니 서둘러 집에 가서 쉬어야 했다. 그런고로 차은석은 자신의 용건을 빠르게, 직접적으로다가 밝혔다.

“소속 되신 곳이 없으시다면....저희 JYB엔터에서 설수연 배우님을 모실 수 있게 기회를 주셨으면 해서요.”

“네?”

놀란 얼굴이 역력한 설수연. 그런 그녀를 보고 차은석은 알 수 있었다. 설수연이 지금은 어디 적을 두고 있는 연예 기획사가 없다는 걸 말이다.

“지금은 너무 늦었고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죠. 내일 중 언제든 제게 연락 주세요.”

“아아. 네. 그, 그러죠.”

그 사이 배우 대기실에서 무슨 일인지 극단 소속 배우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와서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어지간히 부담스러웠던지 설수연이 그들 눈치를 살피며 차은석에게 말했고 차은석은 눈치껏 알아서 그 자리를 떠나 주었다. 그러며 설수연에게 전화 달라는 손짓 제스처를 취했다. 그걸 보고 설수연은 알았다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차은석이 무대 뒤쪽에서 벗어나 설수연의 눈에서 사라지고 나자, 설수연은 차은석에게 받은 명함을 조심스럽게 손바닥 속에 가린 채 몸을 돌려서 배우 대기실로 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데?”

그런 그녀에게 오늘 연극의 남자 주인공 역의 남배우가 다른 배우들을 대표해서 물었다. 그러자 설수연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 팬이래요.”

“팬?”

무대에 서다보면 간혹 극성스런 팬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극성스런 팬이라고 보기에 좀 전 설수연과 같이 있었던 여자는 너무 정중하고 발라 보였다. 그렇지만 설수연이 그렇다는데 그걸 가지고 더 뭐라고 할 수 없었던 남배우가 주위 다른 배우들을 보고, 별거 아니란 듯 어깨를 으쓱거렸고 그 사이 설수연은 배우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얼굴 분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대기실 한쪽에서 가증스런 눈으로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으니, 그 눈의 주인은 바로 이영철이었다. 하지만 이영철은 당장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터트릴 수 없었다.

그랬다간 자신이 JYB엔터 임원으로부터 명함을 받은 사실을 숨긴 걸 설수연이 따지고 들지 몰랐으니까.

아마도 JYB엔터 임원이 설수연에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에게 명함을 준 걸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설수연이 아무 말이 없다는 건, 그 만큼 그녀가 영악하다는 거다. 그랬다간 그녀가 JYB엔터의 임원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사실이 들통 날 테니 말이다.

그런고로 그녀는 이영철이 그 사실을 떠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설수연이 이 자리를 떠나고 나면 얘기는 달라지지.

“소문이 나면....그때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극단 선배인 그에게 이미 지난 일 가지고 그녀가 따져 본 들 무슨 소용이겠나? 이영철 역시 이런 식으로 극단 선배에게 당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당한 놈만 병신 되는 거지 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영철은 입이 간질간질 거렸지만 설수연이 떠나기 전까지 참았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고 나자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명함을 꺼내서는, 그가 아는 한 극단에서 가장 입이 싼 배우에게 그 명함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니. 아까 글쎄 수연이가....”

* * *

극단 선배 이영철이 아까부터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걸 설수연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영철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았으니 말이다.

이영철은 그녀를 싫어했다. 그런 사람에게는 뭘 해도 소용없었다. 괜히 감정 소모만 할 뿐이었다.

해서 그녀는 그냥 그가 자신이 JYB엔터 임원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뭐 그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서 그녀가 받을 피해는 딱히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로인해 극단 내 그녀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면 갔지 말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녀가 극단에 가니 다른 배우들이 그녀를 보는 눈이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설수연. 나 좀 봐.”

극단의 단장이자 이번 연극의 연출을 맡은 배동수가 그녀를 따로 불렀다.

“극단 내 소문이 파다하다. 너 JYB엔터에 들어간다며?”

그 말에 설수연은 속으로 실소했다. 어떻게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배 감독에게까지 그 사실이 알려지다니 말이다.

“아뇨. 아직 확실한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극단 오는 길에 설수연은 어제 그녀를 찾아 왔던 그 JYB엔터의 임원과 통화를 했었다. 그 결과 주말에 연극 공연이 쉬니까 그때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니까 설수연이 JYB엔터에 들어갈지 말지는 그녀 말대로 정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 때문에 괜히 배우들 분위기가 싱숭생숭해졌어.”

배 감독이 마치 설수연을 탓하듯 말했다. 그녀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설수연이 JYB엔터에 들어가는 걸 기정사실화해서 계속 말했다.

“너야 거기 들어가면 좋겠지만....그로인해서 나머지 배우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서 연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배 감독은 설수연이 듣기에도 이상한 논리로 결국 설수연으로 하여금 다른 배우들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아직 들어가지도 않은 소속사 때문에, 극단 배우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던 설수연은 여기 오래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말에 그녀는 그 차은석이라는 JYB엔터의 임원을 만났고,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눈 끝에 JYB엔터에 들어가는 걸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차은석. 하지만 그녀는 조급하게 굴지 않고 설수연이 언제든 계약 하고 싶을 때 연락을 하라고 하고 그날 헤어졌다. 그게 오히려 설수연으로 하여금 차은석에 대한 믿음이 확 커지게 만들었고 그녀는 결정했다. JYB엔터에 들어가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 주에 뮤지컬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설수연. 그녀는 연극에 이어 뮤지컬에 도전하는 문제로 고민하면서 차은석에게 전화 하는 걸 차일피일 미뤘다.

그랬는데 결국 JYB엔터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박성철 문제로 이렇게 오늘 차은석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네. 설수연 배우님.

차은석은 여전히 반갑게 그녀 전화를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설수연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연락 늦었죠?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 만큼 설 배우님께서 저희 회사에 들어오시는 걸 신중하게 생각하신 거겠죠.

“저어....그런데 전에 제게 하신 말씀 중에 왜 그런 말씀 하셨잖아요?”

설수연은 저번 주말에 차은석과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네. 기억나네요. 혹시 경찰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요?

“네. 그 사람이 아무래도 불법적인 짓을 저지를 거 같은데....”

-그래요? 그렇다면 제게 그 사람의 인적사항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 주세요. 전에 말씀 드렸던 대로 제가 확실히 그 사람....감옥에 쳐 넣어 드리도록 할게요.

너무도 자신 있게 말하는 차은석. 그래선지 몰라도 그녀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다.

“그렇게만 된다면....JYB엔터에 들어가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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