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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건 뭐....’
내가 굳이 「개눈깔」과 「개코」아이템을 쓸 필요도 없이, 홍윤석 국장은 내 앞에서 싫은 티를 풀풀 풍겼다. 그러니 그 옆에 도종국이 그걸 보고 안절부절 못하며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도 국장을 힐끗거리며 오히려 홍 국장이 툴툴거렸다.
“이 형님 앞 사람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나? 정말 왜 이러실까? 평소답지 않게 말이지.”
“야. 윤석이 너 말 좀 가려서 해라.”
그러자 도 국장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홍 국장을 쏘아붙였다. 하지만 홍 국장은 그런 도 국장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지 하던 말을 마저 이어서 했다.
“하도 지랄 지랄한다고 붙은 개지랄 종국이는 대체 어디 간 거야?”
“너 이 새끼....”
이대로 가만 두면 둘이 싸울 거 같아서 내가 중재에 나섰다.
딱 봐도 화딱지 난 도 국장이 먼저 홍 국장 멱살을 잡을 기세다. 해서 나는 일단 내게 우호적인 도 국장부터 진정 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도 국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이 바닥 생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도 국장은 내 말에 씩씩거리며 일단 홍 국장 멱살을 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끼눈으로 홍 국장을 쬐려 보았고, 홍 국장은 그런 도 국장의 살기등등한 눈길을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뚫린 입이라고 툴툴댔다.
“불러 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성질은....”
“너 이 새끼....”
이대로 놔두면 홍 국장은 도 국장에게 진짜 두들겨 맞을지 몰랐다. 그래서 도 국장이 진짜 빡 치기 전에 내가 먼저 홍 국장에게 말했다.
“홍 국장님. MVC 박정태 사장님 잘 계시죠?”
내가 뜬금없이 MVC방송국 사장의 안부를 묻자,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었던 홍 국장이 갑자기 돌린 고개를 홱 내게로 되돌려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사장님과 잘 아시오?”
“그럼요. 박 사장님과야 여러 모임에서 만나 친목을 다진 사이죠.”
내 기억에 따르면 나는 MVC방송국 박정태 사장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이전 백준열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최상류의 비교적 중요한 사교적인 성격의 모임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으니 말이다.
그 중에는 방송사 관계자들도 있었고, 박정태 사장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호인이라 백준열이 포섭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으음....’
그런데 하필 박정태 사장이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과 친했다. 그러고 보니 박 사장이 김 회장 고교 후배였던 터라 당시 나도 손쉽게 박 사장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지금은 식물인간인 김 회장의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박 사장도 김 회장의 상태를 알고 있을 테지.
나는 내 말을 듣고 빤히 의심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홍 국장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오오. 백 대표.
“박 사장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안녕하지. 한데....
박 사장이 가라 앉은 목소리로 역시나 코마 상태인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 얘기를 했다.
“역시 김 회장님 그렇게 되신 거 아셨군요?”
-백 대표도 알고 있었군 그래?
“네. 저야 뭐....”
사실은 내가 당신 선배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속엣 말을 상대에게 그대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
“김 회장님과 다시 라운딩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아....선배님만 생각하면 나도 가슴이 아프네. 근데 어쩐 일인가? 자네가 그냥 선배 일로 내게 전화 했을 리는 없을 테고.
내가 지금 통화 중인 박 사장은 예상하고 있는 대로 MVC방송국 박정태 사장이었다.
“네. 송구스럽게도 박 사장님 말씀대로 일이 있어서 MVC방송국 관계자와 만나고 있는데 박 사장님 얘기가 나와서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우리 회사 관계자? 그게 누군데?
“MVC 예능국장님이요.”
나는 대답 후 싱긋 웃으며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나를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홍 국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 * *
“하하하하. 이거 진작 말씀하실 것이지.”
홍 국장의 태세 변화는 정말이지 빨랐다. 내가 자기 회사 사장과 통화를 끝내자 자 사람이 완전 180도로 변했다. 그런 홍 국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도 국장이 이번에 툴툴거리며 말했다.
“내가 개지랄 종국이면 넌 아수라백작 윤석이잖아. 두 얼굴을 하고 있다고.”
그 말에 나는 웃을 뻔했다. 도 국장의 말이 바로 이해가 되었기에 말이다. 그만큼 홍 국장은 내게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깍듯하게 대했다. 뭐 이 정도 변하는 거야 나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지상파 방송국의 국장이면 산전수전 공중전에 속에 능구렁이 10마리는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보면 되었으니 말이다.
