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15화 (6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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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시바세끼 감독과 사회자 타다요시의 대립은, 오히려 후지TV의 버라이어티 예능 방송 ‘즐거운 모임’의 다른 출연자들에게 있어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둘 다 출연자들에게 있어서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서 촬영 시간을 늘리는 주범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전날 무리한 스케줄로 피곤했던 타다요시는 만사가 귀찮은 듯 보였고, 그런 타다요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시바세끼 감독도, 간혹 NG를 외쳤지만 재촬영 요구는 하지 않고 나름 빠르게 촬영을 해 나갔다.

그 덕분에 오후까지 이어질 거라 봤던 촬영이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부 끝이 났다.

“수고들 했어요.”

그 사이 눈 밑으로 다크 서클이 선명히 내려 온 타다요시. 더는 분장으로도 가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른 타다요시가 제일 먼저 촬영 장을 빠져나갔다. 그를 태운 차는 곧바로 도쿄로 가버렸다. 그걸 보고 시바세끼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쳇....무슨 윗사람 모시고 촬영을 한 기분이야.”

그러며 시바세끼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갔다. 점심 메뉴로 나온 장어 덮밥. 그걸 보고 시바세끼는 속으로 생각했다.

‘장어가 정력에 좋다던데. 이것 먹고 힘 좀 내 볼까?’

그러며 시바세끼의 뇌리에 어젯밤 따 먹을 수 있었던 나나미가 생각났다.

촬영이 몇 시간 빨리 끝난 만큼 자기 방으로 다시 나나미를 불러서, 어제 하지 못한 그녀 보지에 자신의 자지를 박아 넣을 생각을 하자, 벌써 아랫도리에 피가 잔뜩 쏠렸다.

그러자 장어 덮밥을 먹는 시바세끼의 젓가락 놀림이 더 빨라졌다. 그렇게 장어 덮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운 시바세끼가 조감독을 불렀다.

“쩝쩝쩝....네. 감독님.”

식사 하다 말고 그 앞에 달려 온 조감독. 그런 그에게 시바세끼가 말했다.

“나나미상 한데 가서 내 방으로 좀 오라고 해. 어젯밤에 하다가 만 얘기마저 하자고 말이야.”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 먹은 조감독. 그가 대답도 없이 그대로 뒤돌아서 나나미를 찾으러 가는 걸 보고 시바세끼는 식당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가는 길에 자판기에서 음료수 두 개를 뽑았다. 하나는 그가 먹을 커피고 다른 하나는 요즘 신세대 일본 여자들이 다들 좋아한다는 복숭아 맛 탄산음료를 였다.

그렇게 나름 나나미를 신경 쓰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시바세끼. 그는 자판기에서 뽑아 간 음료 중 복숭아맛 탄산음료는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커피를 마시다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나미가 오기 전에 먼저 씻어 두면 그 만큼 빨리 그녀 보지에 자신의 자지를 박을 수 있지 않겠냐는....

해서 시바세끼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그가 아랫도리만 대충 씻고 나왔을 때 방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와.”

벌써 나나미가 오나 기대 어린 눈으로 방문을 쳐다본 시바세끼.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 온 건 그가 눈 빠지게 기다리는 나나미가 아니었다.

“감독님. 나나미상이....”

그는 시바세끼가 나나미를 불러 오라고 보낸 조감독이었고, 그의 잔뜩 겁먹은 얼굴에서 시바세끼는 바로 눈치를 챘다.

“촬영 끝나자마자 바로 도쿄로 가버렸다고....”

“뭐?”

출연자가 촬영이 끝나면 촬영장을 떠나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감독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가 버린 것은 분명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와락 일그러진 시바세끼를 보고 조감독이 다급히 말했다.

“제가 나나미의 매니저에게 연락을 해 봤는데....제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조감독은 마치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듯 시바세끼 앞에 허리를 숙였다.

촬영장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감독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 감독을 보좌하는 조감독 입장에서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컨트롤 하지 못한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따라서 감독이 나나미가 그렇게 감독에게 말도 안하고 가 버리는 동안 넌 뭐했냐고 따지고 묻는다면, 어차피 조감독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랬기에 바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먼저 사과를 해 버리는 게 조감독 입장에서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하아....”

