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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앉아요.”
나는 그 룸 안에서 김종훈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김종훈이 아까 내가 앉았던 자리에 먼저 앉았고, 나는 그 맞은 편 홍 국장이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홍 국장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로 인해 멈췄던 코스 요리가 이어서 나왔다.
바로 우동과 알밥. 그리고 각종 튀김들이 말이다. 종업원은 그것들은 카트에 실어왔고, 그 요리들을 상 위에 올린 뒤, 테이블 위 빈 그릇들을 다시 카트에 싣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내가 그런 종업원에게 말했다.
“저기....여기 국물 좀 데워 주실래요?”
홍 국장 때문에 나와 도 국장이 해장하고 있던 국물들이 그 사이 식어 있었다. 몇 숟가락 떠 먹지 않았기에 보기에는 거의 나온 거 그대로인 모습의 해물 된장국과 매운탕을 보고 종업원이 말했다.
“네. 바로 데워 드릴게요.”
그 말 후 종업원은 뚝배기로 나온 해물 된장국과 매운탕을 카트에 도로 싣고 룸을 나갔다.
“자아. 먹어요.”
그 사이 나는 새로 나온 코스 요리인 알밥과 우동을 먹으라고 김종훈에게 권했다. 그러자 배가 고팠던 듯 김종훈이 사양치 않고 그것들을 허겁지겁 먹었다.
“후루루룩....쩝쩝쩝....”
그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는 김종훈을 보고 있자니, 나는 문득 문대식과 내 경호팀원들이 생각났다. 원래라면 그들도 여기서 점심을 먹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건물과 주위 식당에서 아마 대충 점심을 해결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전화 해 봐?’
문대식에게 전화해 볼까 하다가 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여기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이대로 그에게 전화하면 맛난 거 먹은 거 자랑하려고, 내가 유치하게 그에게 전화한 걸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그런 오해를 살 바에야 그냥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 게 나았다.
“쩝쩝쩝....후루루룩....”
김종훈이 하도 맛있게 알밥과 우동을 먹기에, 나도 슬쩍 맛을 봤는데 이게 또 맛이 있었다. 배가 불러서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먹으니 또 들어간다. 메뉴가 달라선가? 그렇게 내가 알밥에 이어 맛나게 우동을 흡입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똑!
노크 후 룸 안으로 들어 온 종업원이 데워 온 해물 된장국과 매운탕을 원래 자리에 두고 공깃밥 두 개를 나와 김종훈 앞에 하나 씩 놓아 주며 말했다.
“이건 저희 사장님 서비습니다.”
‘허얼....서비스를 공깃밥으로 다 받아 보네.’
내가 그 생각을 할 때 김종훈은 알밥과 우동을 다 먹어 치운 듯 종업원이 건넨 공깃밥 뚜껑을 열고 있었다. 그리곤 숟가락으로 뜨거운 해물 된장국의 국물을 떠서 한 모금 맛을 본 뒤, 주저 없이 그 국물을 자신의 공깃밥에 퍼 담았다. 그리곤 밥을 대충 비벼서 떠먹으면서 상 위에 반찬들을 골고루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 먹는 모습이 하도 맛있어 보여서 나도 숟가락을 들고 해물 된장국 맛을 봤다.
그랬더니 처음 먹었을 때보다 국물 맛이 더 진해서 그런지 밥과 같이 먹으면 맛이 있을 거 같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해물 된장국의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밥 위에 붓고 재빨리 밥을 한 숟가락 뜰 때였다.
“후루룩....크으으으....”
김종훈이 숟가락으로 매운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한껏 감격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연거푸 숟가락으로 매운탕 국물을 떠먹었다. 그걸 보고 나도 매운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기는 했지만, 그냥 흔한 매운탕 맛이었고 더 이상은 배가 불러서 먹을 수가 없어 그냥 숟가락을 내렸다.
* * *
“자알 먹었습니다.”
김종훈은 코스 요리의 마지막 디저트까지 다 먹고 나서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다른 디저트는 그대로 두고 커피만 조금 마셨다. 너무 배가 불러서 디저트도 먹기 부담스러워서 말이다.
“이제 갑시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한 시가 다 되어갔다. 아마 밖에서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왜 여태 안 나오나 눈이 빠져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 그때였다. 내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하니 도종국 국장이었다.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백 대표님. 저 홍 국장입니다.
“아네. 홍 국장님. 괜찮으십니까?”