“사장님 지인이신데 내가 잘 모셔야지. 형님. 술도 시킵시다.”
이제 홍 국장이 더 나댔다. 그런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도 국장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어째든 누가 뭐래도 현재 MVC 예능국의 수장은 홍 국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홍 국장의 도움이 필요했고.
“네. 좋죠. 도 국장님. 괜찮으시죠?”
“네. 뭐 저야....백 대표님이 괜찮으시다면야....”
도 국장은 자신의 후배 주제에 자신을 개 무시한 홍 국장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나를 봐서 참았다. 그런 도 국장의 모습에 그제야 홍 국장도 관심이 생긴 듯 옆에 도 국장에게 물었다.
“형님. 백 대표와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데요?”
그 물음에 도 국장은 힐긋 내 눈치를 봤다. 나는 편하게 말해도 된다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 국장이 홍 국장을 보고 입을 열었다.
“내가 가족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도 국장이 내가 자신을 살려 준 사연을 쭉 얘기하자 그걸 듣고 난 홍 국장이 흘깃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왜 도 국장이 내 앞에서 쩔쩔 매고 있으며 자신에게 부탁까지 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는지 알아 챈 거처럼 보였다. 거기다가 나는 자신의 회사 사장의 지인이기 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만나자 마자 싫은 티를 그렇게 대 놓고 팍팍 냈으니, 아무래도 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랬군. 나는 그것도 모르고....백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종국이 형님 살려주셔서요.”
홍 국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내게 머리를 숙였다. 근데 그런 그의 말에 변화가 있었다. 좀 전까지 나를 백 대표로 불렀던 그가 나를 백 대표님으로 존칭을 사용했고, 또 말투도 반 존대에서 완전 존대로 바뀌었다.
‘역시....’
홍 국장도 국장 자리를 그저 딱지치기로 올라 간 건 아니었다. 그 옆에 도 국장도 마찬가지고. 홍 국장의 연기력에 도 국장은 혀를 내두르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홍 국장의 연기를 극찬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인 걸요.”
뭐 이런 식의 연기라면 나 라고 못할 것도 없었다.
* * *
초반에 험악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술부터 한잔씩 마셨다.
방송국에 국장이 되려면 간이 특출나게 좋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홍 국장과 도 국장은 점심 식사 전에 벌써 소주 한 병씩을 입가심으로 마셨다. 당연히 그들 사이에 낀 나 역시 소주 한 병 정도 마셔야 했고.
“자자. 한 잔 더....”
홍 국장은 자신의 실수를 이 자리에서 만회하려고 나와 도 국장에게 계속 술을 따라주었다.
도 국장은 몰라도 나는 꼭 술에 취하게 만들려는 모양인데....하긴 내가 자기 회사 사장에게 뭐라고 하는 게 홍 국장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겠지. 그때 홍 국장이 따라 준 술을 바로 원샷 해버린 도 국장이 툴툴거렸다. 거리상으로 맞은 편에 앉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을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내 귀가 어디 보통 귀던가?
“본부장 되려고 안달이 났네.”
아마도 MVC방송국에서는 국장 위에 본부장이라는 직급이 있는 모양이었다.
홍 국장은 아마도 그 본부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고. 그러니 인사권자인 박 사장에게 어떡하든 잘 보여야 했을 테고 말이다.
도 국장의 말을 듣고 나서 나도 그제야 홍 국장이 내 눈치를 보면서 음식도 나오기 전에 왜 이렇게 달리는 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나도 꽤 술을 마시는 편인데다가 나에게는 견신 시스템의 능력이 있었다.
「개 알약」아이템을 쓰면 오늘 종일 술을 마시게 해도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자자. 마십시다. 마셔요.”
그것도 모르고 나와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기울이던 홍 국장.
“음식 나왔습니다.”
그렇게 홍 국장과 내가 각기 소주 2병을 비웠을 때 주문한 음식들이 드디어 나왔다.
음식은 이곳 일식집에서 제일 비싼 스페셜 코스로 시켰다.
기본적으로 정갈하니 계절에 맞는 샐러드 전채 요리가 나왔고, 스페셜 코스답게 어디 가서도 메인 요리 취급을 받을 음식들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졌다.
“먹죠?”
“그럽시다.”