시바세끼는 그런 조감독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내 쉬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걸 다시 주워 담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감독을 질책하는 건, 추후 남은 촬영장 뒷마무리와 또 오늘 밤부터 들어가야 할 편집 작업에 있어 좋을 게 전혀 없었다.

시바세끼의 밑에 조감독 히로시는 특히 편집을 잘했다. 그래서 시바세끼가 그를 곁에 두고 있었고.

히로시가 자신의 잘못이 뭔지 모르고 까불었다면, 시바세끼도 단호하게 그를 야단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그를 더 나무랄 수는 없었다. 해서 시바세끼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진정 시키며 히로시에게 말했다.

“됐어. 그만 나가 봐. 할 일 많잖아?”

“네. 그럼....”

히로시는 감히 시바세끼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그의 방을 빠져 나갔다.

그렇게 히로시가 나가고 혼자 남은 시바세끼. 그는 별 수 없이 어젯밤에 나나미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열심히 자기 손으로 딸딸이를 쳤다.

* * *

수행비서 김종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문대식과 그 밑에 경호팀원들이 이전과 달리 많이 느슨해져 있었다. 특히 외근 나갔을 때 그들은 나를 경호하는 것보다 먹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게 다 내 탓이긴 하지만....’

그에 관해서 내 잘못은 나도 인정하고 있다. 나 딴에는 맛있는 거 혼자 먹기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경을 써 준 건데, 그들은 나의 그런 호의를 이제는 당연시 받아드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쯤에서 문대식을 통해서 경호팀원들의 그런 생각을 고쳐 줄 생각이었는데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그래서 김종훈이 말 한대로 지금 가는 최고급 일식집에는 나와 김종훈, 두 사람만 들어가겠다고 하자 일순 차 안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특히 문대식이 질끈 입을 다문 채 시선을 차창으로 돌리고 있었다. 마치 나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이다.

‘잘 됐네.’

안 그래도 나도 생각할 게 있었기에, 나 역시 시선을 창가로 돌린 체 곧장 생각에 잠겼다.

‘어르신이 괜찮으신가 모르겠군.’

원래라면 지금쯤 제주도에 있는 윤재구 회장은 내 애견 엘베와 같이 동물병원에 가 있어야 했다. 한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엘베와 동물병원 가는 것을 뒤로 미뤘다.

아마도 자신이 한 짓 때문이겠지. 하긴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도 그 자식을 죽이라는 말을 자기 입으로 직접 내뱉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 하랴. 그래도 윤 회장의 장남은 죽어 마땅한 자였고 갱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래서 없앴다.

아까 양태석과 통화를 할 때 대화 도중 넌지시 물었다. 윤 회장의 장남인 윤현수가 어떻게 되었냐고 말이다. 그러자 양태석이 가볍게 대답했다. 이미 처리 됐다고 말이다.

아마 윤 회장은 지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나는 잠깐 더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윤 회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잘 처리 했습니다.]

그러자 문자 보낸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윤 회장은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장남을 제거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내가 그 부탁을 제대로 들어주었는지를 두고서 말이다.

[수고 많았네.]

윤 회장의 간결한 답장을 보고 나는 그를 위로해 주려고 그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내버려 두는, 아니 기다려 주는 게 답일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끄고 다시 시선을 차창으로 돌렸다. 그리곤 이번 일로 윤 회장이 내게 주기로 한 보상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윤 회장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대신 처리해 준만큼 그에게서 받아 낼 보상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가 윤 회장에게서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그가 광범위 하게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었다.

그 주식들 중에서도 특히 삼명그룹을 제외한 국내 10대 그룹의 주식들은 나로서도 당연히 탐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그들 주식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모기업 주식은 잘 내 놓지 않는다. 해서 나도 실제 국내 10대 그룹의 모기업 주식은 얼마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윤 회장은 달랐다. 국내 10대 그룹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전, 혹은 성장 중일 때 윤 회장의 전성기였다. 그런 그가 그들 모기업 주식을 그냥 뒀을 리 없었다.