보아하니 홍윤석 국장이 구급차를 같이 타고 병원 응급실로 따라 간 도종국 국장에게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한 모양이었다.
-네. 저는 덕분에 괜찮습니다.
말은 괜찮다고 하는데 앞서 일식집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와 차이가 났다. 아무래도 앞니 두 개가 빠지면서 말소리가 샌다고 할까? 뭐 어째든 홍 국장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 통화하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전화까지 하시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네. 실은 오늘 대표님 만나고 하실 말씀을 듣지 못해서요.
그러니까 내가 홍 국장에게 할 말을 자기가 듣지 못했으니 이렇게 전화상으로라도 그 말을 듣겠다는 거다. 즉 내 부탁이 뭔지 그게 궁금해서 이렇게 전화를 한 거다. 생각해 보니 그의 입장에서 이러는 게 이해가 됐다.
“아네. 천천히 말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대표님 하시는 일이신데 제가 발 벗고 나설 수 있으면 응당 그렇게 해야지요.
“뭐 그러시다면....저희 JYB엔터에서 이번에 새로운 걸그룹 두 팀을 론칭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MVC 가요 순위프로그램과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을 좀....”
내가 방송 출연 문제를 두고 쭉 얘기하자 홍 국장이 그걸 다 경청하고 말했다.
-놀랍군요. 걸그룹을 동시에 두 개나 데뷔 시키시다니. 역시 JYB엔터테인먼틉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밑에 PD들에게 잘 얘기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아아. 그리고 제가 잘 아는 치과 있는데 거기 가시면 부러진 이빨 문제 잘 해결해 줄 겁니다.”
-아이고. 뭐 그런 거 까지 신경을....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잘 돌아가는 게 연예계 바닥이다. 홍 국장이 신경 써 주는 만큼 나도 그에게 베푸는 게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나는 내 치과 주치의가 몸담고 있는 병원을 홍 국장에게 알려 준 후 통화를 끝냈다.
“가시죠.”
그러자 룸 입구에서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대기 중이던 김종훈이 그 말 후,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런 김종훈 때문에 내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가 넘었군.”
그 말 후 룸을 나간 나는 곧장 카운터로 가서 식사비를 계산하고 일식집을 나섰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문대식을 비롯한 경호팀원들이 일제히 김종훈을 쬐려봤다. 마치 이게 다 김종훈 때문이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쫄 김종훈이 아니었다.
“다음 스케줄에 늦지 않으시려면 서두셔야 합니다.”
김종훈은 따가운 눈총 따윈 무시하고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문대식을 쳐다봤고 문대식은 떨떠름한 얼굴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우리를 싣고 갈 차들이 우리 앞으로 줄지어 와서 섰고 그 중 내가 탈 차 문을 김종훈이 열어 줄 때, 문대식은 휑하니 그 차 뒤로 돌아서 가고 있었다. 내가 차에 타자 이내 옆문이 열리고 문대식이 탔고 그 사이 앞 쪽 조수석에 김종훈이 탔다.
그 뒤 차 안에 차가운 냉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문대식과 김종훈 사이의 냉기, 거기다가 운전석에 앉아 운전 중인 경호팀원 역시 못 마땅한 얼굴로 자기 옆에 김종훈을 자꾸 흘겼다. 딱 봐도 최고급 일식집에서 식사 기회를 놓친 게 분통 터지는 거 같았다.
‘따로 일식집에서 회식 하게 회식비를 챙겨줘야겠군.’
내가 그 생각을 할 때였다. 앞쪽 조수석에 앉아 있던 김종훈이 말했다.
“이리로 가면 돌아가는 데 왜 이쪽으로 가는 거지?”
“....”
김종훈은 옆에 운전석의 경호팀원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경호팀원은 김종훈의 말을 듣고도 바로 생 깠다. 그걸 뒤에서 지켜보던 문대식이 비릿하게 웃었는데 그때 김종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저기 있는 별 다방에 들렀다가 가려고 이쪽으로 온 건 아니지?”
그 말에 운전석의 경호팀원 뿐 아니라 문대식도 움찔하면서 힐끗 나를 쳐다봤다. 마치 그러니까 이것들이 지금 점심 먹고 후식 사달라고 차를 일부러 이쪽으로 몰고 왔다는 거잖아?
“그 참....”
어이없어 내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온 가운데 김종훈이 말했다.
“앞으로 커피는 식사 한 식당에서 타 먹거나 자판기에서 뽑아 먹도록.”