거의 빈속에 소주 2병씩을 마신 터라 다들 나온 음식을 향해 젓가락을 움직였다. 뒤이어 해산물 모듬과 함께 사시미, 회가 나왔고, 우리는 술과 곁들여서 그걸 먹어치웠다. 그런데 앞서 먹은 소주 2병 때문일까?
“잠깐 화장실 좀....”
홍 국장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그 사이 국물 요리들이 나왔고 나와 도 국장이 해물 된장국과 매운탕으로 해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홍 국장이 더는 안 되겠는지 몸을 일으켜서 룸을 나서려다가 비틀거리더니 겨우 문손잡이를 잡았다.
“홍 국장. 괜찮아?”
“네? 아아.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홍 국장은 안 괜찮은 데 억지로 괜찮은 척 웃었다. 그리고 잡고 있던 문손잡이를 돌려 개인 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잠시 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이곳 종업원이 들어와서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일행 분께서 화장실 안에서 자빠지셨습니다.”
“네?”
우리는 종업원의 말에 놀라 몸을 일으켰고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도 국장도 취기가 오른 듯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홍 국장과 달리 안주와 같이 술을 마신 터라, 아직 완전히 취한 건 아니었던지 나를 쫓아오긴 왔다. 그렇게 화장실로 간 우리는 화장실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있는 홍 국장을 발견했다.
“윤석아!”
그걸 보고 나보다 도 국장이 먼저 반응하며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때 홍 국장은 대자로 뻗어 있어도 하필 드러누운 상태가 아닌 엎드린 상태였다. 해서 도 국장은 홍 국장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일단 그의 몸을 뒤집어야만 했다.
“읏차....”
그렇게 힘들게 홍 국장의 몸을 뒤집어서 바닥에 눕힌 상태로 만든 도 국장. 한데 그 뒤 홍 국장의 상태를 가까이서 살핀 도 국장이 당황해 하며 말했다.
“이, 이런....이빨이....앞니가....”
도 국장은 마치 나보고 보란 듯 드러누워 있는 홍 국장의 뒷목을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러자 홍 국장의 얼굴이 내게도 보였는데 그때 홍 국장의 피 칠갑 된 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그 안에 부러진 앞니 두 개가 보였다.
“맙소사!”
그걸 보고 나도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하필 자빠져도 앞으로 자빠져서 그것도 앞니가 부러지다니 말이다. 그 뒤 도 국장은 홍 국장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서 부러진 앞니 두 개를 자연스럽게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 다음....
“이거 봐. 홍 국장. 정신 차려.”
성질 급한 도 국장이 기절한 홍 국장을 깨웠다.
“으으으....”
그러자 홍 국장이 정신을 차리는 듯 보이자 그를 부축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나와 같이 서 있던 종업원에게 물었다.
“119불렀지?”
“네.”
종업원의 대답에 도 국장은 정신을 차린 홍 국장을 여전히 부축한 채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날 보고 말했다.
“이 친구 병원 좀 데려 가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워낙 경황 중이라 두 사람은 그렇게 먼저 일식집을 나갔고, 그 사이 달려 온 119 구급차에 1층으로 내려간 두 사람이 타는 걸 창문을 통해 전부 지켜봤다.
“쯧쯧. 일이 꼬였군.”
결국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운이 없어 홍 국장이 좀 다치긴 했지만 그가 국장 일을 못할 정도로 다친 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홍 국장이 어련히 알아서 이번에 데뷔하게 될 우리 JYB엔터 두 걸 그룹들을 잘 챙겨 주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충분히 먹은 터라 이대로 계산하고 일식집을 나가려 했다. 그때....
“대표님. 아직 식사 끝내시지 않으셨잖습니까?”
내 수행비서 김종훈이 내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김종훈의 말처럼 아직 코스 요리가 다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딱히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터라 나는 그냥 나가겠다고 김종훈에게 말하려 했다. 한데....김종훈이 꼴깍 군침을 삼키는 걸 봤다.
“김종훈씨. 아직 식사 안했습니까?”
“네. 뭐....”
“아아....”
그제야 나는 내 수행비서인 김종훈을 챙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늘 수행비서로 첫날인 김종훈이었다. 그런 그를 내가 챙겼어야 했는데....명백한 내 실수였다.
“갑시다.”
나는 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김종훈을 데리고 아직 스페셜 코스의 요리가 다 나오지 않은 룸으로 도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