내가 원하는 주식들은 바로 그 국내 10대 그룹의 모기업 주식이었다. 윤 회장은 아마 내게 약속한 대로 그걸 내어 줄 것이다. 단지 우려 되는 게 있다면....

‘윤 회장에게 자식이 장남 윤현수만 있는 게 아니란 거지.’

그들도 바보가 아닌 바에야 자기 부친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들이 내게로 속속 전해지고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러면 가만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물론 윤 회장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만, 그래도 이쪽에서도 어느 정도 대비는 하고 있어야 했다. 그 문제로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갈 때 나를 실은 차는 MVC방송국이 있는 상암동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원래라면 오늘 오전에 옆집 암캐가 가는 동물병원에 따라갔어야 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자식보다 더 소중했던 애견이 남긴 씨를 밴 암캐였다. 하지만 정작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할 상황에 처하자 그의 심경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착잡했다. 해서 동물병원 따라 가는 것도 포기하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며 힘든 일을 부탁한 백준열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랬던 그에게 드디어 백준열이 연락을 해왔다. 전화로 그 말을 하는 게 껄끄러웠던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아....”

한데 막상 백준열로부터 그 일을 잘 처리했다고 메시지를 받고 나니 맥이 쫙 빠졌다. 하지만 상대에 노고에 대한 치하는 해줘야했다. 그래서 바로 답 메시지를 보내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몸져누웠다. 그런 그에게 하필 그때 구재경 전무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아아....”

자신의 아들 때문에 죽다가 살아 난 구 전무였다. 그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본 윤재구. 그는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구 전무의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네.”

윤재구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한데 그런 윤재구에게 구 전무가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의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윤현수. 그 개새끼....이번 일은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 그런 줄 아십시오.

구재경이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윤현수가 살아 있을 때 얘기였다. 백준열로부터 자신의 장남 윤현수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걸 전 들은 윤재구.

그런 그에게 구재경이 죽은 자식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게 계속 듣기 좋을 리 없었다.

-....니까. 그 새끼 어디 있는지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그에 적합한 보상을 해주셔야 할 거고요.

“적합한 보상이라....그래. 내가 자네에게 뭘 해주면 되겠나?”

거기다가 구재경이 보상 운운하며 그에게 뭔가를 원하는 게 있는 거처럼 보이자 윤재구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갔다.

-일단 회사는 제가 갖겠습니다.

JG투자운영을 내 놓으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용산의 빌딩과 서초구에 있는 상가들. 그리고 연남동의 아파트는 다 제명으로 돌려주시고....

구재경이 작정한 듯 자신의 재산을 거의 절반가량 조목조목 열거하며 그걸 날로 먹으려 들었다.

“생각해 보겠네.”

이에 윤재구는 구재경에게 그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확답은 주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아마도 구재경은 윤재구가 자신의 장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 줄 거라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윤재구 회장을 옭아 맬 그 장남 윤현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괘씸한 놈....”

이러지 않아도 어차피 윤재구는 자신의 회사인 JG투자운영을 구재경에게 맡기려 했었다.

물론 회사 주식까지 다 그에게 넘기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에게 약간의 주식과 함께 그를 JG투자운영의 대표 자리에 앉힘으로 해서, 미욱하지만 어째든 자신의 피가 흐르는 그의 남은 자식들과 손자들을 좀 돌봐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여태 지켜 봐온 구재경에게 그 정도 부탁은 해도 그가 들어 줄 거라 여겼기 때문에.

한데 지금 보니 구재경의 욕심이 진짜 장난 아니었다. 이러면 그의 사후 구재경에 의해 그의 후손들이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구재경이 무슨 수를 쓰던 그의 어리숙한 후손들을 털어 먹을 테니 말이다.

“젠장....”

윤재구는 자신이 사람을 한참 잘못 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구재경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싹 사라지면서, 도리어 그에 대한 혐오감이 강하게 일었다. 사실 구재경에 대한 속죄는 자신의 장남인 윤현수의 죽음으로, 이미 충분히 그 죄값을 치르지 않았나?

그걸 구재경 본인에게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뭐 어째든 지금 윤재구 입장에서 구재경의 요구는 들어 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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