김종훈은 그 말을 하면서 백미러를 통해 문대식을 쏘아보았다. 그러니까 좀 전 그의 말은 바로 경호팀의 팀장인 문대식에게 한 소리였다. 그러자 문대식도지지 않고 김종훈을 쳐다보면서 차 안에 분위기만 어째 더 냉랭해졌다.
* * *
부친으로부터 아내와 헤어지라는 말에 대거리를 하다 혼쭐이 난 박성철. 한데 그런 그를 진짜 빡 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장혜원이었다.
“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그 웃음은 도대체....”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 이렇게 저기압인 건데요?”
부친에게 대들다가 결국 혼이 나서 아내가 있는 그들 부부의 방으로 갔다가, 거기 좋아 죽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제대로 돌아버린 박성철.
그는 눈에 보이는 건 다 때려 부수다가 결국 부친이 나서자 휑하니 집에서 꽁무니를 내 뺐다. 그리고 그가 온 곳은 그가 아내 몰래 살림을 차린 여자들 중 한 명인 설수연이 사는 이태원에 위치한 한 아파트였다.
사실 이 아파트를 사준 게 바로 박성철이었다. 그랬기에 설수연은 말도 없이 불쑥 나타난 불청객 박성철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어디서 열 받아 왔는지 몰라도 박성철이 제대로 화가 나 있었다.
박성철과는 횟수로 10년 째, 그러니까 그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하기 전부터 그와 깊은 관계였던 설수연이었다. 하지만 가진 게 없는 그녀는 박성철의 옆자리에 설 수 없었다. 그래서 박성철이 결혼 할 때 잠깐 그와 헤어지기도 했지만 그녀를 잊지 못한 박성철이 그녀를 계속 찾으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설수연도 결혼을 했었다. 박성철이 결혼하고 2년 쯤 뒤에, 그 몰래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성철 때문에, 그녀는 남편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당시에 그녀는 박성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나 뭐래나? 진정으로 박성철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보내줘야 할 때 보내 주는 게 맞지 않은가? 하지만 박성철의 집착은 가히 병적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넌 몰라도 돼. 술이나 더 가져 와.”
그래도 작년 까지는 한 달에 두 세 번은 여기 왔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이번이 두 번째다. 물론 박성철이 그녀에게 연락이 없는 게 설수연도 좋았다. 연극배우인 그녀는 덕분에 올해 벌써 5편의 연극에 출연할 수 있었다.
작년 만해도 박성철 때문에 2편의 연극에 참여 한 게 다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뮤지컬에 캐스팅이 된 상태였다. 때문에 박성철이 이렇게 그녀 옆에 질척대는 게 설수연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티냈다가는 박성철이 또 그녀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조심해서 박성철을 상대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설수연은 박성철이 술만 찾자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독한 술, 국산 양주를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때였다.
“....데 아무래도 강 부장이 또 좀 나서 줘야 할 거 같아. 어. 당연히 수고비는 두둑이 챙겨 주지. 그래. 그럼 내일 거기서 보자.”
그녀가 술 가지러 간 사이 박성철이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그녀는 박성철의 입에서 나온 ‘강 부장’이란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파리해지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럴 것이 그녀와 남편을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지금껏 그녀가 박성철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다 그 강 부장이라는 작자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박성철은 지금 자신이 잘 아는 조폭과 통화 중이었던 것이다.
“뭐야? 술이 이게 다야? 맥주는 없어?”
“네. 어떻게 사 올까요?”
“그래. 여기....”
박성철은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지갑을 꺼내서 그 안에 수표 두 장을 꺼내 설수연이 있는 쪽으로 내 던졌다. 설수연은 박성철이 집어 던진 수표가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고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박성철은 이런 식이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며 그녀 인생을 볼모로 잡아 놓고서 정작 그녀를 사람 취급을 해주지도 않았다.
“뭐하는 거야? 빨리 사 오지 않고?”
그녀가 바닥의 수표를 그저 넋 놓고 내려다보고만 있자 박성철이 발끈했다. 그러자 움찔하며 설수연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표를 주웠다. 그런 그녀에게 발성철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맥주 사 오란다고 맥주만 사오지 말고 소주도 두 어병 사 와. 그리고 안주로 먹을 만한 것도 알아서 좀 챙겨 오고. 알았어?”
“네.”
설수연은 조용히 대답하고 뒤돌아서 아파트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문을 열고 그녀가 나가자 박성철은 좀 전 그녀가 가져다 준 국산 양주의 뚜껑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